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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 양장 ] 마음산책 짧은 소설이동
정지돈 저 /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04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12건 | 판매지수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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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338g | 128*185*17mm
ISBN13 9788960906150
ISBN10 896090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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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위트 있는 농담의 세계, 정지돈 짧은 소설집] 날렵한 지성과 감각적인 위트, 정지돈의 짧은 소설집. 책에는 작가의 말처럼 “친밀한 사이에서 오간 실없지만 웃긴 대화 같은” 글들을 담았다. 인물과 이야기가 기분 좋게 경계를 허무는 사이, 작가는 독특하고 위트 있는 농담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해 소설 읽기의 새로운 경험을 선물한다.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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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년 전부터 짧은 소설 청탁이 많아졌다. 써보지 않은 형식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쓰다 보니 즐거워졌다. 몇몇 작품은 다시 읽으며 자주 웃었다. 내가 쓴 건데……. 독자들에게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지은 웃음은 개인적인 성향의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 통할지 모르겠다. 친밀한 사이에서 오간 실없지만 웃긴 대화 같은, 그런 글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닌데 써놓고 보니 그렇게 됐다.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다. G. K. 체스터턴은 말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 「작가의 말」 중에서

1975년 유령을 목격한 사람이 처음 나왔다. 그것도 루키노 비스콘티의 유령을 본 사람이. 이상한 것은 루키노 비스콘티가 1976년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죽기도 전에 유령이 되지? 나는 마르티니에게 농담을 건네듯 말했는데 마르티니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게 바로 그가 거장이라는 증거요. 비스콘티는 종종 유체이탈을 했다고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방과 방 사이를 트래킹 숏으로 이동하듯 부드럽게 통과하는 것이지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노인…… 정상이 아니군.
---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다」 중에서

이상한 일은 다음이었다. 서평이 기괴해질수록 마니아층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혐오적이고 비관적인 서평에 열광했고 그가 기고하는 잡지의 구독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 「어느 서평가의 최후」 중에서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며 그는 바닷속에서 뭘 한 걸까, 열정이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으며 우리는 다만 죽기 전까지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거나 시간이 지나면 시간의 흐름에 생물학적으로 동참했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시간을 쏟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 「바다의 왕은 장 팽르베」 중에서

프랑크 헨젤은 기묘한 사람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초기에 프랑스인들에게 ‘기묘한 전쟁’이라고 불린 것처럼, 전형적인 게르만인이자 나치 당원인 프랑크 역시 기묘했다.
--- 「프랑크 헨젤」 중에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도가 튼 사람이니까. 책을 진짜 읽은 사람 앞에서는 잠자코 있으면 될 일이다.
--- 「좋은 이웃 사람」 중에서

어디로 가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깊고 어두운 숲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차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적이 드문 산속을 달리는 기차와 텅 빈 객실, 다음날 아침에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호텔에서 깨어나 조식을 먹으며 그만둔 것들에 대해, 새로 시작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거야.
--- 「밤 여행」 중에서

나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혼 직전에 과거의 연인을 만나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종의 전통인가. 식전 행사 같은 건가. 결혼한 내 친구들도 그랬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기이한 삼각관계」 중에서

그녀는 재희가 결혼할 운명의 남자가 세 명 있다고 말했다. 선택을 잘해야 돼. 한 명은 너를 잘되게 할 거고 한 명은 무난할 거야.
나머지 한 명은?
너를 망칠 거야.
--- 「세 번째 남자」 중에서

어딜 가나 성당이 있었고 수로가 있었고 묘지가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 탓에 지도를 봐도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어떤 장소는 대낮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창문을 걸어 잠그고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수로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수백 년 된 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은 자신처럼 길 잃은 관광객뿐. 그들은 가족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진다.
--- 「작은 세계」 중에서

그들이 머무는 에어비앤비의 와이파이 비번은 ‘Fear eats soul'이었다. 주인이 영화를 좀 봤네. 상민이 말했다. 응?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이잖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중에서

아무튼 에어비앤비는 안 돼요. 재차 말하는 상우의 목소리가 끊겨서 들렸다. 왜요? 일본에서 에어비앤비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그냥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 「산책하는 침략자」 중에서

아무튼 나는 그를 몇 번 못 봤지만 적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다. 대단한 재능이었다. 문제는 에피소드의 중심에 항상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거다.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사실과 유사한 지명이나 상황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힌다」 중에서

나는 늘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흥미롭고 눈앞에서 피부로 직접 겪은 일은 글로 쓰고 싶지 않은데 그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중에서

비혼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급증하는 1인 가구와 사상 최악의 인구절벽을 겪은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권장하는 걸 넘어 혼자 사는 사람을 ‘악’으로 규정했다.
--- 「지하 싱글자의 수기」 중에서

규엽은 쇼핑을 종교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고 있었다. 그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직구, 배송, 반품의 이름으로, 쇼핑의 신에게 아멘.
--- 「신과 함께」 중에서

희정은 각종 레퍼런스를 이용해 자기계발 메시지를 전파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자기계발, 백 년 동안의 자기계발, 자기계발을 공부하는 자기계발, 자기계발의 온도, 두근두근 자기계발, 알려지지 않은 자기계발과 자이툰 파스타…….
--- 「당신 인생의 자기계발」 중에서

그의 평론에는 이상한 페이소스가 있었다. 삶의 애환과 고달픔, 아이러니와 슬픔과 기쁨과 한 줌의 희망……. 없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영화에 대한 해석이었다.
--- 「그리고 세상은 영화가 되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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