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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凡 例 參考書目 第十二 說難篇 제12편 유세의 어려움 第十三 和氏篇 제13편 화씨 第十四 姦劫弑臣篇 제14편 간사하고 겁박하고 시해하는 신하 第十五 亡徵篇 제15편 나라가 멸망할 징조 第十六 三守篇 제16편 세 가지 지켜야 할 것 第十七 備內篇 제17편 내부를 방비하라 第十八 南面篇 제18편 군주의 자리 第十九 飾邪篇 제19편 사특함을 경계함 第二十 解老篇 제20편 『老子』를 해석하다 第二十一 喩老篇 제21편 『老子』로 비유하다 第二十二 說林 上篇 제22편 설림 상 第二十三 說林 下篇 제23편 설림 하 附錄 1. 『韓非子集解2』 圖版目錄 2. 『韓非子集解』 解題(QR코드) 3. 『韓非子集解』 總目次(QR코드) 4. 『韓非子』 講義紹介(QR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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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용龍이라는 동물은 길들이면 탈 수 있지만 목 밑에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이 있으니 만약 사람이 역린을 건드리면 필시 그 사람을 죽인다.”
---「 제12편 [세난說難] 」중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좀먹어서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새가 있어서이다. 그러나 나무가 비록 벌레에 좀먹었더라도 강풍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고, 담장이 틈새가 있더라도 큰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 제15편 [망징亡徵]」중에서 “자하子夏가 증자曾子를 만났을 적에 증자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살이 쪘습니까?’라고 하니, 자하가 대답하기를 ‘싸움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살이 쪘습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자하가 대답하기를 ‘내가 집에 들어가서 선왕先王의 의리를 보면 그것을 기뻐하였고, 집을 나가서 부귀한 자의 즐거움을 보면 또 그것을 기뻐하였으니,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워 그 승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여위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왕의 의리가 이겼기 때문에 살이 쪘습니다.’라고 하였다.” ---「 제21편 [유로喩老]」중에서 “새기고 깎는 방법에 코는 크게 만들어놓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눈은 작게 만들어놓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코를 크게 만들어놓으면 작게 만들 수는 있지만 작게 만들어놓으면 크게 만들 수가 없고, 눈을 작게 만들어놓으면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크게 만들어놓으면 작게 만들 수가 없다.” ---「 제23편 [설림 하說林下]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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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와 『한비자韓非子』
한비자(B.C. 280~B.C. 233)는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무렵인 전국시대 말기 인물로, 이름은 비非이며 한韓나라 공자公子출신이다. 한비자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상세하게 보이며,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한세가韓世家]?[육국표六國表] 등에서 산견散見된다. 『사기』에 의하면 한비의 저술은 생전이 이미 세상에 알려져, 진 시황秦始皇이 『한비자』 [고분孤憤]과 [오두五?]를 보고 감탄을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韓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최약체였을 뿐 아니라 중원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강성해져가는 진秦나라의 위협에 안심할 수 없었다. 이에 한비자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한나라를 보존해야 함을 역설하다가, 그의 벗인 이사李斯의 꾐에 넘어가 옥獄에서 독을 먹고 자살한다. 『한비자』는 55편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고분孤憤], [오두五?], [내저설內儲說], [외저설外儲說], [설림說林], [세난說難]은 한비자가 직접 지은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제가의 고증에 따르면 이외의 편들은 한비자가 죽은 뒤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덧붙여진 기록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학자들은 특히 의심스러운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비자가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비자』에는 한비자가 처음 진나라에 가서 진 시황을 만나 유세한 기록을 담은 [초견진初見秦]과 한나라를 멸망시키지 말고 보존해야 함을 주장한 [존한存韓]이 가장 처음에 위치한다. 이외 각 편의 순서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며, 편명은 각 편의 내용을 대표할 만한 단어로 선정되어 있다. 한비자韓非子와 법가사상法家思想 한비자는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비자 이전에 법치法治를 주장한 상앙商?, 신불해申不害, 신도愼到가 있었으나, 유독 한비자를 법가의 대표 사상가로 여기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한비자는 그의 스승인 순자荀子의 영향을 받았으나 ‘예禮’에 의한 교화敎化에 역점을 둔 순자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상賞과 벌罰을 수단으로 하는 ‘법法’에 의한 다스림을 주장하였다. 한비자는 [육반六反]에서 부모가 아들과 딸을 대하는 태도가 ‘계산적인 마음[計算之心]’에서 나옴을 주장하면서 상벌의 효용效用을 역설하였다. 결국 정령政令으로 계도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려야 천하의 태평을 보증할 수 있으며, 군주는 도덕이나 인륜적 교화에 힘쓸 것이 아니라 ‘세勢’에 의지하고, ‘술術’을 쥐어야 하며, ‘법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법을 강조한 상앙과 술을 강조한 신불해, 세를 강조한 신도의 사상이 한비자의 통치술로 융합된다. 이후 한비자의 사상과 그의 저술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종합한 결과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한편 흥미로운 점은 『사기』에서 그의 사상이 노장老莊에 뿌리를 두었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한비자』에는 최초의 『노자』 주석인 [해로解老]와 [유로喩老]가 존재하며, [양권揚權]과 [주도主道]에도 도가道家에서 주장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인용하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 결국 한비자가 추구한 법치는 궁극적으로 인위성이 배제된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도치道治’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최초 『한비자집해韓非子集解』 완역 기존 『한비자』의 번역서는 완역完譯과 선역選譯의 형태로 여러 차례 출간되었으나, 이는 대문大文의 완역일 뿐 집해集解의 완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역주 한비자집해』는 기존 『한비자』 번역서가 역대 연구성과와 풍부한 학술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원문의 의미 전달에만 치중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대문 번역뿐 아니라 집해까지 완역하고, 역자의 친절한 주석과 현대적인 번역을 가미함으로써 전문가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까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지향하였다. 국내 최초로 집해까지 완역된 『역주 한비자집해』는 한중일韓中日의 연구 성과를 종합?반영하여 총 6권으로 번역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