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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흔들어 놓은 푸른 시간들

완고한 문장/ 풍장/ 파꽃과 만월/ 맑은 것에 부딪히다/ 죽순의 접힌 주름에서/ 서쪽/
내 몸속에 슬픈 가락이 살고 있다/ 병산서원과 노모/ 무늬가 된 얼룩/ 남당항에서/
애/ 가지를 뻗는다는 것

2부 번지고 싶어 못 견디는 목련

압화/ 덧그리다/ 우란분절/ 봉평의 여름/ 호두나무체 전서/ 너는 가고 비는 오고/ 숨땀/
어떤 장례식/ 그늘이 꽃을 덮고/ 기척/ 웃는 얼굴 수막새/ 저녁이 부풀다/고요를 읽는 아침

3부 얼룩은 계절 내내 푸른 창문을 내고

먼 데서 오는 길/ 두고 온 귀/ 갇힌 고요는 수심이 깊네/ 꽃물/ 가을 연지/ 문신과 몸신 사이/닭발에 대하여/ 어미/ 간격/ 겨울을 건너는 말/ 균열의 서사/ 독거/ 구월이 오면

4부 꽃이 꽃을 만나는 시간

기억을 불리다/ 눈빛과 싸우다/ 버려진 침묵/ 날개의 이중성/ 그리운 속도/ 축산항의 비/
지렁이/ 폐교/ 선 없는 삶의 문법/ 안부가 되는 밥/ 실새삼/ 꽃의 시간

해설 _ 슬픔의 빛깔과 무늬를 바라보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1993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날이 어제처럼』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 쓰는 사람들〉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림문학상〉 〈중봉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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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38쪽 | 204g | 128*205*20mm
ISBN13
9791174900982

책 속으로

사랑을 요약하면 저렇게 되나

멈춘다는 것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물에서 얼음으로 몸을 바꾸나
-「완고한 문장- 겨울 폭포에 와서」 부분


사랑을 고백할 때는
천지가 다 둥글게 피는지요
오늘 밤은 모서리도 없이
보름달도
파꽃도
둥글게 차오르기만 하고
-「파꽃과 만월」 부분


저 주름을 모두 지워야 어른이 되는 것이지
일생을 속 비우는 일에만 열중하는 나무는
마디마다 곧은 다짐이 있는데
생각을 고르는 간격이 있는데
꼭 한 뼘씩만 짚어
잠시라도 흐트러지면 안 되는 신중한 다짐이다
-「죽순의 접힌 주름에서」 부분


우리도
몸 어딘가에 은밀한 날개를
감추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지
-「남당항에서」 부분


식물의 맺힌 마음이 풀물이라고 생각한 적 있어
물에 적셔 문지르면 선명하게 피어나던 풀의 기억
그 얼룩을 헹구려고
마구 흔들어 놓은 푸른 시간들 미안
-「무늬가 된 얼룩」 부분


애를 쓰다
애태우다
애간장을 녹이다

가뭄에 간절하게 비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나는 평생을 두고 어머니의 가뭄이었음을

그 애간장을 다 녹인 흉년이었음을
-「애」 전문


꽃은
계절의 간절한 기도인가 봐
캄캄한 어둠을 지나 모진 흔들림을 지나
저렇게 순한 얼굴로 우리 곁에 오는 걸 보면
-「압화」 전문


오늘
멀리서 너라는 문서가 왔더구나
잘못 들어선 티눈처럼 빼내고 싶은
상처 난 기별과 함께
-「너는 가고 비는 오고」 전문


관능의 저 미소가 천년을 지배한다는 건
참 웃기는 일이지
웃음이 보물이 된다는 건
웃지 못할 일이지
-「웃는 얼굴 수막새」 전문


내 귀는
스무 살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헛발을 딛는 절벽입니다
-「두고 온 귀」 전문


당신은
따뜻하고 악착같은 나의 문장이었습니다
어디로 새어 나가는지
시 속의 푸른 낱말들이 하나씩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운 속도」 전문


뿌리 없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의 일생이 칭칭 감기는 일
-「실새삼」 전문


수평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슬픈 방식
살아낸다는 것은
횡으로
종으로
거꾸로
그렇게라도 서 있는 것
서 있어야 하는 것
-「꽃의 시간」 전문

출판사 리뷰

해설 중에서

어둠은 모든 색을 삼켜버리는 상태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어둠을 “짙은 염료”라고 부른다. 염료는 사물에 스며들어 새로운 빛깔을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어둠을 통과한 고백은 무채색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의 존재를 별처럼 드러낸다. 다만 그것이 진해서 어둠이 되었을 뿐이다. 어둠은 슬픔의 바탕이며 사람은 그 어둠 속에서 발견한 빛이다. 시인은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의 정원에서 하나의 빛깔이 되기를 소망한다. 사랑은 어둠이라는 염료를 받아들여 타인의 무채색 고백에 자신의 색을 보태는 행위이다. 이 시집에서 보여준 슬픔과 사랑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늬의 일가』의 두드러진 성취는 슬픔을 개인의 내면에 가두지 않고 타자와 세계를 감각하는 윤리로 확장한 데 있다. 시인은 생활 주변의 사물과 동식물이 지닌 물성과 생태를 세심하게 관찰한 뒤 그 안에 인간의 기억과 정서를 겹쳐놓는다. 이때 자연과 사물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단순한 비유에 머물지 않는다. 눈은 수의를 짓고, 바람은 문상을 오며, 연못은 마른 기억을 불리고, 담쟁이는 사람 사이에 세워진 경계의 말뚝을 끌어안는다. 의인화된 존재들은 인간의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도 저마다의 생태와 고유한 몸을 간직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인간 중심의 시선을 낮추고 세계를 수많은 생명이 서로의 결핍을 받아내는 관계의 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또한, 시인의 언어는 생활어의 소박함과 감각적 이미지의 깊이를 함께 지닌다. 밥과 물, 단추와 미역국처럼 평범한 사물들이 시적 사유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사랑과 애도는 관념을 벗어나 구체적인 삶의 행위가 된다. 슬픔을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쉽게 위로하지 않고, 그 슬픔이 머무는 몸과 자리를 끝까지 지켜보는 태도가 임송자 시인 시의 따뜻함과 사유의 깊이를 함께 완성한다.
_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어둠은 짙은 염료 같아서

그 무채색의 고백에 별이 되어 준
사람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그 정원에
촘촘한 계절의 빛깔이 되고 싶다

2026년 10월
임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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