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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엄마에게 한숨을 선물했을까
안문
문학의전당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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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전당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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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누워서 침 뱉기 13/메르스 14/목련 15/양은도시락을 추억함 16/절벽 위의 진달래 18/새벽의 전철역 19/두엄 내던 날 20/때늦은 후회 22/빗자루 23/뒤란 풍경 24/마루 26/신발 28/숫자 1 29/분리수거함 30/등 32

제2부

우슬 35/어느 여름밤 36/저물녘 38/고구마 두지 40/엄마라는 철학 41/빨간 커피포트 42/은사시나무 44/옛집 46/엄마의 아침 47/땅비싸리 48/즐거운 벌금 50/어머니의 새참 52/당신에게 가는 날 53/동심원 54/초옥 56/이홉들이 58

제3부

흰머리 61/할미꽃 62/생일파티 64/사월의 비 66/시래기 67/시집보내야지 68/요양원의 봄 70/유월의 찬바람 72/곰국 73/응급실에서 74/꽃 접시 76/느티나무 77/출근 버스를 타면 78/이파리 80/장날 81/당신 82

제4부

유월 85/속리산 86/고성산 산행 88/영인산의 봄 90/소군산을 바라보며 91/진위천의 가을 92/안성천 쉼터 94/궁안교 96/썰매 기차 98/봄은 99/까치야 100/미나리 예찬 102/은행나무 애수 104/춘설 105/꽃과 함께 106

해설 백인덕(시인)/107

저자 소개 1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2014년 《한국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평택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25*204*20mm
ISBN13
9791158965983

책 속으로

누워서 침 뱉고
누워서 침을 뱉어 보고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침을 뱉으니 얼굴에 침이 떨어지고
누워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
침 뱉는 짓을 자꾸만 하고
자꾸만 누워서 침을 뱉는 자는
자기 침은 맑은 수정 같은 물이고
더러운 침이 절대 아니고 이렇게 맑은 침은 널리
인류를 위해 공중으로 전파되는 것이라 하고
콧등에서부터 침이 딱지처럼 쌓이고
코끼리 등껍질보다 두꺼운 둑이 생기고
입술은 누런 거품을 물고
코는 피노키오보다 긴 코가 되었고
누워서 뱉는 침은 얼굴로 떨어지지 않고
내 침을 받아내는 개미부대가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믿느니라
---「누워서 침 뱉기」중에서

돌담 사이로 애기똥풀이 노란 웃음을 쏟아내고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 뚜껑을 열고
햇빛을 담뿍 받아내던 어느 날
암탉의 비밀 둥지가 털렸다
주인 몰래 풀숲에서 품고 있던 알들
동네 꼬마 녀석들의 숨바꼭질에
달걀 열 개는 뽀빠이 과자와 맞바꾸어졌다
뒤뚱뒤뚱 따르는 노랑이들의 엄마가 되고픈
암탉의 울음소리는
개구쟁이들의 입안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병아리가 되지 못한 알들은
어떤 집 장손의 밥그릇 속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맨드라미 봉숭아가 두서없이 피어나고
난쟁이 채송화가 장독대를 둘레 치는 사이
어린 오이 가지는 우리들의 싱그러운 간식이 되곤 했다
바람은 개구쟁이 발소리에 어린 가지를
보라색 이파리 뒤로 숨기고
초가지붕 깊숙이 눌러앉은 여왕벌을 향하여
일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물어 나른다
여왕벌을 향한 벌들의 짝사랑은
처마 끝에서 한여름 뙤약볕을 달군다
사랑은 멀고 노역은 길다
---「뒤란 풍경」중에서

현관에서 만난 신발들
밖에서 무얼 하고 왔을까
뒷굽이 비스듬하게 낡은 아빠 구두
엄마의 빨간 뾰족구두
아들 딸 운동화
돌아온 가족들의 분신
가족들을 집으로 인도한 충견 같은 신발들
무사히 돌아온 신발들끼리
하루의 행방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아이를 가진 후 예쁜 신발부터 샀다
앙증맞고 예쁜 신발을 마주하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바둑이와 같이 뒹구는 토방 위의 신발들
이부자리 하나로 싸우던 오 남매
윗목에서 못 본 척 구멍 난 양말을 깁던 엄마
시린 달빛 아래 초가지붕의 하얀 박꽃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신발」중에서

툇마루의 멍멍이 킁킁킁 콧구멍만 벌름벌름
고샅을 망보는 밤
창호지를 타고 내려온 달빛이
윗목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어머니를
측은한 듯 내려다보고 있다
들녘에서는
낮에 있었던 논의 물꼬 싸움은 다 잊은 듯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고
뒷산의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린아이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외양간의 게으른 황소야
커다란 눈만 멀뚱멀뚱 모르는 척하지 마라
찰방대는 논에서의 어른들의 물꼬 싸움
푸르름이 넘실대는 들판에서
너도 보지 않았느냐
허풍쟁이 개구리, 배불뚝이 맹꽁이야
밥풀때기 닮은 꽃향기야
울 엄마 울리지 말아라
호롱불이 아른아른
넘어가는 책장엔 방울방울 눈물방울 얼룩진다
---「어느 여름밤」중에서

낡은 칫솔이 이 빠진 접시에 기댄 채
마당 한쪽 우물가에서 졸고 있다
검은 얼룩들이 판화처럼 깔려 있다
엄마의 머리를 까맣게 물들인 것이 틀림없는데
누가 엄마에게 한숨을 선물했을까
하얀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침 거울 속에서 은밀하게 그 숫자를 불리고 있다
내 마음의 하얀 공허가 머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다
사람의 머리 색깔이 변하는 것은
과일의 색깔이 변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인생은 영글어 맛 들어가는데
머리는 퇴색의 길을 놓치지 않는다
마음만은 푸른 색깔 그대로이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픈 마음과
앞서가는 젊은 걸음을 늦추고 싶은 마음이 교차된다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며
수박처럼 달게 익어갈 나의 생을 응원한다

---「흰머리」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는 재현의 양식이지만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대상을 상황에 맞춰 변주한다. 또한 지극히 평범한 나무 한 그루를 낡은 관념에서 건져 올려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고향의 생생한 표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물만이 아니라 개념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이해하고 마는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지평에 펼쳐진 선택의 갈림길이 되게 한다. ‘모성은 존재의 근원’이라는 명제는 궁극의 진리를 함의한다. 부정하거나 토를 달기 어렵다. 하지만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성’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또한 존재, 근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사의 격(格)을 파악해야 하고, 문법적으로 주어부와 서술부의 역할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명제의 표면적 이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명제의 ‘모성’은 곧바로 현실의 ‘엄마’로, ‘존재’는 ‘나(주체)’로 치환되지 않는다.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보편성이라는 질긴 껍질을 찢는 개별화의 수고가 또 필요하다. 즉, 모성의 전형과 모든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엄마와 주체로서의 나의 관계, 그 관계를 특정할 수 있는 사건, 특별한 구체적인 시공간이 있어야만 한다. 시는 이 ‘시공간’을 현재의 필요에 따라 시작의 순간마다 재설정한다는 점에서 창조적 재현이다.

안문 시인은 지상의 표상에 충실하다. 이 말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주요 모티프로 하여 그 형상화에 힘쓴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감정적 동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여러 사태를 회상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두운 내면으로 도피하거나 절대자나 운명, 규범(체계) 등에 의지하여 초월하려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안문 시인은 ‘모성’을 중심으로 ‘고향, 밤, 깊이를 간직한 집, 지혜와 생기(生氣)를 보여준 자연’ 등의 원형적 의미를 지향한다. 시인은 묵묵히 ‘엄마라는 철학’을 사유하고 수행하면서 단독자, 개별 존재라는 지상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보편적 ‘모성’에 새로운 형질을 추가하며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다.

산기슭이나 버려진 무지에서 자라는 덩굴성 식물이라오
잘 가꾸어진 꽃밭이 아니어도 반지르르하게 길을 내고 남은 자투리땅
길과 길이 만나면서 생기는 구석진 곳
바람 타고 온 쓰레기들이 모이고 뒤처진 빗물이 모인
웅덩이 근처에서도 핀다오
5~6월에 보라색으로 핀다오
내 어머니 꽃이라오
대지의 손바닥 굳은살에서 피는 꽃이라오
어머니 손등 성긴 주름살에서 피는 꽃이라오
― 「출근 버스를 타면」 부분

시인은 엄밀하게 ‘모성(母性)’과 ‘모정(母情)’을 구분하지 않는다. 본능에 따른 의지적 행위와 정감의 흐름을 특별히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사랑을 내리받는 위치와 내려 주는 위치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갈라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 셈이다. 이 두 위치에서 화자는 ‘출근 버스’를 타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는 ‘통복시장’, ‘궁안교’라는 지명과 “봄꽃들의 잔치가 끝나고 꽃의 여왕 장미가 피기 전”이라는 ‘보라색 꽃’의 개화 시기도 명기되어 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기억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비유적 매개물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시적 장치로 보인다. ‘산기슭’, ‘무지’, ‘자투리땅’, ‘구석진 곳’, ‘웅덩이 근처’로 열거된 개화 장소는 화려하지 않은 꽃의 외형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 꽃을 “내 어머니 꽃”이라 단정할 수 있고, “대지의 손바닥 굳은살 = 어머니 손등 성긴 주름살”의 등가성, 즉 모성이라는 대지에서 발현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택배가 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봄이 쏟아진다
냉이 민들레 돌나물 여린 쑥들이
한 보따리씩 들려 나온다
보따리 풀어주니 봄의 향기들이
집안을 마구 돌아다닌다
마지막에 들려 나오는 청국장 한 덩어리
구수하고 퀴퀴한 냄새가
엄마라는 철학을 대신 전해준다
마당의 수선화가 노랗게 꽃을 피웠으니
보러 오너라, 한번 다녀가거라
엄마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암탉이 봄기운에 알을 쑥쑥 잘 낳는다는 말은
추신처럼 적혀 있다
봄 햇살이 익어가는 장독대 위에서
나풀나풀 나풀거리는 머릿수건이
나의 두 눈에 어룽지는 봄날이다
― 「엄마라는 철학」 전문

일상에서 시간은 늘 균질적으로 우리를 스쳐 흐르지만, 계절의 변화는 그 시간의 ‘때’의 알림을 통해 자각되지 않는다. 계절은 그 존재가 원초적으로 귀속하는 지상의 물질 표상의 변화로 스스로 드러난다. 누구는 물색의 바뀜과 산 그림자의 깊이를, 어떤 이는 바람의 냄새를 통하겠지만 대개는 대지의 종속된 존재로 흙의 생산물을 기준으로 삼는다. 시인은 이미 그 대지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있는 상황이지만, “택배가 왔다/상자를 열자마자 봄이 쏟아진다”라고 느낄 수 있다. 그 거리가 지나치게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 아니라서 시인은 집안을 마구 돌아다니는 ‘봄의 향기’들만으로도 대지와의 연대를 쉽게 회복할 수 있다. 이런 회복력은 시인의 기억이 트라우마의 저장소가 아니라 생기가 깃든 곳간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 시인의 말

마당에는 분홍낮달맞이꽃이 한창이다.
맨발로 뛰어나오던 분은 바람으로만 반긴다.

바람이 비우고 채우던 곳을 조금씩 채워 내보내려 한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지만,
하늘거리는 분홍낮달맞이꽃을 보며 용기를 낸다.

인복이 많음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먼 곳에 계시는 두 분 어머니께도
이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

2023년 7월
안문

추천평

생생한 수묵화다. 지나간 풍경과 사람살이가 금방 일어난 일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눈앞에 다가온다. 성인이 되어서도 티 하나 없이 불러보는 순수한 감성의 노래들, 투명하다. 곱다. 때 묻은 흔적이 없다.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정겨운 사람과 사물들의 이름을 부르며 확대되는 시인의 큰마음이 근사하게 다가온다. 외연 확장에 무리가 없는 것이 쉽게, 즐겁게, 모두의 추억을 한데 묶어서 툭툭 던져준다. 좋은 시, 훌륭한 시는 동심에서 우러나온다는 동심론을 부정하지 못한다. 시인은 살아온 시간에서, 자연환경에서 그윽한 물소리를 들으며, 외양간 황소의 멀뚱멀뚱한 눈동자에서 어머니의 애달픈 눈물을 읽어낸다. 그리고 존재의 근원에 접근하는 그리움의 처소를 정확하게 묘사해낸다. 추억의 뒤안길에 묻혀 있는 언어들을 흙 하나 묻히지 않고 끌어낸다. 이러한 시인의 마력은 독자들을 위로하며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 배두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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