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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제1부 골목의 방백 10 광장의 시계. 지금은 안녕하십니까? 12 화재의 화제 14 박제된 날들? 16 낯선 언어들 18 요란한 장식 20 나날의 탈각 22 집 나간 개와 팬케이크 24 피카소의 화실 26 시간이 노는 호숫가 28 다시 부르는 노래 30 빙하의 언어 32 끝의 시작 34 늙은 말은 그네를 탄다 36 제2부 이 바람이 계절을 바꿀 수 있을까 38 네. 오후 5시경입니다 41 병명이 꼭 필요한가요 44 사과 만들기 46 새벽 전철 48 19번 버스를 타야 한다 50 처음의 관계학 52 허공의 북소리 54 김 씨 56 백중百中 58 삼월 60 불가능을 설계합니다 62 당신은 조금 더 멀리 있습니다 64 혀의 난 67 제3부 어떤 죽음 70 소멸의 방식 72 불의 시간 74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76 낙첨 일기 78 엑소더스 80 처마 아래서 82 짓 84 그 산의 생태학 86 끝내 바람이 되어 88 그들의 무게 90 숙성 92 구석의 온도 94 제4부 고래, 1970 98 동묘시장 100 길에서 길을 묻다 102 소리의 눈 104 바람이 지나간 자리 106 색의 중력 108 바지선 110 늙은 가로수 앞에서 112 둘의 방정식 114 소심한 시비 116 머문 자리에 바람이 인다 118 명당 120 엄마는 별을 본다 122 산. 그 너머에 대하여 124 ▨ 권늘의 시세계 | 정훈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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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방백
은폐를 불러들였다 그늘은 지나치는 것으로 충분했고 후미진 곳의 일은 늘 경계에 서 있었다 노출의 위험 속에서 하나둘 불러 모으는 은밀함이 있었다 비밀은 공정하게 숨을 쉬었고 골목은 슬그머니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가려진 생각이 머물고 비로소 골목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골목이 사라진 도심 한가운데, 가리고 싶던 일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객석을 스치듯 지나치는 이들과 눈을 맞추는 일 골목의 어귀에서 흩어지던 연기는 환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고개를 숙인 채 담배의 불을 붙이는 여인의 등선 시간이 노는 호숫가 호숫가를 배회했다 아침나절에 쳐 놓은 그물코를 따라 하루는 좀비처럼 빠져나가고 시큼해진 저녁엔 생기가 돌았다 라면이라 생각했던 버너에는 놀랍게도 밥이 끓고 있었다 어제의 이야기가 상대를 바꾸어 가며 되풀이되고 바닥 난 화제는 조금 전 떠나버린 낯선 이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다시 나타난 이의 짐 속에도 만만치 않은 조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즈음 호수에는 붉은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삼월의 한기가 살 속을 파고들 때 차림새가 마술처럼 바뀌었다 당연하던 침묵이 물수제비 되어 건너편 불빛을 때릴 때 밤의 살림망엔 여럿의 핑계가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다시 모여 한가한 잡담을 나누고 성긴 그물코를 다시 깁는 아침나절의 호숫가 길에서 길을 묻다 길을 따라나섰다 그의 길은 늘 젖어 있었고 바람이 불었다 돌아가는 길이 많고 가다 보면 사라지기도 했다 가끔 그에게 길에 관해 묻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웃었다 그 자신도 잘 모른다고 했다 거침없이 걷다 이내 주춤거리는 그의 길은 처음부터 닿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날 선 눈빛만 있었다 가끔은 그도 가던 길을 잃고 돌아 나오곤 했다 그럼에도 그를 따라나서는 사람들 그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질문 가운데 나를 흔드는 빛이 자랐다 그와의 보폭은 달랐지만 기꺼이 같이 걷었다 그의 길에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길이 달라졌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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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은 조용히 접힌 채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2026년 권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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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짚어 가는 시인의 감각은 사라지는 것들의 결을 더듬는 데서 깊어진다. 이 시집에서 자아는 고통과 기쁨을 넘어 이동하는 상태에 놓인다. 상처는 세계와 접속하는 방식이고, 슬픔은 사유의 중심이 된다. 그의 시는 흩어진 감각 속에서 맥박을 찾아내고 소멸의 자리에서 흔적을 길어 올린다. 미완의 시선은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서 존재의 결을 드러낸다. 이 시편들은 결론 없이 지속되는 움직임으로 남아 우리에게 다시 묻게 한다. - 문지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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