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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에 부쳐 7
1장 총서시 13 기사의 이야기 58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 134 장원 청지기의 이야기 161 요리사의 이야기 180 2장 법률가의 이야기 187 3장 바스 여장부의 이야기 229 탁발 수도사의 이야기 284 소환리의 이야기 301 4장 옥스퍼드 대학생의 이야기 327 상인의 이야기 371 5장 수습 기사의 이야기 415 시골 유지의 이야기 439 |
Geoffrey Chau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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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 박혀 미칠 때까지 책에 파고들며 공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혹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일러 주었듯이 애써 수고하고 노동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은 어떻게 유지되어 가고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당신의 노동을 하면 되는 것이에요!
--- pp.23~24 “여러분, 제 얘기를 잘 들으십시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멸시하지는 마십시오. 요점만 간단명료하게 말하겠습니다. 여행의 지루함을 덜기 위하여 캔터베리로 향하는 길에 두 개의 이야기를 여러분 각자가 하는 것이 제가 의도한 바입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데, 오래전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야기를 가장 잘한 사람, 다시 말해 가장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우리가 캔터베리에서 돌아온 후 바로 이 여관 이 장소에서 우리가 돈을 내서 준비한 저녁 식사를 대접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 pp.54~55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서 살지 않았던 사람이 죽는 일이 없듯이, 세상 어디에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찬 통로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 길을 오가는 순례자에 불과하다.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마지막을 고한다.” --- p.1125 결국 모든 일이 장난질이 되었다. 그의 감시와 질투에도 불구하고 목수의 부인은 성적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으며, 압살론은 그녀의 엉덩이에 입을 맞추었고 니콜라스는 엉덩이를 데었다. 이야기는 이제 끝입니다. 여러분께 하느님이 함께하시길! --- p.160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나는 피에리데스라는 뮤즈 ―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보면 아실 겁니다 ― 와 비교되는 것이 싫습니다. 설사 내가 초서를 모방한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산문으로 말하고 시는 그의 몫으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 p.190 이렇게 그들은 죽을 때까지 완벽한 기쁨 안에서 살았다.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순하고, 젊고, 그리고 잠자리에서 힘 있는 남편을 보내 주소서, 아울러 우리와 혼인한 그들보다 오래 살도록 해 주소서. 또한 예수님, 기도드립니다. 부인들의 지배를 받기를 원치 않는 자들의 명을 짧게 줄여 주소서. 그리고 늙고 성질 못된 구두쇠 같은 남자들에게 또한 주님, 곧 역병을 내려 주옵소서. --- 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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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전쟁의 시대, 종교에 의지해 길을 떠나는 순례자들
『캔터베리 이야기』가 쓰인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혼란 그 자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였다. 정치적인 혼란으로 인해 초서는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리처드 2세의 하야로까지 연결된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에 더해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오랜 대립은 당시 사회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세 사회를 지탱해 온 봉건주의 체제에서는 신분의 변화에 대한 경직성을 고수하지만, 경제 발전과 함께 등장한 중간 계층이 신분 변화를 열망하면서 서로 충돌했다. 종교적 측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기존의 종교와 믿음에 대한 내부 반발이 심각하게 일어났으며, 두 명의 교황이 대립하는 유럽 전역에 걸친 ‘대분열’의 시기가 도래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초서가 과거 즐겨 사용하던 꿈을 통한 이야기 전개 형식이나 궁정풍 서사에서 관심을 돌려 『캔터베리 이야기』를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초서는 이러한 대내외적 격변의 현실을 자기 작품 속에서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당시 사람들에게 현실 도피의 장을 마련해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초서의 많은 이야기는 인간의 위선을 풍자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웃음과 낭만을 선사했던 그의 문학은 민중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종교적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이다. 모든 이들이 죽음과 함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피할 수 없는 심판에 따라 선한 자는 하늘나라로 가고 악한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종교성 짙은 경건한 이야기들이 ― 선한 생활로 인도하고 천국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 중세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다. 인간의 영혼을 관장하는 교회의 기능이 비대해져 중세인들의 거의 모든 생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생과 결혼, 사망에 대한 제반 절차는 물론 일상생활이나 절기 및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회 및 성직자의 역할은 민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렇게 교회의 역할이 비대하다 보니 타락한 수도사, 탁발승, 면죄부 판매자 등이 생겼고, 이들이 교회 직분을 남용해 무지한 민중을 현혹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초서 역시 그의 작품 속에서 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스 부인에게 성지 순례는 외형적 믿음의 표시이자 과시욕에서 연유한다. 면죄부 판매자는 이런 일반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베갯잇을 성모마리아의 베일이라고 우기거나, 한 조각의 돛을 베드로가 썼던 것이라고 하고, 유리 상자에 든 돼지 뼈다귀를 성자의 유골이라고 속이면서 민중을 우롱해 돈을 착취하기도 했다. 초서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 엘즈미어 사본으로 번역한 고증판 초서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캔터베리 이야기』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십여 년 동안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1380년 후반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나, 1400년 죽는 해까지 계속해서 이 작품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 기간의 모든 날짜 기록은 추측으로만 가능하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작품이 이 시기에 다 쓰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기사의 이야기」나 「두 번째 수녀의 이야기」는 앞서 쓰인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캔터베리 이야기』 안에는 초서가 작품 전체를 구상하기 전에 이미 쓴 작품들이 있으며, 집필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오늘날 독자들이 접하는 작품의 배열 순서 혹은 작품의 화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총서시」로 시작되며, 화자인 초서는 토머스 베킷 성인의 유골이 안장된 캔터베리 사원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 위해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도착해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순례자들을 만난다. 초서 작품의 인기는 당시 쏟아져 나온 여든 개가 넘는 사본과 각각의 사본이 보여 주는 작품의 다양한 배열에서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사본은 헹워트 사본과 엘즈미어 사본이다. 전자는 초서가 일정한 순서 없이 쓴 여러 이야기를 그대로 써 내려간 것으로 후자보다 시간상으로 앞선다. 엘즈미어 사본은 편집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것으로 전자보다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이야기들의 배열 순서 또한 일관된 모습을 보여 준다. 오늘날 많은 독자가 접하게 되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후자를 따르고 있다. 엘즈미어 사본의 기본적인 구조는 한 명의 순례자가 차례가 되어 이야기하고, 뒤이어 다음 순례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전개되어 여러 순례자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성지 순례라는 허구적 틀 안에 하나로 묶어 『캔터베리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두고 있다. 이러한 ‘액자식 이야기’ 방식은 후기 중세 시대의 보편적인 문학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 초서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캔터베리 이야기』로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던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때까지 하나의 통일된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초서의 친구들은 필요한 경우 몇 개의 연결 고리를 첨가해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일관된 구조를 가진 판본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나온 필사본은 ‘단편(Fragment)’으로 알려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초서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와 폭은 그가 사용한 중세 영어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가능해진다. 당대 작가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으나 초서는 모국어인 중세 영어를 고집해 영어에 ‘힘과 우아함’을 더한다. 그가 사용한 14세기 영어는 현대 영어와 매우 다르므로 중세 영어에 대한 문헌학적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방대한 배경 지식에 대한 학습과 중세 영어의 의미를 고찰하는 고증학적 작업 때문에 많은 역자가 기존 역서들을 참조해 번역한다. 신 초서 학회(New Chaucer Society)의 조사에 의하면 『캔터베리 이야기』의 완역판을 발간한 국가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20개국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는 초서 번역의 어려움을 방증한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중세 영어의 원래 의미를 정밀하게 파악하여 행과 문맥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정리했다. 또한 중세 영어 원래의 의미를 최대한 살림으로써 중세 영어가 지닌 생생함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근본 취지를 더욱 보강했다. 이제 초서가 열어 주는 이야기의 향연으로 들어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