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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에스프레소 한 잔 에베레스트 10 구름은 흩어지고 11 사막의 코뿔소 12 발톱 14 액체 근대 16 세실을 아시나요 18 벤치 워머 20 어미 치타 22 비행기 소리 23 탄식의 다리 24 바닥분수 26 붕어는 꽃으로 28 불을 낳는 물 30 마음의 역사 32 마네킹의 일기 34 제2부 지중해 푸른 눈동자 추억도 꽃이다 36 이진법 38 봄을 보는 눈사람 40 어느 백제 여인의 편지 42 집, 바다 44 바다는 말한다 46 동지 48 고양이를 찾습니다 49 인공지능 50 몰락이 아니다 52 분홍 치욕 54 가짜가 가짜에게 55 고양이의 감정 56 울산바위 58 카페 은유법 60 느릅나무의 시 62 제3부 지붕 위로 올라간 현자 어항 64 얼음 오리 65 꽃 선생 66 바다는 두렵지 않다 68 이사 69 노자의 소 70 구름 생각 71 슬픈 벽화 72 K의 여행 74 마트료시카 76 바다를 보는 염소 78 날치의 비상 80 외양간 고치기 81 시간 사용법 82 제4부 숭어는 맨드라미를 모른다 천장 84 튤립과 알프스의 기억 86 흑해를 오역하다 87 베네치아의 휘파람 88 新 공룡의 시대 90 손바닥의 꽃 91 보이지 않는 92 폐허 근처 93 낙원사철탕 94 뜨끈한 의자 96 연애 사건의 전말 98 책의 비밀 100 영혼의 산파 101 커피 한 잔 102 영겁회귀 103 강서일의 시세계 | 김효숙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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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의 손
잉여의 불빛, 볼 것이 너무 많아 한 편도 보지 못하고 밤을 넘긴다. 잡을 인형이 너무 많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수많은 선택지와 수없이 구멍 난 파지가 쌓여가는 나날들이라니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지금은 천년 빙하가 녹아내리고 명사는 동사 되어 흘러가고 벽에 걸린 거울은 산산조각 파편이 되는 시간 늙는다는 것은 과연 살아남는다는 것인가 (‘신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희망을 멈출 때뿐’) 그러니 놀라지 마시라. 미라는 미라일 뿐 시간의 밀원지 따라 돌다리도 흘러가고 무너질 것은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니, 우리의 지붕을 덮치는 액체 시대여! --- 「액체 근대」 중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려고 사람들은 시계를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을 보려고 늙은 사냥꾼은 순록의 가슴털을 공중에 뿌렸다 사람들은 또 들을 수 없고 맡을 수 없는 것을 맛보기 위해 숫자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자 어느 날 神은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천지를 하얀 천으로 덮어버렸다 --- 「보이지 않는」 중에서 20년 만에 거처를 옮겼다 내 몸을 기억하는 가구를 버리고 정신을 갉아먹던 글자들을 버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안방도 고이 두고 왔다 그래도 태우지 못한 활자들 책장에 던져두고 휘, 한 번 둘러보니 새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듯했고 대리석 기둥은 미련해 보였다 쥐똥나무 울타리 옆 모과나무는 몇 그루 있었으나 사과나무는 없었고 벌레 먹은 낙과 한 알 보이지 않았다 우주의 벌레 구멍을 찾아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기억 저편의 발걸음은 아직도 어머니의 묵은 꽃자리에 가 있다 --- 「이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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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고양이 액체설』 이후 5년만이다. 물론 내 몸과 마음의 생태계도 예전 그대로일 수는 없다. 살펴보니, 시편마다 그때의 시간과 공간 함께 머물렀던 공기까지 그대로 묻어 있다. 지금의 생각이나 감각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을 존중하기로 한다. 오늘도 하늘은 높고 여름 나무들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이제 연꽃들도 곧 소식을 전할 것이다. 고원이 아닌 흐릿한 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치열함을, 그 아름다운 고요를 생각해 본다. 모두, 고맙다. 2025년 6월 강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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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간결한 시언어에 의미를 함축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력으로 우리가 가닿지 못할 심원한 세계를 현상한다. 무난한 어휘 운용, 상식적인 상황 전개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하는 시를 쉬운 시라 할 수 있다면, 강서일의 시는 이에 대한 만만찮은 저항력을 지닌다. 외연은 일상적이나, 내포는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이 녹아 있는 세계와 접하고 있다. - 김효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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