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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구름 붕대 말풍선 속에 그대 이름을 적었어요 10 시간 세탁소 12 떡갈나무 ISBN 14 맘과 몸 16 비누 18 나를 스캔하다 20 양파의 계절 22 주사위 놀이 24 빗방울 초상화 26 아에이오우 28 로젠다리 30 콜콘다의 남자들 32 구름 붕대 34 제2부 수박 박수 나비 포옹법 38 원래 41 번호들이 문을 잠그다 44 부엌의 역사서 46 선택지가 없는 봄 48 저녁의 효과 50 눈꽃의 DNA 52 사과나무와 속도 54 구름족 운동회 56 나 홀로 입학식 58 수박 박수 60 깃털의 추락 62 황금빛 사자 64 제3부 모래밥 엄마 생각 68 계절의 잔고 69 가시고기 70 모래밥 72 백학의 귀향 1 74 강촌상상역 76 오늘은 폭풍이 없어서 가장 좋은 날 80 굴러라, 바위 82 숲 테라피 84 죽음의 얼굴 만나기 86 모자람의 행복론 88 내 마음에 건너와 가라앉는 시계 90 달의 이력 92 제4부 리을의 노래 샘물의 감정 96 우수수, 그 말 없는 무게 98 봄, 2025 100 사막에 달빛이 새다 103 파도가 쓰고 간 편지 106 시간장터 108 우린 고도 안에 갇힌 거야 111 물의 음표 114 너를 바라보는 법을 아직 배우는 중이다 116 대 118 리을의 노래 120 별의 씨앗 122 송연숙의 시세계 - 이재훈 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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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타지 않은 말 하나
불씨처럼 쥐고 서 있습니다 바닥에 엎질러진 말들 사이로 흘러내린 커피의 체온이 식고 있어요 나는 건조대에 널린 하루를 털어 말리고 바다가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 읽지 못한 메시지를 열어봅니다 비워 놓은 말풍선처럼 견디는 자의 하루에는 박수가 없습니다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을 수평선이 자르며 지나갑니다 유리컵에 남은 마지막 물기처럼 나는 흐리고 작아지다 사라집니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건 어쩌면 그 하루에 다 넣지 못한 말들 때문일지 몰라요 말은 불입니다 꺼내지 않으면 내 속을 태우고 함부로 꺼내면, 타인의 속을 태웁니다 그대를 태운 말의 씨앗이 무엇인지 몰라 뾰족해진 그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해안선을 돌 듯 그대의 마음 곁을 돌고 또 돕니다 꺼내 놓지 못해서 비어 있는 말풍선에 매달린 나의 하루가 젖은 구름이 되기도 하고 빗방울이 되기도 합니다 --- 「말풍선 속에 그대 이름을 적었어요」 중에서 깜박할 사이에 타버린 사골국 급하게 뚜껑을 열어젖히자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어둠이 쏟아진다 밤새워 핏물을 빼고,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알지 못했다 국물이 심장처럼 졸아들고 구멍 난 뼈가 까맣게 타들어 가는 엄마의 시간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이 세상에 부엌이 없다면 어디서 엄마를 만날까 어떻게 여자를 이해할까 섬처럼 젖은 맨발의 엄마 왕이 나오고, 전쟁이 나오고, 포로가 나오는 부엌의 역사 아일랜드 식탁에 앉으면 섬이 된다 나는 바다도 뭍도 아니어서 바다가 되고 싶었고, 뭍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 되고 싶었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 엄마의 당부에도 섬처럼 엎드려 파도가 왕처럼 던져주는 상처를 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오전 7시가, 정오가, 오후 6시의 돌덩이가 생일이, 명절이, 제사라는 바위가 멱살을 잡고 굴러내려 온다 집게발로 바다를 자르던 꽃게 그 다리를 뚝뚝 분질러 넣고 찌개를 끓인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 딸들에게 전하는 부엌의 역사서 같은 말 휘저으며 간을 맞춘다 --- 「부엌의 역사서」 중에서 ㄹ을 써놓고 나는 모서리를 생각해 막다른 골목을 생각하고 터널을 생각하고 미로를 생각해 리을이라 발음하면 노을이 퍼지는 것 같고 물결이 흐르는 것 같은데 철근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을 가진 리을 막다른 골목이라 할지라도 앞길을 예측하기 어려운 미로라 할지라도 풀어놓은 실타래 따라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여기가 터널이어도 나는 여기, 지금이 좋아 그냥 앞으로 가고 싶어 막혔다고 생각했던 길도 막상 달려가 보면 이어져 있었어 꺾이면서 익어 가는 게 삶이라면 기꺼이 꺾여서 모서리를 돌아가겠어 기꺼이 꺾여서 낮아지겠어 ㄹ은 자기 자신이야 입구도 출구도 내 안에 있어 문제도 정답도 다 내 안에 있듯이 말이야 무릎 꿇고 마루를 닦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리을 리을에는 패배가 아니라 경건이 들어 있었던 거야 이 가을 풀벌레처럼 쓸쓸한 리을의 노래를 숨죽이고 들어 봐 자신을 찾아가는 리을의 노래 --- 「리을의 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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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詩 외에는 존재하는 게 없다는 듯
짝사랑에 빠져 살았습니다. 눈앞에 있는데 닿을 수 없는 세상처럼 발돋움하며 바라보는 이 사랑은 나를 늘 애태우게 합니다. 그대의 이름을 말풍선 속에 적어 봅니다. 때론 슬픔으로 때론 기쁨으로 때론 스치듯 지나간 그대에게 나의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가을 송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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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성찰하는 존재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날아가는 시간” 앞에서 “생과 사의 간격은 깨진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얇”다.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서 송연숙의 시는 폭풍을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성찰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연의 비유를 통해 건져 올린 그의 노래는 우리를 치유하고 감동케 한다. - 이재훈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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