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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슬픔의 그림자는 흰 뼈
시큼한 말들 속 벽을 타고 뱀이 올라오고 있어/ 일인용 밤/ 눈신토끼/ 미친 토끼/ 베베/ 밖에 빨간 나무가 자라 있다/ 구역/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이층집/ 뱀이 수직으로 올라간다/ 레퀴엠/ 뚝섬유원지 2부 고요를 생각했다 그저, 고요를 생각할 뿐 어느 날 내 그림자가 마음에 들었다/ 점심시간/ 마크 로스코 그림에는 길이 없다/ 창문의 무늬/ 변상증/ 붉은 눈의 숲/ 이팝나무 아리아/ 나나를 접는 방법/ 응시/ 원룸/ 목도리 앵무새/ 루시퍼 3부 꽃과 꽃 사이는 사다리 당신은 거기에 있지 Gloomy Sunday/ 상자의 상상/ 경계를 짜는 시간/ 아은거미/ 호수맨션/ 부고/ PMS/ 상처 내는 손톱을 버렸어/ 그림자의 그림자/ 외출/ 초콜릿이 필요해/ 성수동 4부 밤의 뿌리가 해안선을 타고 문을 열어줘/ 그림자 아이/ 도미솔 도미솔/ 퀘렌시아/ 너의 목에 줄을 걸었어/ 우수아이아/ 장마/ 그래서 랄라/ 초현실주의/ 낙하/ 꿈속의 꿈/ 스카비오사 해설 _ 불안을 넘어 상승을 꿈꾸는 자기 변신의 시학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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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은 시인의 시집에서 불안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의 취약한 자리에서 발생한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자신을 규정하고 밀어내는 말, 벗어나려 해도 몸에 남아 있는 기억은 일상의 사물과 풍경에 스며든다. 그 결과 몸은 낯선 생물의 형상으로 바뀌고, 방과 복도는 위협적인 공간이 되며, 나무와 숲은 고통을 품은 채 자라난다. 내면의 불안이 외부 세계의 형태를 바꾸고, 그렇게 변형된 세계가 다시 자아를 압박하는 순환 속에서 이 시집의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시인은 ‘나나’라는 또 하나의 자기를 불러낸다. 나나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상처 입은 존재와의 거리를 확보하려는 의지와 그 존재를 끝내 버려둘 수 없는 마음이 함께 작용한다. 몸을 접고, 사물과 생물의 형상을 빌리고, 위태로운 높이를 쌓아 올리는 행위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변신의 여러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방어와 공격, 은폐와 노출, 상승과 추락은 서로 얽힌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몸짓에도 새로운 상처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 시집 속 시들의 긴장을 지속시킨다. 초록과 상승의 이미지 역시 이러한 긴장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초록은 생명의 무성함을 품으면서도 소름과 맹독을 불러오고, 위로 향하는 움직임은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추락의 위험을 동시에 포함한다. 아은 시인은 이렇게 생명과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간직하면서 그 열망이 통과해야 할 불안까지 언어에 담는다.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 안에 상반된 감각과 힘을 겹쳐 놓는 방식은 상처 입은 존재의 복잡한 내면을 선명하게 형상화한다. 아은의 시적 성취는 이처럼 관계의 폭력이 남긴 흔적을 몸과 사물, 색채와 공간의 변화로 구체화하고, 그 변화 속에 자신을 지키려는 존재의 움직임을 새겨 넣는 데 있다. 돌연한 이미지의 전환, 감각의 교차, 끊기거나 끝맺지 못한 문장은 불안정한 자아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언어의 형식으로 구현한다. ‘나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나누어 바라보고, 초록의 양면성을 통과하며, 상승과 추락 사이에서 거처를 찾는 과정은 상처 이후의 삶을 탐색하는 시적 사유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사유는 “아무도 내리치지 않고”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자신을 지키려는 변신에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해지는 자리, 그곳에서 이 시집의 상상력은 관계의 폭력을 넘어설 가능성을 남겨둔다. _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내가 바라본 모든 곳에 눈알이 있었다 2026년 10월 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