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3월 27일 |
---|---|
쪽수, 무게, 크기 | 468쪽 | 544g | 126*182*30mm |
ISBN13 | 9788954655699 |
ISBN10 | 8954655696 |
발행일 | 2019년 03월 27일 |
---|---|
쪽수, 무게, 크기 | 468쪽 | 544g | 126*182*30mm |
ISBN13 | 9788954655699 |
ISBN10 | 8954655696 |
알림 5 1부 연필은 나의 삽이다 호수공원의 산신령 15 밥과 똥 37 늙기와 죽기 66 꼰대는 말한다 77 동거차도의 냉잇국 _세월호 3주기 85 내 마음의 이순신 I 98 내 마음의 이순신 II 115 Love is touch Love is real 140 이승복과 리현수 154 아, 100원 163 2부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177 박정희와 비틀스 185 귀향 196 오이지를 먹으며 215 태극기 225 할매 말 손자 말 239 살아가는 사람들 _세월호 4주기 251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_칠곡, 곡성, 양양, 순천 할매들의 글을 읽고 262 이등중사 박재권의 구멍 뚫린 수통 279 동부전선에서 _북한군 병사의 오줌줄기 292 서부전선에서 _제대해서 더 멋진 여친을 사귀자 300 눈을 치우며 305 대통령, 육군 중사, 육군 병장 318 3부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 말의 더러움 331 별아 내 가슴에 340 꽃과 노을 350 공차기의 행복 357 생명의 막장 376 냉면을 먹으며 384 서울↔신의주 410 금강산↔두만강 423 새들이 왔다 433 고래를 기다리며 440 해마다 해가 간다 453 끝내는 글_ 한강 하구에서 462 |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얻은 세 가지 주제어 : 참혹과 참담, 70세, 젊은이의 키스. 고마운 마음으로 하나씩 써 보려 한다.
1. 참혹과 참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본 뜻은 다음과 같다.
참혹 : 비참하고 끔찍함
참담 : 끔찍하고 절망적임
내가 참 좋아하지 않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단어들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이 책이라서, 이 작가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참혹한 일과 참담한 마음을 어쩌자고 이토록 절절하게 그려 놓았는지 모르겠다.
글은 대체로 무겁다.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 가벼울 수 없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헤아리는 작가의 시선이 차가웠다가 따스해졌다가 몇 번을 반복하는데 이렇게 바뀌는 온도에 마음이 울렁이기를 몇 차례, 나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순신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몸이 굳었다. 세월호를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영혼이 떨렸다. 이국종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눈이 감겼다. 이승복을 이용한 권력은 한탄스러웠고, 그 권력 뒤에 숨은 권력자들에게는 화가 일어났다. 옛날이고 지금이고 그 권력 때문에 참혹에 빠지는 백성의 처지가 참담했다. 나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참혹과 참담을 애써 멀리 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남의 것이 아니었던 것, 내 것이었던 참혹과 참담이었다. 피하려고만 해 온 내가 무척 괘씸했다. 꽤 오래 시달릴 듯하다. 그래도 작가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다행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깊이 서글펐다.
2. 70세
작가의 나이다. 벌써 이렇게 되셨구나. 내가 먹은 나이는 고려하지도 않고 작가의 나이에만 놀란다. 작가가 보여 주는 70세의 정신, 강렬하게 본받고 싶다.
작가는 늙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말해 준다. 내가 앞으로 70세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으로도 태도로도 젊은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3. 젊은이의 키스
작가는 글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찬양한다. 처음에는 의외라고 여겼는데 글을 읽다 보니 점점 같은 마음이 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내가 이 대목에서 얼마나 고루한 사람이었던가.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괜히 삐죽이고 눈흘기고 그랬는데. 아마도 내가 못해 봐서 심술이 났던 것이겠지.
우리의 젊은이들에 대한 작가의 건강한 기대가 좋아 보였다. 기대하는 이 태도는 배워야 할 일이다. 청춘을 나무라고 무시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고달파도 청춘은 살아서 우리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을 걸을 것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오라고 하는 대로 오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그 또한 기성세대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청춘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문제는 늘 기성세대 쪽에 더 많아 보였다. 어린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눈부심이 고스란히 읽혀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경건해지고 무거워지고 쓸쓸해진다.
김훈 작가의 글들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중독성을 가진 것 같다. 또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복잡 해진다. 괜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다. 처음 김훈을 만난 것은 그의 수필집 [자전거여행] 이었다. 초판이 나올 때는 미처 몰랐고 개정판으로 읽었지만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글이 마치 수채화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글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그것이 부담스러워 피하기도 하였지만, 마치 중독자처럼 그의 글을 찾아 읽었고, 그렇게 그의 글 속에 함몰되어 갔다. 거칠어서 부담스럽고, 부담스러워서 더 읽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훈, 그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메일보다 팩스를 더 좋아하고, 컴퓨터 자판보다 연필과 지우개를 더 좋아한다는 그의 삶이 나는 부럽다. 모든 게 다 디지털화 되어 가면서, 어찌 보면 아날로그적인 것은 낙후된 것으로 터부시 되어가는 세상에서 내 몸으로, 내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꿈꾸고 있어서 일 게다. 이 책 역시 [연필로 쓰기]란 제목이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시작 부분)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책 첫 부분을 읽으면서, 밥벌이에 대해 솔직한 그의 심정을 들으면서 나는 경외감을 느낀다. 어느 누가 밥벌이에 대해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그 밥벌이에 대해서 씁쓸한 기억이 하나 있다. 예전에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다가 일이 생겨 잠시 밖에 나가서 일을 보고 온 적이 있다. 그런데 책상 위 컴퓨터에는 당시 중학생이던 작은놈이 앉아서 신나게 게임 중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가져다 읽으려니 작은놈이 한마디 한다. “아빠 밥벌이가 그렇게 지겨워?” 순간 할말을 잊었던 것 같다. 너무나 순식간에 얻어맞은 결정타였다. 그 말을 듣고서 나에게 정말 지겨운 게 밥벌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도 밥벌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때가 생각난다. 김훈은 그런 밥벌이의 지겨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말한다. 아마 그것도 내가 김훈의 글을 찾아 읽는 한 이유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김훈 작가의 나이가 70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땅히 그 정도는 될거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작가 스스로가 자신이 노인이 되었다는 글을 읽으니 기분이 묘하다. 나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게 순리지만 노인이라는 어감이 왠지 서글픔을 더 해 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밥벌이 도구를 가지고 여전히 글을 쓴다.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지만 그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회한과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늙는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스스로 꼰대라 칭하며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의 총3부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 참혹하고 무서웠던 기억에서부터 노년이 되어서 비로소 보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또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분노 혹은 기대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칼의 노래]에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인간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주게 만든다. 그 위에 자꾸 현재의 인물들이 겹쳐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단단하고 거친 글들이어서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치 중독이 된 것처럼 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호수공원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이런저런 단상을 풀어 놓는 것을 보면 그의 글이 조금은 변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나이 듦의 영향일까
그는 글을 쓰면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연필은 자꾸만 짧아지고 지우개 가루는 수북하게 쌓여만 갔을 것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라는 글이 그래서 마음에 남는다. 자신이 쓴 글들에 대한 애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인 그 역시도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서다. 수다를 떨고 있는 노인들 옆에서 혹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연필로 메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에는 어떤 글들이 나올까 또 다시 기다림이 시작될 것 같다.
작년 12월 마포중앙도서관에서 김훈 작가를 만났었다. 그는 책을 많이 읽지만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의 친구 중에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도 많다며 그들도 덕성을 갖고 살아간다고 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그들은 사물에서 경험에서 자연에서 배운다.
다음 계획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지금 수필을 쓰고 있고, 출판사에서 작업중이라고 했다. 무척 기대가 되었다.
김훈은 '연필로 쓰기'에서 보이는 세상에 대해 썼다. 지금 경기도 일산에 사는데, 일산은 짧은 시간에 인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가 되었으며 그걸 자랑으로 말한다고, 일산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여름을 회상하기도 하고 유치원 다니는 한 아이로부터 산신령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된 사연, '밥과 똥'을 통해 이 세상을 음과 양처럼 지배하는 생존과 배설의 순환에 대해 구린내 나는 언어로 풍자와 해학의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왜 태극기는 여전히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등 고희에 접어 든 사내의 시선으로 들여다 본 삶의 풍경 안팎을 풀어놓는다.
책을 통해서 인간과 사물을 들여다 보는 것을 해야한다. 책을 통해서 책을 보고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인간과 사물을 관찰하고 글로 쓰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을 알려준다. 김훈의 책을 읽으면 간결하다. 단순하다. 뼈가 있다. 아름답다. 감탄이 절로 난다. 그는 글을 쓸 때 수다를 떨지 않고 한 마디로 쓰려고 노력한다. 칼의 노래를 쓸 때 검법서를 많이 읽었단다. 적을 행해 칼을 한 번 휘둘렀는데 만약 적이 피하면 나는 방어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바로 적의 공격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삶과 죽음이 교차힌다. 그런 간절함으로 예리함으로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