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10월 09일 |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228g | 145*210*20mm |
ISBN13 | 9788936464073 |
ISBN10 | 8936464078 |
발행일 | 2012년 10월 09일 |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228g | 145*210*20mm |
ISBN13 | 9788936464073 |
ISBN10 | 8936464078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작품해설 작가연보 발간사 |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죽음을 무시하려고 해도 가족 중의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의 죽음도 언제 다가올 지 알 수없기 때문에 일부러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막연하지만 두려움 뿐이므로. 그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려 일부러 죽음을 모르는 척 하는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때 할 수 있는 생각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것. 금방 병마를 이기고 일어설 거라는 것. 설마 내가 죽기야 하겠냐는 것. 죽음이라는 건 나에게 아닌 타인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죽음 앞에 선 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것. 죽음 앞에 선 이를 바라보는 이 또한 아픔과 고통속에 있을 것이라는 것. 죽음을 생각하니 그저 숙연해질 뿐이었다.
톨스토이는 중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에 다가온 죽음을 두고 친구와 가족들 그리고 이반 일리치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죽음을 바라보는 순간들을 담았다. 타인의 죽음이란 다행히 나에게 다가오지 않은 일일 뿐일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놓고 그의 절친했던 동료들이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들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가 이반 일리치의 자리로 갈 것이기에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에 대한 생각들을 마음속으로 하는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마저 자신의 처남을 어느 자리로 불러 올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이반 일리치가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라는 것. 그런 생각을 대부분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병명없이 아프게 된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또한 죽음에 대한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빼놓곤 가족 모두가 건강하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몸이 거북하고 불편한 증상이 심해지자 이반 일리치는 짜증을 부렸고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혼했던 아내는 이런 남편이 얼른 죽었으면 싶지만 남편이 죽으면 봉급도 없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진 남편이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식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71페이지)
그렇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나여야 하는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죽음을 바라보는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울고 부정도 해보았다. 죽고 싶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말은 아주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호소 인지도 모른다. 이반 일리치도 자신을 고통을 받지 않길 바랐고, 할 수만 있다면 살고 싶었다. 아주 강렬하게. 지나온 삶이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죽음의 고통앞에 선 순간이야말로 평범했던 시간들이 아주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는 생각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오늘을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오늘 내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 오늘 내가 엄마를 만난 것. 아빠를 만난 것. 형제자매를 만난 것 또한 함께 시간을 보내며 훗날 우리는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행복했음을,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고통뿐이었을 시간마저 그 시간을 살았던 나는 행복했음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인간의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톨스토이. 그의 작품은 <안나 카레리나>와 단편 <무도회가 끝난 뒤>를 읽은게 전부이지만 잔잔함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깊숙히 파고 들어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짧지만 강한 ...
동료들에게 이반 일리치의 부고가 전해져왔다.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듯이 그들도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겠어,죽었는데. 하지만,난 이렇게 살아 있쟎아.' 그들 각자는 이렇게 생각하거나 그런 느낌을 가졌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고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라고는 이제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추도식에 참여해서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등 아주 귀찮은 의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다는 떨뜨름한 사실이었다.-p10
이런, 누군가의 죽음을 맞딱뜨렸을 때 안타까움 물론 느끼겠지만, 저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을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큰 병에 걸린다면 가족 외에는 누구의 병문안도 받지 않겠다고.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단순한 이유와 당사자가 아니기에 누구도 환자의 맘을 알 수는 없을텐데 형식적으로 주고 받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장례식장에서 아내는 남편의 절친한 친구에게 정부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의논하고, 친구는 그 자리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카드를 치러 달려가 버렸다. 산 자들은 자신의눈 앞에 있는 삶을 또 살아나갈 수 밖에 없나보다. 이쯤에서 이반 일리치라는 인물이 괴팍하고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법률학교를 졸업했고,예심판사를 거쳐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중이었다. 신혼 생활이 지나면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를 탈피할 방법으로 직무에 충실했기에 명예도 얻었고,사회적으로는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간에 조금 힘든 시기를 거치기도 했지만,운 좋게 좋은 자리도 차지하고,부부관계도 많이 회복 되어서 이젠 특별한 문제가 없겠구나 하던 찰나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통증을 느끼면서 찾았던 병원의 의사들이 내 놓은 병명과 치료법은 제각각이었고.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느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줄 뿐이었다.
의사는 표정이 굳으며 안경 너머 한 쪽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만약 피고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질문한다면 나는 부득이 피고를 이 법정에서 끌어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p54
이반 일리치 자신이 법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해서 엄숙한 표정으로 자신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상황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결코 알 수 없었던 피고인들의 맘을 의사의 태도로 인해 역지사지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이 또한 병이 깊어진 후 자신을 돌이켜 봤을 때 제대로 살았는 지에 대한 척도가 되었을듯하다. 맘 속 깊은 곳에서.
환하던 세상이 암흑이구나. 그래, 지금 난 여기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냐? 도대체 어디로? '내가 없다는 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가? 내가 없어지면 그럼 난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정말 죽음인가? 아니야, 죽고 싶지 않아.' -p 68
죽음이 두려운 것이 이런것 아닐까? 그리고,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죽음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 이반 일리치는 죽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두려움에 젖어들 수 밖에 없었다. 진정으로 가엾게 여기고 보살핌을 받기를 소원했다. 아내든,딸이든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고,자신을 보살피는 하인 게라심에게서 유일한 위로를 받았다.
더이상 차도가 없자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이반 일리치는 원망의 말들을 쏟아놓는다.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많이 들어서 진부한 대사지만, 가장 솔직한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군들 억울하지 않을까?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겁니까? 왜, 도대체 왜 절 이렇게까지 괴롭힌단 말입니까?-p101
어느 날 영혼의 소리를 듣는다. 영혼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한다. 어릴 때의 행복했던 삶, 법관으로서의 삶. 자신이 잘못 살아서일까라는 생각도 하지만,즉시 자신의 삶은 올바르고 정당했다고 강변한다. 끊임없이 마음을 들여다보던 이반 일리치는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두려움과 원망으로 가득 차있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하지만,아직은 풀지 못한 의혹은 남아 있었고,필사적으로 죽음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순간 순간을 떠올리며 정신적 고통까지 짊어지고 있던 이반 일리치. 그는 마침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건 용서와 사랑이란 감정때문으로 읽혔다. 톨스토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단지,난 이 책을 통해 죽음의 순간으로 다가가고 있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심경을 따라가봤다. 이반 일리치의 관점으로만 쓰였기에 주변인들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그를 통해 죽음을 대하는 여러가지 모습 중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두렵기도 하지만,언젠가는 나에게도 다가올 죽음이기에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물 흐르듯 묘사해 나가는 톨스토이의 글은 그가 인간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탐색해 나가는 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타인의 상실감일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엄청난 슬픔이다. 분명 죽음 근처에서는 엄청난 양의 애통과 비애로 영원한 떠남을 배웅하지만, 그 배후에는 이미 떠난 사람이 두고 가게될 모든 것들과 그 소멸로 인해 발생하게 될 유형 무형의 가치들에 대한 실리적 계산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판사 이반 일리치의 부음을 듣자, 그와 함께 자주 모이던 친구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렸을까. 유능한 고위 판사 자리가 비게 되면 그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이 채워지게 된다.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는 다시 또 사람이 비게 되고, 그런 식으로 자리 이동과 승진이 발생된다. 개인 집무실이 생기고, 연봉도 오르게 될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다. 그것 뿐만 아니다.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평범하면서도 성공적인 삶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작스레 닥친 치유할 수 없는 병과, 그 병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의 시간을 다룬다. 일리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이바노비치는 미망인이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자, 일리치의 부인은 일리치가 죽기전에 겪은 고통을 이바노비치에게 구체적으로 들려주지만, 그 고통이란 것이 일리치가 아니라, 부인의 신경을 얼마나 자극했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의논하고 싶어하는 것은 연금 문제와 같이, 사망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지원과 혜택에 관한 것인데, 그것 역시 이미 환히 꿰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뜯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차원이다. 가족들 역시 가장의 죽음 앞에서, 개인 가장된 슬픔 뒤로 실리적인 문제가 우선인 것이다.
소설을 통해 일리치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하거나 그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열세살 짜리 아들과 하인 게라심 뿐이다.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관직을 마치 귀족 작위처럼 받아서, 크게 하는 일 없이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앉아 죽을 때까지 국고에서 꼬박꼬박 거액을 챙겨가며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낡아 빠진 제정 러시아의 전형적인 행정 관료. 훌륭한 처세와 성실함과 세련됨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때로 적수를 만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당한 인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 일은 그가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꿈에 그리던 저택을 구입하고 집의 구석구석을 꾸리는 재미로 권태로웠던 부부 사이 마저 달라질 즈음,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러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창틀에 튀어나온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히지만, 가볍게 넘긴다. 치열하게 살아 중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고풍스럽고 멋진 집을 갖게 되고, 그것을 원하는 대로 꾸미면서 완벽한 삶에 가까와진 일리치는 그 사고 이후로 조금씩 건강에 이상이 오고, 철근처럼 단단했던 그의 몸은 약해져가고 그의 모습은 점점 누가 봐도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흔들려간다.
이제 삶은 병과의 전쟁이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온갖 치료 방법을 동원해서 병과 싸우며, 식구들을 못살게 굴고 화를 내고 직장에서건 카드놀이를 하는 친구들 모임에서건 자신의 부재를 스스로 못견뎌한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토록 힘들어 하는 그에게 가족들의 모습은 비정하게만 비쳐졌다. 아픔을 함께 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이바노비치가 느꼈던 것처럼, 죽음에 가까운 존재의 고통이 가족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잿빛으로 만드는 것이 싫은 것이다.
만일 급작스런 폭발이나 교통 사고와 같이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죽는다면 이러한 단계는 생략될 것이지만, 오히려 그런 죽음에 따르는 전쟁과도 같은 단계를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는 비통한 마음만 남을 뿐, 죽음의 고통을 나누거나 적어도 나누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단계를 건너 뜀으로 인해 보낸 사람에게 더하는 죄책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대도 공간도 멀고 먼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바로 우리들, 특히나 낳아주고 길러주고 이제껏 함께 했던 숱한 시간들로 내 생의 일부이기도 한 부모님의 연세가 평균근처에 맴도는 내 세대에게는 더욱 더 우리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톨스토이도 이제 하나 읽었구나.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다루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 (아꼈다가 담달에 미션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이미 올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