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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趾源, 호 :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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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利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가? -6월 27일 일기에서
산기슭이 가려 아직도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보일만치 벌어진 광경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제 신대로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니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말했다.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 -7월 8일 일기에서 나는 원래 삼류 인사이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 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어진 기왓장으로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어진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쳐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7월 15일 일기에서 나는 정군에게 중간에서부터 시작해 베끼도록 당부하고 나는 대가리부터 베껴 내려갔다. 심은 묻기를, "선생은 그것을 베껴서 무엇하십니까?” 하기에,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사람들에게 한 번씩 읽혀 그들로 하여금 배를 틀어쥐고 넘어지도록 웃게 하되, 먹던 밥 티가 벌 날듯 튀고 갓끈이 썩은 새끼처럼 끊어지게 될 것이오.” 하고는 숙소로 돌아와서 등불을 켜고 훑어본즉 정 진사가 베낀 몫은 오자 낙서가 허다하고 글귀는 문리가 통하지 않는 데가 많았으므로 이녁 뜻을 약간 붙여 엮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 '범의 꾸중虎叱’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는 밤낮없이 나흘 동안 눈 한 번 못 붙이고 하인들은 걸을 때나 머무를 때나 모두 선 채로 잠을 잤다. 나 역시 졸음을 견디다 못해서 눈꺼풀은 구름 드리우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 밀듯 와서 때로는 눈을 뻔히 뜨고 보는데도 꿈결 같기만 하고 때로는 놀라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가 저절로 안장에 올라앉았다 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하느적하느적 아물아물거리고 몸이 짜릿짜릿하게 좋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게슴츠레해서 보이는 듯 만 듯하여 아기자기한 미묘한 경지 속에 들게 되어 언제고 소위 취중의 세상, 꿈속의 산천만 같았다. -8월 8일 일기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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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는 순간부터 북경을 거쳐 청나라 황제가 머무는 열하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일기가 들어 있다. 벽돌 하나, 여인네의 머리꽂이 하나에도 연암은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산천, 성곽, 배와 수레, 생활 도구, 가마, 언어 따위 모든 것들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연암의 작품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범의 꾸중’이 들어 있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연신 감탄하는 연암의 경쾌한 붓놀림이 특히 잘 드러나 있다.
-압록강을 건너서 1780년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일기글에 '구요동 견문기', '요동 백탑 견문기', '관제묘 견문기’, '광우사 견문기’ 따위 수필이 들어 있다. 박지원이 사신 일행과 함께 의주를 떠나 압록강을 건너 요양까지 이르는 도중에 본 것을 중심으로 썼다. 연도의 고을에 관한 흥미 있는 사화와 함께 중국의 선진 문화를 과학적 입장에서 예리하게 평가, 분석하여 소개하였고 봉황성을 지나면서 고조선에 대한 강토 고증에 대한 명쾌한 주장이 나온다. -성경의 이모저모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 심양 여기저기를 둘러본 일기와 '속재필담’, '상루필담’, '골동 이야기’, '성경의 절 구경’, '산천 이야기 몇 마디’가 들어 있다. -일신수필 ‘일신수필’은 달리는 역마 위에서 구경하듯 성큼성큼 빨리 본 것을 휘뚜루마뚜루 내갈겨 썼다는 의미다. 7월 15일부터 7월 23일까지 일기글과 '북진묘 구경’, '수레 만든 법식’, '극장’, '저자’, '점방집’, '다리’, '강녀묘 견문기’, '장대 견문기’, '산해관 견문기’가 들어 있다. -관내에서 본 이야기 산해관에서 북경까지 가는 길 위의 이야기다.춘추대의에 목매달고,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멸시하는 사대주의적 근성을 여러 가지 수법으로 풍자했고, 기타 연도의 잡관들을 서술하였다.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일기글과 '열상화보’, '이제묘 견문기’, '난하에 배 띄우고’, '사호석 이야기’, '동악묘 견문기’, 그리고 연암 작품 중에도 걸작인 ‘범의 꾸중’이 들어 있다. -북방 여행기 8월 5일부터 8월 9일 오전까지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길 위의 이야기가 일기체로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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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왜 금서가 되었는가?
열하에서 귀국하자마자 연암은 서울 살던 처남 이재성의 집과 황해도 연암골을 오가면서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780년 가을부터 1783년까지 썼다고 짐작되는데, 책을 완성하기도 전에 선비들은 두루 베껴 읽기에 바빴다. 이전의 연행록이 대부분 평범하고 상투적으로 연행록, 연행잡록, 연행연기, 연행일기 따위 제목을 붙였던 데 반해 연암은 ‘열하’를 강조하기 위해 ‘열하일기’라는 생경한 제목을 붙였다. 탈고한 뒤에도 꾸준히 글을 고치거나, 새로 쓰거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금서였던 까닭에 후세들이 연암의 기록에 덧붙인 내용들까지 함께 전해지고 있다. 보리의 《열하일기》에도 ‘중존씨는 말한다(처남 이재성)’, ‘연암씨는 이르노라’ 하고 덧붙인 글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열하일기》이전에도 북경에 다녀온 사람들이 기록한 연행록은 아주 많았다. 수많은 연행록 가운데 연암의 것이 특별한 까닭은 이 책이 담고 있는 ‘풍부한 견문과 진보적인 사상,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 기법(김명호)’ 덕분이다. 정조는 《열하일기》를 읽고 나서, 당시 지식인들의 문체가 순정치 못하게 된 것은 전부 박지원의 죄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당장 순수한 글을 지어 올리라고 명령했다. 당시 학자들의 문체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는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의 감상이나 독창성보다는 얼마나 옛 문헌을 많이 알고 있어서 적재적소에 제대로 인용하고 담아 내느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소품체 문장이 들어오고, 가벼운 글쓰기가 널리 퍼지게 되자 정조는 선비들의 글이 더럽혀졌다며 문체를 정갈하게 쓰지 않는 이들의 문체를 바로잡는 일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연암과 연암의 제자들, 이덕무, 이서가 들이 특히 주목받았다. 정조가 남공철을 시켜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으나, 박지원은 쓸 수 없다 요리조리 피하다가 1797년에 결국 ‘서이방익사’를 바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정조가 아니더라도 양반 사회 일각에서도 《열하일기》는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했다’ 혹은 ‘되놈의 연호를 쓴 되먹지 못한 글’이라는 평은 예사로 들었다. 하지만, 그런 평에도 《열하일기》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으며, 글을 아는 식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려 애썼다. 《열하일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1) 다양한 형식의 향연 《열하일기》 이전에는 두 가지 형태의 연행록이 존재했다. 여정을 날짜 순으로 적는 일기 형식과 인물이나, 명소, 사건 들을 주제에 따라 항목별로 나누어 기술하는 체제가 그것이었다. 연암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취하고 있다. 기존 연행록의 장점을 취하면서 독창적인 형식을 더해 여정은 날짜 순으로 정리하고 일기에 다 담기 힘든 중요한 사항들은 기記나 설說의 형식으로 독립시켜 놓았다. 《열하일기》에서 두드러진 형식 가운데 하나는 필담. 열하에서 사귄 청나라 학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황교문답’, ‘망양록’, ‘곡정필담’에 담고, 성경의 상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속재필담’, ‘상루필담’에 담았다.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생동감 있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다음으로 소초 형식. 하권에 실려 있는 ‘금료소초’는 평소 조선의 낙후된 의약 수준을 안타까워하던 연암이 왕사정의 《향조필기》 중 의약에 관한 내용을 초록하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야기 형식. 상권에 있는 ‘범의 꾸중’이나 하권에 있는 ‘허생전’ 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벼운 수필체. ‘밤중에 고북구를 빠져서’ 같은 글이 그것인데, ‘하룻밤에 아홉 번 물을 건너서’나 ‘코끼리 이야기’ 같은 것은 지금 읽어도 그 뛰어난 묘사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일신수필은 장 전체가 ‘휘뚜루마뚜루’ 적어 내려간 가벼운 수필 형식을 빌리고 있다. 반면에 ‘수레 만든 법식’ 같은 글은 한 편의 논문을 보는 듯한데, 정론체 문장에다 해야 할 말을 꼼꼼하게 적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시화 형식. 하권의 ‘피서록’은 시에 관한 비평과 해설, 시인의 일화 따위를 단편적으로 적어 놓고 있다. 2) 살아 있는 인물 묘사 ?회회국 사람들은 얼굴이 사납고, 코가 크며, 눈은 푸르고, 머리와 수염이 억세다.” ?몽고왕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체머리를 흔드는 것이 아무 보잘것이 없어 마치 장차 거꾸러지려는 나무 등걸 같다.” ?파로회회도는 몽고인인데 자는 부재, 호는 화정이다. 나이는 47세인데 강희 황제의 외손자로서 키가 8척이요, 긴 수염이 축 늘어지고 얼굴은 여위고 누르스름했다.” ?경순미의 자는 앙루요, 몽고 사람이다. 키는 7척이고 살빛은 희고 길게 찢어진 눈에 눈썹은 짙고 손가락은 파뿌리 같아서 미남자라 할 만했다.” ‘속재필담’과 ‘황교문답’에 실린 인물 묘사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 만난 이름 없는 노인이나 일곱 살 꼬마에 이르기까지 연암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글로 옮겼다. 3) 종횡무진 다양한 소재들 철학, 정치, 경제, 천문, 지리,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 사회 생활 전 영역에 걸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똥거름을 예찬하는 대목이나 수레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쓴 대목이나 청나라의 ‘캉’을 우리 온돌과 비교하는 대목은 실학자로서 연암이 특별히 관심을 쏟은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놀랍도록 자세하다. 거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나,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당시 연암이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음악을 주제로 얘기한 ‘망양록’에서나 갖가지 약방문을 적은 ‘금료소초’ , ‘골동 이야기’나 ‘열상화보’에 실은 각종 그림과 그릇들에 대한 관심까지, 연암은 책 속에서 다방면으로 종횡무진 움직이고 있다. 보리 출판사의 《열하일기》는 무엇이 특별한가? 1) 북의 성과를 남이 잇는다. 고전 문학을 되살리는 일에 오랫동안 애써 온 북한의 번역 성과를 남한에서 받아, 남한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출판했다. 이 방대한 양의 번역을 이미 1950년대에 끝내고, 몇 번의 교정 작업까지 거쳤다. 북의 성과를 남이 이어 받아 출판하는 이 《열하일기》는 갈라진 겨레의 통일에 기여하는 시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현재 전하고 있는 《열하일기》는 누가 편집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그 체계를 달리 하고 있는데, 필사본 9종과 신활자본 2종이다. 충남대본, 서울대본, 고도서본, 규장각본, 광문회본, 박영철본, 전남대본, 대만본 들이 있다. 리상호가 번역한 것은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연암전집> 가운데 《열하일기》만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과, 한학자 김택영이 1900년과 1916년에 출판한 연암집을 묶어 후손들이 출판한 〈연암전집〉,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하였다. 보리에서는 1995년에 북에서 출판한 《박지원 작품집 2》를 상권의 판본으로 했고, 중권과 하권은 과거에 출판했던 책으로 작업했다. 2)남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완역본이다! 민족문화추진위에서 이가원 교수가 번역한 완역본으로 냈던 열하일기는 1967년에 초판을 찍고 1987년에 중판을 찍었으나 지금은 찾기 힘들고, 대양서적에서 펴낸 이가원 교수 완역본도 1973년에 처음 나온 이후로 독자들이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윤재영이 번역해 박영사에서 1983년에 펴낸 완역본 역시 오래되어 구할 수가 없다. 솔출판사에서 낸 것은 열하일기 가운데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일부부분만 담고 있으며, 그린비에서 펴낸 고미숙의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은 번역본이 아니라 해설서이므로 보리의 것과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타 출판사에서 청소년이 보도록 편집한 것들도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하여 만들어낸 책은 보리의 것이 유일하다. 3)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있다. 말의 오염이 시작되기 전의 우리 글맛, 말맛이 살아 있고 박지원의 명랑함과 유쾌함을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잘 살려 냈다. 한문 문장인데도 읽기 힘들지 않은 입말로 번역해 놓았다. 찌꺽지, 자채기, 모꼬지, 물역 따위 북에 남아 있는 우리 말 또한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고 잔주르다, 덩둘하다, 날탕패 따위 토박이말들도 책 곳곳에 살아 있다. 4)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행 일정과 연보를 새로 정리했다. 책 끝에 박지원 연보와 열하일기 여행 일정을 새로 정리해서 넣었고, 상권에는 북의 학자 김하명의 상세한 작품 해설을, 하권에는 옮긴이 리상호가 쓴 글을 덧붙여 놓았다. 《열하일기》는 남과 북의 공통 자산이다. 정치적으로 갈라지면서 학계도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연구 성과를 한데 모으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았다. 북에서 연암 박지원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 두 편을 함께 실었다. 박지원을 ‘중세의 거인’이라고 한 리상호나 박지원 작품에서 양반 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특별한 문장력을 읽어 내는 날카로운 감식안을 지닌 김하명의 글은, 《열하일기》를 읽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보리 편집부에서 정리해서 덧붙인 ‘박지원 연보’는 열하일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명호 선생의 도움을 얻은 것인데, 정치적인 상황과 연암의 작품 창작 시기가 한데 적혀 있어 한눈에 연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지도와 함께 따로 정리한 ‘여행 일정’은 방대한 《열하일기》를 읽기 전에 간단하게 연암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