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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어서
강현덕
시인동네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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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책소개

목차

제1부

거울 속 거울·13/강을 거슬러 가는 배·14/마음 하나 얻기 위해 봄을 다 보냈다·15/내가 그리워하는 사람·16/고요한 나뭇가지 위에 뜬 달·18/기린의 시간·19/달무리·20/우울한 숨바꼭질·21/멍하니 바라보네·22/반 컵의 물·24/심금(心琴)·25/소호 동동다리·26/분홍의 내력·28/절반이 지났네·29/정방폭포·30/사랑·32


제2부

우화·35/서촌·36/헛·37/경외·38/운문사·39/금관가야·40/시간이 묻혀 있는 해변·42/북향 묘지·43/산골 버드나무·44/영미의 어머니·46/석림동·47/임진강의 달·48/새길·50/오후 세 시·51/안면도·52/유달산 유달산·54/첫사랑·56


제3부

달의 뒷면·59/집배원 오기수 씨·60/섬사람·62/그해 여름·63/눈물이 눈물을·64/소프라노·66/늙은 기타리스트·67/새들도 77번 국도를 따라 난다·68/낙타·70/밤에 사는 참외·71/어느 돌 벅수를 위한 연가·72/불면·74/파계사 북소리·75/긴 의자에 앉아 있다·76/창경궁 선인문 앞 회화나무·77/지금·78/오빠 걱정·79/파주·80


제4부

깃들이다·83/사막의 사자·84/독가촌·85/내 시계는 어디에도 쓰이지 못하고·86/백 원으로 희망을 샀어요·88/편경·89/돌아온 탕자처럼·90/굿바이·91/밤눈과 고라니·92/불 꺼진 창밖의 고양이·93/춤추는 여자와 색소폰 부는 남자·94/폭우·96/한산도·97/꽃지 해변·98/배웅·99/이팝나무·100

해설 진순애(문학평론가)·101

저자 소개 1

1994년 [중앙신인문학상],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 『안개는 그 상점 안에서 흘러나왔다』 『첫눈 가루분 1호』 『먼저라는 말』 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역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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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4g | 125*204*20mm
ISBN13
9791158964238

책 속으로

폐쇄된 채석장에 내가 잘려 있네
울음이 함께 남아 고요에 물려 있네
수직의 암벽 아래에 그런 내가 모여 있네

안개에 떠넘겼던 모든 부끄럼과
순정이라 믿었으나 무용했던 노래와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언젠가라는 말들이

일시에 붙들려 와 이 감옥에 갇혔네
울음은 마땅한 것 슬퍼서가 아니네
어깨가 들먹거릴 때 어루만질 돌 같은 것

채석장 하늘에는 수십 개 달이 떴네
달빛에 눌려 있는 영혼의 껍데기들
적당한 간격에 맞춰 일시에 나를 보네
--- 「거울 속 거울」 중에서

조바심에 몸이 달아 봄을 다 보냈다
그대가 건넨 씨앗 뒤란에 묻어두고

꽉 다문 작은 입술아
좀체 열리지 않는 마음아
--- 「마음 하나 얻기 위해 봄을 다 보냈다」 중에서

언제부터 마음아, 숲을 가졌더냐
소나무 오동나무에 명주실 걸어놓고
바람의 긴 목덜미도 부풀려 두었더냐

깊은 강물처럼 흐르기로 했더냐
네게서 전해오는 눈물을 좇아서
마을로 저 착한 마을로 나도 자꾸만 간다

거문고자리 별들도 술대를 쥐려나 보다
너도 네 음역을 흠뻑 넘나들려무나
마음아,
울어보려무나
온전히 울어보자꾸나
--- 「심금(心琴)」 중에서

고대의 바람 같은 게 잠깐 지났는데
복숭아가 나무에서 후두둑 떨어진다
먼 나라 어떤 섬에는
복숭아 비도 내린다지

아주 작은 코끼리도 그곳에 산다는데
홍수 땐 복숭아를 배처럼 탄다는데
그 배로 큰 바다 건너
착한 별로 간다던데

어찔한 복숭아 향 비처럼 쏟아진다
먼 나라 먼 섬이 내 적막에 와 닿는지
점점이 코끼리 발자국
내 별도 뜨려나 보다
--- 「우화」 중에서

이 금관

드높다

하늘의 것이어서

태양의 머리 위에 얹혔던 거룩한 땅

낙동강 펄떡이는 심장이

또 증언을 하고 있다

이천 년 전 노래가 이 밤에도 들린다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의 계시도

그 끈이 너무나 길어

아득하다

이 금관
--- 「금관가야」 중에서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

지금은 만돌린을 타던 집시가 잠들었군

꿈이라면 집시의 것이 가장 순결하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만 가졌으니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기 전 재빨리 채취해야지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의해

발톱도 거친 이빨도 진즉에 다 뭉개졌으니
--- 「사막의 사자」 중에서

아무래도 이 나무는 저 위에서 온 듯해
글라라 자매님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꽃잎이 밥솥 옆으로 밥처럼 내려온다고
하느님의 정원에서 뜸을 들였다가
마음 배도 부르라며 때맞춰 내려온다고

아홉 살 은지도 서 있는 무료급식소 긴 줄 옆

--- 「이팝나무」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강현덕의 시는 시조의 정형미에 준하듯 절제된 비유가 빛난다. 주로 사물을 의인화한 비유로 상징적 담론 및 은유의 언어학으로 점철된 시적 행보가 그러하다. 사물의 의인화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근원적인 세계인식을 근간으로 하지만 거기에는 자연 숭상 의식 또한 내재되어 있다. 자연 숭상 의식은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처럼 원시종교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나 그러면서도 그것은 경외의 자연 앞에 겸손한 인간의 자태를 은유한다.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인지했던 원시인들의 금기문화처럼 첨단문명의 현대에서도 자연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임을 강현덕 시조의 상징적 은유가 담지하고 있다.

강현덕의 시는 자연예찬뿐만 아니라 세속을 의인화하여 초월에 이르게 하는 절제의 특장 또한 지닌다. 세속의 현실을 형이상학의 비유로 감쌈으로써 자연계와 합일된 현실의 비애가 절제된 비애미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이자 형이하학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초월의 지평과 현실의 지평을 왕래하면서 세속의 시간을 견지한다. 때문에 현대에 와서 상징계로 자리한 자연은 세속의 인간을 견인하는 매개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강현덕의 시는 비애의 인간 현실뿐만 아니라 고독한 인간의 실존태 또한 담보한다. 세계 내 존재로 기투된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듯이 강현덕은 현실의 비애와 고독한 실존의 이중주로 동시대성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초월의 지평이 비애의 현실과 고독한 실존태에 공히 작용하고 있어서 궁극적으로 그의 시조는 원형세계가 관통하고 있다.

새 물을 채워둔다
고라니가 핥을 물
돌확을 돌아서는 숨소리도 살핀다
깊은 밤 작은 짐승들 발소리에 안심한다

산 밑에 산다는 건
식구가 많다는 것
콩잎도 고구마순도 반 넘게 내주었다
담장은 고치지 않고 대문은 달지 않았다
― 「독가촌」 전문

독가촌은 외딴집이다. 산 밑에 사는 외딴집은 산짐승들과 친구할 수 있으므로, “산 밑에 산다는 건/식구가 많다는 것”이라는 은유의 언술이 현대인의 황폐한 마음을 원형의 세계로 유인한다. 산짐승들은 어쩌다 만나는 친구를 넘어서 가족이라는 비유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현대인의 행보를 돋우는 힘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콩을 심고 고구마를 심는 일은 산짐승들 몫까지 포함해야 하는 일이다. 허물어진 담장은 더 허물어지도록 방치할 일이며, 대문 또한 불필요하다는 경계 해제 인식이 문명계에 경종을 울린다.
독가촌에 사는 것은 밤의 소리를 듣는 일과 같다. 그것은 고라니가 물 마시는 소리를 살피는 일이며 물 마시고 돌아서는 고라니의 숨소리를 듣는 일이다. 작은 짐승들의 발소리조차 듣는 일인 것이다. 독가촌에 사는 것이 산속 짐승들의 거처에 인간이 둥지를 트는 일이라는 면에서 독가촌의 삶은 산 주인인 짐승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 산 주인들의 방해꾼이 아니라 산 주인들과 한 식구로 살기 위해서는 돌확에 새 물을 채워두고 콩도 고구마순도 넉넉히 심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탈속의 풍경이자 초월의 견지력인 독가촌의 시간이 문명의 시간에 침묵의 질타를 가하며 순수의 원형세계를 현재화한다. 자연의 빛이 문명의 이면을 반추하게 하면서 잃어버린 시공을 열어주고 있다.
― 진순애(문학평론가)


시인의 산문

나는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는 것일까.

내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을 끌어안고 밖으로만 나돌았던 나여!

이제 나는 나를 향해 걸어보기로 한다.


시인의 말

너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어서

아무리 해도 비파형 동검이나 불탄 책들을 필사해야 했던 중세의 수도사처럼은 사유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사유는 외로움의 깊이만큼 더 오롯해졌다.


2022년 6월
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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