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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전락

작품 해설
알베르 카뮈 연보

저자 소개2

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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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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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대학교 문학부에서 D.S.C.F. 학위를 획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 『페스트』, 『안과 겉』, 로멘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사전꾼들』, 르 클레지오의 『홍수』 외 『카르멘』, 『독서론』, 『회색 노트』, 『암야의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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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140*210*20mm
ISBN13
9788931026009

책 속으로

브라질의 강에 사는 조그만 어족(魚族) 이야기는 물론 들어보셨겠지요? 멋모르고 그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에게 떼로 달려들어 쏙쏙 쪼아서 삽시간에 해골만 새하얗게 남겨놓는다는 물고기 이야기 말입니다. 저들의 사회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청결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모든 사람처럼?” 하고 물으면, 물론 “네” 하고 대답하지요.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좋아. 너를 깨끗하게 처치해주마. 자, 직업이다, 가족이다, 정기 휴가다.” 그러고
는 조그만 이빨들이 살을 물어뜯어 나중엔 뼈만 남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선 공정하지 못하군요. 저들의 사회라고 말할 게 아니지요. 그건 결국 우리 사회의 조직이니까요. 누가 먼저 남을 청산하느냐?
--- p.11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길에서 득실거리며 집들과 운하 사이의 좁은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그들, 안개와 차디찬 땅과 잿물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그들을 나는 사랑합니다만, 그건 그들의 존재가 이중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기에 있으면서 딴 곳에 있는 겁니다.
--- pp.16-17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허영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나, 나, 나, 이 ‘나’라는 말은 내 알뜰한 인생의 후렴 같아서,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 말이 들렸답니다. 나는 자랑을 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특히 나의 숨은 재주인 그 겸양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할 때는 더 그랬습니다.
--- p.51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혀 자랑거리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치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요구하던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섬기도록 동원해 어느 날이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끔, 말하자면 그들을 냉장고 안에 넣어두던 그 시절을 생각할 때 나의 가슴속에 일어나는 야릇한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치감이 아닐는지요? 수치감이란 게 좀 화끈거리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아마 그와 같은 감정일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명예에 관련된 쑥스러운 감정의 하나일 겁니다.
--- p.71

나는 우뚝 발길을 멈추었습니다만 뒤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동시에 비명이 들렸는데, 연거푸 몇 번 꼬리를 끌며 역시 강물을 따라 흘러내리더니 뚝 끊어져버렸습니다. 갑자기 얼어붙은 듯한 어둠 속에 그 뒤를 이은 침묵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달려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습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지만, 아마 ‘이미 늦었다. 너무 멀어……’라든가, 그 비슷한 생각이었을 거예요. 나는 그대로 얼마 동안 귀 기울이고 다가 비를 맞으며 종종걸음으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 p.73

친구들이 그렇게 칭찬해주던 명쾌한 말솜씨는 이제 없어져버렸어요. 친구들이라지만 그건 그저 원칙상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친구도 없어졌습니다. 공범자들이 있을 뿐이에요. 그 대신에 수효는 늘었습니다. 인류 전체가 공범자들이니까요. 인류에는 우선 당신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나 첫 번째입니다.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극히 간단합니다. 언젠가 친구 녀석들을 곯려주려고, 말하자면 친구란 녀석들을 벌하기 위해서 자살할까 하고 생각했던 날,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누구를 벌한단 말입니까? 어떤 자들은 놀랄 테지만, 아무도 벌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요. 설령 친구가 있었다 해도 그다지 나을 게 없었을 겁니다.
--- p.76

여태까지의 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에게 무엇이 왔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혐오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에, 내가 염증을 느끼게 된 건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섭니다.
--- pp.78-79

나는 효과적인 역할로써 총명한 체, 덕스러운 체, 선량한 시민으로서 분개하기도 하고 관대하기도 한 체, 협동 정신을 발휘하고 남의 모범이 되는 체했지요……. 그만해두겠습니다. 요컨대 이미 아셨겠지만, 거기 있으면서도 거기에 없는 네덜란드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차지한 내 자리가 가장 컸을 때, 나는 살아 있지 않은 셈이었어요.
--- p.90

그렇다면? 그러니 신의 유일한 효용성은 무죄 결백을 보증하는 일이고, 종교라는 것을 나는 일종의 대대적인 세탁으로 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만, 잠깐 동안, 고작 삼 년간의 일이었고, 또 종교라고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뒤 비누가 부족해서 우리의 주제는 더러워지고 모두 서로 욕지거리를 하는 판이지요. 모두가 하찮은 놈이요 벌 받아 마땅한 놈이라, 얼굴에 침이나 서로 뱉고 어서 고난실로 처박힐 수밖에 없죠! 누가 먼저 침을 뱉느냐, 문제는 그뿐입니다. 큰 비밀을 하나 가르쳐드리지요. 여보세요, 최후의 심판일랑 기다리지 마세요. 그건 매일처럼 있는 일이에요.
--- p.113

진정한 이유는 그 자신이 완전히 결백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서 규탄받던 과오의 짐을 짊어지고 있진 않았지만, 뭔지 몰라도 그는 다른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가 그걸 몰랐을 리가 있습니까? 결국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 이야기를 틀림없이 듣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부모가 그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있을 때 학살당한 유대 나라의 어린이들이, 그의 탓이 아니라면 왜 죽었겠습니까?
--- p.114

이제는 연민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누구나 연민을 부르짖기를 그칠 줄 모릅니다. 다만 아무에게도 무죄의 판결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무죄란 건 말살해버리고, 심판관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요. 온갖 종류의 심판관들, 그리스도의 편에 또는 그 반대편에 서는 심판관들 - 그런데 고난실에서 서로 화해가 성립되어, 결국 같은 패입니다. 기독교도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거기 뛰어들었어요.
--- p.118

자유란 무슨 포상 같은 것도 아니고, 샴페인으로 축하하는 훈장 같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어요. 또 무슨 선물이나, 입술을 즐겁게 해주는 달콤한 과자 상자도 아니라는 것을. 아니고말고요. 반대로 자유는 고역이지요. 참으로 외롭고 진력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샴페인도 없고, 다정스럽게 마주 보며 술잔을 들어줄 친구도 없습니다. 침울한 방 안에서 외로이, 재판관들 앞좌석에 홀로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심판 앞에서 홀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모든 자유 끝에는 판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자유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지요.

--- p.134

출판사 리뷰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며
인간의 폭력과 모순을 생생히 투영한 에세이적 소설

《전락》은 카뮈의 소설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과 복잡하고 난해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동시에 받는다. 소설, 희곡, 철학적 에세이의 성격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카뮈의 만학과 사유를 뚜렷하게 보여주며,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카뮈의 가장 오랜 문학적 벗인 장 폴 사르트르는 《전락》을 두고 “카뮈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덜 알려진 작품”이라고 말하며, 실존주의자로서 삶와 인간성을 깊게 탐구한 이 소설을 극찬했다.

《전락》은 카뮈의 사상적 전환을 보여주는 결정적 작품이다. 《이방인》이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전락》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 인간의 반응과 태도를 보여준다. 클라망스는 세계의 부조리 앞에서 저항하기보다, 자신이 부조리의 중심임을 깨닫고 붕괴한다. 그는 “나는 재판관이자 죄인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인간이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죄의식을 드러내고 그렇게 인간을 비윤리적으로 몰아가고 만 세계를 비판한다.

죄의식과 자기 기만의 미로
카뮈가 그린 ‘무고백의 고백’, 윤리의 허위를 해부한 내면의 재판

소설은 운하와 회색빛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파리의 전직 변호사였던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가 늘어놓는 고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덕망 있는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밤 파리의 센강에서 여자가 강물에 투신한 소리를 듣고도,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며 여자를 구하러 돌아가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이 사건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했다는 비난과, 사회인으로서 그가 쌓아온 명성을 무너뜨릴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한다. 이렇게 그의 내면은 무너져 정상에서 지옥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소설의 가장 깊은 역설은 클라망스가 ‘심판자이자 참회자’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을 죄인으로 선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죄를 근거로 타인을 단죄한다. 그는 자신을 먼저 고발함으로써 심판의 자격을 얻었다고 믿지만, 그 심판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타인을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을 희석하려 한다. 타인의 죄를 폭로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자기 구원의 실패를 보여주는 ‘역설의 독백’이다. 카뮈는 이 구조를 통해 도덕적 위선과 인간의 자기기만을 철저히 해부한다. 그리하여 《전락》은 단순한 회심의 이야기나 인간 타락의 풍자가 아니라, ‘무고백의 고백’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을 창조한다. 카뮈는 이 소설로 인간 내면의 윤리적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한편, 도덕의 본질까지 재정의하는 근대 문학의 독창적 실험을 완성했다.

누가 잘못을 저지른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
도덕이 붕괴된 시대의 윤리를 다시 묻다

《전락》은 20세기 중반 유럽의 도덕 붕괴와 실존적 공허를 비추는 거울이자 경고문이다. 클라망스는 죽어가는 이를 외면한 죄책감에 무너지고 마는데, 이 붕괴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전락을 상징한다. 그는 모두를 대신해 죄를 고백한다고 이야기하며 인류의 대변인을 자임하지만, 그 고백은 결국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 이는 카뮈가 말하는 ‘신 없는 시대의 인간’의 초상이다.

카뮈는 클라망스에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대 인간이 지닌 부도덕과 모순을 담고자 했다. 부도덕을 저질러 전락하는 클라망스의 모습은, 부도덕한 시대를 겪으며 자의에 상관없이 타락해가는 여느 문명사회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카뮈가 살았던 20세기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대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간이 절망으로 얼룩진 세계를 살아가며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카뮈는 클라망스에게 ‘재판관-참회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부여해 20세기 인류에 관한 성찰과 반성의 결과를 제시하려 했던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인간이 ‘추락’의 피해자이자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카뮈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할 수 있으며,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가 폭력의 주범이자 피해자라는 묵직한 이야기를 강렬하게 건넨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여운과 철학적 질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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