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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진달래꽃 지는 밤 억새꽃 연서 강 저녁 놀 기다림 밤바다 하얀 나비떼 봄눈 봄밤 허름한 보폭 사이의 흔적 달무리 귀향 풍경·1 풍경·2 진달래꽃 지는 밤 하늘이 저리 푸르다 춘정 입추 서정 달밤·1 달밤·2 별 바라기 제2부 당신을 위한 기도 사랑초 붕어 이제 우리는 새 오늘은 지하철역에서 저녁나절의 허기 무소식 별을 보았다 무제 벽난로 앞에서 눈이 내리면 쉽게 말하지 말자 세상이 텅 빈 이유 그대 뒷모습 별빛연가 수화 당신을 위한 기도 제3부 별 진 자리에 꿀이 되었다 낡은 시력 봄비 내리는 날 불순한 저녁놀 저 밝은 달 비추듯 별 진 자리에 꽃이 피었다 히말라야 기행 철거민 처서 그리고 비 남남북녀 황산도에서 낯선 평양에서 알밤 줍기 고난의 아침 햇살 셋집 구하기 잃어버린 둥지 출근 길 귀동냥 …하소서 요즘 같은 때 제4부 그 마음 비 내리는 날의 소회 그 사람 그 마음 그녀 이야기 눈꽃이 피다 입춘대길 쇠잔한 어느 저녁 토악질 제발 이런 세상 시 낭송회 농약 한 사발 그래도 살아야지 낮 도깨비 해방 전야 신호 위반 애기 정절을 짓밟지 마세요 방북 후기 연서 이런 사람들 천지 그 봄눈 ■ 해설┃몰가치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성찰과 진화의 세계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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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가치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성찰과 친화의 세계를 담아낸
최연식 제4시집『허름한 보복 사이의 흔적』의 시적 성과 최연식 시인은 지난 1999년 계간『시인정신』신인상으로 45세의 늦깎이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현재 〈경기신문〉 제2사회부 김포·강화 주재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문득 그대 그리운 날』『내게 머문 눈빛만으로』『그 눈 속에 잠들다』등의 시집을 출간하였고 이번에 제3시집 출간 이후 5년 만에 네 번째 시집『허름한 보폭 사이의 흔적』를 출판하였다. 최연식은 등단 10년 만에 무려 4권의 시집을 펴낼 정도로 그는 시적 치열성을 갖춘 시인이다. 또한 그는 김포, 강화지역에서 지역 문인 발굴 및 육성을 위해 김포문화원, 통진중학교 평생교육원, 김포교육청, 강화여성회관 창작문학반 강사와 〈강화문학회〉와 〈통진문학회〉를 이끌면서 매년 동인지 발행과 시 낭송회, 시화전 등을 개최하여 지역문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연식은 격정적인 서정시인이다. 그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역사적 현실인식을 갖고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또한 최연식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밑바닥 힘의 정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움’ ‘사랑’ ‘어머니’ ‘고향’ ‘가난’이라는 원초적 삶의 정서이다. 그에게 삼라만상의 모든 풀벌레 울음소리와 대자연의 풍경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틋함은 ‘그리움’이라는 정서와 깊이 맞닿아 있다. 그와 함께 그는 신문기자로서의 직업정신 때문인지 우리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항상 허투루 보지 않고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첨예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의 시세계를 다 설명해낼 수 없다. 그는 대자연과의 화친(和親)과 삼라만상 우주만물의 순환과 신생(新生)을 노래할 때 그의 시적 성취는 빛을 발하곤 했다. 최연식 시인은 제3시집을 선보인 지 약 5년 만에 77편의 시편을 가지고 네 번째 시집을 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지방신문 기자로서 생활의 전선에 있으면서도 팽팽한 시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로서의 직업이 산문적 현실에 익숙하다면 시인이라는 그의 또 다른 삶은 운문적 정서와 시간을 필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문적 삶과 시적 삶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견지해 내기 위해 긴장과 성찰의 순간을 한시라도 놓쳐선 안 된다. 고유한 시적 개성, 치열한 긴장미를 갖춘 시집 그런데 그의 이번 제4시집은 이전의 시적 성취보다 훨씬 원숙해졌을 뿐 아니라 최연식만의 고유한 시적 개성과 풍경을 노래한 시편들이 그 이전보다 더욱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의 시가 그 이전보다 훨씬 원숙한 시 세계를 갖고 더 좋아졌다는 것은 그 삶의 질량이 가져온 고통의 폭이 그만큼 컸고, 그의 시적 태도가 이전보다 더더욱 치열한 긴장미를 갖고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살과 뼈가 살아온 흔적이므로 거기엔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최연식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시적 풍경과 기조는 그 이전 시적 정서의 틀과 크게 다르진 않다. 그의 이번 시집은 시적 자아를 감싸고 있는 대자연과의 화친과 생태적 풍경 그리고 자본의 물신으로 뿌리 뽑힌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생존의 버거움, 아울러 자기 존재와 타자 간의 불화(不和)하는 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채워져 있다. 아울러 그 불화의 시적 풍경은 몰가치한 현실에 대한 파토스적 저항의 몸짓을 보여준다. 그런데 자기상처를 보듬어내고 사물을 끌어안는 자세는 그의 나이가 말하듯 지천명(知天命)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정의와 불의, 사랑과 증오, 적과 동지, 분단과 통일이라는 상충된 세계가 그의 내면에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지만 그것을 즉자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생태적 사유, 상생의 미학에 침윤하고 있다는 데서 그 이전의 시적 사유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가 이전 시집에 보여준 바처럼 사회적 상상력,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안받침된 건강한 시적 사유의 틀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의 상생과 평화를 깨뜨리는 반생명, 반평화적 실체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이번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초들에 대한 연대, 자본의 물신주의에 대한 저항 최연식 이번 시집 제2, 3부 실린 시편들은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그가 인식하는 사랑과 인연에 대한 탐구이자, ‘그리움’과 ‘기다림’등 원초적 삶의 정서와 애환이 묻어 있는 시편들로 묶여져 있다. 또한 자본의 물신주의(物神主義)에 항거하고자 하는 물외구생(物外求生) 세계관과 분단체제가 안겨주는 억압적이고도 반편적(半偏?) 사고에 대한 도전의 시정신도 드러난다. 특히 이 시집 3부에 실린 「철거민」「셋집구하기」「잃어버린 둥지」 「출근길」 「그래도 살아야지」 등의 시편은 시인 자신의 육화된 체험의 세계다. 집 없는 사람, 가난한 적빈(赤貧)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이 땅의 민초(民草)들과 생존의 질긴 끄나풀 속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동류적(同類的) 삶에 대한 연대의 어깨동무일 것이다. 용산참사의 비극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의 시편은 빈자(貧者)의 한과 설움, 울분을 장탄조로 혹은 기막힌 반전(反轉)으로 쏟아낸 것이기에 주목을 요한다. 아주 내 목을 쳐라, 자본의 바벨탑아 숨 막힐 정도로 누르다가 꼴까닥 넘어갈라치면 다시 놓아주며 포기하라고, 몇 푼 더 줄테니 여기는 더 이상 내 살 곳이 아니라고, 나가달라고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한다고 어르고 뺨치며 겁을 주었다 아 잔인한 생존의 끄나풀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생명들은 맘껏 소리 지르는 것 외에 저항의 방법은 없었다 오늘도 시청 정문 앞에서 점심을 거른 채 소리 지른다 다 같은 생명 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건만 피식 웃으며 지나가는 발걸음뿐 쉰 목소리는 저 멀리 피울음으로 번진다 ― 「철거민」 중에서 …아파트는 너무 높아 신분 낮은 내 세상이 아니라 스레트 집 곁방 같은 거 13평 부티 나는 연립 같은 거 찾자니 옥수수밭에서 토마토 찾는 격이다 돌고 돌아 어스름 해질녘 창문마다 별이 뜨고 달이 뜨는데 가로수 가지 새로 눈웃음 짓는 눈썹달이 카네기도 죽었고 진시황도 죽었고 김일성도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다며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고 허망하게 내딛는 보폭 사이를 비춰 주었다 가을은 추락하고 있는데 ― 「셋집 구하기」 중에서 「새」「눈이 내리면」「별을 보았다」「봄비 내리는 날」「저 밝은 달을 비추듯」이라는 작품은 풍경을 이야기하되 거기엔 항상 삶의 서사가 깃들어 있는 최연식의 시적 자세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민통선 마을과 북녘 땅이 지척으로 보이는 애기봉 근처에 사는 최연식 시인의 시집에 늘상 분단문제와 통일을 주제로 한 시편이 유독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이산가족의 한을 잔잔하게 읊은 시편이 있는가 하면 방북 후 느낀 소회를 담은 시편도 있다. 남북 관계가 이전 정부에 비해 거의 파탄일로에 놓여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는 우리에게 민족의 상생과 평화의 문제를 제기해 준다. 뻐꾸기 울음 들리면 오시려나 하얀 아카시아 눈꽃처럼 흩어지고 돌담장 찔레꽃 지고 나면 오시려나 봄날은 꽃잎처럼 시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낙엽 지는 서러운 날 그때 오시려나 들길 민들레 바람에 둥둥 떠가는데 하얀 그리움은 미움으로 변하는데 ― 「남남북녀」 전문 상생과 친화의 세계관을 담은 옹골찬 서정 이 시집 4부에 실린 시편들은 인간미 넘치는 세상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의 표현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추억어린 풍경이 암시하듯(「그 마음」 「풍경·1」 「풍경·2」) 원초적 모성에 대한 간절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의 폭력에 대한 반항이며 자기 존재의 근원성을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도시적 삶, 자본주의적 삶은 인간에게 항상 생존의 법칙과 짐승의 시간을 강요한다. 그 끈질긴 강요는 급기야 생활이 주는 비참과 굴욕, 마음의 상처로 인해 막막함과 답답증을 느끼게 된다. 난마처럼 얽힌 혼돈의 시대에서 시인은 필연적으로 몰가치적 현상과 불모적 현실에 대항해야만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다. 이때 틀에 박힌 자본의 생활과 일상적 생존에 대한 비판적 자성自省은 이 세상을 보다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을 낳게 한다. 그는 이번 제4시집을 통해 이전 시집보다 확연히 변별되는 상생의 사유와 성찰과 친화의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다. 그와 함께 「입춘대길」 「황산도에서」 등의 시편에서 볼 수 있듯이 강화와 김포 등 고향마을의 서정에 대한 끈질긴 탐구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관찰력과 통찰의 내면이 빚어낸 시적 성과가 돋보이며, 거기엔 궁핍을 뛰어넘어 더 큰 화엄(華嚴)의 생명력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애절함이 묻어 있기에 감동을 안겨준다. 최연식 시인은 이번 제4시집으로 그가 김포와 강화 땅의 향토시인이 아니라 옹골찬 서정을 지닌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당당히 나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단 안팎의 주목을 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