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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루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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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돌집에는 고로쇠 나무가 있다
돌집에는 고로쇠나무가 있다|어찌 알았겠나|쓸쓸한 핑계|꿩엿|5월은|생각이 나더란 말입니다|벗, 그대는 안녕한가|술이다|그 친구가 대세네|인연도 긴 세월 앞에 부질없어|어느 노인의 예감|꽃구경|막차는 오는데|소곰바치야 소곰바치야|새벽에 핀 달맞이꽃|사라진다는 것은

2부 공짜는 없다
공짜는 없다|자크|깜보|틈|외로움에는 트라우마가 있다|봄을 기다리는|이누와 비타|누가 봐도 상전이다|담쟁이|잡풀|덫|고무나무|후박나무를 베다|부추꽃|빈손

3부 멍
멍|시, 라는 고것이|거미|금빛 물고기 서쪽 하늘로 사라지다|감자|대파|미수동|아무르 강변을 걷다가 깨곤 한다|거시기한 날 1|거시기한 날 2|거로, 벽화를 보며|해몽해주세요|고향, 제주라고 못 하겠습니다|언제나 재앙은 경고네|들어는 봐야지|밥|항문

4부 동백꽃 배지를 달다
동백꽃 배지를 달다|제주 고사리는 슬프게 피어라|제주에는 마을마다 사연|백주에 벼락을 봤네|대장 각시|성산포 정씨 아줌마|완장|울지 않는 매미|평화의 섬,|용서하면 안 되나요|제주 섬, 전체가 동백입니다

저자 소개 1

1954년 제주 출생. 방송대 졸업. 201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 현재 한라산문학동인. 메밀촌장, 독채민박 폭낭아래돌집 운영. 현 한라산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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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02g | 130*205*20mm
ISBN13
9791168670280

책 속으로

인연도 긴 세월 앞에 부질없어

빼빼로 데이라는 열하루, 팔십 난 옥금이 누님이
파크골프 치러 회천 구장에 왔네
초이튿날 동갑 영감 먼 길 보내고 벌써 맘
추슬러 평소처럼 곱게 차려입고 공 치러 왔네
있는 듯 없는 무심한 빈자리
오래 산 날들에 묻혀 사소한 일은 아니었지만
공 치러 왔네

폐암으로 먼 길 떠난 영감이야
교장으로 퇴직한 몸이었으니 애들 데리고
뭍으로 수학여행 떠난 것만 같고
안부를 묻는 빈말들이 더 야속한 오늘 같은 날은
일부러 부침개라도 부쳐야 할 것 같은데
한때는 영감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할 때
분홍 빛깔 떨림 같은 것도 가물가물하니
가야 하는 길, 나 두고 여행 가듯 떠난 사람
인연도 오래 산 세월 앞에 부질없어라

운동 삼아 매일 치던 파크골프는 두 달 넘겨 왔으니
공이란 것이 아무리 둥글다 해도 공, 그것이
간밤에 돌아눕던 쪽으로만 굴러 생각처럼 안 되네
금이 누님이
나갈 대회는 닷새 후로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뭍으로 수학여행 떠난 사람은
빈 왕릉 보다가 불국사 지나 석굴암으로 합장하며
오르는 중인 듯,
누님 이마에는 땀만 송송하네

--------------------------------------------------

후박나무를 베다

삼사십 평 마당 한가운데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있다
원시림처럼 가지는 하늘을 덮어 습한 그늘은
키 작은 식물을 키우지 못했다
온실에서 노란 하귤 달고 마당으로 이사 온 나무는
다 떨어져 열매는 보여주지 않고
삼백 원씩 사다 깐 잔디는 흉내만 낼 뿐
어디선가 날려 온 잡풀만 자랐다

빌려온 기계톱이 윙윙거리고
수십 년 마당을 지켜온 후박나무 정령에 대한 예우인가
아내는 붉은팥과 거친 소금을 뿌렸다
망설임의 끝,
아마존 밀림의 거목을 베듯이 후박나무 벨 때
북국의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한 이유로
누군가는 영원할 것 같던 철의 밥통에서 낙마하고
후박나무의 잘린 밑동은 볕 쬐는 의자가 되었다

태양은 중천에 머물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갈색 선글라스 콧등 걸친 아내
빨랫줄에 옷들이 펄럭이는 걸 보다가
노란 열매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당을 걸었다
원 그리며 천천히 걸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멍하니 먼 산을 보는
늙은 시인의 마음이 닿은 곳


제주도내 최장수 문학동인인 한라산문학회를 이끌고 있는 부정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표제 ‘멍’은 먼 산을 바라보는 늙은 시인의 멍한 눈길일 수도, 세상사에 부대끼며 멍든 마음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멍’의 시간에서도 시심詩心을 잃지 않고, 첫 시집 상재 후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엮었다.
이번 시집은 총 4부에 걸쳐 59편의 시를 담았다.
1부 〈돌집에는 고로쇠나무가 있다〉는 황혼기의 내면을 그렸다. 저물어가는 삶의 쓸쓸함 속에서도 결연한 의지와 원숙미가 담겨 있다. 2부 〈공짜는 없다〉에서는 반려견 자크, 깜보, 비타와 함께하는 일상의 풍경을 담았다. 3부 〈멍〉은 미수동에서부터 아무르 강변까지, 시인의 삶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가 때론 애잔하게, 때론 날카롭게 그려진다. 4부 〈동백꽃 배지를 달다〉는 제주 시인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제주4?3을 말한다.
“나란 놈은 빈껍데기로,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 평범하게 잊힐 사람인 것은 얼핏 봐도 사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 늙어갈 때쯤이면 오라는 곳은 줄고 갈 곳 또한 망설여져 멍하니 먼 산이나 보고 있는 뒷방 늙은이 같은 자신을 볼 때가 있다. 받아들이는 심정으로 멍을 쓰게 됐다.”는 시인은 쓸쓸하지만 단단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무수한 결을 담은 시로 남은 생을 문학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저자의 말

그냥 시란 것하고 옆에 있던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아무나와 닮은 평범한 일상에서 몇몇과?
시라는 장르의 한 모퉁이에서 몇 년을 보내다 보니
흔적처럼 흘린 구리 쪼가리 같은 것들을 황송하게도
두 번째 시집으로 엮게 되어 부끄러울 뿐이다
혹 인연이 있어 누군가의 손에 들게 된다면?
누군가의 해우소쯤에서라도 잠시 눈이 가는 정도이면
하는 바람이다??

추천평

왜 하필 ‘멍’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한다. 15년 넘게 시를 썼으니 멍든 마음도 시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었겠다. 처음 만날 때 흰머리 시인이었는데 긴 시간 지나도 변함없이 흰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집 속에서는 나이를 먹고 있었다. 시인의 ‘안녕’이란 말이 이리 찡할까. 고향의 안부를 묻는 안녕, 먼저 간 가족들과 안녕, 가까운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들을 가늠하며 안녕을 떠올리는 시인이다. 쓰임이 다해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온몸을 불태워 누군가의 추위를 녹여주는 폐목처럼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시인은 따뜻해야 한다. 한결같이 사람들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며 시 하나 풀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시인을 만나면 술 한잔 사야겠다. - 김정희 (시인, 아동문학가)
시인의 선연한 멍 자국을 본다. ‘글은 그 사람의 삶, 詩는 그 사람의 영혼’이라는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며 증명하는 시인의 詩 앞에서 숙연해진다. 파란만장한 삶 살아내고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노란 콘크리트 아지트에서 흘러간 뽕짝 들으며 꿩엿 달이 듯 詩를 통해 허물을 벗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새 삶을 향해 타전 중이다. 고로쇠나무, 하귤나무, 왕벚나무, 고무나무, 후박나무 다 잘라내고도 까치집 때문에 자르지 못한 야자나무 한 그루는 애정의 흔적이며, 바로 그 잔정이 詩의 모태다. 반려견 자크와 깜보를 잃고도 다시 비타와 인연 맺은 시인은 오늘도 너털웃음으로 꽃구경 나간다. - 양순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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