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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서시의 반대말도 모르는 서시 15 당신의 울음을 필사하는 하얀 밤 16 리허설 18 오늘의 물집 20 오늘의 풍선 22 백야 24 유빙의 온기 26 백야 29 가라앉지 않는 파동 32 묘연杳然 34 로그인 36 가위 38 일가족 40 암실과 레퀴엠 42 닻 45 닻 46 제2부 상심의 위력 50 흔痕의 연혁 52 태동 55 사라졌습니까 56 수몰지구 58 수몰지구 60 석류 62 석류의 안색 64 커튼 66 80년 동안의 분만 68 예보하지 않은 걸음 70 보온 72 어느 날, 나는 73 목각 안개 76 페이드아웃 78 장마 80 마트료시카 딜레마? 82 나무는 천국 속에서 자란다 84 피와 시 86 제3부 봄비 91 Ghost Town 92 드라이클리닝 94 심장 위에서? 96 증명의 오차 98 손오공이 근두운이라면 100 엄마는 참치의 화석이 아니다 102 스토커 104 수세권이라는 말 106 13주 후 107 냉장고와 치매의 100분 토론 108 소문처럼 흩어져 떠도는 한 사람 110 비의 성별 112 중심 잡는 시계 114 통증 116 나선 117 야광 118 회전문에 낀 염낭거미 120 문지아의 시세계 | 정훈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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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목구비가 비로소 서사를 갖기 시작하였다
특이점 없는 무혐의 속 오늘의 날씨에서 의지를 가지고 바라보는 너는 가만히 가만히 나를 계산하고 있었음이라 발화되기도 전 표정들과 함께 다 잠겨버린 소식들의 혀를 더 이상 구해내지 않음으로써 이해를 포기하며 각자 구기다 놓아버린 무용의 종이컵들처럼 사연은 점점 멀어져 간다 오직 한 사람의 표정으로만 성큼거리던 저녁 소용이 다 되어 떨어져 나가는 포스트잇처럼 이제 ‘세월’에서의 오늘이 곧 떨어져 나갈 뿐 당신의 울음을 옮겨 적는 밤 열정은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 그런 내 눈에 이미 가득 차오르는 것이 계절임을 모르고 자꾸만 자꾸만 봄으로 뒷걸음질 치는 나는 드문드문 있다 건너갈 수 없는 하나의 몸을 오래오래 쫓는다 아무런 기억도 기억해 내지 않은 채 그저 전속력으로 지나쳐야만 했던 --- 「당신의 울음을 필사하는 하얀 밤」 중에서 절망은 사람의 목발이라네 맨 앞에서 발목이 슬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그 사람의 꿈들이 떠나간 자리엔, 베개처럼 눕는 슬픔들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어 통곡은 리허설조차 없이 매혹적이야 누구의 가슴에도 각주로 달 수 없는 슬픔, 어느 기도문에도 퇴고되지 않는 기도들이 범람하고 또 범람하지 계절마다 되풀이되는 건 삶을 구원한다는 사제들의 말뿐, 그러나 그 말마저 얼어붙어 가는 것을 보았네 무겁게 언 강물 위로는 시간이 부서지며 흘러가고, 떠난 자들의 흔적은 빛을 잃은 채 물결 속으로 잊혀 가고 있지 물속 깊은 곳에서조차 여전히 들려오는 건 한숨 같은 물결 소리. 희미한 희망조차 녹아내린 땅, 그러나 그곳에도 아픔을 감싸안은 봄이 언젠가는 찾아올까 아니, 그저 얼음이 녹아 흐르는 일만 남았을까 --- 「수몰지구」 중에서 반고리관에서 떨어진 발자국을 따라 꽃잎들을 모조리 짓밟으며 걸어가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영원에 도달하겠지 그러나 나는 허물어진 집 앞에 멈추었다 그 두꺼운 입방체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한 번은 관성처럼 기울어졌다 비의 냄새는 바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눅눅한 8월의 어느 구간 유지를 받은 복제인간처럼 순응해도 좋았다 누수된 베란다에 도서를 몇 날 며칠 띄웠다 글자로 이룬 바다 위 종이배가 떠다니듯 나는 엮인 아버지의 시집을 날마다 회수했다 --- 「나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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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희망은 태어난 적이 없으며 절망은 철마다 다시 자랐다 죽음을 조는 새벽이 뿌옇게 퍼진 후에야 발 없이 추락하는 고백과 토해낼 수 없던 사연들로 울먹임만 자꾸 뛰어오르는 그날 맥박을 가지기 시작한 새날이었다 조용히 안아 올리는 내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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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옮겨적는 시인의 통각은 따뜻한 맥박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문지아의 실존적 자아는 고통과 기쁨의 크레바스에서 열정적으로 솟아오른다. 시인에게는 상처가 쓰는 동력이며 그런 슬픔의 세계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문지아의 시는 물집이 심장이 되기도 하며, 떠도는 빙하에서도 맥박을 듣는 귀를 가진다. 문지아의 변신과 파동의 감각은 태동을 찾는 모성의 마음처럼 오래 남아 깃든다. - 이재훈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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