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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혼자서도 잘해 상팔자 10 국밥 다 식을라 12 왼손이 한 일 오른손도 알아야 14 기억이 가려울 때 16 혼자서도 잘해 18 부호들 20 겨울 북향 22 장마 24 음지도 양지가 있다 26 덫 28 격렬비열도 30 달의 뒤란 32 제2부 가르고 벼르는 소문 36 지방도 616 38 가르고 벼르는 40 간절에 대하여 42 버뮤다 삼각지 45 히마리 48 싸움의 기술 50 누수 52 도로명이건 지번이건 54 의좋은 형제들 56 귀거래歸去來 59 리바이벌 62 어색한 밥상 64 제3부 어떡해 어떡해 68 네안데르탈인의 책력 69 살어리랏다 72 비유의 형식 74 제풀에 76 불광천 수달 78 시치미 떼고 80 더께 얼굴이 되어 82 구제 나이롱 84 극한 86 난민 88 어쩌다 잊었는데 90 염치 92 퍼스트 네이션스 94 제4부 믹스 98 짓다 99 아직 나일는지 100 마음길 나들목 102 모르는 이 아는 이 104 실새삼 106 문의 얼굴 108 하현달 110 언제 적 112 충전 그리고 방전 114 귀로 116 아침은 혼자 오지 않는다 117 이심훈의 시세계 | 이철주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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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행성의 겨울 바닷가 민박집이다.
만조의 파도가 뜨락 아래 서성거린다. 달의 심장 박동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미세기에 섭슬리는 몽돌의 연주 따라 내게 구박받은 내가 저만치서 흔들린다. 시간은 실존하는 시계보다 늘 서두르고 시계는 존재하는 공간보다 자꾸 더뎌져 자신에게 학대받은 자기를 어르기 좋은 달의 뒤란으로 시공時空을 넘어서 간다. 못내 섭섭하면 뒤꼍 장독 뒤에 숨어 울었다. 장꽝의 채송화 서광 봉숭아 분꽃들이 함께 울어 주었다. 누군가 덩달아 울어 주면 금방 배시시 웃을 수 있다. 저만치 도라지꽃도 담뿍 웃어주면 괜스레 쑥스럽던 뒤란으로 간다. 몽돌 널브러진 해변에 보름달이 떴다. 화사하게 웃는 모습 바라보는 순간은 온갖 쓰라린 기억의 신경줄이 밀집된 뒤통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얽고 패인 시간의 입술이 크레이터로 우묵하다. 섭섭해 품은 그믐달의 예각을 벼려야 몽돌이다. 어쩌다 달의 앞면만 바라보았나 봐 감정 이면에 서성인 묵은 우울 조각들 골목 전봇대에 엉킨 통신선에 걸렸어도 고개 돌려 못 본 척하고 지나쳐 갔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달의 뒷면 전파 SNS 시간도 불통인 고립무원 눈치 줄 빛 전해줄 바람기마저 없는 아늑하다. 차고 오를 바닥에 닿는 고요 운석으로 내려앉은 고독의 뼛조각들 곁 울기 좋은 곳 하나쯤 품어도 괜찮겠거니. --- 「달의 뒤란」 중에서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기가 더 어렵다는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아 하고 턱의 힘을 빼라는데 힘을 빼려고 애쓸수록 힘이 들어가 치과 마취 주사 맞으며 핀잔먹었다. 진눈깨비 내리는 초겨울 질펀한 운동장에 엎어져 교련 검열 준비하다 힘 들어가 거부하는 눈빛이라 얻어터졌다. 병영 훈련에서 얼차려 받으면서 힘 들어가 반항하는 눈빛이라 알대가리로 원산폭격 했다. 공연스레 눈에 힘 들어간 반골 기질 때문에 얻어터진다고. 눈 내리깔고 히마리없는 듯 다소곳하면 무난할 것이라고. 너 땜에 사서 고생한다며 친구는 어르고 동료는 비아냥거렸다. 반골은커녕, 마루 밑으로 들어간 겁많은 개의 눈빛을 보았니? 힘 있는 자들은 죄 빠져나가고 날파리만 걸려든다던 거미줄 공화국. 만만한 놈이 본보기로 얻어터져야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다. 축대 맨 아래 틈새에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꽃피우는 민들레. 태풍에 발랑 드러누웠다가 사나흘도 안되어 일어서는 강아지풀. 힘을 주고 버티기보다 힘을 빼고 어우러지는 고수들이다.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기가 더 어렵다는 걸 진즉에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힘껏 싸워 이기라고만 부추겼다.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사는 법을 때맞춰 배우지 못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어깨 힘 빼고 조신하게 있으면 분수에 맞게 잘 만들어 줄 텐데 늙어가면서 히마리 없는 삭신에 주책없이 무슨 힘이 자꾸 들어가 어여쁜 미용사에게 눈치만 먹었다. --- 「히마리」 중에서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내버려두어요. 흐르는 게 강이요 흘러가야 강물이라 목새땅에 빠지고 둔치에 발목 적시며 멀찌감치 물러서야 보이는 강의 민낯 한때 우리가 본 것은 아집의 강 금모래 은모래 비단강 모래톱 덮고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하굿둑 막혀 헛것 괴어 어물어물 녹조로 번졌다. 닫힌 물길 빗장 풀리자 강의 원주민들 돌아온다. 가창오리 흰목물떼새 원앙 날아들고 흰수마자 큰주홍부전나비 어디 갔었니. 눈물겹게 살아남은 피라미와 돌마자들 모래알 씹었다가 연신 뱉어내며 금억새 살랑살랑 손짓하는 고마나루 발원지 뜬봉샘에서 굽이굽이 천 리 길 천내습지 곰나루 구드래 기벌포구까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허드렛물 수챗물 다 받아 구시렁댐 없이 개어귀 강어귀마다 지천으로 돋는 미나리 용수 지른 듯 썩은 생각마저 걸러내던 강 제풀에 덕지덕지 돋아나 이름도 이쁘다. 운암리 유하리 장하리 청포리 에두르는 대지의 젖줄을 누가 가둘 수 있는가. 지들끼리 알아서 흐를 것은 흐르고 고일 것은 고일 것이다. 지천이던 재첩 모래무지 우여 참게 손차양하고 노을빛 바라보던 구드래나루 파여 허기진 물기슭 모래 한 줌 얹어주고 돋아 배부른 가생이 황토 한 줌 덜어내며 굽이굽이 물길 내어 어디든 나지막한 곳 마음 흘러가는 대로 더불어 살어리랏다. 목새 속울음에 대를 이은 둔치 푸새 노을 헹궈 곱디고운 물비늘 노닐 때 저만치 수면 위 피라미들 구경나오는 흐를 것은 흘러가게 내버려두자고요. --- 「살어리랏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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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잘 벼려진 언어의 칼날 극한이란 말이 잦아진다. 극한의 기후 재난 갈등이 소외의 집에 마실 다닌다. 식욕 돋워 밥 먹고 근력 다져 침묵 씹어 혼자서도 잘하는 고독력은 사전에 없다. 오른손 한 일 왼손이 알고 왼손 한 일 오른손이 아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함께 가야 덜 외롭겠다. 2025년 가을 이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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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훈의 시는 우리의 투명한 부끄러움 곁에, 부끄러움이 밀어내고 지우려 했던 타자들의 목소리 곁에 선다. 세상의 모든 희미해져 가는 것들의 곁에서 그들을 대신해 묵묵히 노래하고 증언한다. 잊어야 할 것들,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결코 묵과하지 않으면서. 희미해진다는 것은 더 많은 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기에 이 노래가 끊기지 않는 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무엇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 이철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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