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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삼킨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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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48g | 140*205*15mm
ISBN13 9788954446822
ISBN10 8954446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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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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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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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말하자면 아빠의 걱정은 기우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를 괴롭힐 만큼 관심을 갖는 아이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을 괴롭히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게임이라든지 혹은 게임이라든지, 아니면 게임 같은 것들.
그러니까 내 존재는 한마디로 길거리에 있는 개똥과 비슷하다. 마주치면 불쾌해서 인상을 팍 찡그리지만 자기 손으로 치우는 것보다 그냥 피해 가는 게 낫다고 여기는 개똥.
이것 역시 나에게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중2들은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무서운 존재니까.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 나 같은 건 눈 깜짝하는 순간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 p.9

나는 형사 할아버지의 말처럼 침착하게 그날 밤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페가수스자리와 고요한 적막,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체육공원으로 들어왔고,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 난간에 등을 기댄 여자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으며, 남자는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여자를 아래로 확 밀어 버렸다.
그러고 나자 마치 형사가 된 것 같았다. 어쩌면 내 눈빛도 베테랑 형사와 같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에 힐긋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작고 하얀 중학생 소년이었다. 실망스러웠다.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던 그때, 어떤 단어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탐정!
탐정도 형사처럼 범인을 잡는다. 명석한 두뇌와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추적하기 때문에 굳이 우락부락하거나 싸움을 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거울 속의 하얀 소년이 탐정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 p.48

아빠 펭귄은 알을 품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발밑에 쌓인 눈만 먹으며 4개월을 버티면 마침내 아기 펭귄이 태어난다. 알에서 깨어난 아기 펭귄은 아빠에게 밥을 달라고 마구 조른다. 그러면 아빠 펭귄은 그동안 위 속에 넣어 둔 물고기를 토해 내 아기 펭귄에게 먹인다.
아빠는 마치 황제펭귄 같았다. 내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뱅글뱅글 맴을 돌거나 제자리에서 방방 뛸 때, 혹은 열이 나서 밤새도록 아플 때면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뭐라도 좀 먹으면서 있지 그러누. 그러다 애비 너까지 탈 날라” 하고 잔소리를 해도 아빠는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아, 그러고 보니 아빠는 생선을 좋아했다! 그중에서 특히 고등어와 갈치를 좋아했는데, 가시 바르는 게 힘들어서 생선을 먹지 않는 나에게 늘 살점을 발라 숟가락 위에 올려 주곤 했다.
혹시 아빠는 나 때문에 생선을 먹는 것일까?
어쩌면 아빠의 위 속에는 내게 주기 위한 물고기가 보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 p.103

“응? 말해 보라고. 왜 말을 못 해! 이게 다 걔 잘못이잖아. 나는 아무 잘못 없단 말이야! 기껏 아는 사람도 없는 지방으로 와서 취직했는데, 소년원에서 배운 기술로 새 삶을 살아 보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만날 건 뭐란 말이야? 그것도 그렇게나 입이 싼 계집애를.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단 말이야! 그런데 사람을 깔보는 듯한 눈으로 ‘미용실 사람들은 네가 옛날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라며 실실 웃는데 열이 안 받고 배기겠냐고! 걔가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고!”
범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앙되었다. 나는 정말로 겁에 질렸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났다. 툭 터진 눈물이 뺨을 타고 서서히 흘러내렸다.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네 잘못이란 말이야. 누가 그런 곳에 있으래? 누가 그 장면을 보랬냐고! 네가 안 봤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냐!”
나는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 p.177

오늘은 내 스무 살 생일이 아니다. 열다섯 살 생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보물 1호가 바뀌었다. 나는 방 안을 빙빙 돌던 걸 멈추고 박스로 달려갔다. 아빠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활짝 웃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던 아빠가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한다, 태의야. 태어나 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천체망원경을 뜯어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아빠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빠는 내 심장에 박힌 가시를 뽑아 주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나 홀로 웅크리고 앉아 가슴을 껴안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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