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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0장 서시 12 승리의 땅, 자카르타에서 14 자카르타 연가 16 여행에 부쳐 17 제1장 파타힐라 광장에서 바타비아의 오래된 항구 20 올라가지 않는 도개교 22 삐니시 1 23 삐니시 2 24 루아르 바땅 마을 26 뭍으로 올라온 지느러미들 28 순다 끌라빠 항의 전망대 30 해양 박물관 32 옛 조선소, VOC 갈랑안 34 빨간 상점 36 역사박물관 1 38 역사박물관 2 40 역사박물관 3 42 파타힐라 광장에서 43 카페 바타비아 44 제2장 반쪽 폐로 지킨 나라 슬라맛 다땅 48 꺼지지 않는 불꽃 50 반쪽 폐로 지킨 나라 52 시간이 멈춘 거리, 잘란 수라바야 54 수로빠띠의 이름으로 56 그늘진 기억, 스넨 시장 58 음표로 지은 배 60 묘비 박물관에서 62 이국에 묻힌 병사들의 영혼 64 깨달음의 자리, 스토비아 66 자바의 첫 망명객, 오랑 꼬레아 장윤원 68 독립 영웅, 양칠성 70 바리의 꿈, 버락 오바마 72 성 마리아 대성당 73 제3장 신의 그림자, 와양 바틱 1 76 바틱 2 78 바틱 3 80 앙끌룽 81 옛 노래, 두타 82 도예가, 위다얀토 84 하리 다르소노의 꿈 86 불멸의 테이블 88 보로부두르, 화려한 부활 90 사만가요 춤 92 신의 그림자, 와양 93 제4장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뿐짝, 차밭에서 96 해변의 기도 98 안쫄 바다 99 자카르타의 우기 100 바타비아 마리나의 노래 101 쯔짝, 도마뱀 울퉁이 102 오후 3시의 공원 104 부치치 못한 편지 105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106 중앙 우체국, 우정의 길 위에서 107 시간을 담은 바꿀 커피점 108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110 옛 우체국의 시간 112 해설 | 최준 113 발문 | 도종환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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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불 아래
천이백 년을 넘어 앉아 있다 부서진 전설 위에 놓인 식탁 나무의 숨결이 흔들린다 라라종그랑 사랑 때문에 석상이 된 공주 그녀가 다시 살아 천국에 오른다 왕은 먼 길을 돌며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음식에 문화를 넣었다 한 잔의 커피 속에서도 빛바랜 유물 속에서도 황금빛 전설 속에서도 보로부두르의 새벽이 쁘람바난의 노을이 붉게 피어난다 사진 속 수카르노의 미소 베자드의 그림이 벽을 채운다 와양은 끝없는 이야기를 품는다 라라종그랑의 꿈을 수저질한다 불멸이란 전설이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임을 * 뚜구 라라종그랑(Tugu Lara Djonggrang): 예술품 수집가 안하르(Anhar Setjadibrata)가 설립한 뚜구 그룹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욕야카르타 쁘람바난 사원의 전설 ‘라라종그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부티크 호텔·레스토랑 체인인 뚜구의 철학 - “살아있는 박물관” - 아래, 마자빠힛(Majapahit) 왕국의 전성기 하얌 우룩(Hayam Wuruk) 왕과 재상 가자 마다(Gajah Mada)가 누리던 향신료와 요리의 세계를 재현한 연회 같은 공간이다. --- 「불멸의 테이블 - 뚜구 라라종그랑*」 중에서 옛 바타비아 한가운데 시간은 돌바퀴를 굴리며 흐르네 역사의 숨결 깃든 광장 돌길 위 자전거 바퀴 돌아가고 사람들은 웃으며 사진을 찍네 붉은 기와 아래 박물관은 과거를 품고 오늘을 맞이하네 네덜란드의 발자국 남은 시청 말라카에서 온 대포가 서 있고 그림 같은 거리엔 오래된 우체국과 무역회사 액자로 들어온 카페 바타비아 사형대가 서 있던 자리 지금은 노래와 춤이 흐르고 역사의 그림자 품고 문화의 빛으로 다시 피어나네 파타힐라, 그 이름 아래 과거와 현재가 손을 잡고 낡은 광장에 퍼지는 자유의 노래, 희망의 꿈 --- 「파타힐라 광장에서」 중에서 그 바다엔 달이 낳아 놓은 섬 하나 세월을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믐, 어두운 수평선 끝에서 섬 그림자 옛 이야기처럼 지워집니다 그대 홀로 앉아 있는 달맞이꽃 핀 언덕 능선이 바다보다 환해지는 것을 봅니다 아픈 일몰이 밀려오면 아득한 사랑은 잠들지 못합니다 --- 「안쫄 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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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바다 위에 길고 넓게 펼쳐진 섬나라일 뿐만 아니라, 밀림의 중심부처럼 아주 깊은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어쩌면 순례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자카르타, 식민의 이름으로는 바타비아. 고통과 식민의 기억, 정치적 폭력, 회복과 기도가 뒤엉켜 있는 도시였습니다. 저항과 존엄, 무너짐과 다시 일어섬이 짙은 초록과 붉은 땅에서 언어 이전의 방식으로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역사의 상처를 보았고 예술을 배웠으며, 무릎 꿇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 예술은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두드리는 가믈란의 리듬 속에서 무대 위의 와양의 그림자에서, 노을 속에 울려 퍼지는 아잔과 성당 종소리 사이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너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시는 나에게 일종의 영적 실천이었습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고통과 회복, 아름다움은 언어 이전의 언어로 나를 흔들었습니다. 바틱은 인도네시아 그 자체입니다. 시를 쓰는 일이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각의 천을 짜는 일이거나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으로 그리는 바틱 문양과도 같았습니다. 바틱 장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 위에 말람(초)으로 쓰고 덮고 염색하고 다시 삶아내듯, 나 또한 언어로 마음을 새기고 덮고 다시 기도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이 시집은 그 물음들 사이에서 내가 듣고 보고 응시하며, 가만히 다가온 목소리들을 담아낸 내면의 사유입니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서 낯설음이 주는 열정 속에 뿌리내린 일상에 대한 기록이며 그들의 삶과 예술, 믿음의 기록을 쓴 한 이방인의 언어이자 기도입니다. 그것은 흔들리는 야자수의 그림자이기도 하고, 비 오는 오후의 정적이기도 합니다. 읽는 이의 영혼에도 바틱 문양의 흔적이 조용히 물들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자카르타에서 사공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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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카르타의 박물관과 파타힐라 광장, 순다끌라빠 항구를 거닐며 오래된 테이블에 앉아 적도의 이야기를 썼다. 현지 사람들은 그를 ‘구루 사공’이라 불렀다. 이방인이었으나 모두의 스승이 되어 갔다. 아직 그 식탁에 닿지 못했다면, 이 시집을 음미하라. 당신의 마음에도 불멸의 테이블이 차려질 것이다. - 채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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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깊게 사랑하고 오래 머물러 본 적 있는가. 시인에게 자카르타는 타자의 공간이 아니었다. 기쁨과 외로움, 연민과 분노가 교차한 삶의 무대였고, 마침내 ‘불멸의 테이블’이 되었다. 오랜 시간 인도네시아를 만나왔지만, 나는 이 시집으로 다시 인도네시아를 만나려고 한다. - 최경희 (고려대학교 아세안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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