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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풀잎 10 설익은 우리 13 봄날 14 호수 16 하늘 18 반쪽짜리 20 거미줄 22 너의 계단 24 비탈길 25 불거진 뼈 26 알밤 27 둥지 28 쐐기풀 30 파란 눈물 31 제2부 발걸음 34 씨앗 35 제비집 36 감 냄새 38 의암리 39 외할머니 역 42 고향 집 44 신발 46 방 48 흙 49 찢긴 너 50 건축 51 허물 52 구로동 53 나의 밤 54 제3부 웃음소리 56 고치 57 할머니 58 겨울 61 껍데기와 햇살 62 풀길 64 숨 65 검정 고무신 66 뚤방 67 문 68 외출 69 수양버들 70 명태 72 제4부 대사리 74 호미질 75 머리 검은 짐승 76 들깨 모종 77 빈집 78 터 79 사람들 80 할아버지 82 무덤 83 당숙 할머니 84 아버지 87 벚나무 90 만나고 싶은 봄 92 장독대 94 김정옥의 시세계 | 권온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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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작은 길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쉬고 싶었어요 아무도 못 보게 누워 있으려 했어요 그런데 그만 들켜버렸어요 숨소리가 너무 커서 밖으로 나와야만 했어요 밖으로 나와서 다시 작은 길을 빙글빙글 돌다 의자에 앉아 있다 들어가려는데 그 좁은 길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튼튼한 줄 알았는데 물에 천천히 잠겨지고 발이 빠지려고 했어요 발에 진흙이 묻고 얼굴엔 상처가 나는데 나는 더 들어가고 싶어요 나와서 깨끗한 곳으로 가면 되는데 어둡고 좁은 길로 자꾸만 몸이 움직이네요 그곳엔 나만 볼 수 있는 달콤한 열매가 있거든요 색도 참 예뻐서 두고 나오기 쉽지 않네요 그러니 길 앞에서 물이 빠지길 기다려 보려고요 좁은 길에서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있어요 나는 갈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로 2 병 조각이 깨져 발을 상하게 하는 길은 들꽃이 별처럼 펼쳐져 있기도 했어요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지요 작은 우산이 찢어져 물이 새고 온몸을 축축이 적셨어요 나는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발견하곤 얼른 그곳으로 도망쳤어요 숲이 우거진 곳에 커다란 우산이 놓여 있었지요 우산을 슬그머니 잡고 걸었어요 걷다 보니 구불구불하고 캄캄한 숲을 헤매고 있었어요 사나운 짐승의 포효가 들려와 눈을 크게 떠봐도 앞이 보이지 않았지요 커다란 바위랑 가시나무가 막아서고 있었어요 우산을 펼치자 커다란 우산은 갑자기 저 멀리 달아나는 거예요 비에 흠뻑 젖어 헝클어진 나는 젖은 몸을 말리며 엉금엉금 기어갔어요 살이 쭉 빠진 멸치처럼 두리번거리며 우산을 찾았어요 우산은 낡고 힘이 없었지만 버려둔 그 자리에 얌전히 있었지요 다시 집어 들어 펼치자 찢어진 우산 사이로 예쁜 꽃이 피어 나를 반기는 거예요 잔잔히 웃고 있는 아담한 집도 한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요 딱 맞는 옷도 개켜져 있었지요 소박한 음식을 먹고 방안에 누워 맑은 노랫소리에 깨어보니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어요 --- 「풀잎」 중에서 감자 고구마 보따리를 이고 장에 간다 몇 알 담긴 바구니를 앞에 두고 손님을 기다리며 쪼그리고 앉아 얼마냐고 묻는 아주머니께 천 원이요 이천 원이요 교환을 한다 얼마 팔리지도 않았는데 외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뜨거운 해를 맞으며 장터 안 허름한 음식점으로 향한다 팥칼국수 두 그릇이요 달콤한 맛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오일장에서 팔다 남은 감자알 고구마 알 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어린 마음에 바구니 앞에 앉아 있던 내가 괜히 부끄러워 한없이 작아졌고 등이 굽은 외할머니가 안쓰러웠다 한없이 착하기만 하셨던 분 장터는 나와 외할머니의 소중한 추억이 곱게 내려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농사지은 작물을 조금씩 내다 팔아 적은 돈으로 바꾸어 먹이고 입히고 사셨을 나의 소중한 분 그 역에 멈추어 본다 --- 「외할머니 역」 중에서 또박또박 정갈하게 걷는다 오물 냄새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터 안에서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일기장 안에 빼곡히 들어찬 삶의 글자들이 반듯하게 걷는다. 찢어지지 않습니다 잡아당겨도 절대 찢어지지 않습니다 천 원짜리 다섯 장에 팔고 있습니다 터 안에서 조금은 어눌하기도 하지만 야무진 말투로 몇 분을 사로잡는다. 가쁜 숨소리가 절로 나오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터 안에서 몇 초 몇 분을 쪼개어 숨 가쁘게 할딱거리며 온몸을 바쁘게 돌려두고 조여드는 심장을 붙잡아 펼쳐준다 터 안에서. --- 「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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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묶어 두었던 끈을 풀어본다 수줍은 나의 마음이 깨끗하게 단장한 예쁜 미소가 되기를 슬레이트 지붕을 지나 함석 대문을 지나 살금살금 걸어갈 우리의 삶에 누가 되지 않기를 새로운 골목은 낯설고 두려움이 다가오지만 쿵쾅거리는 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빼꼼히 내민 새싹을 포근한 눈길로 바라봐 주길 따뜻한 햇살 비추어주기를 그렇게 이슬방울 매달고 검은 흙 밖으로 나왔다 상큼한 아침 햇살 바라보며 2022년 5월 따뜻한 봄에 김정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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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 시인의 시에서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냄새, 고향의 냄새, 시골의 냄새가 물씬 난다. 풀과 나무, 하늘과 호수, 물과 흙, 아버지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 자연공동체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풍족하고 풍성하다 고 할 만큼 자연이 담겨 있다. 물론 이는 시인 김정옥의 고향이 전라남도 곡성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고향을 떠나온 이래 오랫동안 대도시를 떠돌며 살고 있지만 시와 함께하는 그의 마음은 여전히 대지 자연의 너그럽고도 넉넉한 마음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 이은봉 (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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