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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작품 해설 - 카뮈의 《전락》: 참회와 심판의 아이러니(변광배) 알베르 카뮈 연보 |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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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정상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내 천성을 만족시켜주었습니다. 직업 덕분에 이웃 사람에게는 도통 신세를 지는 일 없이 늘 친절을 베풀어주는 편이라 그들에 대한 불쾌감도 없었습니다. 내 직업은 나를 판사와 피고 위에 서게 하여, 오히려 내가 판사를 재판하고 그로 하여금 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했지요. 그러한 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벌받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판결과도 관련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재판정 무대 위가 아니라 천장 어느 곳에 있었던 겁니다. 마치 극 중에 이따금 기계장치로 내려져 줄거리에 변화를 일으키고 뜻을 부여하는 신(神)과도 같았지요. 어쨌든 높은 데서 산다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우러러보이고 존경받는 유일한 방법임에 틀림없습니다. --- p.28
별로 중요할 것 없는 이야기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일을 잊어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게 중요합니다. 나에게는 그러나 변명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대항하지도 않고 얻어맞았지만, 나를 비겁하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뜻하지 않은 일격이었던 데다가, 양쪽에서 대드는 바람에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또 클랙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명예를 저버리기나 한 것처럼 나는 불행했습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군중의 비웃는 눈길을 받으며 차에 오르던 내 꼴이 자꾸만 눈앞에 보였어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 내가 매우 말쑥하게 푸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만큼 군중은 더 좋아했습니다. ‘얼간이’라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그런 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 p.55쪽 그날 밤 나는 센 강 왼쪽 기슭으로 해서 집으로 가느라고 퐁루아얄을 건너려던 참이었습니다. 자정이 지나 한 시였는데, 가랑비라기보다 차라리 이슬비 같은 비가 내려서 드문 인기척마저 흩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 친구와 막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었고, 필시 그 여자는 벌써 잠들어 있었을 겁니다. 좀 흐리멍덩한 기분으로 걷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몸은 가라앉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처럼 흐뭇한 피가 전신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난간에 허리를 굽히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 뒤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정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였어요. 거무스름한 머리와 외투 깃 사이로 잔득하게 젖은 목덜미가 드러나 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 p.71 나는 연극을 뒤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세인들의 그 호평을 파괴해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건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모두가 상냥스럽게 “당신 같은 사람은……” 하고 말했는데, 그러면 나는 파랗게 질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들의 존경은 일반적인 것이 못 되었기에 나는 받고 싶지 않았어요. 나 스스로가 그 존경에 동감하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일반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평판이니 존경이니 하는 모든 것을 비웃음의 외투로 덮어버리는 편이 차라리 나았습니다. 나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어디서나 내세우던 허울 좋은 마네킹의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을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기 위해서, 그것을 부수고자 했던 겁니다. --- p.95 나는 모든 사람의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초상화를 만들어냅니다. 말하자면 그건 하나의 가면인데, 사육제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아주 흡사하지요. 여실하면서도 단순화된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이것 보게,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녀석인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저녁처럼 초상화가 다 되면, 나는 그것을 보이고 비탄을 금치 못하며 “이것이 내 꼴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논고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동시대인들에게 보이는 초상화는 거울이 됩니다. --- p.139~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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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 작품은 운하와 회색빛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파리의 전직 변호사였던 클라망스가 끝없이 늘어놓는 ‘계산된 고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덕망 있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항상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닌 채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또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요컨대 파리에서 변호사로서 ‘양심상의 평화’를 만끽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클라망스가 파리에서 누렸던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만족스러웠던 삶과 ‘양심상의 평화’는 센 강의 퐁데자르를 건너던 중 듣게 된 정체 모를 웃음소리로 인해 급변한다. 그에 따르면 이 웃음소리를 들었던 순간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웃음소리는 그가 파리에서 직접 겪었던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문제의 웃음소리를 듣기 2~3년 전에 센 강의 퐁루아얄 위에서 이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굽어보고 있던 한 젊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 젊은 여자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지만 곧 이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 소리와 이 여자의 비명이 잦아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결국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고 판단하고 길을 계속 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후일 변호사 클라망스의 명성을 더럽히는 얼룩이자 오점이 되고 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어린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퐁데자르 위에서 들었던 정체 모를 웃음소리는 바로 그들로부터 오는 비난어린 심판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그는 ‘정상’에서 ‘지옥’으로 ‘추락(chute)’을 점차 경험하게 된 것이다.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통해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에 보이는 반응과 태도이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잘못이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할 몫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카뮈가 《전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실제로 카뮈는 《전락》 에 “우리 시대의 영웅(Un heros de notre temps)”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참회자’의 자격으로 자신을 먼저 심판대에 올려 심판하고 참회하는 클라망스, 그리고 ‘재판관’의 자격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자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면서 그들에게 ‘초상화-거울’을 내밀면서 반성을 단호하게 촉구하는 클라망스는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불려 마땅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