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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곰취 13/산골 처녀의 산나물 이야기 14/도시락취 16/금낭화 17/취 18/병풍쌈 20/서덜취 21/각시취 22/수리취 24/어수리 25/곤드레 26/명이나물 27/메꽃 28/머위 30/미나리 31/지칭개 32 제2부 며느리밑씻개 35/삼잎국화 36/홀아비꽃대 37/달래 38/바위 나리 40/둥굴레 41/눈개승마 42/비비추 44/원추리 45/가새쑥부쟁이 46/쇠비름 47/노루오줌 48/곰보배추 50/비름나물 51/엉겅퀴 52/잔대 54 제3부 고운리 엉겅퀴 씨 57/맨드라미 58/뽕잎 59/망개떡 60/얼레지 62/고비 63/마늘 64/엄나무 65/부지깽이 66/초롱꽃 68/부추 69/제비꽃 70/물봉선 72/왕고들빼기 73/질경이 74/다래 75/더덕꽃 76 제4부 코딱지풀 79/화살나무 80/방가지똥 81/돌나물 82/으름 84/뽀리뱅이 85/고운길 86/숨바꼭질 88/도토리묵 89/도마 90/축산시장 92/유산 93/강남 집들이 94/장날 96/박꽃 97/우화 98 해설 오민석(시인, 단국대 명예교수)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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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산속에
엄마 곰과 아기 곰이 뒤뚱뒤뚱 걸어간다 땅바닥에 곰곰 발자국이 찍힌다 능소니 발자국이 너무 귀여운 발자국을 낳는다 얼마나 고운가 보자고 바람이 와서 쓰다듬는다 얼마나 예쁜가 보자고 나비가 와서 앉는다 --- 「곰취」 중에서 한눈이란 아무리 바빠도 파는 것 산속의 해는 매우 짧고 인적은 먼데 커다란 물체가 휙! 스쳐 가네 누가 우리 며느리를 훔치러 왔을까 소름이 솟고 머리가 쭈뼛 서네 분홍 꽃무늬 저고리를 입고 살포시 웃으면 하얀 이가 가지런하게 보이는 우리 며느리 온몸에 복이 주렁주렁 붙은 우리 며느리 혹여 달빛에 그을릴까 도둑에게 손 탈까 앉으나 서나 걱정인데 누가 우리 며느리를 훔치러 왔을까 호미를 높이 들고 산 아래를 쏘아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가네 --- 「금낭화」 중에서 억울하게 생각할 것 없어 잎의 뒷면에는 가시털이 잔뜩 붙어 있고 줄기에는 날카롭고 따가운 잔가시가 많은데 누가 너를 꺾어 궁둥이를 닦겠니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 없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얼마나 숭고한 자궁인데 누가 이런 며느리를 미워하겠니 너무나 익살스럽고 사랑스럽고 이름을 부를 적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데 누가 얼마나 부러우면 그렇게 예쁜 이름을 붙였겠니 --- 「며느리밑씻개」 중에서 양지바른 둔덕에 느낌부터 다른 시퍼런 머리채가 보인다 급한 대로 달려가 뭉텅이를 후벼 파니 금방 비밀이 들통난다 다글다글 하얗게 딸려 나오는 알갱이들 흙 속에 보물을 숨겼구나 뽀얀 진주알이 바구니에 한가득 긴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까 올린 머리에 예쁘게 붙일까 가슴에 브로치로 달아 볼까 설레는 마음 난생처음 머리에 꽃을 달고 결혼식에 홀로 앉은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다가 살아생전 진주목걸이를 못 사주고 돌아가신 후 목숨값으로 진주목걸이를 사준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고 바닥에 떨어지던 진주알 같은 눈물 오늘같이 기쁜 날 왜 우냐고 아무리 마음을 추슬러도 바닥에 뚝뚝 떨어지던 그 진주알 --- 「달래」 중에서 텃밭에 얽은 배추가 널려 있습니다 가족의 쓰린 상처를 모두 걷어옵니다 꼬깃꼬깃 구겨진 것들에 풀을 먹입니다 빨랫줄에서 뽀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구겨진 자존심은 목을 뻣뻣하게 세웁니다 그래도 여전히 구김살투성이입니다 입안 가득 사랑을 물고 촉촉이 적셔줍니다 젖은 마음을 착착 접습니다 맨 아래는 어머니의 억눌린 분통과 그 위에는 아버지의 거드름 그다음은 오빠의 편치 못한 분화구 모두 접어서 지근지근 밟아 줍니다 배추를 뽑은 자리마다 발을 포개며 시소를 탑니다 가족들에게서 풀냄새가 납니다 다시 햇살에 널어 살핍니다 구김살이 많이 펴졌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의 얽은 얼굴을 보면 풀 먹여 박박 문질러주고 싶어집니다 --- 「곰보배추」 중에서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면 어머니는 바빠집니다 부드러운 뽕잎을 물기 없이 닦아서 곱게 채 썰어 줘야 하니까요 우리는 꼬물꼬물 아기 누에와 같이 잠을 자고 같이 큽니다 어머니는 밤에도 일어나 누에에게 뽕잎을 줍니다 누가 볼까 누에 똥을 가려 줘요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가 납니다 가만히 눈 감고 들으면 또도독또도독 실로폰 소리가 들려요 다 큰 누에는 커다란 뽕잎을 썰지 않고 그냥 먹어요 그러면 우리는 모두 뽕잎을 따러 가야 합니다 나무 시렁에 대나무 잠박(蠶箔)을 걸치고 마루에 이불을 폅니다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가 빗소리보다 크게 들립니다 누에는 비 없이도 바람 없이도 귓속에 집을 지어요 뽕밭에 뽕잎이 사그라질 때가 되면 네 잠 무렵입니다 드디어 누에가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어머니는 소나무 가지를 잘라다 방 안 가득 세웁니다 투명하게 변한 커다란 누에를 솔가지에 올려놓고 그제야 어머니는 한잠 주무십니다 --- 「뽕잎」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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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엔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에 관한 무수한 판타지들이 등장한다. 거의 예외 없이 나물과 함께 등장하는 이들의 판타지는 너무나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순전해서 마치 동화의 세계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시인에게 그것들은 좋았던 옛날이자, 사라진 파라다이스며, 결핍의 현실을 대체하는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상징계에 완벽한 사랑, 완벽한 선, 흠집 없는 완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완벽한 사랑의 상태로 묘사되는 가족의 이미지는, 라캉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부정성을 배제하고 선택된 판타지이며, 그것을 통해 시인이 욕망하는, 그러나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소문자 대상 a이다. 라캉에게 소문자 대상 a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원인이며, 상징계의 결핍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상징계로 들어가는 순간에 ‘상실한 완전성(lost fullness)’의 흔적이다. 판타지는 주체가 이런 ‘상실한 대상(lost object)’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구조화한다.
어머니는 키가 큰 분을 좋아하십니다 늘 그분을 기다리십니다 낡은 추억은 싹싹 긁어냅니다 온전히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마칩니다 드디어 그분께 기별이 옵니다 노랑꽃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질투가 심하십니다 그분 옆에 누가 있는 꼴을 못 보십니다 잡념은 모두 뽑아냅니다 해 뜨자마자 몇 시간씩 그분을 보고 오십니다 그러고도 종일 그분과 시간을 보냅니다 비가 와도 그분을 만나러 나갑니다 가뭄이 들면 그분께 물을 갖다 드립니다 밥 먹을 때도 그분을 먼저 생각합니다 빈대떡 한 쪽을 부쳐도 그분을 모셔옵니다 이제 어머니는 힘겹게 그분을 부축하고 다니십니다 언제까지 저러실지 난감합니다 내게도 그분께 고마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어머니를 남들은 꽃나물 아줌마라고 부릅니다 - 「삼잎국화」 전문 “삼잎국화”는 키가 커서 ‘키다리노랑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키가 큰 분”이 바로 제목의 ‘삼잎국화’일 것이라는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서 생긴다. 시인은 ‘삼잎국화’를 의인화해서 그것을 ‘어머니’의 “그분”이라고도 부른다. 어머니에게 삼잎국화는 결핍이 없는, 완벽한 사랑의 대상이다. 그사이에 아무런 거리도 분리도 없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삼잎국화는 상상계의 단계에서나 볼 수 있는 동일시의 관계에 있다. 어머니에게 삼잎국화는 언어 이전의, 상징계 이전의, 완벽한 동일시의 대상이다. 시인은 삼잎국화를 통해서 상징계에선 불가능한 판타지를 본다. 그것은 사라진 완전성의 세계이고, 도달할 수 없는 실재계의 흔적이다. 시인은 어머니와 삼잎국화 사이에서 그런 사랑의 완전성을 본다. 삼잎국화는 의인화되어 어머니의 완벽한 연인, 즉 시적 화자의 아버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들 사이엔 갈등도 싸움도 없다. 그들 사이엔 온전한 헌신과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온전히 몰입하는 삼잎국화를 통하여 시인은 사라진 완전성, 온전한 사랑의 흔적을 본다. 시인은 이 결핍의 세계에서 그런 흔적의 판타지를 통해 완전한 사랑, 온전한 합일을 욕망한다. 밥풀때기 곱게 올라온 꽃대 수북하게 밥 퍼 주며 배곯지 말고 다녀라 밥이 보약이다 시도 때도 없던 어머니 말씀이고 앞치마 곱게 두른 연둣빛 잎새 보따리 보따리 싸 주며 이것 가져가라 저것 가져가라 주섬주섬 싸 주던 어머니 마음이고 시골집 마루에 앉아 왜 이렇게 덥냐고 한 손으로 치맛자락 살짝 치켜들고 아랫도리 부채질하는 어머니 모습이다 - 「바위 나리」 전문 시인은 돌단풍으로도 불리는 “바위 나리”에서도 어머니의 온전한 사랑을 본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이 아니라 바위 나리의 “꽃대”와 “연둣빛 잎새”, 그리고 “붉게 물든 단풍”의 판타지를 통해서 보인다. 판타지는 대상 안에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지우고 절대 긍정의 요소들을 전경화함으로써 주체의 욕망을 구성한다. 상징계의 빈틈에 이렇게 완전성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판타지들이야말로 시인의 욕망을 구성하는 소문자 대상 a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을 대신하는 유토피아의 이미지이며, 일종의 대리물이자 여전히 결핍이어서, 상징계에서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 대문자 어머니를 다시 욕망하게 한다. - 오민석(시인, 단국대 명예교수) 시인의 말 물방개는 사뿐히 걸어갑니다. 소금쟁이는 즈려밟고 건너갑니다. 올챙이는 꼬리만 보여줍니다. 해님은 빠져도 젖지 않습니다. 아비는 호미를 씻습니다. 어미는 빨래를 합니다. 나는 참새처럼 물을 마십니다. 살아보니 다 놀이였습니다. 내 시(詩)는 모두 이 놀이에서 나왔습니다. 2025년 9월 박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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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하고 연애하듯 살아가는 박영규 시인이 시집을 펴냈다. 『고운리 엉겅퀴 씨』 이 시집에는 육십여 종의 산나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산나물이 주인공인 산나물 시집은 국내에서 처음이지 않나 싶다. 이 시집을 펼치면 얼씨구절씨구 ‘곤드레’를 만나고, 허리를 배배 꼬며 배시시 웃는 연분홍 ‘메꽃’을 만나며, 보일락 말락 연보랏빛 속살 드러내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배에서 계곡물 소리가 나면서도 어미 소만 보면 입이 귀에 걸리는 아버지가 계신다. 나물이란 나물이 모두 몰려와 자기도 ‘시’로 써 달라 아우성이라니, 박영규 시인의 산나물 시는 계속 나올 것 같다. 엉겅퀴 씨와 사랑에 빠져 산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산나물 시인을 만나러 고운리를 가봐야 할 것 같다. 박영규 시집 『고운리 엉겅퀴 씨』에서는 향긋하고 쌉싸래하며 달착지근한 산나물 내음이 난다. - 조연환 (시인, 제25대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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