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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공생 거미 씨의 생존법 10 검은 입천장 11 데스리뷰 14 아프리카의 휴일 16 자신을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간다 18 COPY 20 긴 호흡 22 토끼와 바나나 26 뱅갈고무나무 죽이기 28 동물원에 사는 마음 30 데크레셴도 32 오늘의 화법 34 바다미술관 36 우리들 39 제2부 우리들의 관계 주검의 자세 42 요리의 품격 45 불편한 요일의 상점 48 중동이라 쓰고 충돌이라 읽는 충동 가능성 50 궁지에 몰린 생쥐 54 웬 문이 이리도 많은지 56 갈대와 억새의 차이 60 쿠키는 구름 맛 62 테이블야자 65 캐릭터 68 모자의 화풍 70 유형, 유형들 74 알비노를 위한 변명 76 두꺼운 책 78 오토바이보다 더 높이 날아오른 전사 81 제3부 반성적 자아 유리병에 빠진 꿀벌 86 뼈의 재구성 88 투명기법 90 수상한 웃음 91 찢어진 우산 94 식빵과 스티로폼 사이 96 블랙 99 주크박스 102 크레용, 크레용 104 카스트라토 106 맨발의 오월이 108 길 위의 장례식 110 제4부 꿈꾸는 자의 몸부림 세잔 112 복선 114 불면역 116 렌즈 속으로 118 당신의 선택권 120 이글루에는 정육각형 눈의 결정이 자라고 122 덜 아픈 사람 125 슬픔의 무게 128 내일을 연주해 주세요 130 사랑에 대한 예의 132 한 사람이 온다 134 자작나무숲 136 우는 사람 137 엔딩 크레딧 138 김사리의 시세계 | 최은묵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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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열쇠 구멍은 들여다보기 좋은 구조 모든 비밀은 구멍 밖으로 새어 나온다네 구멍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구멍 속으로 숨을 불어넣다가 구멍이 먹먹해진 사람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구멍이 아프기 시작하면 구멍 속에 살던 모든 질병이 또 다른 구멍 속을 파고든다는데, 구멍은 질주하고 구멍이 너무 많아 지팡이 든 노인은 노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구멍을 오래 맴돌던 사람은 자주 심호흡을 한다는데, 구멍 속에는 열쇠가 없다 그렇다면 입속에는 비밀이 없는 걸까 구멍은 왜 터널처럼 발걸음 소리를 텅텅 울리는 걸까 그러므로 구멍은 참을 수 없는 말의 무덤 실어증에 걸린 구멍이 도무지 소통 안 되는 구멍으로 손을 휘저어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다 밖으로 새어 나올 때 비밀은 제일 신나지 구멍을 빠져나오는 것이 한평생이라 한다면, 지금은 한 여름밤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가장 극적인 슬픔조차 지루하고 긴 여름밤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면, 평생은 한달음에 지나고 말 순간들 구멍 속으로 들여다본 것도 그토록 집착했던 일들도 모두 구멍 속의 일 결국 평생은 긴 호흡이었던 거야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너의 꽃잎을 지나가고 사랑이 별처럼 커졌다가 사그라들고 기차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구멍 속으로 소리마저 걷어가 버리고 말겠지 무릎을 꿇고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별이 빛나는 밤 누군가 열쇠 구멍 모양으로 웅크리고 앉아 숨 그네를 타고 있다 제 구멍 속에 꾸욱 눌러놓고 끝까지 중력을 잃지 않았던 구멍들이 그네를 밀고 당기고 있다 수위 조절에 실패한 별들이 강물 위로 덧없이 떠내려가는 밤 저물녘, 온몸이 구멍인 사람이 구멍을 잠글 열쇠를 찾아 헤매고 있다 --- 「긴 호흡」 중에서 다섯 가지 중에서 고르라고요? 가능성은 오류가 아닌 가정입니다. 열 가지 가능성이 다섯 방향으로 제한됩니다. 오류형 인간을 양성하는 오지선다형, 다섯 가지 중에서 고르라고요? 검정 사인펜이 길을 나설 때, 맨 먼저 마주친 당신에게 ? 검정색은 동행자가 필요한가요? ? 젓가락도 없는 당신은 무엇이 식기인지 알고 있나요? ? 저기 허리 꼿꼿한 소나무는 누구의 자식인가요? ? 상점들이 거느린 입은 몇 개인가요? ? 혼밥 중인 사람은 하루 몇 번의 저녁을 맞이하나요? 눈앞에는 아이돌, 누구나 다 아는 뉴스 뻔한, 뻔뻔한 교실 문을 닫고 시험지 밖 세상을 꺼내 보면 꿈결인 듯 잡히지 않는 먹장구름 속 손으로 더듬어서 묻습니다 당신 성씨는요? ? 김 ? 이 ? 박 ? 최 ? 정 문틈에 끼인 인간이 비로소 당신입니까? --- 「유형, 유형들」 중에서 여기서 기거하기로 하네 당분간 이글루 두 개의 기후를 끌어안고 사는 몸 밖의 내가 몸속의 나에게 말을 거네 사막과 빙하를 걸어온 나는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 이토록 작은 돔에서도 살아지는 게 신기하네 나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네 할 일에 대해 한 일에 대해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풀릴 수 있는 한기여서 간단히 이글루 이글루 속에 나를 가두면 내 안의 봄을 꺼내고 여름을 꺼내고 무성해진 풀을 베거나 축축하게 젖은 별을 사탕처럼 녹여 먹기도 하네 가끔은 순록이 끄는 마차를 타고 눈밭을 달리고 그런 날이면 이누이트족처럼 그린란드 해안의 외딴섬에서 깃발을 꽂아놓고 산타를 기다리네 어깨가 무거워지던 내가 눈의 결정이 되어 반짝이면 마침내 흉터마저 마른 자국으로만 남게 되네 밤의 능선에는 두툼한 장갑을 낀 길 위의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네 별을 보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는 눈의 결정이 반짝이고 있네 순정한 세계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을 때 찾아온다는 걸 바람은 차가울수록 표정이 따뜻한 손을 흔들고 있단 걸 마침내 이글루 여기서 묵기로 하네 폭설은 아직 멈추지 않는데 설원을 지키는 별똥별이 되어 --- 「이글루에는 정육각형 눈의 결정이 자라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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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이마에 닿기를 2025년 겨울 김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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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김사리의 목소리는 0℃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지점에서 두 개의 방향을 지닌 그의 시집을 어떻게 읽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어는점을 향할 것이고 누군가는 녹는점을 향하겠지만, 그것은 모두 옳다. 시집에 담긴 시인의 목소리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몸 밖의 김사리가 몸속의 김사리에게 말을 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최은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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