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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삐침별 빛나는 밤
자화상/ 알고리즘 삐침별/ 사라지는 생/ 실리콘밸리 방문기/ 디지털 트윈/ 누수 때우기/ 묻지 마/ 거기, 유령들이 있었다/ 피노키오/ 토르소 3608/ 아직은 구름/ 변신/ 미,래 2부 나는 인간입니까 공백의 자리/ 날개 돋은 달/ ( ) 벗어나기/ 누가 이 밤을 울어/ 방백록/ 새 둥지/ 나는 인간입니까/ 내 마음속 쇠뭉치/ 네 눈물로 타는 여름/ 대합실 오후 2시/ 문장지기/ 행차 3부 차가운 오르가슴을 뱉어내는 새벽을 안고 달려온/ 가슴 휑한 집/ 여름 문신/ 얼음조각을 입에 문 그녀/ 색면 그림 속의 달/ 법대로/ 저기, 아침이 온다/ 아사달의 장미/ 쿠오바디스, 헤라클레스/ 어느 새벽 시장/ 지우개, 하얀/ 맨해튼 꽃 마실/ 냉커피 4부 공중을 향해 총을 겨눈 꽃들 동상이 있는 광장/ 새를 그리다/ 날개/ 박꽃/ 폐역에 서서/ 공중 식물/ 질주 본능/ 가자 지구/ 아버지의 우주선/ 마네킹놀이/ 성/ 호루스의 눈 해설 _ 비상하는 삶의 부활을 위하여 이성혁(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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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 그놈은 재미있어 한다 누군가 또 시작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 나를 옥죄는 매듭 사이로 고개 내밀며 신나 한다 참 싫지만 쫓아낼 수 없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걸쭉한 침묵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더니 기차 바퀴에 붙어서 레일의 나쁜 기억들을 철거덕 철거덕 긁어댄다
- 「자화상」 부분 하나의 불씨를 키우는 건 강박이었고 조바심이었다 - 「알고리즘 삐침별」 부분 내일도 그럴 거라며 내가 흘린 시간을 나열한다 내 지층의 성분과 물성을 다 파악한 너는 오늘의 운세까지도 알려준다 말랑말랑한 네 기계어의 맛이 달다 네가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난 잠이 들고 - 「디지털 트윈」 부분 안개가 짙었다 터널 안으로 들어갔나 싶었는데 순간 구두 안이었다 번쩍 쿵 터져 나온 비명이 붕대에 감싸인 곳은 하얀 방 수액이 급속도로 비워지고 있었다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대롱대롱 매달린 구두가 저 혼자 뜀박질 중이었다 - 「거기, 유령들이 있었다」 부분 떨어지는 꽃 한 송이에도 울음 배인 시를 읊조리려고 한 시각 한 시각 목숨 걸던 사람이 덧댄 시간의 누더기옷을 입고는 물기 말라버린 시간 위를 절름거리며 걷고 있다 - 「누수 때우기」 부분 키만큼 자란 장미 넝쿨은 가시도 억세게 여물었고 장미를 다듬던 손가락 끝이 거의 다 뭉개진 형은 어느 날 뭉개지지도 않고 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좍 펼친 손이 쇠젓가락 같았다 - 「피노키오」 부분 미가 묻는다 동아줄은 튼튼하니? 앞서 걸어가는 래의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 「미,래」 부분 낯선 사람이 왔다고 비틀어진 근육과 일그러진 얼굴로 짖어대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나다 - 「변신」 부분 물비늘 떼가 뚫고 지나간 화면의 달이 마음을 내려다본다 확대하면 움푹 팬 자국 녹아 붙은 자국 축 늘어진 자국 무심코 버린 폐기물까지… 빛멍들이 수두룩하다 아파도 말할 수 없는 달은 비명 대신 빛의 분탕질을 기록으로 남겼다 - 「날개 돋은 달」 부분 갑자기 계단에서 우당탕 굴러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기계의 신이 인간과 교미하는 천국을 보고야 만 사람이 틀림없다 - 「나는 인간입니까」 부분 마음은 배고프고 추운 울음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정신 차려야지 싶어 울음 한 짝 귀싸대기 패면 놀란 새떼들이 혈류를 막아 순간 아찔하다 - 「공백의 자리」 부분 비틀어진 물줄기에서 튕겨 나온 말들을 땅속에 묻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젓이 드러낼 수만도 없어서 개망초 무성한 풀숲 가운데 드러누워서는 새 울음소리에 같이 울어보기도 하는 - 「문장지기」 부분 천 개의 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겨울의 빙점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의 여름이 무르익을수록 올겨울은 검은 눈이 내릴 거다 - 「여름 문신」 부분 툭 치면 바람을 갉아먹던 모서리에서 피멍 든 말이 솔솔 떨어진다 망을 오랫동안 가만히 쳐다본다 점점 커진 검은 점 하나가 빨강을 잡아먹더니 피 묻은 입술로 나에게 입맞춤하려 달려든다 - 「색면 그림 속의 달」 부분 머릿속 먹구름이 당신을 지우려 한다 마음을 재촉하며 앞서 걸어가던 발걸음이 진창뿐인 시공간 앞에 멈추었다 과거는 이제 바람이 되고 별이 되고 누군가의 눈에 뜬 달이 될 것이다 계속 따라오며 칭얼대던 그림자도 안갯속에서는 조용하다 부들과 갈대가 무성한 저 안쪽이 좋겠지 - 「지우개, 하얀」 부분 누군가의 미완이었던 것이 또 누군가의 미완이 되면서 새는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 「새를 그리다」 부분 그는 소나기처럼 땅을 치며 올 것인가 장마 끝난 하늘처럼 해맑은 얼굴로 올 것인가 - 「질주 본능」 부분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호루스의 눈이었다 눈을 감는다 떨어진 것들을 위해 묵념 - 「호루스의 눈」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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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중에서
이태영 시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이런 상념부터 해보았다. 새로운 기술 시대에 맞닥뜨린 우리의 삶에 대해 이 시집이 깊숙한 시적 사유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환경을 무시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시대를 살아가며 변화되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탐색한다. 이 시적 탐색 자체가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삶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려는 일종의 저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인의 머릿속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 먹구름은 “당신을 지우려” 하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지 시는 알려주지 않고 있는데, 시인의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었던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한다. 여하튼 그 대상이 먹구름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그 먹구름은 “내 머리에 빨대를 꽂고 뇌수를 뽑아내고 있”는 ‘사이버 환영들’일 터, 이 환영들이 시인의 머릿속을 텅 비게 하는 동안 당신은 “소실점을 향해 점점 작아”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결국 “진창뿐인 시공간” 앞에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 시인은 “부들과 갈대가 무성한 저 안쪽” 늪지대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 지대는 여기 공간 밖에 있는 시의 장소일 것인데, 그곳에서 시인은 어떤 ‘하얀 적막’에 휩싸이고는 고라니-그곳은 고라니의 땅인 바-와 “서로 눈을 마주”치게 된다. 이때 그는 “지금 내 시간의 끝을 담고 있는 저 고라니 눈동자”에서 “나와 인연을 시작할 때의 당신 눈동자 모습”을 발견한다. 시의 장소에서 만난 고라니로부터 ‘당신’과의 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재회로 인해 시인은 “새 두 마리”가 ‘여백’에서 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새들을 따라 “공간 밖으로” 손바닥을 내밀 수 있었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핥는 혀”-고라니의 혀이겠다-의 존재를, 자신을 부드럽게 품어주는 당신이 여전히 존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태영 시인에게 추락은 한 개인의 삶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자 지구」는 ‘가자 학살’에 의해 일어난 추락의 사태를 그려낸다. “하늘 가운데” “반쯤 뜯긴 달이” 서 있는 ‘가자’, 그곳에서는 “비명을 내지르며 혼비백산하는” 추락이 일어나고 있다. 이 추락은 첨단 인공지능 무기로 무장한 현실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의해 벌어진 사태다. 그러나 그 추락에도 불구하고, “버티던 힘들이 우주로 빠져나갔나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둣빛 새싹”이 “잔해 더미를 헤집고 앳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새싹을 하늘 쪽으로 밀어 올린 힘은 추락한 자들의 희망이지 않을까.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다시 날고자 하는 희망의 힘이 새싹을 밀어 올린 것 아닐까. 그렇기에, 새들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현실의 힘을 무시하면 공허한 낭만으로 빠지겠지만,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힘이 새로운 삶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중력과 비상의 부력 사이에 삶은 있는 것이다. 현실의 중력에 맞서, 그 중력에 의해 파괴된 비상하고자 하는 삶을 다시 치유하고 부활시키는 ‘호루스의 눈Eye of Horus’-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상징으로, 치유, 완전함, 보호, 건강, 그리고 부활을 의미-을 확보하려는 것이 이태영 시인에게는 시 쓰기 아니겠는가. _ 이성혁(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오려 붙인 달이 피뢰침 끝에서 쉬고 있었다 2026년 11월 이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