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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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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미래주의: 시인의 도시 풍경화

밤 13
아침 14
항구 16
거리의 시 17
거리에서 거리로 18
그런데 당신은 할 수 있는가? 20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비극: 프롤로그 21
간판에게 24
극장 25
페테르부르크에 관한 몇 마디 26
여인의 뒤에서 27
나 29
포괄적인 봄 풍경 35
피로 때문에 36
사랑 37
우리는 38
갖은 소음들 39
도시 대지옥 40
자, 받으시오! 41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네 42
자동차 안에서 43
멋쟁이의 재킷 44
들어 보라! 45
그래도 어쨌든 47
또다시 페테르부르크 49

2부 전쟁의 노래

전쟁이 선포됐다 53
엄마, 그리고 독일인들이 살해한 저녁 55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 58
나와 나폴레옹 61
바지 입은 구름 67
척추 플루트 69
당신들에게! 70
판관에게 바치는 찬가 72
과학자에게 바치는 찬가 75
건강에 대한 찬가 77
그렇게 나는 개가 되었다 78
근사한 난센스 81
이보시오! 84
모든 것에 부쳐 87
릴리치카! - 편지를 대신한 시 95
싫증 99
암흑 103
이튿날 107
작가가 사랑하는 자신에게 바치는 글 110
마지막 페테르부르크 동화 114
러시아에게 117
작가 동지들 119
책임을 묻자! 123

3부 혁명의 시, 시의 혁명

우리의 행진 127
먹구름 조각 129
말에 대한 올바른 태도 130
혁명의 송가 133
예술 군령 136
기뻐하긴 이르다 138
노동자 시인 141
상대편에게 144
전우의 안부를 전하며, 마야콥스키 149
우리가 간다 151
여인을 대하는 태도 154
하이네처럼 155
내전의 마지막 페이지 156
쓰레기에 대하여 158
예술 군령 2호 162

4부 소비에트 자화상

회의 중독자들 169
개자식들! 173
나는 사랑한다 183
5월 1일 201
농촌 통신원 206
노동 통신원 209
5월 212
집으로! 216
세르게이 예세닌에게 222
진보의 최전선 234
의제로 상정하라 240
인조인간들 244
종이 혐오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가 느낀 점) 248
최고의 시 253
레나 258
취향 차이에 관한 시 265
타티야나 야코블레바에게 쓰는 편지 266
레닌 동지와의 대화 272
나는 행복하오! 277
목청을 다하여 - 서사시에 대한 첫 번째 서문 283
미완성의 시 295

작가 연보 307
작품에 대하여: 나는 시인이다, 그것만으로 흥미롭다 (조규연) 311
추천의 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청년 전위의 초상 (이장욱) 327

저자 소개2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마야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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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Vladimirovich Mayakovskii,Влади?мир Влади_мирович Маяко_вский

소련의 시인, 극작가, 배우이다. 조지아의 한촌(寒村) 바그다티의 산림관(山林官)의 집에서 태어났다. 바쿠 유전지대의 혁명적 분위기가 소년기의 마야콥스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부친 사망 후 모스크바로 옮겨 볼셰비키 혁명 운동에 가담, 2년간에 세 번이나 체포되었다. 그 후 모스크바의 미술학교에 입학, 미래파 시인 그룹에 속하면서 과거의 문학유산 및 부르주아 문학의 전통에 철저한 반항을 보였다. 노란빛 자켓을 허리 아래까지 내려뜨려 사람들을 몹시 놀라게 하는 화려한 시위로 유명해진 마야콥스키는 실제 작품면에서도 「바지를 입은 구름」(1915)이나 「등뼈로 만든 플롯」(1916
소련의 시인, 극작가, 배우이다. 조지아의 한촌(寒村) 바그다티의 산림관(山林官)의 집에서 태어났다. 바쿠 유전지대의 혁명적 분위기가 소년기의 마야콥스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부친 사망 후 모스크바로 옮겨 볼셰비키 혁명 운동에 가담, 2년간에 세 번이나 체포되었다. 그 후 모스크바의 미술학교에 입학, 미래파 시인 그룹에 속하면서 과거의 문학유산 및 부르주아 문학의 전통에 철저한 반항을 보였다. 노란빛 자켓을 허리 아래까지 내려뜨려 사람들을 몹시 놀라게 하는 화려한 시위로 유명해진 마야콥스키는 실제 작품면에서도 「바지를 입은 구름」(1915)이나 「등뼈로 만든 플롯」(1916) 등의 거친 리리시즘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야콥스키는 혁명을 '나의' 혁명으로 받아들여 인간의 해방을 초래하고 개인의 역량을 개화시키는 혁명의 승리를 노래했다. 그는 모든 재능을 혁명의 대의명분을 위해 바쳤고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와 나날의 생활 속에서 시의 제재(題材)를 찾았다.

그의 시법 또한 혁명적이었다. 토막토막 짤린 짧은 시구문이 그랬고 의미 및 음조를 강조할 수 있도록 단어를 행으로 나누어 나열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일상어의 교묘한 구사와 거친 유머의 사용도 혁명적이었다. 그는 집회나 공장에서 자작의 시를 자주 낭독했는데 그의 이러한 낭송하기 용이한 시는 고정화된 시어의 파괴를 지향했고 억센 힘과 동적인 비유에 충만해 있었다. 거기에다 뛰어난 서정적 재능과 기발한 발상 및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해서 그의 작품이 단순한 프로퍼갠더로 전락되는 것을 막고 있다. 특히 혁명 초기의 작품이 그러하여 유토피아적이고 예언적인 밝음이 있다.

혁명 전부터 전위시인(前衛詩人)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창조적인 정열이 폭발한 것은 10월 혁명 이후로서 1918년 소련 극문학의 제일성(第一聲)이 된 「미스테리 부프」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장대한 비유형식을 빌려 혁명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미래의 사회를 엮은 것으로 아리스토파네스를 연상케 하는 활력이 있다. 다음 희곡 「빈대」(1928)와 「목욕탕」(1929)은 몽환희곡(夢幻戱曲), 혹은 기상천외의 풍자적 수법으로 시정인(市井人)의 근성과 관료주의를 폭로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비난한 서사시 「150000000」(1920)도 공상의 비약과 거친 유머에 차 있다. 20년대에 들어와 미래파의 옛 동지들을 중심으로 한 잡지 [레프](예술좌익전선)를 발간, 전위적 문학운동의 중핵이 되는 한편, 레닌의 죽음을 노래한 「블라디미르 일리이치 레닌」(1924)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혁명의 정열을 격렬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내부로부터 좌절감이 싹텄고 시사적 문제에 관해 노래하는 것이나 시를 낭독하는 일에도 싫증이 났다. 그의 국가에 대한 봉사는 자발적으로 자신이 부과한 의무였으나 그 노력도 헛되어 당시 점차로 재편성기에 접어든 문학계의 공적 권위자들이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1930년 4월 권총 자살을 했는데 죽기 직전에 쓴 유고에는 "사랑하는 작은 배는 세속에 충돌했다"고 씌어 있었다. 그의 자살은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스탈린이 그를 소비에트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세르게이 예세닌처럼 냉대를 받지는 않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명성은 높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마야콥스키의 다른 상품

단국대학교 노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야콥스키의 희곡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RSUH)에서 마야콥스키의 조형시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단국대학교 유럽중남미학부 부교수다.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공저), 『International Yearbook of Futurism Studies』(공저) 등 마야콥스키와 러시아 미래주의 시학에 관한 저서를 집필했고, 주요 논문으로는 「시적 장르로서의 마야콥스키의 책 예술」, 「문학의 계승과 소비에트적 변형」, 「새로운 레디메이드와 삶의 예술」 등이 있다. 그간의 연구를 토대로 소비에트와 현대
단국대학교 노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야콥스키의 희곡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RSUH)에서 마야콥스키의 조형시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단국대학교 유럽중남미학부 부교수다.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공저), 『International Yearbook of Futurism Studies』(공저) 등 마야콥스키와 러시아 미래주의 시학에 관한 저서를 집필했고, 주요 논문으로는 「시적 장르로서의 마야콥스키의 책 예술」, 「문학의 계승과 소비에트적 변형」, 「새로운 레디메이드와 삶의 예술」 등이 있다. 그간의 연구를 토대로 소비에트와 현대 러시아 예술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유럽 예술이라는 큰 틀 속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말의 위력을 안다.”라고 강변했던 시인 마야콥스키를 국내에 보다 친절하게 알리고자 그의 창작에서 방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문학, 예술 관련 에세이의 우리말 번역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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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38g | 140*210*16mm
ISBN13
9788937475597

출판사 리뷰

그대들의 생각,
기름때 묻은 소파에 누운 배불뚝이 머슴처럼
물렁한 뇌로 공상에 잠긴 그 생각을
피투성이 내 심장 조각으로 자극하리.
파렴치하고 신랄한 나, 마음껏 조롱하리.

내 영혼에는 한 올의 흰머리도,
늙은이의 연약함도 없네!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힘으로 세상을 흔들며
스물두 살
잘생긴 내가 가노라.
―「바지 입은 구름」,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나의 영혼은
산산이 찢긴 먹구름처럼
불타 버린 하늘
종루의 녹슨 십자가에 매달려 있나이다!
시간이여!
절름발이 성상화가 그대만이라도
내 얼굴을
시대의 불구자 제단에 그려 주오!
장님이 되어 가는 자의
하나 남은 마지막 눈처럼 나는 고독하오!
―「나」,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나는 말〔言〕의 위력을 말이 울리는 경종을 안다
극장 특별석이 박수갈채로 화답하는 그런 말이 아닌
관(棺)이 불쑥 튀어나와
참나무 네 다리로 걷게 하는 그런 말
간혹 인쇄도 출판도 되지 않고 버려지지만
말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질주해
수 세기를 쟁쟁하게 울리고 시의
굳은살 박인 손을 핥으려 열차처럼 기어든다
말의 위력을 나는 안다
댄서의 굽에 밟힌 꽃잎처럼 하찮아 보일지라도
인간은 영혼으로 입술로 뼈로 이루어진 존재.
―「미완성의 시」,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그의 삶과 시에는 그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순과 갈등이 내재해 있었다. 그는 혁명의 기관차이길 원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의 상처와 대립과 내적 균열의 표상이 될 운명이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그의 시를 ‘리얼리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과 세계의 치명적 이면과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손쉬운 결론으로 봉합하려 들지 않는 미학적 자세를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 이것으로 끝인 것일까? 그럴 리가. 미래의 누군가는 문화사의 ‘박물관’에서 청년 마야콥스키를 꺼내 새로운 힘의 질료로 삼지 않을까? 마야콥스키의 전복적 에너지를 변주하고 변용하여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균열을 전시하지 않을까? 시든 음악이든 영화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도래할 문화사적 폭풍의 한가운데인 듯, “장님이 되어가는 자의/ 하나 남은 마지막 눈처럼”,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채로, 고요하고 격렬하다.”
―이장욱(시인), 추천의 글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미래주의의 기수,
언어를 혁신하고 세계를 바꾸다!
시와 회화의 경계를 섞고 삶과 예술을 통합하다!

혁명의 시대(1905~1917년)는 아방가르드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혁신적인 예술을 러시아에 선사했다.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혁명’과 상응하는 급진적인 예술 실험이 문학뿐 아니라 회화, 음악, 연극, 영화 등 러시아 예술 전 분야에 걸쳐 다채롭게 이루어졌다. 마야콥스키는 이러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특히 미래주의 경향을 이끌었던 상징적 인물이다. 1911년 전업 화가가 되고자 미술 학교에 입학한 마야콥스키는 다비드 부를류크를 비롯하여 이후 문예사를 바꿀, 미래주의를 함께 이끌 동료들을 만난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 완전히 새로운 예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젊은 예술가들은 “대중적 취향에 따귀를 때리라” 외치며 모든 전통과의 단절을 표방했다.

마야콥스키는 이러한 러시아 미래주의의 기수로서 파괴적인 영향력의 문예 운동을 주도했지만, 또한 동료들과 차별화된 지점을 보여준다. 급진적인 언어 실험의 결과물인 러시아 미래주의 시는 대부분 난해하고 심지어 내용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야콥스키에게 시란 미학이라는 이름 아래 밀폐된 언어 실험이 아니라, 현실 시공간과의 내면적 소통을 통한 ‘삶의 예술’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 언어는 특정 부류의 자족적인 예술 실험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고 소통하며 그로써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의지로 빛난다.

신경이 곤두선 바이올린,
졸라 대다가 이내 아이처럼
울어 댔다.
참다 못해 북이 하는 말.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다 지쳐
바이올린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분주한 쿠즈네츠키 거리로
황급히 떠났다.
가사도 없이,
박자도 없이
울고 있는 바이올린.
(......)
“머저리,
울보,
눈물이나 닦아!”
나는 일어나
비틀비틀 악보를 지나,
두려움에 몸을 굽힌 악보대를 지나 기어갔고,
무슨 까닭인지 외쳤다.
“맙소사!”
나무 목에 매달리며 말했다.
“바이올린아, 알고 있니?
우리는 지독히도 닮았어.
나 역시
외쳐 본들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어!”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내가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당신들,
성화(聖?)처럼 동굴 속 영혼에 보존된
당신들 모두를 위해
나는 시가 가득한 해골을
축배의 와인 잔처럼 들어 올리리.

자꾸만 드는 생각.
내 삶의 끝에 총알의 마침표를
찍는 게 낫지 않을까.
만일을 대비해
나 오늘
고별 연주회를 열리라.
―「척추 플루트」,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마야콥스키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그가 시인이기 이전에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였으며, 그의 삶과 창작에서 시와 회화는 별개의 장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빛과 색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회화적 인식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에게 회화는 창작의 주된 주제이자 형식이었다. 미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만들어 낸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는 지면에 국한되지 않는 방향의 예술로 뻗어나간다. 그의 창작 세계에서는 광선주의, 입체파, 구축주의 등 회화의 영역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컵으로 물감을 뿌려
일상의 지도를 단숨에 지워 버렸다.
나는 아스픽 접시에서
대양의 비뚤어진 광대뼈를 보여 주었고,
양철 물고기 비늘에서
새로운 입술의 부름을 읽었다.
그런데 당신은
빗물 홈통을 플루트 삼아
녹턴을
연주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당신은 할 수 있는가?」,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혁명 시인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예술가의 고뇌를 만나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은 시인에게 세계의 혁신을 의미했다. 혁명 이후 창작을 포기하거나 도피를 선택했던 이들과는 달리, 마야콥스키는 정치와 예술을 통합한 혁신을 실천하고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선전 선동 시와 국영 기업의 광고 포스터 작업을 하는 등 큰 변화를 감내한다. 게다가 그는 명석함과 자유분방함을 타고난 궁핍한 십 대 소년으로서 일찍이 자연스레 마르크스주의 혁명에 끌렸으며 사회주의 사상 선전 활동으로 인해 성년이 되기 전 이미 세 차례의 수감 생활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마야콥스키의 이력은 사후 그를 ‘혁명 시인’으로 만드는 매력적인 재료가 되었다. 소비에트 비평의 틀에 박힌 서사 속에서 시인은 영웅이 되었으나, 이는 동료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말처럼 ‘제2의 죽음’, 즉 시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당했을 뿐이다.

그러나 1917년 이전의 소위 미래주의 시기와 비교하여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이 시기의 작품에 대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그저 폄훼하고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것 또한 온당한 평가는 아니다. 정치와 예술의 딜레마는 마야콥스키의 생애 전반에 반복되고 있으며,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억압이 강할수록 자유로운 영혼의 펄떡임은 더욱 드러나기 마련이다. 소비에트 체제 아래 격변의 현실을 살아내며 예술가로서의 창조의 고갱이를 지키고자 했던 고군분투는 이 시기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인들이란
노련한 족속.
시?
좋지.
압운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5월에 관한 시보다

저속한 건 없었어.
―「5월 1일」,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믿고자 했던 정치 혁명에 의해 예술 혁명이 폐기되고, 더 이상 ‘목청을 다하여’ 노래할 수 없는 시대의 암흑을 마주한 마야콥스키는 자신의 ‘창작 2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이러한 비극적 인식을 담은 유언시를 대중 앞에서 낭송한다. 이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그는 1930년 4월 14일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의 창작은 내용과 형식, 인간과 시인, 삶과 예술, 나아가 정치와 예술 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발전했다. 그의 죽음은 혁명 이후 ‘12년간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던 동시대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또한 그가 “시인으로 죽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후반기 창작 세계는 실존의 마야콥스키와 시인 마야콥스키가 치열하게 분투한 현장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닌 시의 종말, 그리고 20세기 초 위대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종언이자 예술 혁명으로서의 미래주의의 끝이었다.

나 역시
선전 선동 시는
신물 날 지경.
나 역시
당신들에게 로맨스를
지어 줄 수 있었건만.
그것이 돈벌이도 되고
매력적인 일이니.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누르고
내 노래가 흘러나오는
목구멍에
올라섰다.
―「목청을 다하여」,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1973년 시작한 국내 최고(最古) 문학 시리즈!

‘카르페 디엠’의 시인 호라티우스로부터 영화 「패터슨」의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까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더니즘의 대표 작품 『황무지』, 『악의 꽃』, 페르난두 페소아, 미국 시문학계의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 19세기 대표 시인 에밀리 디킨슨 등 반세기 동안 엄선된 시선집으로 가장 오랜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는 국내 최고 문학 시리즈 ‘세계시인선’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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