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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봄이라면
공영구
문학의전당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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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전당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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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보고 싶은 꽃 13/옹이 14/탁란 15/쉴 권리 16/잔돌 왕돌 18/포도 새순 19/뻐꾹 뻑뻑국 1 20/뻐꾹 뻑뻑국 2 22/눈물의 맛 23/헛똑똑이 24/알 솎기 26/곡우 27/잡초 28/추수 30/찔레꽃 31/포도 봉지 싸기 32

제2부


앉은자리 35/장난치지 마 36/난생처음 37/장미 지다 38/보고 또 보고 40/엄마의 꽃 41/안동댁 권 여사 42/내가 만약 봄이라면 44/단풍 들면 45/황당한 일 46/한마음 48/꽃샘추위 49/하찮은 행복 50/정월대보름 52/비오리 53/가을의 수다 54

제3부


오래된 여인 57/짜치가 58/진심 60/벌침 61/등 62/빈집 2 64/오판 65/빨간 빤스 66/노을 한 장 68/도둑놈 지팡이 69/앉은 굴뚝이 그리운 날 70/띠살문 창호지 72/동화사 꽃살문 73/밥줄 74/세상 참 76

제4부


어매 79/그 말이 딱 맞네요 80/고향처럼 81/점령군 82/허튼짓 84/가을 상추 85/그림자 86/다시 영지에서 88/선바위 89/물돌이 마을 90/강물은 부챗살로 흐른다 92/지게 93/신발 한 켤레 94/시심 96/그래도 잘 살았다 97/꽃잔디 98

해설 백인덕(시인) 99

저자 소개 1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96년 [우리문학], 2003년 [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엄마의 땅』 『여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늘 하루』 『달빛 비우기』 『누치 떼를 보다』, 문집 『방앗간집 아이들』 상·중·하, 칼럼집 『말 부자의 완행열차』 등을 펴냈다. [영남문학] 편집주간, 한국문인협회 대구광역시 지회장을 역임했으며, 민족문학상 우수상, 대한민국 예총 문화상, 대구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후문학회, 일일문학회 회원, 두산문화센터 ‘시 감상 및 창작반’ 책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6g | 125*204*8mm
ISBN13
9791158967123

책 속으로

개나리꽃 늘어지게 피어 있다
철철 넘치도록 피어서 흘러내린다
그렇다고 봄이 한창인 것도 아닌데
너도나도 봄기운에 들떠 있다
봄이면 흔한 것이 개나리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노란 꽃
가지 꺾어 아무 데나 푹 꽂아 놓으면
곧바로 살아나서 꽃 피우는
서민 닮은 꽃

삶이란 개나리를 닮은 거야
삶이란 언제나 노랗게 변할 때가 있는 거야
개나리 모르는 사람 어디 있을까
서로 엉키고 한데 모여 살 비비는
따뜻한 이웃사촌 같고
정이 철철 넘치는 기분 좋은 꽃
보아도 보아도
자꾸 보고 싶은 꽃이다
--- 「보고 싶은 꽃」 중에서

어릴 때
울면 지는 거라고 배웠다
악착같이 눈물 참으며 살아서
눈물 맛을 몰랐다

커서는
이겨도 기쁨의 눈물 모르고
마냥 즐겁게 웃고 살아서
눈물 맛을 몰랐다

이제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
시도 때도 장소도 없이
주루룩 주루룩 눈물 흘리고 산다

어떤 때는
민망스러워 몰래 돌아서서
눈물 훔치고 삼키면서 산다
--- 「눈물의 맛」 중에서

물 맑은 강가에 앉아서 그냥 흐르는 물을 보고 있는데,
앉은자리가 불편하여 다시 앉기로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 돌 옆에 작은 돌
작은 돌 옆에는 더 작은 돌
푸른 산이 아름답게 보이듯이
강변의 돌도 따스한 정이 오가는 듯하다
모난 돌 옆에는 둥근 돌
기다란 돌 옆에는 작달막한 돌
강 속에 있는 돌도 강 밖이나 같다
그래서 물의 흐름이 늘 일정한가 보다

불현듯
누구를 위한 주인공이 아닌 아름다운 배경으로 남아
돌에 기댄 몇 포기 수초처럼 일렁거리고 싶은 날
주위에 모든 게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
--- 「앉은자리」 중에서

내가 만약 봄이라면
봄비를 아내로 맞이하겠다
미세먼지 샛바람은 아들로
연한 새싹 예쁜 꽃은 딸이면 좋겠다
핑계 대며 아무리 큰소리 쳐봐도
고운 손길 없으면 일이 꼬인다

말썽 많은 미세먼지 샛바람도
봄비 내리고 나면 나근나근해지고
새순 꽃망울도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보란 듯이 환히 웃는다
아내 없는 사내는 가뭄처럼 메마르다

가족이 순하고 웃음소리 나면
가정에도 봄이 오고 가장은 신난다
봄비 같은 여인
봄비에 흠뻑 젖은 여인이면 더 좋겠다
--- 「내가 만약 봄이라면」 중에서

대구 칠성시장 채소가게 할머니 이야기다. 사고 친 손자가 감방 가게 생겨서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합의금 빌릴 데 마땅찮아 한숨만 다락같이 쉬고 있었더란다. 그때 옆집 과일가게 아저씨가 은행에서 대출 한번 받아 보라고 넌지시 귀띔해 주더란다. 평생 은행에 저축만 했지 빚질 일 없어 할머니는 더럭 겁부터 났더란다. 급한 사정에 눈 한번 찔끔 감고 은행엘 갔는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눈치만 보고 있었더란다. 그때 한 은행원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우째 왔어요?” 하고 묻길래 냅다 “돈 꾸러 왔다”고 했더란다. 위아래를 살펴보던 은행원이 “할매 첨인교?” 하길래 “돈 빌리기는 평생 첨이다” 했더니 뭔 서류를 내놓는데 까막눈이 뭘 알아야제. 글 모른다 했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대필까지 해주면서 빌리는 사유를 묻더란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부끄럽고,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짜치가”라고 했더란다. 은행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또 물어도 역시 “짜치가 왔다”고 대답했더란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지장까지 꾹 찍고 나서 기다리는데 온갖 잡생각이 다 들더란다. 은행 지점장이 대출 심사하다가 허허허 웃으며 “이런 할매는 절대로 돈 안 떼어먹는다” 하면서 바로 대출을 해주더란다. 그 후 은행에서 돈 못 빌린 상인들이 할머니가 신기하여 우째 대출했느냐고 묻길래 그냥 ‘짜치가’라고 썼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단다. 그 후로는 상인들이 돈 빌릴 때 ‘짜치가’라고 했다가 모두 퇴짜 맞았다고 한다.
--- 「짜치가」 중에서

사람 안 사는 집도 그리울 때 있다
숨은 잘 쉬는지
잘 먹고 잘 싸는지
궁금할 때 있다

몇십 년 만에 찾아간
대문도 담장도 무너진 외갓집
온전히 남은 것은
마당 한 켠 앉은 굴뚝
굴뚝에 앉아서 텅 빈 아궁이 본다

지붕 위로 연기 오르면
못 사는 이웃의 허기 더해 간다고
땅에 자욱이 깔려 서서히 사라져야 그들에게 덜 미안하다고
양반들 지혜인지 속임수인지는 몰라도
남 배려하며 산다는 게 그냥 만만하지 않았을 거다
마당에 퍼진 연기가 담 넘지 않고 사라지듯이

“집도 먹고 싸고 숨 쉬어야 산다. 대문이 코고, 아궁이가 입이다. 구들은 창자고, 굴뚝은 똥구멍이다. 굴뚝 청소 잘해야 배설이 잘 된다. 똥구멍 막히면 죽는 거 알제.”

앉은 굴뚝에 앉아서
근엄한 외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말씀이셨다

--- 「앉은 굴뚝이 그리운 날」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것이 전부이기에, 한 생에 거쳐 우리는 쉬지 않고 변하고 때로는 변화를 강제당하기도 한다. 이 변화는 사태에 따라 영향 범주가 다르지만, 결국 몸과 마음, 사유와 정신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인생을 적절하게 ‘발효’하지만 그 당사자에게 별로 자비롭지 않다. 시간의 보편성(누구나 그렇다)과 비가역성(아무도 되돌리지 못한다)은 소멸을 향한 운명의 위로나 보상이 되지 못한다. 끝내 우리는 혼자인 존재일 뿐이고, 타자와 세계의 변화와 무관하게 주어진 제 길을 갈 뿐이다. 앞의 진술은 ‘눈앞에 놓은 시간’이라는 망치 때문에 빈틈없는 사실 같지만, 이 사실은 숨기고 있는 절반, 자기가 함축한 의미를 왜곡 없이 반사한다. ‘혼자인 존재’라는 인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존재는 세계를 선험적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타자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즉시 ‘무화(無化)’하기 때문이다.

공영구 시인은 일의적으로 ‘시인’이라는 존재가 ‘독자’, 독자가 될 무한 가능성의 ‘잠재적 타자’에 의존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겸양을 보여준다. 그는 “용기가 시들어 8년 만에 시집을 엮는다.”라고 「시인의 말」에서 고백한다. 이유는 “자신만만하여 신나게 살았는데/이젠 나 자신도 못 믿고 조심조심 살고 있다./말 한마디, 행동거지, 걸음걸이, 돈 씀씀이도 그렇”게 된 생활의 자세를 드러내고, “하물며 시 한 편이야 오죽하랴.”라며 자기 성찰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용기’는 시인이 진실한 독자를 미리 상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시인은 비록 꽤 긴 간격이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작품이 독자들(혹은 잠재적 독자로서 ‘자연’)과 한 호흡, 숨결을 맞춰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풀밭에서 자유로이 풀 뜯는 염소들은 어디 가고
말뚝에 매여서 빙빙 도는 가여운 염소가 넓은 하늘을 품고 있다
염소에게 다가가서 ‘어이~’ 하니 ‘매에~’ 한다
다시 ‘어이~’ 하니 ‘매에~’ 한다
자꾸 듣다 보니 어매가 된다
그래, 배 불룩하고 입을 실룩거리는 걸 보니 새끼 낳을 때가 된 모양이다
어매가 될 모양이다
키울 걱정, 먹일 걱정이 앞서도
어매는 좋아도 어매, 싫어도 어매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싫든 좋든 한세상 살아가자
너처럼 말뚝에서 계속 돌아도 아무 일 없듯이 혼자서 매에~만 부르지 말고
나와 같이 어매를 부르며 살자
어매는 너와 나의 따뜻한 숨결이다
― 「어매」 전문

현재 인류에게 공통의 언어는 없지만, 감정을 직접 표출하는 모음 계열의 소리는 거의 같다. 의미를 분절해야 하는 단어의 경우, 가장 원초적 관계라 할 수 있는 ‘엄마, 아빠’(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어 표기일 뿐, 실제 소리의 유사성은 이 표기보다 훨씬 밀접하다)가 가장 높은 빈도의 유사성을 보인다.

인용 시에서 시인은 일종의 실험(현상이든 상상이든)을 한다. “염소에게 다가가서 ‘어이∽’ 하니 ‘매에∽’ 한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거듭해서, 내가 ‘어이~’ 하고 염소가 ‘매에~’ 하는 시간 간격을 극복하고 ‘어매’라고 듣게 된다. 이 ‘어매’는 부르고, 대답하는 단순한 시간 차이 이상인 ‘호명과 응답’이라는 주객 상태마저 뛰어넘어 ‘어매’라는 한 형질에 닿는다. 이는 부르는 행위보다 이후일지라도 더 원초적인 결과가 있다. 염소는 어매가 될 모양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매는 좋아도 어매, 싫어도 어매다”라는 자기 성찰의 내용을 이제 곧 어매가 될 염소에게 투영한다. “어매는 너와 나의 따뜻한 숨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곧 ‘어매’가 되고, 나는 늘 ‘어매’를 그리워하는 상황, 이 같고도 다름이 들숨 날숨처럼 생명의 역사이고 ‘숨결’이기 때문이다.
― 백인덕(시인)

시인의 말

겁 없던 시절이 지나가고
겁 많은 시절이 다가온다.

자신만만하여 신나게 살았는데
이젠 나 자신도 못 믿고 조심조심 살고 있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걸음걸이, 돈 씀씀이도 그렇다.
하물며 시 한 편이야 오죽하랴.

그렇게 소심하게 살다 보니
용기가 시들어 8년 만에 시집을 엮는다.

여운이 오래오래 남고,
입에 짝짝 붙는 맛있는 시를 쓰도록
마음을 다잡아 본다.

2025년 9월
공영구

추천평

공영구 시인에게 ‘시심’은 시의 마음뿐만 아니라 시작(詩作)의 태도이리라 짐작하다가, ‘시를 심는’ 시인의 행동을 그냥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의 사물을 향한 행동이나 마음가짐들은 모두 그 계기이자 목표인 시에 닿아 있다. “기억에 오래 남고/편하게 읽을 수 있어/작가 이름보다 제목이 더 알려지는/그런 시 한 편 만들고 싶어”(「시심」)라는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시를 쓰는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그가 매일 밭에서 만나는 시적인 순간들이 앞으로 자주 공영구 시인을 이끌 터인데, 그 ‘이끌림’을 어찌 다 견디실는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포도나무의 해산(解産)을 돕던 그 순간이, 그 손길이 공영구 시인을 앞으로 더 자주 영감과 공감의 세계로 이끌 것을 믿는다. 지금도 충분한데, 더 충분하고 좋은 시인을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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