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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물 텀벙 12 달빛 세 14 채전의 유산 16 풍선인형 18 민달팽이 20 목욕 22 부지깽이나물 24 등을 굽다 26 아버지를 먹는 새벽 28 그레고르 잠자 30 바람 갤러리 32 터널의 터널 34 검은 만월 36 원룸 38 황사 바람 40 제2부 주먹을 줍다 44 택배 46 열대야 48 염소 뿔을 베었다 50 동판벌 52 곡우 54 밤에 우는 꽃 56 김의 몰락 58 유수지 60 플래시 62 외딴 약국 64 금지된 외출 66 억새꽃 71 난감한 화병 72 하이에나 74 크레바스 76 제3부 고욤나무 80 천변 노숙 81 동지꽃 82 여름 한파 84 자벌레 86 배신과 배려 사이 88 동업 90 노근 93 비요일 94 그 겨울의 꽃집 96 난해한 분노 98 제비꽃 수제비 100 달 김치 102 야간 비행 104 우두커니 나무 106 제4부 금목서 향기는 그늘을 가리지 않고 빛난다 110 나비 성(城) 112 순대 114 길 116 복서 118 겉절이 120 야 백 수 122 터널의 경고 124 동물성 가스관 126 찻잔 128 바나나 130 한 상자 미인을 싣고 132 배롱나무꽃 134 누드화 그리는 밤 136 철새 공항 138 자린고비 김밥 140 - 이동견의 시세계 | 임지훈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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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먹고 사는 풍선인형
신장개업 화환에 둘러싸여 춤을 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출근길 아침 교차로 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를 버리고 춤사위를 지켜봤다 불콰한 얼굴 머리는 산발 발마저 묶인 바람 댄서 막 야근을 마치고 눈을 붙인 가로등은 자거나 말거나 팔을 비틀고 허리를 꺾고 고꾸라질 듯 자빠질 듯 묘기를 보이는데 음악과 스텝이 엇박이다 멀쑥한 키와 길쭉한 다리는 붉은 머리띠 대열을 이끌고 둠 둠 둠 북소리 휘날리며 학춤 추던 학다리 같다 한 시절 어딜 다녀왔을까 어쩌다 바람에 덜미 잡혀 발목마저 저당 잡히고 춤을 파는지 성치 않을 저 속과 허리를 나는 좀 알고 있다 내 것보다 남을 먼저 일으켜 세우던 속 없는 사람 그 허한 속을 바람이 드나들며 밥을 먹인다 바람에도 피가 흐르고 생각이 드나들어서 나도 저 바람을 먹고 끊어진 기타 소리를 내며 생의 거리를 떠돌았다 내일은 또 어느 축제판에서 바람의 찬송가를 현란한 비트에 맞춰 빅 스텝을 밟을지 ---「풍선인형」중에서 천변에서 새가 운다 냇물도 숨죽여 흐르는 깊은 밤에 새 두 마리가 운다 새는 보이지 않고 울음만 들린다 금 간 창이 떨어질 듯 쩌렁쩌렁 운다 한 마리가 울면 다른 새가 받아서 울고 다시 한 마리가 되받아서 더 큰 소리로 밤을 찢을 듯 울어댄다 이건 우는 게 아닐 것이다 문 열어 달라고 발로 쾅쾅 차는 협박일 것이다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절규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늦은 귀가에 성난 암컷이 수컷 길들이기일 것이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각서에 떠밀려 문전박대당하고 야심한 아파트 그네에 앉아 마누라 이름 불러 대던 주정뱅이처럼 저 한 쌍도 오늘 밤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창 열고 귀를 빼고 들어봐도 어느 쪽도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목을 빳빳이 쳐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지 예리한 쌍날 눈빛을 안주인 양 씹어 삼키던 생각만으로 오싹해지는 그런 날 있었지 내일 아침을 생각하면, 크는 아이를 생각하면, 소름 돋는 쪽이 져주었을 것이다 저들도 아이를 걱정하고 옆집을 생각했는지 얼굴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데 언제 달려왔는지 열사흘 달이 깊숙이 플래시를 비춘다 ---「밤에 우는 꽃」중에서 그대 떠난 산자락에 금목서꽃이 피었다 떠나는 계절 저 홀로 피어 어쩌자고 향기는 돌아서려는 발길을 묶는가 절정을 위해 피는 게 아니라 거두어 갈 때 비로소 피는 금목서 향기 같은 사람 별은 밝은 자리 가려 빛나지 않고 금목서 향기는 그늘을 가리지 않고 빛난다 푸르름을 지우지 않는 날갯죽지에 어떤 그리움이기에 다 떠난 자리마다 서럽도록 향기를 심을까 어느 생애가 금빛이었다 하여 노을 진 곳곳에 노란 향기를 따를까 다투어 피던 것들이 다 떠나고 다툴 것 없으니 빈 가슴은 향기로 가득 채우는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꽃잎에도 실망조차 사치여서 그대는 떠나는 뒷모습도 사랑하였으리라 투명만 남기고 간 생애 경배하는 마음은 마르지 않는 말을 꽂아둔 책갈피 앞에 촛불 켜두리라 속울음을 삼키던 꽃이 향기로 피어나는 해 질 녘 그대의 눈빛 얼마나 깊었기에 풀벌레들은 저리도 애를 태울까 마른 바람이 다 쓸고 가버린 억새 우는 산자락에 서서 펼쳐볼 수 없는 영상을 넘기며 노을은 그대 향기로 젖는다 ---「금목서 향기는 그늘을 가리지 않고 빛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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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견의 시는 외부 대상을 향한 시선의 깊이를 통해 일상 속에 접혀 있던 낯선 순간을 풀어내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촉발된 질문은 접혀 있던 일상이 펼쳐지듯 함께 개화하여 존재 일반을 향한 실존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시적 전개는 한편으로 선경후정의 전통적인 서정시의 양식과 닮아 있으면서도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선의 전환을 매우 유려하게 해낸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때 외부 대상은 나와 분리된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나의 사유와 감정이 담긴 보고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시의 구조 속에서 화자의 바깥을 향한 시선과 내면을 향한 시선은 서술에 따라 구분 가능하면서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구분이 가히 불가할 정도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의 내면을 향하는 시선이란 마치 뫼비우스의 띠가 어느 순간 뒤집혀지듯이 외부 대상을 향한 ‘나’의 시선의 자연스러운 배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화자가 자연을 관찰하고 이에 대해 서술하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해 가는, 자연주의적인 성격이 도드라지는 시편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시인의 말 전부라 여겼던 세계를 닫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두려웠다 철새마을은 객을 살갑게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쇠뜨기 쇠비름 소루쟁이 질경이 망초 달개비 한 발 물러 앉은 몸짓을 그렸다 저어새 개똥지빠귀 콩새 박새 굴뚝새 날갯짓에 엉키는 피를 읽었다 깻잎 따는 손 모종 심는 호미 전지하는 가위 꽃 눈꼽 떼는 핀셋 흙에 젖은 땀의 숨소리를 받아 적었다 화려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 눈여겨보지 않은 이름들이다 시인만 읽는 시가 아니라 시민이 읽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절감했다 그들의 가슴을 두고 무엇을 말하려는가 나를 창조하라는 니이체 외침이 등짝을 후려쳤다 여기 그들의 일상을 일러바친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정교하지 못한 말은 철새 마을의 심장 소리로 귀담아 들어주시면 좋겠다 2024년 10월 철새 마을에서 이동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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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견의 시는 자연 속에 담긴 인간의 일상을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탐구한다. 그의 시집은 일상적인 경험과 자연의 모습을 두루 포착하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가 갖는 실존적 질문을 예리하게 펼쳐내고 있다. 이러한 포착과 펼쳐냄은 자연 속에 담긴 인간의 시선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대 도시인의 시선과는 다소간 차이가 있다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시선은 그가 익숙했던 세계를 닫은 대가로 얻어낸 시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지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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