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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서막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미성(尾聲) 부록 『뇌우』서(序)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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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우, 번쩍이며 내리치는 운명 혹은 욕망
대지주 조우푸위안에게는 젊은 아내 조우판이와 두 아들이 있다. 조우푸위안은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가정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아내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하지만 가슴속에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가진 여인 조우판이에게는 이 대저택조차 숨 막힐 듯 답답하기만 하다. 쾌락과 우울을 오가던 어느 날, 남편은 그녀가 이상하다며 급기야 정신과 의사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녀를 쥐고 흔드는 것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타오르는 여인의 ‘욕망’이다. 조우판이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며, 혼잣말로) 더워 죽겠어. 답답해서 미치겠어. 여기선 정말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오늘은 화산 분화구라도 돼서 활활 불을 뿜어내어 모든 걸 깨끗이 불살라 버리고 싶어. 다시 얼음 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일생 한번 뜨겁게 불살라 봤으면 좋겠어. 내 과거는 끝났어. 희망도 죽어 버렸고, 흥, 난 이제 뭐든지 각오가 돼 있어. 와 봐, 날 미워하는 사람, 와 보라고. 날 실망시킨 사람, 내 질투심에 불을 지르는 사람도 모두 오라고.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니. 본문 104쪽~105쪽 한편, 큰아들 조우핑은 하녀 루쓰펑과 사랑에 빠진다. 대갓집 규수들을 마다하며 그가 루쓰펑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의 몸에 충만한 투박하고 정직한 매력과 ‘생명력’이다. 교양과 위엄으로 쌓아 올려져 그 자체가 질서로 다져진 조우씨 저택에서 조우판이와 조우핑, 그들은 무엇에 그토록 목말라 있는 것일까? 조우판이 내게 빚을 졌으니 책임을 져야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혼자 도망가서 는 안 되지. 조우핑 지금 당신이 쓰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아요? 아버지같이 이렇 게…… 이렇게 체통 있는 집안에서 쓸 말은 아니죠. 조우판이 (화를 내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란 말 좀 그만해! 체통? 너도 체통 얘기니? (차갑게 웃으며) 난 이런 체통 있는 집안에서 십팔 년을 살았어. 조우씨 집안의 죄악이란 죄악은 내가 다 듣고, 보고, 저질러도 봤어. 하지만 난 처음부터 너희 조우씨 집안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책임질 거야. 난 이 집안의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그리고 너의 잘난 아버지같이 몰래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놓고는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고서, 겉으로는 도덕군자요 자선가요 사회의 기둥인 척하지는 않아. 본문 98쪽~99쪽 조우판이와 조우핑, 그리고 루쓰펑의 뒤얽힌 관계는 부모 세대에 있었던 또 다른 비밀스러운 사건이 드러나면서 예측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극중에서 ‘뇌우’는 어머니 앞에서 거짓 맹세를 하는 루쓰펑을 위협하는 힘이자 동시에 조우판이의 걷잡을 수 없는 광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물들을 쥐고 흔드는 운명이면서, 그 운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욕망인 셈이다. 우울한 하늘빛을 깨치며 번쩍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뇌우처럼 엄격한 봉건 사회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비집고 나오는 욕망은 인물들을 끊임없는 고뇌 속으로 몰아넣는다. 차오위의 시적 리얼리즘 - ‘내가 쓴 것은 한 편의 시였다.’ 나는 그렇게 분명하게 뭘 바로잡고 풍자하거나 공격하려는 의식이 없었다. (중략) 처음 막연히 『뇌우』를 구상했을 때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그저 한두 가지 에피소드, 몇몇 인물, 그리고 매우 복잡하고 원시적인 정서 같은 것들이었다. -부록『뇌우』서(序) 276쪽 차오위는 처음부터 봉건이라든가 풍자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보다 근본적인 것, 인간과 인간의 힘을 벗어난 운명의 힘에 대한 동경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가진 시적 정서는 이렇듯 작품 전반에 녹아들어 독백과 지문에서마저도 시적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가 그려 낸 인간의 욕망과 비극의 서사는 그 배경이 되는 사회를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다.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비밀의 정체는 부모 세대가 저지른 과거의 죄악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죄악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의 분위기와 그것을 다시 덮어 버릴 수도 있는 사회 구조를 통해 억울한 희생양들을 만들어 낸다. 그가 동경하는 운명의 신비란, 결국 이토록 실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리얼리즘 정신을 담아낸 ‘극시’라는 형식은 시간과 공간을 도약하기 유리한 몸매를 하고 있다. 아름답고도 처연한 묘사와 날카로운 대사의 맛을 통해 지금 한국의 독자들을 너무나도 쉽게 매혹하는 것이다. 한여름의 숨 막히는 공기로 묘사된 봉건의 시대가 번쩍이며 내리치는 뇌우를 지나 어떤 하늘로 드러날 것인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걸출한 희곡은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