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그의 두툼한 콧수염 위로 유쾌한 표정이 언뜻 비쳤다.
--- p.18
─우리 정원사들이 네가 찾아와서 내가 돌아올 건지 물었다고 말해줬어. 미친 사랑이야, 뭐야?
스스로 변호하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때로는 누군가를 잊는 최고의 방법이 그 사람을 다시 보는 거라는 것 알아?
--- p.35
─너 완전히 얼빠진 표정이야. 불쌍도 해라. 타드, 얘가 4년 동안 나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벌써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 대체 나한테 뭐가 있다고? 모두들 나만 보면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는 거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면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해져. 어, 으, 하면서 나를 쳐다보기만 하니 말이야.
--- p.49
존스 씨가 내게 눈을 찡긋하더니 장난기 섞인 의례적인 말을 했다. “선생께서는 티타임에 초대되셨습니다.” 나는 집으로 올라가 세수하고 깨끗한 셔츠를 입었고, 물을 적셔 머리카락을 매만졌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작업실로 가서 풀을 가져와 포마드처럼 사용했다. 그런 다음 자동차 뒷좌석에 근엄하게 자리를 잡고 무릎 위에 스코틀랜드 담요를 덮었다. 그런데 막 출발한 자동차에서 별안간 뛰어내려 존스 씨를 기겁하게 하고는 쏜살같이 내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신발 닦는 걸 잊었던 것이다.
--- pp.62~63
나는 그녀를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나를 그저 나 자체로 사랑하는지 아니면 내가 그녀를 위해 행할 그 모든 무훈 때문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만 되면 난 우체국 창구 직원 자리를 얻고 싶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거의 엄마 같은 몸짓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마치 내가 한 말이 내 삶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한 얘기인 것처럼 그녀는 말했다.
─넌 날 잘 몰라. 이리 와봐
--- p.67
─세상에! 플뢰리 씨, 선생 조카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타고났어요! 그런데도 선생이 이 아이를 위해 갈망하는 것이 고작 보잘것없는 우체국 직원 일자리란 말입니까?
─선생님, 곧 닥칠 시대에는 아마도 보잘것없는 우체국 직원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멋진 역할일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 p.87
─그 사람들이 영원히 떠나는 편이 낫단다. 넌 이제 열일곱 살이야. 네 인생을 살아야 해. 단지 한 여자만으로 살 순 없어. 몇 년 전부터 너는 오직 그 애를 위해, 오직 그 애를 통해 살고 있어. 사람들이 우리를 “미친 플뢰리 사람들”이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게도 약간의 이성은 필요해.
--- p.104
사랑이 삶의 전부이고 모든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내가 어디서 갖게 되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완전한 야심 결핍을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일찍, 너무 어린 나이에 온 존재를 바쳐 사랑하는 바람에 내 안에 다른 무엇을 위한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 p.125
─너한테 이젠 말해야 할 것 같아, 뤼도.
─뭘?
─널 사랑해.
내가 냉정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네 말이 옳았어. 방금 땅이 흔들렸어.
무선전신 곁을 거의 떠나지 않는 타드가 슬프게 우리를 지켜보았다.
─서둘러. 너희들은 어쩌면 한 세계의 마지막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 p.129
매번 포옹은 모든 위기와 실수에서 삶을 구했다. 마치 그때까지 내가 삶에 대해 알았던 건 거짓된 꾸밈뿐인 듯했다
--- p.13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상을 여성스럽게 만들어주세요! 생각들을 여성스럽게 만들어주시고, 나라들을 여성스럽게,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을 여성스럽게 만들어주세요! 친구들, 여성의 목소리로 말한 최초의 남자가 누구인지 아나? 예수야.
--- p.135
그 무엇으로도 첫사랑에는 대비하지 못하는 걸까?
--- p.137
내가 성 문제를 포함해서 어떤 한계도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릴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머지 모든 것이 작아져도 줄곧 커지기만 하는 연인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이 모든 허영심이 사라졌다.
--- p.151
내 기억은 매 순간을 포착해 따로 두었다. 이런 걸 우리 집안에서는 비밀 장소라는 뜻으로 “양말 속”에 둔다고 한다. 거기엔 한평생을 견디게 해줄 만큼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었다.
--- p.169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 p.172
독일 민중이 곧 히틀러를 몰아낼 거야. 다른 국민들을 믿듯이 독일 국민을 믿어야 해.
나는 팔꿈치를 누르고 일어서며 말했다.
─모든 나라의 연들이여, 단결하라.
앙브루아즈 플뢰리는 공격적인 내 응수에 상처받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깰 수 없는 것들이, 닿을 수 없기에 깰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 p.176
─네가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아름다운 일일 거야.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게 될 테니까. 살면서 무엇이건 훼손되지 않고 남는 건 드물어.
--- p.198
나라가 변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가 점점 더 커졌다. ‘이성적’이며 ‘정신이 건전’하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격추된 영국군 비행사나 런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자유프랑스 요원을 숨겨주느라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뜨렸다. 파랑을 좇는다고 비난하기가 어려운 ‘분별 있는’ 부르주아들, 노동자들, 농민들이 ‘불멸’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 신문들을 인쇄하고 퍼뜨렸으며, 그런가 하면 불멸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죽어나갔다.
--- p.230
─우리는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그분의 연들 덕에 계속 웃네. 좋은 신호야. 희극성에는 위대한 덕목이 있네. 진지함이 피신해서 살아남는 안전한 장소지. 게슈타포가 당신들을 가만히 놔둔다는 게 놀라워.
--- p.273
─상상의 작품이 아닌 건 살아볼 가치가 없어. 상상 없이는 바다도 한낱 짠물일 뿐일 테니까…… 물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놓지 말아야 하지. 하지만 그건 그 현실의 목을 제대로 조르려고 붙드는 거야. 더구나 문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목을 계속해서 비트는 방식일 뿐이지…….
--- pp.274~275
난 삶에 의미가 없지 않다는 걸, 삶은 실패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다.
--- p.293
그뤼버는 작업실 한쪽 구석에 던져져 있던 우리의 오래된 졸라,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머리에 후광처럼 두른 졸라 연에 손은 댔지만 그 초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이렇게 물었다.
─누굴 고발하는 겁니까?
삼촌이 말했다.
─그건 세기 초에 아주 유명했던 노래 제목입니다. 아내가 애인과 떠나자 남편이 아내를 불륜으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가수 같지 않은 얼굴이군요.
─그렇지만 목소리는 아주 좋았죠.
--- pp.316~317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독일인들을, 심지어 나치들을 한껏 이용해 우리 자신을 가리려 한다는 깨달음이 불쑥 다가왔다. 오래전부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걸 없애
기가 아주 어려웠다. 어쩌면 결코 완전히 없애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치들도 인간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는 점이 바로 그들의 비인간성이었다.
--- p.319
─저들이 삼촌을 죽였군요.
─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테리에 씨가 서둘러 나를 안심시켰다.
─다만 다른 수용소로 이송했죠.
─어디로요?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으로.
그때만 해도 나는 오시비엥침이 독일 이름인 아우슈비츠로 세상에 더 알려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 pp.368~369
─그 얘긴 하지 않기로 해. 프랑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전쟁 후에 사람들은 말할 거야. 프랑스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느니, 저 사람들과 함께 있었느니. 이걸 했느니, 저걸 했느니. 그런 건 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야. 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어. 릴라, 넌 나와 함께 있었어.
--- p.388
─뤼도, 네 고통이 어떠할지 난 알아.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자고. 아마도 그는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 우리 가운데 다시 나타나는 걸 보게 될 거야. 그토록 한결같이 연이라는 사랑스러운 예술로 이 땅에서 영원히 순수하고 변질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표현할 줄 알았던 사람. 자네, 앙브루아즈 플뢰리를 위해 잔을 드네. 자네가 어디에 있건 자네의 영적 아들이 자네 작업을 이어갈 것이며, 그 작업 덕에 프랑스의 하늘은 영원히 비어 있지 않을 것임을 알게나!
--- 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