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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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8쪽 | 294g | 135*210*12mm |
ISBN13 | 9788960906037 |
ISBN10 | 8960906034 |
[예스24X마음산책] 1권 ↑ 코너 책갈피 2종 / 2권 ↑ 시 드로잉북 2종 (각 택1, 포인트 차감, 한정수량)
발행일 | 2019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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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8쪽 | 294g | 135*210*12mm |
ISBN13 | 9788960906037 |
ISBN10 | 8960906034 |
MD 한마디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으면 사랑에 빠진다. 누구나 불가항력적인 언어의 힘을 그녀의 시와 글에서 발견하기 때문에. 이번 산문집은 그녀의 이전 책보다 먼저 쓰여진 글이라 더욱 반갑다. 우리가 왜 그녀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근원과 풍경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에세이MD 김유리
서문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 힘과 시간에 대하여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 살아 있기 푸른 목장 헤링 코브에서 올빼미들 푸른 목장 연못들 치어 삶의 동반자들 나의 친구 월트 휘트먼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네 명의 동반자들 스티플톱 몇 가지 말들 시인의 목소리 시 가자미, 하나 시인의 목소리 시 가자미, 둘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의 글 작가 연보 메리 올리버를 향한 찬사 |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긴 호흡]이라는 제목에 반해 읽게 된 책이다. 거기에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란 부제 또한 한 몫을 했다.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시인들이 쓴 시집보다는 산문집을 즐겨 찾아 읽지만 부제를 읽는 순간, 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만들었다.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한다는 평을 받았던 시인은, 2019년 83세를 일기로 잡초우거진 모래언덕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만큼 문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숲속이나, 바닷가, 들판을 거닐며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했다는 말이지 싶다.
항상 뒷주머니에 작은 공책을 넣고 다닌다는 시인은 그 공책에 자연을 거닐며 보고 들은 것, 시시때때로 떠오른 생각들, 그리고 약속이나 쇼핑목록 혹은 해야 할 일과 같이 당시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항들을 기록했다. 공책에 시가 쓰이지는 않지만 그 문구들은 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시효지난 메모지마냥 그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인이 그렇게 기록을 한 까닭은 그게 무엇이든 공책에 쓰인 문구들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자신을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공책에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책에 실려 있는 공책속의 메모를 읽으면서 시인이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기쁨,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시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열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글로 쓴다면 그것이 모두 시(詩)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생각 또는 느낌의 체험이기 때문은 아닐런지.
해안가에서 조류에 실려 왔다가 바닷물이 빠지면서 남겨진 온갖 물건들, 사람들이 저녁식사로 먹거나 어부들이 잡아온 것과 같이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무성한 숲속이나 연못에서 만나게 되는 온갖 새나 동물들. 시인은 이들의 삶의 변화 속에서 계절의 순환을 감지하기도 하고 이들을 관찰하며 하루해를 보내기도 한다. 시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숲속이나 자연어디에도 귀여운 것이나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자연 그 자체나 동식물들을 대하면서 ‘귀엽다’거나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와 같은 말들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런 말들은 인간이 길들이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붙이는 말이라며, 자연은 인간이 귀엽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계의 일원이라는 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런가하면 시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한다. 첫 번째 만나는 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자신이 처음 놀라움과 기쁨에 차서 읽었던 시는 휘트먼의 시였다고 한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 한편을 그다음엔 몇 편을 사랑해야 하며, 이러한 첫 시들을 통해 언어가 세상의 현상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느끼고 사색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란 저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나에 관한 것이며, 정체(停滯)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체험, 그리고 나아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즉, 시의 목적은 독자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체험과 직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말들의 배열을 제공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첫 시가 무엇인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시가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시를 읽었을 때 마음에 남는 시들은 한결같이 나의 체험이거나 혹은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되는 시들이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이지만 일단 쓰이고 나면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연찮게 읽은 산문집이지만 많은 생각꺼리를 안겨준다. 내가 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시인을 만나는 첫 책인지라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리송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 그녀의 시집이나, 그녀가 쓴 다른 산문집을 마저 읽는다면 더 깊은 이해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 날개에 실려 있는 시인의 또 다른 산문집 두 권에 눈길이 간다. 조만간 다시금 시인의 글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메리 올리버의 에세이 <긴 호흡>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레고와 같은 책이다. 주어진 형식이나 주제는 없고 책을 읽는 독자에 의해 어떠한 형식, 어떠한 주제로 언제든 변경 가능하기 때문이며, 얇디얇은 이 책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이고 뒹굴뒹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에 너른 공간을 만들어 놓고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유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부추기는, 어쩌면 작가는 사유의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같은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8 '서문' 중에서)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메리 올리버는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미국 시인 맥신 쿠민은 메리 올리버를 일컬어 '습지 관찰자'이며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했다. 2019년 1월 17일, 여든세 살의 일기를 마칠 때까지 스무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냈던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따금 나는 몸을 기울여 물을 들여다본다. 연못 물은 거칠고 정직한 거울이다. 내 시선뿐 아니라 사방에서 물그림자에 합쳐 드는 세상의 후광도 비춘다. 그러니까 연못을 가로질러 날아다니며 노래를 조금 부르는 제비들은 내 어깨 위로, 머리칼 사이로 날아다니는 것이다. 진흙 바닥을 천천히 지나가는 거북은 내 광대뼈를 만지는 것이다. 내가 이 순간 똑딱거리는 시계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p.83)
시인은 이 책에서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프로빈스랜즈의 무성한 숲과 모래언덕에서, 클랩스 연못에서, 베넷 연못에서, 라운드 연못에서, 오크 헤드 연못에서, 패스처 연못에서 시인과 함께 살았던 부엉이와, 올빼미와, 토끼와, 들쥐들과, 어스름한 마당에 앉아 평화로운 생각에 잠긴 고양이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이 든 배낭을 메고 학교 대신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책들 사이에 늘 함께 있었던 휘트먼의 시집으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모든 것이 필요할 때 시는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가는 헝클어진 미묘한 길과 배낭 속 책들의 무게를 기억한다. 나는 그 어슬렁거림과 빈둥거림을 기억한다. 휘트먼과 함께 "바지 끝을 장화 속에 집어넣고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경이로운 날들을 기억한다." (p.92)
우리는 이따금 시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의 무용론을 말하기도 하고, 압축된 시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를 멀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못 위에 부서지던 금빛 햇살의 잔상들을 실재하는 시구 하나하나의 시어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모습으로 목도하는 비현실적인 체험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엄마의 체온을 하나의 시구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시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몰라서 시를 읽지 않는다는 건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다. 시는 시어 위에 실재하는 햇살이며, 엄마의 따스한 체온이며, 나풀거리는 눈발일 뿐이다. 시는 이해하는 문학이 아니라 체험하는 문학인 까닭에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삶을 체험하면 그만이다. 내가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을 읽으며 프로빈스랜즈의 숲길을 길게 거닐었던 것처럼. 때로는 어슬렁거리며, 때로는 또 빈둥대며.
해가 지는 시각이 점점 늦어진다. 저녁은 천천히 찾아온다. 이렇게 계절이 흐르는구나 생각한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의 꽃봉오리가 보였다. 매화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뭔가 계속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활짝 터질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절기나 계절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봄이니까 꽃이 피고 겨울이니까 눈이 오는 게 당연했다. 뚜렷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몇 해 뒤에는 하나의 계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계절의 냄새가 새삼 달콤하다. 고유한 빛과 냄새, 자연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봄의 연못 물은 끊임없이 뒤척이는 푸른 양모 같다. 그 무겁고 차가운 물이 연못의 검은 바닥으로 내려가고, 그 무게에 밀린 바닥의 물이 흔들리며 위로 올라와 연못 분지를 야생의 영양으로 채운다. 그건 연례행사로 한 해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늦은 봄이 되면 초록 풀과 갈대들이 올라오고, 수련의 첫 잎들도 보인다. 바람은 잠잠해진다. (83쪽)
메리 올리버의 글은 내게 이런 것들을 찾게 만든다.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순간, 풍성한 연두의 풀들이 선사하는 싱그러움, 하루하루 커지는 잎맥을 지켜보고, 어린 새들의 날갯짓을 관찰하고 응원하는 일상을 기록하는 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 그 안에서 우리는 시인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숨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시인이라는 창조, 창작자보다는 한적한 시골에 사는 자연친화적 생활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산문에서 시나 시론, 혹은 창작의 과정보다는 짧은 메모나 죽은 나방의 날개를 묘사한 글이나 바닷가에서 마주한 생선뼈나 연못에서 겨울을 보내는 오리들의 글에 더 매력을 느낀다. 아마도 시골에서 나고 자랐고 근처에 바다를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기 마련이다. 흙을 만지고 마당에 내린 눈을 치우며 투정을 부리던 순간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므로.
사실, 그녀의 시나 시론은 보통의 독자인 내게 어렵다. 문학소녀였던 메리 올리버에게 월트 휘트먼이 얼마나 절친한 친구였는지 그녀가 소개한 글이나 시로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시인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준 이가 시인이었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들이 서로에게 연결된 운명이었구나 싶다. 시의 세계로 인도한 월트 휘트먼에 대해 메리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발견한, 그러니까 나 혼자 종이에서 발견하고 놀라움과 기쁨에 차서 읽었던 시들은 휘트먼의 것이었다. 나는 그에 늘 깊이 감사하며 살 것이다. 거기엔 풍성하고 엄선된 언어가, 엄청난 에너지가, 리듬이, 천 가지 방향의 완전한 몰입이 있었다. (126쪽)
‘내게 일이라 함은 걷고, 사물들을 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작은 공책에 말들을 적는 것이다.’라고 서문에서 시인이 말했듯 시인은 항상 쓴다. 그게 무엇이든 쓰고 또 쓴다. 시인에게 시는 삶의 전부이고 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은 삶의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30년 넘게 뒷주머니에 작은 공책을 넣고 다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수첩에 기록한다는 김연수의 말이 겹쳐진다. 공책에 직접 시를 쓰는 건 아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시가 된다. 생각나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메모를 한다. 그 작은 공책에서 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완성된 글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구 쓰는 일.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시인의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에게는 작은 공책이 있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공책이 있다. 누군가는 노트북, 누군가는 스마트폰, 누군가는 한글 파일이 그럴 것이다. 책에서 발견한 구절을 옮기거나 그 문장의 단어를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어 연습하는 것처럼. 메리 올리버의 이런 ‘버지니아 울프가 쓴 많은 글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쓴 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였기 때문에 쓴 것이었다.’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 대신 나의 이름으로 옮겨 읽는 일도 그렇다. 규칙적으로 쓰고 고치고 노력하고 실천했기에 시가 우리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을 사랑하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일, 그 안에서 그녀는 정말 완벽했고 행복했을 것 같다. 그녀의 바람처럼 나의 생도 그렇게 채워질 수 있을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나의 삶을 완성하면서 말이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53쪽)
이상하게도 나는 메리 올리버의 산문을 읽을 때면 새벽의 기운을 느낀다. 뭐랄까.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선명해지는 순간과 닮았다고 할까. 깊은 잠에 빠져 나는 느낄 수 없고, 알 수 없는 감각들을 모은 것 같다. 천천히 서늘하고 투명한 공기가 사라지고 전해지는 여명의 분위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그렇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가운데 나는 『완벽한 날들』을 가장 좋아한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좋을 뿐이다. 좋은 걸 설명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계절과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글을 만나는 기쁨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벚꽃이 흐드러지는 환한 봄이 오면 그녀의 문장들이 다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