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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여인 _007
마녀 로이스 _093 늙은 보모 이야기 _235 해설 | 연민보다는 공감을 _272 |
Elizabeth Gask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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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부디 없어야겠지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이 있으면 이 아비의 집이 네게 항상 열려 있다는 걸 기억해라.” --- p.29 「회색 여인」 중에서
그래도 남편만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결국엔 확신이 아닌 의문의 형태로 생각이 바뀌곤 했어. 그의 사랑은 오락가락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계산된 방식일 때가 많았어. 자신이 미리 결정해서 행동했고, 내 바람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지. --- p.37 「회색 여인」 중에서 “내 아내가 내 일에 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날이 아내의 제삿날이 될 거야. 빅토린 기억나지? 부디 좋아하는 건 다 하고 살되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도 내 일에 관해 멋대로 지껄이다가 결국 먼 곳으로 갔잖아. 파리보다 더 먼 곳으로 말이야.” --- pp.49∼50 「회색 여인」 중에서 “여자들은 내가 좀 알지. 원래 그렇게 조용한 여자들이 악마라니까. 네가 집을 비우는 새 그 여자가 우리를 찢어 죽일 비밀을 알아내서 먼저 도망칠지도 몰라.” --- p.50 「회색 여인」 중에서 거기 하녀 팔에 안긴 목사님 딸! 네 아빤 날 구해줄 생각도 하지 않았어. 네가 커서 마녀가 되면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을 거야. --- p.113 「마녀 로이스」 중에서 “머내시,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넌 이제 가장이니 결혼해야 하지만, 난 결혼하고 싶지 않아. 결혼하지 않을 거야.” --- p.143 「마녀 로이스」 중에서 “사실 내가 계시를 받았어. 환영으로 그걸 봤기 때문에 확신하는 거야. 넌 다른 남자가 아니라 분명 내 배우자였어. 운명이 정해준 일을 거스를 순 없잖아. 몇 달 전에, 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 영혼에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하던 성서를 읽고 있을 때였어. 갑자기 책장에서 인쇄된 글자가 사라지더니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된 미지의 언어가 나타나 그 의미를 내 영혼에 속삭여줬어. ‘로이스와 결혼해! 로이스와 결혼해!’ 하는 거였지.” --- p.144 「마녀 로이스」 중에서 “머내시, 세상 어디에도 너와 결혼할 만큼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거나 사랑 없이 너와 결혼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없어. 그리고 난 이제 제대로 너한테 말해야겠어. 이 일을 당장 끝내는 게 네게도 좋을 테니까.” --- p.146 「마녀 로이스」 중에서 옛 주인은 하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집안의 체면을 손상한 죄로 딸과 아이를 집 밖으로 쫓아내겠다면서 혹시라도 그들에게 음식을 주거나 쉴 곳을 제공하면 그 누구도 온전히 하늘나라에 갈 수 없을 거라며 무시무시한 맹세와 저주를 퍼부었지요. --- p.265 「늙은 보모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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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남편과 맥락 없는 폭력에 맞서는 여성들의 불안을
촘촘하고 폭발력 있게 그린 고딕 스릴러 여행을 즐기며 유럽의 수많은 도시를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작품 속 인물들도 끊임없이 낯선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1692년 ‘세일럼 마녀재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뼈아프게 추적하는 중편 〈마녀 로이스〉의 ‘로이스’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고향인 영국을 떠나 미국의 세일럼으로 이주한다.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이 살고 있던 세일럼은, 그러나 외삼촌의 죽음 이후 점점 더 로이스를 유폐한다. 이방인과 여성을 배척하는 근거 없는 시각이 마법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사회적 광증에 올라타 급기야 로이스를 마녀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로이스의 이주는 자신의 의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단편 〈늙은 보모 이야기〉의 ‘로저먼드 아가씨’ 역시 부모의 죽음 이후 늙은 보모와 함께 으스스한 친척 집에 맡겨지며 한 자매의 음울한 비밀 속으로 얽혀 들어간다. 한 남자를 두고 벌어진 자매의 질투와 암투는 죄 없는 아이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로저먼드 아가씨 또한 아이의 원혼에 시달린다. 단지 계속 살아가기 위해 이동하거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항해 떠나는 여성들에게는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위협과 위험에 놓인다. “갈 테면 가라지. 어딜 가든 내가 따라갈 거니까.”(〈회색 여인〉, 51쪽) 살인마 남편을 피해 하녀인 ‘아망테’와 함께 필사의 탈주를 하는 〈회색 여인〉 속 ‘아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눈여겨볼 점은 아나를 보호하는 아망테의 존재처럼 세 작품 모두 여성의 불가결한 이동을 돕는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아망테는 남장을 한 채 아나의 탈출을 주도하는데, 이것은 얼핏 ‘대리 남편’이나 ‘유사 남편’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즉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는 여정 속에서도 미묘하고 섬세하게 감정을 교환하는 두 여성의 모습은, 폭력적인 ‘진짜 남편’의 모습에 포개져 이상적인 결혼상에 대한 제시나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덧붙여 시종 긴박감 넘치는 장면전환과 속도감 넘치는 묘사로 소설을 시각화하는 〈회색 여인〉은, 한 편의 인상적인 ‘버디 무비’나 ‘로드 무비’를 연상케 한다. “우리 프랑크푸르트로 가요. 사람이 많이 사는 큰 마을에 가서 한동안 우리의 본모습을 잊고 살아봐요. 마님이 그랬잖아요. 프랑크푸르트는 엄청 큰 도시라고. 우린 계속 남편과 아내로 지내는 거예요. 작은 집을 하나 사서 마님은 집안일을 하며 안에 있고, 전 더 씩씩하고 용감하니 우리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맞춤 양복점에 일자리를 찾아볼게요.”(〈회색 여인〉, 83쪽) 〈마녀 로이스〉에서는 엉뚱하게 마녀를 양산해내는 집단적인 광기에 힘을 보태는 여성들도 등장한다.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로이스의 보호자가 되어야 마땅한 외숙모는 끝내 로이스를 내친다. 그러나 또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점은 외숙모가 로이스를 마녀라 지목하지 않으면 자신의 딸들과 아들이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선택에 놓이지 않기 때문에 남성 편향의 사회구조에서 무력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입장을 에둘러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로 마녀라 몰린 하녀 ‘네이티’의 평화로운 죽음을 도움으로써 로이스 역시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늙은 보모 이야기〉에서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의 망령에 집착하는 로저먼드 아가씨를 지켜내는 것은 여성인 보모의 몫이다. 불합리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틀림없는 탈출구이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종의 연대감”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지금까지 주로 사회문제와 대중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포착한 사회소설이나 산업소설로 더 알려졌지만, 그의 작가적 생애에서 공포소설의 역할이나 비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개스켈은 오랜 시간 ‘미시즈(Mrs.) 개스켈’이라 불렸는데, 이는 작가로서의 그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가정에서의 그의 역할만 기대하고 규정하는 차별적인 뉘앙스의 호칭이었다. 이러한 개스켈에게 공포나 불안, 유령을 다룬 소설을 쓰는 일은 불합리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틀림없는 탈출구이자 돌보지 않고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또 다른 가정’이 되기도 했다. 개스켈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까닭 없이 부정당하거나 심지어 억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소설이 쓰인 지 20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참함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소설가 천희란 추천사). 나아가 이것이 오랜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