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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수습사원 재단사 K/ 새들이 짓는 집/ 채광창/ 언니/ 발가락 깁스에 목발로 바다로 갔어요 / 우리가 고르는 정장 슈트/ 가족/ 지저귀는 새/ 못의 대화/ 트랙 멀리/ 흰죽/ 오늘 / 피노키오의 기도/ 명동 2부 드로잉 / 눈물/ 도마/ 수국정원/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 노래를 듣는 밤/ 안개/ 그녀가 울고 있다/ 생일/ 물 발자국/ 뛰노는 아이들/ 구름의 표정 / 바게트 먹기─겨울산행/ 얼음 위 식사/ 물방울/ 지구만 한 시계/ 에코백/ 종이처럼 3부 작은 별이 해변에서/ 기도/ 서책의 첫 페이지/ 햇살이라 불리는 장미를 사다/ 자가격리 / 달팽이/ 우리 집 이사 트럭/ 그녀의 날개 / 미지의 땅/ 껍질/ 쪽파/ 초콜릿/ 실론/ 선잠/ 손 4부 셀프 주유─ 감정들 / 100층 옥탑방/ 12살 마태오의 해변─감정들 / 라임나무를 심다─꿈 / 단 한 가지 망고/ 잠 속의 비/ 7시 25분 시티 지나기/ 자정/ 스윙 인 흰여울─이전 개업 / 스윙 인 흰여울─나는 당신이 됩니다/ 스윙 인 흰여울─창을 열다/ 가설정원 해설 가설정원에서의 삶, 그 너머 | 이병국 (시인·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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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벗어 말린다
생은 여기까지라던 12월 기둥 없이 떠 있는 방 너는 매일 건축을 생각했다 열어둔 서랍인 듯 햇빛 드는 집이 건축된다고 너는 말했다 야트막한 언덕 집은 강의 서랍처럼 입구에 새가 와서 앉는다 ---「채광창」중에서 언니는 망치를 안고 잠을 잘 것이다 여름정원에서 밭을 살리려고 꽃을 엎는 정원사처럼 사나운 그늘도 부수고 뜯어낼 것이다 혹, 자전거가 늪에 빠져 악어이빨이 자라난다면 혹, 들판에서 염소 뿔에 들이받힌다면 염소똥 같은 덩굴손은 동그랗게 매어주며 어떻게 할까 밤을 지샐 것이다 나는 언니와 같은 비를 맞고 같은 우산을 들고 언니와 같은 장화를 신고 나팔꽃 섶을 짓는다 흔들리는 집을 흔들리지 않을 집을 지을 것이다 ---「언니」중에서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이 노래를 한다 잘 아는 사이인 당신이 노래를 한다 내 몸에서 무슨 음악이라도 들리는지 바짝 귀를 붙이고 흠칫 뒷걸음을 친다 저 달이 두려움 없이 기쁨 없이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 노래를 듣는 밤」중에서 너는 멀리까지 흘러가 있으므로 그림자는 저녁에 도착했고 나는 너의 표정에게 다음 날 아침에 안부를 전한다 우기 속에서 우리는 우산을 접고 표정을 숨긴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유리창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의자 흘러간다 안부가 되지못한 표정이 우리의 얼굴에서 지고 있다 떨어지는 장미의 표정으로 구름에서 빠져나온 구름 같은 계절이 반복된다 나는 마지막 표정을 반복한다 커다란 우산 속에서 얼굴이 없다 ---「구름의 표정」중에서 도시는 딱딱하고 싱싱한 꽃이 피었다 망망 초원이고 게르이고 검고 작은 씨앗이고 누구의 배꼽 도시는 싱싱한 꽃을 팔았다 가설했다 도시는 향기를 가설하고 가을을 가설하고 가설한 행복을 심었다 ---「가설정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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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책을 사들고 집으로 간 사람들
대다수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은 ‘가설정원’으로서의 ‘도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주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혹자가 유목정원이라고 했”듯이 마치 ‘수습사원’처럼 소속감 없이 우연성에 휩쓸리며 스스로 취약한 처지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가설한 행복”이 아닌 “씨앗”의 가치가 발아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삶의 진실이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데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가을정원이라는 간판을 떼어 넣고/ 가축을 몰고 초원을 찾아 떠”나는 행위 자체, 그 수행성이야말로 존재를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저 외부에서 구해야 할 무엇은 아닐 것이다. 인위적인 공간 안에 서 ‘집’을 구축하여 사회적 역할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느낌으로써 안정과 위안의 정주지, 즉 장소를 마련할 수도 있다. 주체의 시원은 저 불분명한 공간에서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 타자와 주체를 마주하게 하고 이를 통해 실제를 경험하는 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은 일종의 메타적 공간으로 시인이 쓰는 시의 장소로 읽을 수 있다. 시인에게 ‘집’은 불완전한 주체의 타자성 을 감각하는 곳이면서 이를 돌파할 방안으로 구축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케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집’을 상상하며 주체로서의 자신을 찾으려는 반복적 수행이야말로 일종의 제 의적 자학과 견딤의 언어적 실천이자 시인의 원체험을 가능케 하는 시적인 삶의 승화라고도 할 수 있다. 「수습사원 재단사 K」의 원룸 창가에 놓인 식물은 수생식물이었다. 물속에서 성장하는 식물의 총칭으로서의 수생식물은 K 자신이 식물이 되는 환상성과 결합하여 협소한 존재의 기원을 톺아보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여타의 시편에 나오는 ‘바다’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존재가 돌아가야 할, 혹 은 시적 주체가 가 닿기를 바라는 시원적 장소를 갈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물’의 이미지는 존재의 원체험이 각인된 장소를 상징하면서 시적 주체에게 결여된 것을 깨닫게 하여 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시 안에서 현시되는 이유는 ‘눈물’의 카타르시스처럼 존재로 하여금 불안으로 인해 타자화되지 않고 스스로를 주체로 밀어 올릴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일 것이다. ■ 시인의 말 세상의 모든 정원사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