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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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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역사상으로 알려진 약 30회에 걸친 대대적인 페스트가 약 1억의 인명을 앗아갔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억의 사망자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쟁 중 한 사람의 사망자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의 죽음이란 죽는 것을 누가 봤을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역사를 통해서 뿌려진 1억의 시체라는 것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 p.48 “제 얘기는 아닙니다만, 좀 잘 들어보십시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있었어요. 한 불행한 사나이가 어느 날 아침에갑자기 체포를 당했습니다. 남이 그의 일에 참견하고 있었는데,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관청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퍼져서 카드에 이름이 올려졌지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한 인간에 대해서 그런 짓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p.68 그때에 그들의 용기와 의지, 그리고 인내의 붕괴는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그들 스스로 영원히 그 수렁에서 다시 기어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워질 시기를 결코 생각지 않고, 이제는 더는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말하자면 늘 두 눈을 내리깔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 그들은 그 심연과 정상의 중간 지점에 좌초되어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돌면서 기약 없는 그날그날과 메마른 추억 속에 몸을 맡긴 채 스스로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기를 수락함으로써만 힘을 얻을 수 있는 방황하는 망령이 되었다. --- pp.83-84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추상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100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 일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그것은 나의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p.180 시민들은 굴복했고 흔히 말하듯 거기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아직 불행과 고통의 태도가 있었지만, 예리하게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한 예를 들어서 의사 리외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불행이며, 또 절망에 젖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00 아! 인간은 인간 없이 지낼 수 없으며, 자기도 이제는 그들 불행한 사람들과 같이 속수무책의 신세이고, 그들 곁을 떠나고 나면 가슴속에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떨리는 동정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었다. (211 내가 체포되고 나면 이것을 하겠다고요? 체포는 하나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반면에 페스트는…… 내 생각을 말할까요? 그들은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으니까 불행한 거예요. --- p.217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 p.229 물론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고, 또 대체로 그 둘 사이의 구별은 쉽사리 된다. 그러나 악의 내부 세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명백히 필요한 악이 있고, 또 명백히 불필요한 악이 있다. 지옥에 빠진 돈 후안과 어린애의 죽음을 보면, 탕아가 벼락을 맞아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린애가 고통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어린애의 고통과 그 고통에 따르는 혐오, 그리고 거기에서 찾아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보다더 중요한 것은 이 땅 위에 아무것도 없다. --- p.245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꼭해나가며,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비록 인간을 구원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되도록 해를 덜 끼치고 때로는 약간의 선을 행하도록 해줄 수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p.275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피곤해하지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다소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안 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해방구가 없는 극도의 피로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죽이는 것을 단념한 그 순간부터 나는 결정적으로 추방당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p.276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몇십 년간 가구나 속옷들 사이에서 잠자고 있을 수가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헌 종이 같은 것들 틈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일러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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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포착한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인간애 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세계가 겪었던 도덕적 붕괴와 실존적 불안을 압축한 소설이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알제리 오랑에 취재차 머물다가 페스트가 창궐해 도시에 갇힌다. 고통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폐쇄된 도시에서는 극한 상황에 처한 갖가지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본성이 드러난다. 랑베르는 오랑 시민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과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무관심할 수 없는 윤리적 부조리 사이에서 번뇌한다. ‘페스트’는 곧 파시즘과 전체주의, 인간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도덕적 전염, 세계의 부조리함 등으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상징이다. 카뮈는 랑베르의 입을 빌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인간 존재의 의의를 묻는다. 이러한 주제 의식에는 당대 철학·문학의 사조였던 실존주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카뮈는 ‘부조리의 윤리’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놓지 않는 ‘반항하는 인간’을 제시해 실존의 의미를 제기한다. 재앙의 도시에서 인간 존엄의 최후 보루를 그리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성과 연대 소설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도시 오랑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거리 곳곳에서 죽은 쥐들이 발견되고, 이어 사람들에게 괴질이 퍼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일시적 현상으로 여겨졌으나, 곧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심각한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도시 전체가 봉쇄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마로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와중에 외부와의 연락마저 끊기자,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공포와 무기력에 빠진다. 이 재앙의 한가운데서 카뮈는 여러 인물을 등장시켜, 부조리를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연출한다. 주인공인 랑베르는 파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연인과 재회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고통받는 시민들을 보며 윤리적 문제로 고뇌하다 오랑에 남아 다른 이들과 함께 방역 활동에 참여하기로 한다. 의사 리외는 이성을 잃지 않고 환자를 돌보며, 의사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한다. 신부 파늘루는 처음에는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하지만, 무고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신의 뜻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일반 시민인 타루는 어떤 명분도 없이, 단지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싸운다. 절망 속에서도 연대와 행위를 택하는 이, 신념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 개인적 욕망과 공동체적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 등, 《페스트》의 다양한 인물상은 부조리를 인식한 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뚜렷하게 드러낸다. 페스트가 끝나갈 무렵, 도시에는 일시적인 환희가 찾아오지만 리외는 그 기쁨이 허망함을 안다. 그는 말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헌 종이 같은 것들 틈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언제고 인류의 행복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334쪽). 이 결말은 악과 부조리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그러나 카뮈는 그 결말에 “인간에게는 경멸당할 것들보다도 찬양받을 것이 훨씬 더 많다”라는 말을 함께 넣어, 이 재앙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 간의 연대가 필요함을 상기한다. 부조리 앞에 무너질 것인가, 그에 맞서 실존할 것인가 카뮈 철학의 정수, ‘반항하는 인간’의 초상 《페스트》는 카뮈 철학의 핵심 개념인 ‘부조리’와 ‘반항’을 소설로 구현한 작품이다. 카뮈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모순을 안은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합리적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하지만, “세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337쪽). 부조리란 인간의 합리적 욕망과 세계의 몰이해가 충돌하며 생기는 모순이며, 인간이 세계를 살아가며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페스트》의 오랑은 바로 그 부조리가 집약된 현장이다. 인간은 질병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죽음을 기다리거나 싸워야 한다. 하지만 카뮈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인식하고, 그 부조리에 맞서며 자신의 의지를 펼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실존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부조리를 회피하는 대신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바로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다. 카뮈는 무의미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며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연대를 윤리의 새로운 기반으로 제시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넘어 페스트에 맞서기 위해 하나 되어 행동한다. 카뮈에게 연대는 감정적 동정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을 함께 인식하고 공동으로 맞서는 윤리적 결단이다. 인간은 홀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완성한다. 오늘날 《페스트》는 단순한 전후 문학의 산물이 아니라, 팬데믹 이후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바이러스와 정보의 과잉, 무관심과 혐오가 뒤섞인 현실 속에서, 카뮈의 말은 여전히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자신과 세계를 성찰하고 서로의 고통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재앙과도 같은 세계에 반항하며 품격 있는 인간으로서 실존할 수 있다. 《페스트》는 카뮈가 말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인간의 연대이며, 그가 문학으로 남긴 강렬한 윤리적 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