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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4부 ‘그’ 언덕 문득 13 개마고원 14 개마고원의 꿈 18 보라색 찔레꽃 19 개마고원으로 날아가는 흰 뼈들 20 쿠쿠 뻐꾸기 까악까악 까마귀 뽀로롱 방울새 구구 비둘기 따륵따륵 딱따구리 22 당나귀가 경사지에서 23 ‘그’ 언덕 아래 24 언덕 위에서 굴러 내리는 말들 26 고요 28 적막한 세계의 변방에 29 가을 햇살, 먼지들 사이로 30 갈라 터진 열망의 대지 위에 내리는 비 32 구르는 낙엽 하나 34 겨울 햇살 35 ‘그’ 나무 36 내 새끼 랭보 38 블러드문 40 구름이 쑥 내려왔다 41 말들이 온다 42 어느 날 만났던 시 44 별을 가진 사람들 46 빛의 얼굴 48 세한도 49 제3부 싸우는 눈물, 들 잘 싸우는 눈물 53 바빌론을 떠나며 54 눈물 위에 촛불을 켰다 55 이리 떼가 물어뜯은 맑은 눈 56 박해당한 자의 시간 58 가을비 바람 속 60 숲, 길 62 쓸쓸함의 나비들 64 눈물 한 방울 66 나는 눈물 한 방울로 67 눈물이 걸어가다가 뒤돌아서서 68 사막을 걷는다 69 네 눈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70 바스락대는 눈물 72 다시 ‘다시 시작하는 나비들’ 74 랭보를 읽는다 76 아카시아 냄새 78 빛의 벌레들 80 해 뜰 무렵에 쇄빙선이 도착했다 82 후투티, 안녕, 하고 인사하다 88 살에 완벽하게 상감象嵌된 칼 90 티티새가 돌아왔다 92 해가海歌, 2021 94 쓸쓸함이 시래기라면 좋겠다 96 제2부 썩은 말들 나는 어린 왕들을 따라갔다 99 썩은 말들 100 안팎으로 부는 바람 102 통곡은 포효가 될 것이다 104 썩은 말들 108 대홍수를 기다리며 110 똥파리들의 착각 112 기도 113 그의 피가 하는 말 114 둥근 꽃들 116 나는 나무들 뒤에 있다 118 버드나무 천녀天女 유화柳花의 물길 120 안개가 내린 신탁 122 살아 내라! 123 진실은 가물가물 연약한 싹을 언 땅 위로 밀어 올린다 124 제1부 죽어 간 어린 왕들 큰 귀 속에 사는 아름다운 것들 127 꽃, 바다 128 죽은 어린 왕들 130 눈물이 창공과 함께 갔다 132 죽은 아이들 134 기억의 눈물방울 하나 136 어린 왕들에게 갔다 138 날개 139 마을은 아직 어둡지만 140 기억의 칩을 심어 둔 손 142 봄, 천사들 144 빛의 베일이 너울거렸다 145 물 밑의 길 146 물방울 한 개에 대하여 148 어린 왕들의 흰 뼈 150 오후, 긴 그림자, 문득 153 오월 햇살 아래 핏방울 154 진공 공간 156 하늘은 이미 답을 보냈다 157 챙챙 울린다, 햇빛! 158 푸른 나뭇잎을 기억하는 가시 돋친 눈물 160 어린 왕의 뒷모습 162 진실이 스스로 힘이 되는 시간 163 햇빛이 된 아이 164 해설 박성현 ‘시인’, 창조하는 자로서의 고귀한 이름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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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
원래 이 고원의 이름은 ‘고마고원’이다. 그것은 이 땅의 어미인 나, 고마였다가 사람이 된 나 고마부인(웅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고마높은평원이라고 불리다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나의 후손들이 나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면서 이 이름의 기원도 잊힌 것이다. 이곳이 워낙 높아서 하늘 덮개 같으므로 사람들은 ‘고’와 발음이 비슷한 ‘개蓋’를 한자에서 가져오고 거기에 마馬 자를 붙여 부르게 되었다. 넓고 평평한 고원의 등이 하느님이 타시는 말의 등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고마’는 나중에 ‘엄마’라는 말로 변했다. 신단수 아래에서 환을 만나 깊은 동굴로 들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삼칠일을 버텼다. 함께 동굴에 들어갔던 호랑이는 열흘 만에 몸을 뒤틀면서 동굴을 뛰쳐나갔다. 나는 꾹꾹 참았다. 그 일은 어렵기만 하지는 않았다. 열이틀째까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자, 내 안에 있는 어떤 큰 창고의 문이 열렸다. 그 창고는 점점 커졌고, 그곳으로부터 강렬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힘 위에 부드럽게 실리는 방법을 익혔다. 내 몸이 점차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이 된 내 몸은 매끈하고 아름다웠다. 환은 잠깐 사람으로 변해서 나를 안아 주었다. 환은 곧 떠났다. 신들은 신들의 집에 살아야 하므로. 그리고 내 아들 단군이 태어났다. 빛나는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이마에 아비인 환의 빛이 늘 머물러 있었다. 누가 보아도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뛰어난 아이였다. 단군은 잘 자랐다. 아이가 열다섯 살 난 해 어느 이른 봄날 새벽, 나는 단군을 데리고 내가 환을 만난 신단수가 서 있는 백두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야기가 시작된 곳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신의 아들에게 그의 본래의 힘과 위엄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새벽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산정으로부터 뻗어 내려간 산줄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단군의 눈에 환희가 차올랐다. 아이는 신단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아래 서서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고 마치 아이의 부름에 답하기라도 하듯이 환의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은 산줄기의 등성이를 찬란하게 비추었다. 단군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차올랐다. 그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조선朝鮮이군요. 신선한 아침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 차고 맑게 울리던 공기를, 그 공기를 전하던 말의 힘을 나는 잊지 못했다. 단군은 나라를 세우고 “신선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단군은 조선을 잘 다스렸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아사달에 들어가 그곳의 신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난 뒤, 나는 죽을 날이 다가온 것을 알게 되었다. 환은 나에게 긴 생명을 주었지만, 단군처럼 불멸의 생은 아니었다. 나는 죽기 전에 다시 백두산의 신단수로 올라갔다. 환을 만난 그곳에서 환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내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자, 바람줄기들이 내려와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금 개마고원이 있는 자리에 나를 데려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내 몸은 그곳에서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등성이에 등성이가 쌓이고, 계곡에 계곡이 덧붙여졌다.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용암이 터져 나와 기묘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나간 뒤, 그곳을 지나가던 어느 지혜로운 여행자 한 사람이 높은 고원으로 변한 나의 몸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고마 엄마의 몸이군.” 그리고 그 이래로 사람들은 이 높은 평원을 ‘고마고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평원은 늘 고요하다. 나는 내 아이의 후손들의 아픔과 기쁨과 열망과 투쟁과 갈등과 화해를 지켜보았다. 나는 그 일에 끼어들지 못한다. 다만 고요히 지켜볼 뿐이다. 아침은 늘 신선하다. 수천 년 전부터 부는 바람은 늘 새로 부는 바람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그 신선한 아침의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일구어 갈 것을 믿는다. 내 품 안에서 늘 지고 새로 피어나는 신비한 노란색 장미처럼. 고요한 꽃잎으로 우주 전체의 말을 할 줄 아는 그 놀라운 신의 혀처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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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시인의 시집 『‘그’ 언덕, 개마고원의 꿈』이 시작시인선 0403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며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 외 6권, 문학평론집 『비어 있는 중심』 외 3권, 번역서 에밀 시오랑 원저 『태어났음의 불편함』 외 70여 권을 출간하였다. 소월시문학상 대상, 백상번역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집 『‘그’ 언덕, 개마고원의 꿈』에서 시인은 분절된 서사들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키며 사회의 오염되고 표류하는 말들을 재배치함으로써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시 쓰기를 보여 준다. 아울러 ‘썩은 언어’, 혹은 ‘진실을 전하지 않은 언어’를 가려내고 그 출발점에 기생하는 기만과 위악을 골라내어 ‘진리’의 성채로서의 ‘시詩’를 우리에게 각인시켜 준다.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김정란 시인이 만들어 낸 이 모든 서사는, ‘고마’(곰의 옛 표기)를 숭상했던 반도 사람들의 심장과 목구멍 깊숙이 감춰진 고백에서 시작하”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돌출’과 ‘반목’과 ‘단절’과 ‘이어 붙임’을 통해 그 ‘서사’는 우리의 내면에 적확한 지도와 궤적을 그려 내”게끔 하고, “현실과 뒤섞여 신화적 모티프로서의 집단적 환상을 이끌어 내”어, “그것이 다시 현실에 안착하는 방향으로써 수많은 진리-효과를 산출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요컨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유한자인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사유하고 성찰함으로써 ‘절대적 현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김정란 시에서 개별 존재자는 ‘주체’로서, 혹은 생명이 깃들어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절대’로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존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죽음을 넘어선 ‘불사不死’로서의 ‘현존’을 선언한다. 시인의 말 언어가 썩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어는 진실을 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언필칭 언론이라고 불리는 언어의 폭군들은 언어의 칼을 멋대로 휘두른다. 그들이 섬기는 부패한 상전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여 계속 그들의 수하로서 안전한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그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자들을 언어라는 무기로 잔인하게 괴롭힌다. 독재자들이 총칼로 했던 행위를 언어를 가지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시는 무엇일까? 소위 언어(言)의 사원(寺)이라는 詩는 이 타락한 언어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시집은 통곡과 절망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거짓의 언어가 왕 노릇을 하고, 지식인의 완장을 찬 자들까지 거짓의 왕들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하는 시대에,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오월의 피와 세월호의 물. 그것들은 아직도 현재시제의 비극이다. 모욕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시에 대한 미련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타락한 언어의 시대에 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을 구하는 인간적 노력이 이룩해 낸 언어의 높은 언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위로 오르는 기슭,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언어를 통해 이룩한 높이의 지워 버릴 수 없는 상징. 그러므로 시는 “그 언덕”이 아니라, “‘그’ 언덕”,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태로서의 언덕이다. ‘개마고원’은 현실의 어느 장소가 아니라, 높이 들어 올려진, 우리가 지금은 갈 수 없는,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곳과 저곳의 시적인 상징적 기슭이다. 나의 시는 그 기슭을 향해 간다. 내 생애 안에 ‘그’ 언덕에 이를 수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하늘이 이 생 안에서 내게 허락한 한계 안에서 애쓰고 또 애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