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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계四季 철학관/ 정육면체/ 병원 레시피/ 실리카겔/ 봉투/ 나무 속의 나무/ 맨홀/ 모나크나비/ 울음을 키우는 하루/ 저녁을 모르는 태양의 노트에는/ 접어 놓은 가을에는/ 종달리 제2부 초포다리/ 국숫집에서/ 주목의 본적/ 뉴욕의 방/ 새만금/ 재단사 은주/ 결핍/ 독백/ 마터호른에 가면/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알감자/ 동백 제3부 에코백/ 구피와 나/ 이석증/ 죽음을 감춰 두고 산다/ 배경이 되는 일/ 하지/ 곤줄박이/ 그녀, 이정이/ 지우개/ 90년 여름/ 후정리/ 허밍/ 밤비/ 얼굴 제4부 웃음의 거리/ 대설 무렵/ 금상동 하늘 자리/ 쓸쓸함을 응시하고 있는 풍경은/ 만경강/ 해장국/ 겨울밤/ 금덕여인숙에서는/ 어떤 사이일까/ 흰목물떼새와 노는 밤/ 라임트리 줄기를 쳐다보며/ 재채기/ 완주 적바림 별곡 |
김헌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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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새를 담아 주세요
장대비의 퀭한 어깨 토닥이는 소리 처마 밑 나무 의자에 쪼그려 앉은 속울음을 넣어 주세요 당신에게 못 가는 이슬의 숨소리 여문 뿌리를 씹다 뱉어 내는 시궁쥐 한 마리 발자국도 담아 주세요 멈추어 선 행인이 구두끈을 매는 친절한 시간을 적어 주세요 환기구로 들어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깊고 어둠의 찌꺼기들은 아직 쓸 만해요 정오를 굴러가는 쉬땅나무 잎 내부에 물의 근육을 뿌려 주세요 검은 머리카락이 날리는 날이면 허물어진 내 몸을 기억해 주세요 --- 「맨홀」 중에서 어긋난 선을 오탈자를 원해요 많을수록 좋아요 흔적은 그럴듯해요 언제나 모아지는 용량 어느 곳에서나 걷어낸 한 더미 삐딱하게 그어진 것, 생채기가 난 마음,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생활도 깔끔하게 지워 줄게요 누군가 그어댄 선 틀린 글자 찌그러진 면 어깃장 난 마음 잘못 나간 흔적을 지우는 몫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쉽게 지워 버리는 나를 잊을 때도 있어요 물컹한 조각을 주워 들고서 딱딱한 면을 돌고 돌아 투명한 흐름을 다시 또 흘려보내는 나로 인해 작아지는 지우개를 다시 바라보죠 --- 「지우개」 중에서 닭똥 냄새는 비비정 너머 달려오고 베란다로 들이치는 바람 소리는 차다 아버지는 터미널 국밥집에서 배추 뿌리와 곤달걀을 놓고 막걸리 마신다 나는 동생과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 나눴다 술만 아니었어도, 아니 그놈만 아니었어도 9층 건물은 남아 있었을 건데 몇 가닥 건지다 만 라면발처럼 터미널 바닥에 드러누운 아버지 데리러 동생은 나가고 베란다 건조대 위로 바람 소리가 내려앉았다 나는 뒤집어진 양말을 개고 동생 등에 업혀 온 아버지는 술병 내놓으라 하고 끈적한 기운은 바람 따라 엎치락뒤치락 금암동으로 가고 싶다고 아버지는 소리 지르고 한진고속 너머 이만이가 개 그슬리던 곳, 진밭다리 밑으로 개울이 흐르는, 겉절이 잘해 주던 쌀집 형수가 있는 온전하게 젊은 그를 만날 수 있는 금암동에서 후줄근한 어깨를 올리며 들어온 삼례 바람은 오늘따라 차게 후정리를 끌어안는다 --- 「후정리」 중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 밀려오는 자장가는 단순한 감상법이 있다 잇몸을 보이며 꽃을 피우는 수국과 바다의 시간 2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초록이었다가 자장가 한 템포 듣고 분홍으로 흔들리다가 하늘색을 흉내 낸다 반나절 해가 드는 길가에서 우도가 멀리 보이고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종달리에서 만개한 수국, 이런 날은 바다가 전하는 여름 향기를 머금는다 어쩌자고 나는 여기까지 왔나 바다의 속살이 보이는 도로 앞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떠올린다 자장가를 다시 채워 놓는 수국, 저 하염없는 비릿함이여 --- 「종달리」 중에서 꼭짓점 근처를 서성이는 구름 한 점을 잡아 보자 목장의 산봉우리를 타고 내려오는 어린 하이디와 목동 피터를 만나고 예각으로 근엄하게 서 있는 곳에서 남벽과 북벽을 오르는 사람들 모습을 담아 보자 구글 검색을 하며 나는 무한한 마터호른의 봉우리를 상상하기도 했지 홀로 서 있는 빙벽을 바라보며 만년설의 묻히지 않는 소원을 말하기도 했지 때론 가장 단순한 그림자 위에 보고픈 사람을 앉혀 두기도 했지 4478, 별이 쏟아지겠지 방한화를 타고 부딪히는 무수한 결정의 이름을 불러볼 거야 모두가 마터호른을 향하고 있는 간절함이 보이겠지 흰 것의 하얀 목록들로 채워진 색을 볼 거야 마터호른에서는 절벽 사이로 흐르는 알프스의 큰물이 유괴되고 나는 바람의 능선을 잡고 각도를 재어볼 거야 궤도 밖으로 이탈을 꿈꾸는 우리의 시절은 파란 잠수함을 타기도 하지 죽어 가는 인도고무나무의 밤, 천진하게 떨어지다 사라지는 흰 눈의 행성을 기억하고 싶어, 마터호른에 가면 --- 「마터호른에 가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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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은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헌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생의 비의와 질곡의 현실을 응시하는 시편들은 구체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상상력과 어우러지며 간절한 서정과 온기로 발화하고 있다.
“어둠의 찌꺼기들은 아직 쓸 만해요”(맨홀)라는 구절이나 ‘병원’(「병원 레시피」), ‘블랙홀’(「이석증」)이거나 혹은 ‘창 없는 방’으로 변주되는 언어에서 보여지듯 김헌수 시인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은 천국은 아니다. 하지만 “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가리/몇 번의 허물을 벗은 그대와 나의 항로를 밤새도록 나누리”(모나크나비)라거나 “걱정 없는 삶을 산다는 게/한 끼의 식사를 나눈다는 게/메뉴처럼 반가웠지”(굿숫집에서)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연대가 ‘울음을 키우는 나무’를 토닥이고 있음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렇듯 김헌수 시인은 어둠과 빛의 변주 속에서 영혼의 관절통을 앓고 있는 서정성으로 밀도 깊은 시세계를 구축한다. 대파와 콩나물 북어 대가리를 쑤셔 넣고 묵직하게 들려지는 가난한 무게 한번 쓰고 다시 또 돌려쓰는 이 무게(「에코백」 전문) 더없이 가벼운 에코백과 더없이 무거운 삶의 무게를 병치한 시 「에코백」은 간결하면서도 울림 깊은 수작이다. 거듭 순환되는 고통과 절망을 소환하는 이유는 그 무게를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벗어나기 위해 기록해야만 하는 것이다. 복효근 시인은 해설에서 시 「마터호른에 가면」을 인용하며 “상처와 고통과 질곡을 벗어나 이르고자 하는 시인의 꿈이 가장 상징적으로 그려진 시”라고 한다. “꼭짓점 근처를 서성이는 구름 한 점”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지고지순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동화 속 하이디처럼 순수한 의지, 때 묻지 않은 영혼이거나. 그런가 하면 시인은 마터호른 남벽과 북벽을 오르내리는 강철 같은 의지를 꿈꾸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은 바다의 속살이 보이는 도로 앞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떠올리는 시간이며 궤도 밖으로 이탈을 꿈꾸는 파란 잠수함을 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통의 그림자를 지워가는 생의 의지가 피어나기도 하는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은 시를 쓰고 또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시인의 말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며 걸었다. 여전히 곁에 있는 감정 다정한 시선 흉터가 많은 삶의 흔적과 부딪히며 넓어지는 내 안의 지평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당신과 잔향殘香이 오래도록 맴도는 빗소리를 듣고 싶다. 2021년 가을 김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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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나뭇결 베고 말오줌때나무의 붉은 열매를 생각했다는 김헌수의 시. 박주가리가 피어 있는 숲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문득 떠올렸겠다. 살아갈수록 이별이 더 많이 적히는 일상의 속내를 그녀는 언제 꺼내봤을까. 눈썹이 자주 젖었을 비자나무, 새박덩굴, 돌배나무, 찔레덤불, 조릿대 잎새, 무화과그늘 등의 식물성에 깃든 언어의 상상력이 살뜰하다. 봉실산 수풀에 맘 놓고 쏟아놨을 다섯 되 주름처럼 잦바듬하다가 궤도 이탈을 꿈꾸는 파란 잠수함이라니.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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