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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모(三毛) 11
괘란(掛欄) 21 청명절의 비(淸明雨) 23 불화기(不和氣) 26 신(神) 29 불화기(不和氣)_계속 38 배정(背釘) 54 뿌리(根) 58 수레를 타다(打車子) 62 하와취파(??嘴巴) 70 마 동의(馬同意) 74 전생의 인연을 찾아가다(走鬼親) 79 화염(火焰) 87 홍화 영감(紅花??) 92 어르신(?老人家)과 기타 100 밥을 먹다(茹飯): 봄날의 용법 106 모범(模範): 맑은 날의 용법 111 현묘한 이야기를 하다(打玄講) 113 현(現) 126 취살(嘴煞)과 번각판(?脚板) 129 결초고(結草?) 136 문서(問書) 144 헤이샹궁(黑相公) 147 헤이샹궁(黑相公)_계속 149 재앙의 주문(魔?) 163 삼 초(三秒) 165 와위(?瑋) 168 단장초를 보내다(放藤) 176 진파노(津巴?) 180 머리가 깨지다(破腦)와 기타 196 연상(憐相) 198 주아토(朱牙土) 202 파원(擺園) 205 표혼(飄魂) 207 게으름 피우다(懈) 216 황모 장기(黃茅?) 219 압자(壓字) 221 게으르다(懶): 남자의 용법 226 포피(泡皮)와 기타 235 민주 감방(民主倉): 죄수들의 용법 239 톈안문(天安門) 246 한(?) 253 괴기(怪氣) 257 방전생(放轉生) 269 치자화(梔子花), 말리화(茉莉花) 272 휴원(虧元) 276 개안(開眼) 291 기시(企尸) 295 은(?) 297 격과형제(隔鍋兄弟) 306 귀원(歸元)과 귀완(歸完) 313 백화(白話) 316 관로(官路) 325 작품 해설 327 작가 연보 349 가나다순으로 찾아보기 353 |
?少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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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독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글에서 자주 언급된 ‘신(神)’이라는 표현에 주의했는지 모르겠다. 마차오 사람들은 신이라는 단어로 일상적인 이치나 규율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를 표현한다. 이곳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평범함’을 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 일상적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행동은 예측하기 힘든 어두운 세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의 힘이 닿지 않는 천기나 천명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미친 것(神의 첫째 뜻.)’이거나 신명한 것(神의 둘째 뜻.) 둘 중 하나이다. 마차오 사람들은 신이라는 글자로 이 두 가지 의미를 두루 표현하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신화는 혼란한 비현실적인 상태에서 시작된다.
---「신(神)」 중에서 말의 힘은 이미 우리의 생명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인간은 언어를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하므로 언어가 없는 동물을 불쌍하게 여긴다. 언어가 없으니 지식도 없고, 언어가 없으니 사회도 만들 수 없으며 문화 축적과 과학 발달이라는 강력한 위력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동물은 소리를 잘못 냈다고 해서 푸차처럼 오랫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언어는 사람을 개보다도 허약한 존재로 만든다. ---「취살(嘴煞)과 번각판(?脚板)」 중에서 애매하고 모호하며,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저것이 될 수도 있는 말들이다. 이처럼 사람들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표현들을 일컬어 마차오 사람들은 ‘치자화(梔子花), 말리화(茉莉花)’라고 한다. 마차오 사람들은 대개 이에 대해 초조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 같지 않은 말, 그다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즐겨 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분명히 잘라 말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때로 어쩔 수 없이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은 부득이한 일, 힘겨운 고역이며, 외부 세계에 대한 마지못한 타협이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애매모호한 화법이 오히려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치자화(梔子花), 말리화(茉莉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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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언어의 전복을 통해 떠오르는
진정한 삶의 의미 사람들은 내게 다이스칭 이야기를 해 줄 때 ‘흩어지다(散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들은 톄샹의 아버지가 구걸하지 못해 흩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마차오 사전에서 내가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죽다, 사망하다, 끝나다, 늙다, 가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다, 뒈지다, 눈을 감다, 숨이 끊어지다, 만사(萬事)를 끝내다 등은 ‘흩어지다(散發)’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단순하고 천박한 느낌이 들어 ‘흩어지다’처럼 정확하고 생동감 있으며 세심하게 죽음의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한다. 마차오 사전1-「흩어지다(散發)」 중에서 이 소설의 사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얻는 대표적인 효과는 일상 의미의 전복이다. 예를 들어 마차오 사람들에게 ‘깨다(醒)’라는 말은 바보 같은 행동을 표현할 때 쓰인다. 그들에게 ‘깨다(醒)’는 어리석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깬 사람(醒子)’은 얼간이를 가리킨다. 「깨다(醒)」에서 작가는 혼탁한 세상에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했던 굴원(屈原)의 이야기를 통해 ‘깨다’가 ‘어리석다’란 뜻으로 뒤바뀌게 된 내력을 추리해 나간다.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굴원은 「어부(漁夫)」에서 “세상 모든 것이 탁한데 나만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가 취했거늘 나만 홀로 깨어 있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라고 말했다. 귀양살이를 하던 굴원은 과거 초나라에 의해 쫓겨난 라 땅 유민들의 구조를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다 결국 마차오 부근 멱라강 하류에 몸을 던지고 만다. 기록에 따르면 굴원이 라 땅에 있었을 당시 머리는 산발하고 맨발에 풀과 꽃잎을 어깨에 걸치고 이슬과 국화꽃을 먹으며, 비와 바람을 부르고 해와 달과 이야기를 나누며, 벌레나 새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하니 분명 실성한 상태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홀로 ‘깨어(醒)’ 있었다. 그렇지만 또한 마차오 사람들 눈에 굴원은 분명 ‘어리석은’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표의문자라는 중국어의 특성상 중국어에서 표준어와 사투리의 차이는, 같은 글자의 의미가 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 심리는 그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조정하거나 예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내멀미(暈街)’라는 말은 마차오 사람들이 시내에만 나가면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식욕이 떨어지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이 ‘시내멀미’라는 말 때문에 마차오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버스나 텔레비전 같은 문명의 이기에도 까닭 없이 경계심을 품는다. 『마차오 사전』은 이처럼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문명과 자연의 의미 체계를 뒤집음으로써 한자라는 규범 체계 내부에 교란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한자는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는 한편으로 ‘문화 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치 변동이나 ‘버스’와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도시 문명의 침입에도 흔들림 없이 도도히 흘러 내려온 인간 본연의 의식 세계를 탐구하는 도구로서 역할한다. 한편 이 작품은 중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심근 문학’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언어가 지닌 권력과 폭력의 그림자 『마차오 사전』이 다루는 또 다른 주제는 담론의 권력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담론의 권력이란 담론에 담론의 주체가 지니고 있는 신분, 지위, 권력, 명성이 투사되어 어의(語義) 이외에 강력한 힘을 부가한다는 말이다. 마차오 사람들은 이를 ‘말발(話?)’이라고 한다. 사실 언어 권력은 마차오만의 독특한 풍습은 결코 아니다. 푸코가 언어는 곧 권력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입증했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언어가 곧 권력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을 서기인 ‘번이’는 아무 회의에나 끼어들어 쓸데없는 참견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끌기 일쑤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말발(話?)’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담을 떠들며 삼팔선에서 본 탱크를 트랙터라고 불러도 아무도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 담론의 권력은 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차오가 점차 세상을 향해 개방되면서, 새롭게 수입되는 언어도 점점 많아진다. 특히 정치 권력에 의해 남용되는 여러 가지 언사들은 그들의 삶에 그대로 이식되지만,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규정짓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입에서 발출될 따름이다. 「만천홍(滿天紅)」에서는 밤마다 모여 지도자의 사진을 향해 차려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간부의 명령에 따라 큰 소리로 마오 주석의 어록 대여섯 줄을 암송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외치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마오 주석의 어록이라는 것이 출처도 불분명하고 때로는 간부의 편리를 위해 문구가 조작되기도 하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암송할 뿐이다. “마오 주석께서 올해 동백나무가 잘 자랐다고 하셨습니다.” “마오 주석께서 양식은 절약해야 하나 매일 죽만 먹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오 주석께서 지주는 성실하지 않으니 목을 매달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오 주석께서 돼지 분뇨에 물을 섞은 놈을 찾아내 그의 식량을 빼앗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차오 사전1-「만천홍(滿天紅)」 중에서 이렇듯 작가는 『마차오 사전』을 통해 언어가 일정한 시공간에서 어떻게 마차오 사람들의 문화심리를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그들의 삶을 정의하고, 규정지으며 예언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 심리 속에서 언어의 권력이 어떤 형태로 횡행하며, 결국에 자신들조차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어쩌면 이는 마차오라는 작은 마을의 일에 그치지 않고 방송과 미디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