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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이병주 장편소설
이병주
나남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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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창작선

책소개

저자 소개 1

李炳注, 호: 나림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쳐온 '한국의 발자크' 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와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수학했으며,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4년 학병으로 소집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의 일본군 수송대에 배치되었다가 일제 패망 뒤인 1946년 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8년에 진주 농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2년 타계하기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만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쳐온 '한국의 발자크' 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와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수학했으며,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4년 학병으로 소집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의 일본군 수송대에 배치되었다가 일제 패망 뒤인 1946년 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8년에 진주 농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2년 타계하기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만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진실을 추구하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 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문학정신의 튼튼한 자양분을 이루며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탁월한 평가를 받게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6·25동란, 정부수립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한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력이 되었다.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이어진 「관부연락선」「지리산」「산하」「소설 남로당」「그해 오월」 등의 대하장편들은 그러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으로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문학은 역사의식 부재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문단을 문학 저널리즘이라고 봤을 때 저널리즘을 타기 전 습작 시대가 없었다고 말한다. 습작일 수밖에 없는 작품마저도 모조리 발표해 버린 것이다. 이는 그가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경위부터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1955년 우연히 부산에 놀러갔다가 부산일보의 편집국장과 논설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에 의해 "이 교수가 한번 써보라"는 권유에 취중의 호기로 대답한 것이 [부산일보]에 연재한 첫 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쓰게 된 동기였던 것이다.

그는 애초에 소설을 쓰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가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더듬어 볼 때 그가 소설가가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로부터 해방공간을 거쳐,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및 체제 대립과 6.25동란 그리고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 등, 온갖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지나오면서 한 사람의 지식인이 이렇다 할 상처 없이 살아남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또한 다산한 작가로도 대표할 만하다. 1965년 중편 『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함으로써 등단한 후 1966년 『매화나무의 인과』를 「신동아」에 발표했다. 1968년에는 『미술사』를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관부연락선』을 「월간중앙」에 연재하였다. 1969년에는 『쥘 부채』를 「세대」에, 『배신의』 「부산일보」에 발표하였다. 1970년에 『망향』을 [새농민]에 연재하였으며, 1971년에는 『패자의 관』을 발표하고, 『화원의 사상』과 『언제나 그 은하를』을 연재하였다.

1972년에는 단편 『변명』과 중편 『예낭 풍물지』, 『목격자』 발표하였으며, 장편 『지리산』을 「세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3년 수필집 『백지의 유혹』이 간행되었으며, 1974년에 중편 『겨울밤』 『낙엽』을 발표하였다. 1976년 중편 『여사록』, 『망명의 늪』, 단편 『철학적 살인』을 발표하였다. 1978년 『계절은 끝났다』 『추풍사』를 발표함과 더불어 『바람과 구름과 비』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9년『황백의 문』, 1980년 『세우지 않은 비명』, 『8월의 사상』을 발표하였다.

1981년에는 『피려다 만 꽃』, 『허망의 정열』 『서울 버마재비』, 『당신의 성좌』를 발표하였다. 1983년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소설 이용구』, 『우아한 집념』, 『박사상회』를 발표하였다. 1984년 장편 『비창』을 간행하였고, 1986년 『그들의 향연』, 『무덤』, 『어느 낙일』을 발표하였다. 1987년 『소설 일본제국』, 『운명의 덫』, 『니르바나의 꽃』, 『남과여―에로스 문화사』를 간행하였다. 1989년 『소설 허균』, 『포은 정몽주』, 『유성의 부』, 『내일 없는 그날』을 간행하였고, 1990년 장편 『그를 버린 여인』을 간행하였다.

이렇듯 끊이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해 오는 동안 1977년 중편 『낙엽』,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84년엔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 『소설 제5공화국』 집필 중 지병으로 타계했다. 2008년에는 그의 출생지인 경남 하동군에 '이병주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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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702g | 153*224*20mm
ISBN13
9788930006224

출판사 리뷰

'활빈당 괴수 홍길동'에 숨결을 불어넣은 허균,
소설가 이병주의 붓끝에서 되살아나다


태양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는 달빛 아래 비친 허균의 모습을 장대하고 웅장한 필치로 그려냈다.《관부연락선》,《지리산》,《정도전》,《정몽주》 등의 작품을 남긴 남성문학의 대가 이병주만큼 허균을 이토록 생생하고 감칠맛 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호부호형할 수 없었던 조선의 모든 서자들의 울분을 대변했던《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율도국을 세운다. 홍길동전에는 허균의 급진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충효를 목숨같이 여긴 유교를 받들었던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혁신세력’이 나올 수 있었을까.
등 떠밀려 치른 과거시험에서 허균은 문과에 급제하며, 병조좌랑, 황해도 도사, 삼척부사, 형조정랑, 병조정랑 등의 관직도 지냈다. 과거 급제의 비결은 타고난 문장력 덕분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문집《난설헌집》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극찬을 받았다. 천재적 문학성을 가진 남매가 마주앉아 한시를 주고받으며 나누었을 수족지정(手足之情)을 소설을 통해 엿보는 재미도 크다.
벼슬자리에 앉은 허균은 마치 벼슬을 조롱하듯, 보란 듯이 술과 기생과 시가 어우러진 연회를 만끽한다. 절제와 극기의 16세기 조선에서 권력욕과 색욕을 마음껏 드러낸 것이다. 그러던 중 인목대비 폐모론에 가담하게 되고, 허균은 폭풍같이 몰아치는 역성혁명을 시도한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으로 허균은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이미 죽어 묻힌 그의 부친 허엽(許曄)도 부관참시 되는 등 허균의 최후는 비참했다.
1623년 3월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 시절의 무수한 옥사로 희생된 사람들은 거의 복권과 추숭이 이루어졌으나, 허균만은 조선왕조가 끝나는 날까지 복권되지 못했다. 天賦之才養獸性(천부지재양수성), 즉 하늘이 내린 재능으로 짐승의 성질을 키웠다 하여 선비들은 허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조차 꺼렸고, 허균의 후손들은 변성명을 하고 세를 이어가야만 했다.

이병주는 허균과의 가상대담 형식을 취한 프롤로그에서,

“내가 생각하기론 허균 당신은 500년쯤 일찍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소. 말하자면 21세기 후에나 태어나야 마땅한 사람이 16세기 봉건시대에 태어났단 말이오.”

라고 털어 놓았다. 20세기를 살고 간 후대인으로서 소설가 이병주의 감탄이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빼어난 한시 50여 수로 반골시인 허균의 파란만장한 삶을 버무려냈다는 데서도 의의가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적 유희에 참여하는 재미도 크다. 주고받는 시에는 비유와 운율, 생략과 함축이 녹아있다. 중국과 조선의 명시 50여 수가 허균의 일대기 속에 강물처럼 굽이치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조선 명기(名妓) 이매창과 허균이 한 자 한 자 꽃잎처럼 남긴 한시도 애틋하다. 소설가 이병주가 말맛을 살려 유려하게 현대 국어로 풀이해 절절한 감정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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