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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 인생론
노년에 대하여/우정에 대하여/변론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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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M.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아우렐리우스 지혜의 추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연보

노년에 대하여 -키케로
등장인물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제21장
제22장
제23장

우정에 대하여 -키케로
등장인물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제26장
제27장

변론집 -키케로
카틸리나 탄핵
제1 연설
제2 연설
제3 연설
제4 연설

아르키아스 변호

키케로 생애와 사상
Ⅰ 키케로의 생애
Ⅱ 키케로의 사상
키케로 연보

저자 소개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관심작가 알림신청
 

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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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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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

기원전 106년 로마 남부 라티움의 아르피늄에서 태어났다. 문인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웅변가로 어느 학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학파에 거리를 유지하며 적절히 조율한 철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5년 후에는 안찰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법무관에 선출되었고, 3년 후에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에 오르면서 정치적으로도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원로원 중심의 공화체제를 옹호하며 카이사르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다 사유지가 있는 시골로 물러나 『노년에 관하여』를 집필한다.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됨에 따라 다시 정계로 복귀하지만
기원전 106년 로마 남부 라티움의 아르피늄에서 태어났다. 문인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웅변가로 어느 학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학파에 거리를 유지하며 적절히 조율한 철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5년 후에는 안찰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법무관에 선출되었고, 3년 후에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에 오르면서 정치적으로도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원로원 중심의 공화체제를 옹호하며 카이사르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다 사유지가 있는 시골로 물러나 『노년에 관하여』를 집필한다.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됨에 따라 다시 정계로 복귀하지만 기원전 43년에 안토니우스가 보낸 병사들에 의해 카이에타에서 암살되고 이에 따라 로마 공화정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저서로는 『의무론』, 『최고선악론』, 『우정에 관하여』, 『노년에 관하여』, 『수사학』, 『국가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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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성숙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칼비테교육철학연구원, 한국생산성본부 편집인, 지은책 『일한사전』,옮긴책 존 듀이『민주주의와 교육』『철학의 개조』, 데이비드 흄『오성ㆍ정념ㆍ도덕 본성론』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41쪽 | 927g | 153*224*35mm
ISBN13
9788949705941

출판사 리뷰

성실한 구도자,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는 마르쿠스가 자신의 마음을 향해 사념하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느낀 바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것은 마르쿠스라는 모체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태아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 둘 사이에는 탯줄을 통해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상록』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쿠스라는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명상록』은 마음속의 대립을 적은 글이자 자기 분열의 글이며, 모순의 글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드러낸다 하여도 만일 마르쿠스의 인품이 이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명상록』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가 있었을까·
마르쿠스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처럼, 약삭빠른 재능과 지혜는 타고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진지함, 인간적 성실함, 근엄함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대립과 모순, 자기분열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고전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모순은 이른바 생모와 의붓어머니의 분열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황제라는 자리에서의 궁정 생활은 세상의 규칙으로 인한 운명이지만 그에게 안락한 생활은 아니었다. 그곳은 추악한 인간들이 꿈틀대고 온갖 악행이 넘쳐흐르며 권모술수가 날뛰는 세계다. 청렴하고 고지식한 마르쿠스로서는 도저히 태연히 머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는 격렬하게 분노하고 고뇌하며 궁정을 혐오하고 멸시한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기분을 책망하고 예전처럼 마음의 평온을 되돌리려 한다. 한편으로 황제라는 본분의 자각은 그의 완전주의와 스토아적 근엄함을 몰아세워 로마에서도 전쟁터에서도 그에게 완벽한 황제이도록 노력하게 했다. 사실 궁정 생활은 이 세상의 저속한 면이 응축된 것이다. 궁정 생활에 대한 염증은 넓게 보면 추악한 인간에 대한 거부 반응, 인간 혐오로 통한다.
이러한 인간 세상의 규칙과 방해로부터 그를 달래는 것은 생모인 철학이고, 철학의 거처인 내면의 세계이다. 본디 소란스럽고 혼잡한 궁정생활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그만큼 평온한 전원생활을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경하는 전원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마음속의 전원에서 그는 철학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생모라고 일컬었던 진실한 철학에서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철학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타고난 것이었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 놓여도, 아무리 불충분한 형태라도 거기에서 영혼의 안락함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육체는 궁정에 머물렀지만 영혼은 이 세상을 넘어서 있었다. 이처럼 그는 영혼의 고향에서 떨어져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곳 지상의 타향을 떠도는 유랑자였다. 이것이 그의 대립이고 분열이며, 그리고 그는 이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우직하리만큼 열심히 살아갔던 것이다.

뛰어난 웅변가이자 정치가, 철학자인 키케로

키케로는 가장 구체적, 현실적으로 정치를 철학하고 정치를 철학과 결합하려고 노력한 철학자이다. 키케로가 신처럼 떠받드는 플라톤은 정치가는 아니어서 모국의 정치를 독자적으로 바라보았지만, 키케로는 처음부터 정치가를 지망했고 로마 정치 세계의 최고 지위인 집정관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언제나 원로원의 여론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더구나 그는 동시대 사람인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처럼 철학에 관심 없는 현실주의적 정치가는 아니었다. 또 단순히 견식이 높고 완고하여 로마공화정의 이념을 굳게 지킨 카토와도 달랐다. 인간적 교양의 풍부함에서 키케로는 정치가로서도 철학자로서도 플라톤에 필적하는 그릇이었다.
키케로는 철학과 정치, 두 영역에서 앞으로 더욱 읽히고, 연구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키케로와 정면으로 대면해 키케로를 통해서 새삼 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치우친 그리스 철학 중심의 고대철학 연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키케로, 그리고 헬레니즘의 모든 철학은 21세기의 세계화와 혼미를 타개하는 데 믿음직한 아군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철학은 변론과 결부해야 한다는 것, 국가 정치라는 공공 공간에 철학이 적극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키케로를 통해서 주체적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정치에 관해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키케로의 시대에는 없는 지구적 세계, 지구적 국제 관계라는 세계적인 전망 가운데서 재고해야 된다. 또한 국민이 정치적 공간·활동으로서의 공간에 참여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를 키케로에게 몰입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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