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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
김영순
시인동네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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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책소개

목차

제1부

포옹·13/싸락눈만 싸락싸락·14/한통속·15/달과 고래·16/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17/순록의 태풍·18/초록 대추·19/살금살금 살구나무·20/빛 그리고 그림자·21/남방큰돌고래 제돌이·22/목련이 필 무렵·23/유아불기(?兒不記)·24/파계·25/가짜 창문을 열어요·26

제2부

잔소리국밥·29/배롱나무·30/작약꽃 안부·31/소리를 보다·32/별 떡·33/유품 보고서·34/달빛 봉봉·35/편백나무에 대한 예의·36/고양이발톱고사리·37/동백과 고구마·38/그 말·39/우묵사스레피나무·40/홀어멍돌·41/말 되지 양·42

제3부

벼락 맞을 나무라니·45/방답진 굴강·46/마량항·47/테우리막·48/테우리 코시·49/그리움의 방식·50/푸른 통점·51/벌장의 겨울·52/벌들의 이사·53/꿀벌이 사라졌다·54/우회전 중입니다·55/공탁금·56/시인은 아무나 하나·57/한란·58/먹통·59/불시개화·60

제4부

그만하자·63/꽃집에서 굽다·64/거울의 화법·65/은행나무 밥집·66/마블링·68/나무는 지금 음악 감상 중이다·69/하늘 경전·70/마타리꽃·71/아크릴사 수세미·72/어떤 처방·73/마가라 마도가라·74/흉작을 꿈꾸며·75/간지 뜯긴 자화상·76/봄·77/어스름반·78

제5부

다초점·81/시차·82/봄의 영역·83/주시옵고·84/공갈·85/골무꽃·86/빗소리·87/하가리 연화지·88/여왕벌·89/안구건조증·90/금능리 1600-, 그곳에 가면·91/몌별·92/가을의 서사·93/적산 온도·94/유감·95/고삐·96

해설 오민석(시인, 문학평론가)·101

저자 소개 1

제주에서 태어나 2013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같은 해 《시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과 장물아비』 『그런 봄이 뭐라고』가 있다.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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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70g | 125*204*20mm
ISBN13
9791158966157

책 속으로

말은 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세렝게티 초원에서나 한라산 기슭에서나

서로의 뒤를 봐주느라 그 일생이 다 간다
---「포옹」중에서

서귀포 몽마르트르 솔동산길 오르다가
그저 비나 피할까 잠시 들른 이중섭 거처
일본서 당신의 부고가 손님처럼 와 있네요

수백여 통 남편의 편지,
그 편지 한 장 없어도
붓과 팔레트마저 미술관에 기증하고도
서귀포 피난살이가 그중 행복했다니요

돌아누우면 아이들 돌아누우면 당신
게들은 잠지를 잡고 아이들은 게를 잡고
오늘은 별 따러 가요
하늘 사다리 타고 가요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중에서

요즘 따라 아버지가 눈에 자주 밟힌다며
서먹하던 언니가 간만에 연락 왔다
기어이 동박새 우는 산소에 다녀왔다

모처럼 이른 저녁 순대국밥 먹다가
어느 순간 둘이서 눈이 딱 마주쳤다
얼결에 누가 먼전지 숟가락을 내려놨다

‘밥 망 먹지 마라, 그렇게 살아진다’
손등을 내려치던 아버지의 숟가락
오늘은 참 듣고 싶다
밥상머리 잔소리
---「잔소리국밥」중에서

‘착하다’
물 건너 일자리 찾아 나섰을 때도

‘착하다’
그 자리 박차고 내려왔을 때도

착하다, 착하다는 말
착하디착한 엄마 말씀

그렇게 그 말을 들은,
세상은 착해졌을까

오늘은 시집가는 딸에게
그 말 툭, 해버렸다

아니다
너는 나처럼 착해지지 말거라
---「그 말」중에서

모래흙과 바닷바람 그 불협화음이 빚어낸

평대리 어느 시인의 파치당근을 얻어먹다가 파김치 갓김치도 낼름 받아먹다가 급기야 그 당근밭을 통째로 해치웠네 태풍 몇 번 지나간 원형탈모증 앓는 자리에 돌산갓 고수 파 시금치 배추 심어놓고 손가락만큼 자란 파부터 눈 맞은 배추까지 주말이면 세상을 불러 다 퍼주는 조 시인이나 그 당근 사다가 다시 퍼 나르는 금릉리 양 시인이나, 기름값이라고 몇 푼을 쥐여줘도 마다하니 올해만 그런 게 아니라 해마다 그러하니 시인의 수입이 직업군 중 꼴찌일밖에

시인은 아무나 하나 아무나 시인이 되나
---「시인은 아무나 하나」중에서

세상에 함부로 놓아선 안 되는 게 있다
아버지는 그것을 가족에 대한 예의라셨다
서늘한 고삐의 행간
일기장에 고여 있다

말이 보는 세상이 네가 보는 세상이다
너무 꽉 잡지도 말고 느슨하게도 말고
언제든 잡아챌 수 있게
손안에 쥐고 있어라

사람이 만만해 뵈면 제 등에 태우지 않는다
몇 걸음 걷다가 내동댕이치더라도
고삐는 절대 놓지 마라
방향타가 될 터이니

---「고삐」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허술한 바람의 문장이 여기까지, 날 데려왔다.

앞으로 나는
지금보다 더 허술해질 것 같다.

2023년 9월
김영순

해설 엿보기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제주-자연의 풍경이 아득히 그리고 가까이 그려진다. 그것은 채색 소묘처럼 정겹고 아름다운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 안에 꽃 속의 벌처럼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 자체 풍경일 뿐, 풍경을 서사로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벌이 꽃을 찾거나 품을 때, 꽃은 비로소 무의미에서 의미로, 비존재에서 존재로 전화(轉化)한다. 김영순에게 사람과 풍경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사람과 풍경은 환유적 인접성의 관계에 있다. 사람을 떠올리면 풍경이 따라오고, 풍경을 떠올리면 사람이 따라온다. 김영순의 시에서 사람은 풍경의 전압을 올리고, 풍경은 사람의 전압을 올린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들은 사람과 풍경이 만나 일으키는 스파크이다. 그녀의 풍경에선 사람 냄새가 나고, 그녀의 사람에선 풍경이 보인다. 그녀의 시에서 사람과 풍경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깊어진다. 그녀에게 사람은 풍경의 안이고, 풍경은 사람의 안이다. 그들은 서로의 내부이다.

그래도 그리운 건 눈썹 끝에 달린 속세
어느 오름 자락에 세를 든 비구니 절
가끔씩 한눈을 팔듯 가지 뻗는 나무가 있다

그중에 살구나무 살금살금 돌담에 기대
‘어디로 통화할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집을 뛰쳐나왔을까

해마다 웃자란 생각 가지치기 해봐도
그럴수록 부르고픈 이름이라도 있는 건지

설익은 살구 몇 알을
세상에 툭, 내린다
― 「살금살금 살구나무」 전문

시인은 살구나무를 세상을 엿보고 싶어 하는 비구니에 비유한다. “살금살금 살구나무”라는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제목은 운율에 익숙한 시조 시인의 발명품이다. 살구나무는 절 밖 세상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서 “가끔씩 한눈을 팔듯” “살금살금” 가지를 돌담 밖으로 뻗는다. 비구니는 절 안의 부처를 얻은 대신 “눈썹 끝에 달린 속세”를 잊지 못해서 담장 밖을 기웃거린다. 바깥세상으로 웃자란 잡념의 가지는 아무리 가지치기를 해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도 끝내 세상에 도달하지 못할 때, 살구나무는 “설익은 살구 몇 알을/세상에 툭” 내림으로써 속세에 닿는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저 세상에서 이 세상을 꿈꾸는 것이 어디 비구니뿐이랴. 무념무상한 것은 오로지 자연뿐. 살구나무는 사람과 만나면서 드디어 사람의 풍경이 된다. 김영순은 이렇게 풍경을 사람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이 기획에 더해진 내재율과 대구법은 사람의 풍경이 된 살구나무의 움직임을 더욱 생생하고도 경쾌하게 살려낸다.

이제 겨우 돌쟁이가 봄 서랍을 빼꼼 열어

가제 손수건 한 장 한 장 픽픽 집어던진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아가의 눈망울을 봐
― 「목련이 필 무렵」 전문

목련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도 남다르다. 시인에게 목련은 봄의 전령일 뿐만 아니라 귀여운 “돌쟁이”이다. 그 어린 것이 “봄 서랍을 빼꼼 열어” 가제 손수건을 픽픽 집어던진다. 하늘에 “아가의 눈망울” 같은 목련들이 요술처럼 피어오른다. 저 귀여운 가제 손수건들은 도대체 “어디로 튈 줄” 모른다. 시인이 목련을 “돌쟁이”라 부르기 전에, 그것은 그저 목련일 뿐 즐거운 소란의 “아가”가 아니었다. 시인은 가제 손수건을 “픽픽 집어던”지는 돌맞이 아가를 호명함으로써 생물학적 존재를 인간적 존재로 전화한다. 이 시집엔 이렇게 시인의 호명으로 불려 나온 사물들로 가득하다.
― 오민석(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산문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당신이 다녀갔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당신을 찾으려다
자꾸만 놓치고 만다.

누군가
밥이나 먹고 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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