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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불을 켜며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당신의 서점에서 _4 1부 그럼, 좋아하는 일을 하러 서점에 가볼까요 비,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 _16 나선계단, 이야기가 쌓여가는 방식 _22 풍경風磬, 더없이 한가로운 풍경風景 _28 소리, 서점에 살고 있는 _33 조명, 느릿하고 부드러운 _38 음악, 읽는 일과 듣는 마음 _44 머그, 하루치의 다정에 대하여 _50 인형, 어쩌면 서점의 주인 _56 책상, 사소하고 조그마한 궁리들 _62 의자, 당신의 자리 _68 식물들, 초록빛 이름들 _74 명함, 위트 있게 그리고 시니컬하게 _81 2부 서점에 누가 있었던 것만 같아요 동료, 매니저 경화 이야기 _88 목수, 남머루 이야기 _95 시인-시인들, 훌륭한 페인트공들 _102 청귤차, 따뜻함과 향긋함 _109 단골, 떠남과 버팀 _114 어린이, 미래의 풍경 _124 낭독회, 서점의 보물 _131 친구, 캔커피를 들고 찾아온 _138 조력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 _144 3부 날이 너무 좋아요, 서점 안에만 있기 답답하시겠어요 우체국, 다른 세계로의 통로 _152 구름, 친애하는 더없이 친애하는 _157 우산, 우리 모두의 것 _163 일요일, 조용하고 귀여웁게 _169 가을, 엽서를 적는 계절 _175 겨울, 언제든 만나게 되는 서점의 계절 _180 눈과 귤, 동그랗고 포개면 사람이 되는 _186 크리스마스, 기다리고 기다리는 _192 폭설, 어쩔 수 없이 _197 4부 그럼에도, 서점이라는 일이지요 선물, 두 손의 소유 _204 청소,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하여 _209 연필, 가장 아름다운 흑심 _215 바구니, 한가득 아름다운 무언가 _222 마이크, 거기까지 들리기 위해서 _228 휴식, off on off _235 필사 엽서 그리고 방명록, 당신이라는 흔적 _240 서점 일지, 우리 모두의 기억 _248 냄새, 서점을 가득 채우는 _255 이벤트, 실은 서점의 일상 _260 서점의 불을 끄며 서점을 완성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_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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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선계단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누가 계단을 올라올 때, 그가 정수리부터 얼굴, 가슴과 허리 순으로 나타나 마침내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때 여전히 나는 세상에 없는 신비를 목도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기분은 찾아올 때와 반대의 순으로 그가 사라져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 p.27, 「나선계단, 이야기가 쌓여가는 방식」 중에서 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책과의 말없는 대화에 몰두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책장 앞에서 잠시 사라져버린다. 오직 책의 세계에 자신의 전 존재를 위탁하기 때문에. 현실의 감각은 닫히고 텍스트가 인도하는 책 속의 세계에 깊이깊이 파묻히고 만다. 그런 순간은 아무도 방해해선 안 된다. 나는 그를 내버려두고 나의 책상 위에 전념하며 누군가 서점에 있다는 사실을, 그가 책장 앞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러다 가볍게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혹은 책장에 다시 책을 꽂아넣는 소리에 퍼뜩 깨닫곤 하는 것이다. 아 그래, 누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면 어딘가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다. 시를 읽는 방식으로 잠시 어딘가에 다녀온 사람을 마중하는 것 같아서. --- p.35~36, 「소리, 서점에 살고 있는」 중에서 한밤의 서점은 장롱 속을 닮았다. 찾아왔던 이들의 온기가 완전히 사그라들고 오직 나만 남았을 때 나는, 서점의 조명을 아예 꺼버리거나 최소한만 남겨둔다. 서점의 고요는 책들이 내는 소리와 같다. 무언가 빨려들어가는 듯한, 아니 빨려들어가다가 멈춘 듯한 조용함. 그러므로 애써 들으려 하면 무언가 들릴 것도 같은데 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 ‘소리’를 ‘지켜본다’.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턱을 괴고 앉아서 우두커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간신히 숨만 쉬면서. 지루한 줄도 모른다. 책들이 내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정말 편안하게 만든다. 늦은 시간 자꾸 캔맥주를 따게 되는 것은 이 탓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핑계를 만들어서 조금 더 있고 싶은 것이다. --- p.39~40, 「조명, 느릿하고 부드러운」 중에서 위트 앤 시니컬에는 자금자금한 것들이 참 많다. 하나같이 내 친구들이 놓아준 것이다. 그나저나 왜 친구들은 이런 작은 것들, 어느 해변에서 주워 온 조개껍데기라든가, 움직이지 않는 양철 로봇이라든가, 얼굴이 그려진 귤 모양 양초, 표류하는 사내가 든 스노볼, 낚시를 하고 있는 두 마리 고양이, 구름 모양의 조명 등등의 것들을 선물하는 것일까. 그런 것들로부터 위트 앤 시니컬을 떠올리는 것일까. 쓸모보다, 아름다운 것. 쓸모와는 다른 쓸모가 있는 것이 시, 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지. --- p.61, 「인형, 어쩌면 서점의 주인」 중에서 겨울에는 귤을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주인이 따로 있다 여기는지 먹는 사람은 없다. 그 귤들이 오래되어 말라버리면 그것이 참 서운하다. 서점 일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 이러저러한 기획을 해보지만, 의도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준비해놓고 마냥 기다릴 뿐이다. 그러다 누가 귤을 까고 있다면, 그 모습을 보게 되기라도 하면 정말 기쁘고 즐겁다. 서점 일이란 게 그렇다. 책상 위에 귤을 올려놓고, 누군가 먹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사소하고 조그만 궁리들. --- p.65~66, 「책상, 사소하고 조그마한 궁리들」 중에서 한곳에 머물러 맞이하는 입장이 되어서야 떠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상 모든 장소가 그렇듯 서점에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거리가, 마음이 멀어져서. 불가피하게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 사람들은 돌아오기도 하고 여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여기 남아 있는 나는, 나의 서점은 그저 그들의 안녕을 궁금해하고 바라고 짐작할 뿐이며 어쩔 도리가 없으니 잘 있다가 그들이 돌아오면 환대를 해주어야겠다 다짐한다. 매일매일 다짐을 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이 자리에 있고 있을 것이다. --- p.116, 「단골, 떠남과 버팀」 중에서 무언가 가라앉고 있다. 가늘게 눈을 뜨듯 세심해지면 알 수 있다. 공중에 떠도는 희미한 비냄새와 더불어 읽는 마음을 독려하는 얇고 투명한 한 꺼풀. 책 위에. 책을 살펴보는 사람들 위에도 덮여 있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이는 서점지기들만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몇 개 있다. 이를테면, 여름 잎사귀 그림자의 소리 같은 것. 한자리에서 오래 창밖을 보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 p.164, 「우산, 우리 모두의 것」 중에서 종일 이런 일들을 궁리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이어 발생하는 사건들. 위트 앤 시니컬은 작은 서점. 직접 찾아와야 누릴 수 있는 곳. 작다니. 시집이라니. 서점이고 직접 누려야 한다니. 버튼 서너 번 누르면 내가 있는 곳까지 책이 배송되는 시대에 허점과 약점뿐이다. 그런가. 언제부터 걸어가 서점을 찾는 일이, 책을 골라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점과 약점이 되었지. 서점을 찾아가는 동안 보고 듣는 것들이 주는 즐거움, 서점을 떠날 때 내 책을 얻었다는 기쁨, 이런 일은 계산할 수 없어서 이익을 본 사람도 손해를 본 사람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작은 서점의 일. --- p.261~262, 「이벤트, 실은 서점의 일상」 중에서 |
“지금의 생각과 감각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있는 게 분명해” 당신은 바깥쪽에서 나는 안쪽에서 우리를 잇는 나의 작은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 그곳의 서점지기 유희경 시인의 이야기 언제나, 시와 시를 애정 하는 독자가 머무는 곳 그렇게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곳 이 시집서점도 다른 서점들과 다를 바 없이 상점이지만, 자주 책값 이상의 것이 오가는 곳이 되곤 한다. 낭독회를 열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삼삼오오 모인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거나, 데이트를 오기도 한다. 주말에는 동네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귀여웁게 즐거웁게 모인다. 신촌에서 혜화로 이사할 때 펑펑 울던 인근 대학교 학생들, 이곳에서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한다며 찾아온 예비부부, 시인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며 찾아온 독자, 오월이면 작약 한 송이를 건네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슬쩍 작은 선물을 놓고 가는 독자들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이고, 서로를 보듬는 마음이며, 결국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 된다. 어느 평범한 날에도, 큰비가 내리는 날에도, 그들은 퍼뜩 생각이 나면 들르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크고 작은 사연이 있어서 서점은 독자들의 공간이 되어간다. 애틋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한 그런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밀도 있는 커다란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시인은 그들이 부디 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란다. 그들의 궁리에, 몽상에, 모색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드릴 생각이다. 시인은 이 작은 시집서점을 운영하면서 독자가 있거나 없거나 매일 궁리하고, 재미있는 일을 모색한다. 독자들이 즐거울 수 있는 일, 시의 세계로 풍덩 다녀올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 음악, 냄새 등을 세심히 살핀다. 그렇게 서점과 시인은 점점 씩씩해진다. ‘씩씩함이란 내일 한번 더 해보는 것. 내일모레도 해보는 것. 찾아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물을 덥혀 차를 내어주는 것. 대가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앞서 생각해보는 것.’ 시인과 위트 앤 시니컬은 언제나 씩씩하게, 독자가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하나쯤’으로 세상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어느 날에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