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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제1부 회복 10 바퀴 자국 12 높이뛰기 14 그림을 수정하다 16 길의 상상 18 끈 20 행방 22 상자의 속성 24 사월 26 절교 28 간유리 속의 나와 나의 어린 새들과 날개 30 뭉크 32 밀회 34 줄넘기 36 제2부 고사목 38 탈옥 40 사건번호 0 41 소리를 삼켰다 42 등 44 나무가 걸어간다 46 가위 손 48 휴식 50 도마질 52 우리들의 언어는 공기 방울이었고 54 해안선 56 동백, 날다 58 새벽에도 눈이 내렸다 60 제3부 그리고, 저녁 64 섬 66 만조 67 조우遭遇 68 여분의 온기 70 럭키 71 화이트아웃 72 여름 사냥 74 도어락 76 실종 77 무덤 78 알을 품고 싶다 80 소 82 엄마와 나와 가죽 소파와 애인이 84 제4부 살을 만지다 88 달맞이꽃 90 두 무덤 92 골목길 94 데칼코마니 95 집으로 가는 길 96 CUTTING 98 바바리 맨 100 크리넥스 102 피단 104 모색 106 최후의 창 108 안개 병동 110 버려둔 바다 112 김근희의 시세계 | 박대현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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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돋친 노을을 욱여넣는 목젖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허연 동공이 하수구 속으로 소용돌이칠 때 커다란 함성은 눈을 감는다 혈흔처럼 말라가는 막다른 귀가 성대를 틀어막고서 이제 버려야 할 것은 마음인가 사람인가 지워지고 싶다 한 점으로 쓰러져 한 방울 핏물조차 삼켜버린 절명이고 싶다 울음이 구멍 속으로 쏟아진다 웃음이 더 큰 구멍에서 나를 분열시킨다 메아리, 길고 긴 미로까지 끝끝내 거둬들인 구멍투성이 가슴이다 태양은 뜨고 변기통 물을 내린다 흐물거리는 시간들이 콰르르 하수구 속으로 빨려든다 지나간 시간은 가장 슬플 때 입술에서 항문까지 매설된 강철 배관을 순식간에 통과한다 --- 「뭉크」 중에서 실오라기 한 올을 잡는다 스웨터에서 털실을 굴려 감듯 줄줄이 흘러내리는 씨실 날실이 허리를 쓰러뜨리다 단 하나의 매듭에 간신히 일어서는 뒤돌아보지 말라고 등 떠밀린 울음이 복부 한가운데 대못처럼 박혀 만진다 배꼽을 수태의 긴장을 기억하듯 옹골차다 눌러본다 그 깊디깊은 구멍을 풀면 전속력으로 해체될 내가 무서워 동여맨 하루를 손아귀에 꽉 쥐고 산다 탯줄에서 떨어져 나간 후 수없이 매달렸던 손들은 흩어져 사라지고 두 눈에 차오르는 물이 된 길 뒤돌아 흘러가면 그 문을 다시 열 수 있을까 물그림자는 배꼽 언저리를 일렁이는데 거리는 또 무엇을 잡으려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무리를 놓친 새가 사라진 하늘 아래 환호와 비명의 노을은 내일보다 길다 어제는 폭염을 비웃는 소나기가 성한 동아줄을 내렸다 잠시 식다 음해진 열대야 속에서 깃을 세운 불빛들이 부엽토처럼 쌓여간다 --- 「끈」 중에서 한 무리 새들이 허공을 그어 먹장구름이 화농처럼 흘러내려 두려웠다 버려지고 사라지는 깃털들을 겨드랑이에 매달면 새들이 떨군 둥지 하나 우연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불투명한 유리잔 속에 당신이 있어 나는 이내 액체로 젖는다 그리하여 저녁이 올 것이다 혼자 울 것이다 액운은 운명처럼 투명해져 나를 껴입는다 틈이 없는 털옷처럼 나는, 집착과 미련을 털어 낸 저물녘이 너무나 가벼운, 내 몸을 줄곧 꿰매고 있다 처음의 날개를 간직한 새장의 문을 연다 허물이 된 살갗이 키우던 나의 병아리, 나의 어린 새들은 밤마다 열 개의 황금알을 낳고 개미와 벌과 나팔꽃 도마뱀을 낳다, 빛나던 천국이 보이는 좁은 창틈으로 날개를 전해주던 이야기 낮과 밤이 짧아지던 무렵 반쯤은 흙빛이 되어가던 오후의 식탁은 정원보다 융성해져 새는 날아가지 못한다? 창문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삼키려고 해 사나운 바람 소리에 숨죽여 우는 밤 남겨진 나의 작은 병아리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꿈은 줄행랑을 치고 창은 벽보다 두껍고 캄캄해 거머쥔 손아귀로 홰를 치고 앉은 그 안위를, 엄마, 급하게 닫은 닭장 문이 엄마처럼 날아가려 해 추락을 허락한 날개는 바위를 덮쳐 뼛속보다 더 깊은 흉터를 들락거리고 있어 살의 무덤, 부재의 서식처, 간극을 비집고 들어가는 먹먹한 빛이 간유리 창에 부딪치는, 이상하게도 더듬으면 아프지가 않아 --- 「간유리 속의 나와 나의 어린 새들과 날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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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나비가 핀에 꽂혀 있다 태극 문양의 이 날개는 닫힌 문이다 심장에서 핀 하나를 뽑아내어도 날개는 이미 죽음이다 사방이 내 주위를 포위한다 박제된 날갯짓이 허리에서 펄럭인다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비는 시간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오늘은 다섯 개의 약속을 무차별로 취소했다 습관적인 그 무차별 주위를 기웃기웃 맴돌다 기대어 본다 벽이 나에게 말한다 날아가지 마라 2025년 봄 김근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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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희의 시는 자기 상실에서 비롯된 무기력의 상황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는 우울의 주체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의 시적 이미지는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며 차갑지 않고 뜨거운 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김근희의 시가 내재하고 있는 열熱의 언어는 생물의 불안과 허무와 우울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견디며 살아가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 박대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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