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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랑에 대한 에스프리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아 대한민국 하면서 편지 쇼 하지 마라 양수리 숙아 벌레가 갑충 날갯짓하다 파국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내 생의 북쪽 팜파탈과 짧은 유희 라산스카 내 유목의 나날 리비도에 빠진 한 남자의 궤적 사마귀와의 교미 혹 사랑론 과적 동시대 고찰 쥐 죽은 듯이 II 누구나 잠들 수 있는 밤이지만 찬물소리 등나무 달그락거리는 하악골에 대해서 별 수제비 아직은 그렇다고 하자 그믐 나의 꽃들 아라리 크나큰 수의 내 한 홉의 사랑은 안드로메다의 여인 쭉쭉 빵빵 사이로 오는 황진이 모과 III 계절풍 너라는 먼 집 남쪽의 사랑 늦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숙아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그리움의 푸른 마디 구름 여자 애월에서 고백 딱 한 걸음 극빈한 사랑 안개 당신 누란 슬픈 전언 청산가자 새빨간 거짓말 IV 불시와 영일만 화무십일홍 자코메티에게 너무 늦게 쓴 편지 모든 식물은 두레박을 가지고 있다 질타 내 마음의 창세기 기일 아나키스트의 사랑 사랑이 그렇더라도 정림초등학교 플라타너스 북방여치에게 지리산 하니 섬진강 가고 싶네 나쁜 봄 저 풀꽃 몸춤 분이 수잔 꽃 궤나 마음에 둔다는 말 [해설] 사랑의 빈 지대를 가로지르는 알레고리와 리비도의 이중주|김석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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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빈 지대를 가로지르는 알레고리와 리비도의 이중주
시인 김왕노는 사랑의 사자다. 시인에게 사랑은 “자유의 결”이고, “영혼의 청정지역”이자, “푸른 아지트”(「아나키스트」)이다. 하여 사랑은 어느 누구나 향유할 수 있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자의 몫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사랑하고픈, 그것이 바로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의 정체이자, 시인 김왕노가 말하고 싶은 사랑의 실체이다. 이를테면 꽃으로 표상되는 사랑은 그 형식을 불문하고 “정부”이자, “전부”이라고 언표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여 시인의 사랑의 정체가 요나콤플렉스와 극력한 사랑의 지대를 왕래하고 있기도 하지만, 김왕노 시인은 아나키스적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아나키스트라고 선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아나키스트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이중주가 실패로 끝나면, 사랑을 휘어 그 모든 것들을 그리움으로 환원시키게 된다. 마치 모든 사랑의 형식들을 승화로 귀결하여 인륜성을 표방하듯이, 사랑은 그 극렬한 인간학적 포즈를 순결한 정신성으로 표방하게 된다. 마치 「시인의 말」에서 말한 것처럼,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기다림”을 “그리움의 실체”로 전이시키면서 시인 김왕노는 자신의 사랑을 인륜적 사랑으로 고양시키고 있다. 사랑은 원점은 “요나”(「꽃」)이고, 꽃이다. 사랑은 “그리움의 상전벽해”이다. 하여 사랑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회귀하는 인륜적 사랑, 즉 요나콤플렉스의 체현된 과정인데, 그것은 사랑할 수 없음에 대한 보상심리에 다름 아니다. 사랑이 실패한 자리에 항상 원초적 그리움이 핀다. 모든 사랑이 자궁의 회귀이듯, 우리는 인간에게 허여된 사랑을 휘어 저 그리움이라는 절대 심급 속에 모든 의미적 사태들을 봉인하게 된다. 현재적 사랑이 소진되어 그것이 타나토스로 휘어지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움이다. 시인에게 그리움은 시말의 선험적 가정이거나, 사랑이 당도하는 궁극의 지점이다. 하여 그리움은 형질이 전환된 사랑 방식인데, 그것은 사랑을 가장 완벽하게 사랑하는 방식이다. “전생”의 어느 지점을 몽상하면서, 혹은 희미해진 옛사랑의 그림자를 추억하면서 시인 김왕노는 “궤나”를 “종일”도록 불고 있다. 그것은 가장 완벽한 죽음을 통해서 가장 완벽한 사랑을 성취시키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