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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돋는다
통정마을을 지나며 13 먹갈치 14 회화나무의 전언 16 금성관에 서서 18 카무트 20 소확행 22 돋는다를 목도 24 쇠락을 읽다 26 신귀거래사28 토계리 달력 30 샤갈의 쪽창에 갇힌 여자32 쑥 34 노을에 들다 35 제2부 고이다 할미꽃 신호등 건너다39 박주가리 그녀의 옥탑방 40 나의 버뮤다, 팔랑귀 42 연리목 44 대장장이 아버지 46 느러지곡강에서 48 고이다 50 청보리밭에서 52 곤포사일리지 54 구절초 삽화 56 밥상 58 팔손이 60 어느 무명 시인의 시론 62 건덕터널을 지나며 65 제3부 논하다 물방울 여자 69 우화를 꿈꾸는 숭어 떼 70 명아주 키우는 남자72 동적골 다님길에서 74 섶다리 배후에서 76 들독 78 어떤 낱자, 者의 탈구증을 논하다 80 속눈썹 줍는 여자 82 정령치에서 84 둥근 발소리86 루드베키아 88 사각지대 90 우박 92 장미의 시간, 월경을 마치며 94 제4부 스미다 능소화 99 어린 들꽃을 위한 레퀴엠 100 파꽃 102 자이언트 트레발리 104 플라비아106 나의 피그말리온 108 소소한 바램110 눈과 잔설 사이에서 날이 저물다 112 은행나무 아래 그네 114 내 오월의 무등 116 들다 드니 들어 118 동백나무 아래 꽃무릇 120 시몬의 뜰에 앉아 122 스미다 124 해설 송기한 - 고향의 일상에서 걸러진 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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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이었다
달이 뜬 후에야 낡은 통통배를 밀고 바다로 향했다 대낮엔 모래 속이나 펄 바닥에 엎드려 밤을 기다리는 갈치를 닮았다 딱 한 번 흙탕물에 발이 빠졌을 뿐인데 당신의 얼룩은 평생을 따라붙었다 어둠이 더 편한 밑바닥의 생 북항의 밤은 늘 멀리서 찬란하였다 날렵한 지느러미에 주눅 든 새끼들을 싣고 밤하늘의 유성을 따라가고 싶을 때도 있었을까 은빛의 유려한 칼춤으로 자신의 바다에서 단 한 번도 刀漁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 갈라 터진 엄마의 울음이 뻘밭에 뿌려지던 날 마지막 실존이었던 銀粉마저 다 털려 유영의 꿈을 접었던 평생 들이켠 바다를 다 게워 내느라 갑판 위가 흥건했다 짠물을 다 마시고도 채우지 못한 허기 삶을 지탱하는 힘이 어쩌면 꿈을 좇는 허영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갈치 떼 가쁜 숨 몰아쉬며 눈먼 만삭의 어둠 속에서 습관처럼 살점 저며 주고 뼈만 남은 먹갈치 한 마리, 또 한 번 서툰 몸짓으로 비상을 꿈꾼다 --- 「먹갈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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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반짝이던 오색층계, 시와 시인은 제게 독배였을까요 쏟아진 후 줄곧 흘러내리는 4세로 퇴행한 몸을 붙들고 외벽이 노란 재활병원에서 몇 계절을 꾹, 꾹, 숨어 읽었던지요 꿈을 좇는 허영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먹갈치 한 마리가 어쩌면 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걷는 것이 허영처럼 요원했던 시간들 늦되고 느렸지만 끝내는 걸었고 내 짠 눈물을 받아먹고 자랐다는 듯 시는 저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복병처럼 급습했던 저의 불우와 불구를 치유해준 시가 있어 걷고 걷습니다 다족류의 슬픔이 저를 이룬 근간이었으니까요 반려일 나의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천년 목사골 배맷산 아래 들녘에 기대어 사는, 조수일 2025년 6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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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온 검은 무쇠솥에 잘 썰린 볏짚을 넣고/ 쌀겨를 켜켜이 끼얹어 소죽을 끓이는” 할머니와 “찔레꽃이 필 무렵/ 갓난쟁이 동생과 나를 데리고 미영 밭으로 향하곤” 했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바다에서/ 단 한 번도 刀漁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슬하에서 “차돌처럼 단단히 여물어 간” 그는 자라서 “바닥을 울리던 철심 박힌 군홧발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지축을 울리던 총성이 이명처럼 들려오곤”(1980년 5월의 광주 민중항쟁) 하던 아프고 힘든 금기의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 “세상을 깨우쳐” 마침내 세계를 비유로 읽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시한 시답지 않는 시 한 줄을 얻겠다고/ 돋보기 걸치고 밤 깊도록 끔벅이고 앉아/ 눈꺼풀에 얹힌 무거운 어둠을 떨쳐 내며/ 돌멩이처럼 진흙탕을 구르며/ 작부 같은 독종으로 진화 중”이다. 시에 혼신을 다해 열정을 바치는 뜨거운 시인답게 시집 속 편재한 시편들은 하나같이 향기가 짙고 돌올하다. 언어 구사가 뛰어나고 비유가 참신하며 구성은 탄탄하다. 시의 마을은 “통정하는 마을”이다. 시의 마을 지날 때 골목마다 “홍등이 호객을 하고 추파를 던져오면 모른 척 이끌려/ 정분이 나고 통정을 하고 머리칼 쥐 뜯기고 주리 틀려 멍석말이를 당해 피 철철 낭자해도/ 아프지 않을 사생아 열쯤 낳아 들소처럼 신명 나게 숨어 키우는” 야생의 시인으로 그녀가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 이재무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