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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거미여 너는 행복한가 들길을 지나면 풀물 자갈길을 지나면 핏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왜 홀로 허공에 집을 짓느냐 보통으로 사는 일이 보통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이러느냐 바람이 불면 출렁이는 비단 무늬 맨몸으로 그물을 짜는 일이 배고픔보다 배고픔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희망인가 투쟁인가 비워도 채울 수 없는 공복을 위하여 목을 매달고 참선하는 아침 이슬처럼 미련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화두다 지난여름 홍역을 앓다 죽은 미루나무의 꿈을 길동무 삼아 지평선이 연주하는 자장가를 들으며 때로는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해 질 녘 저녁놀이 금빛으로 튀어 오르면 무리 지어 둥지를 떠나는 철새의 오랜 그리움이 날개보다 가볍구나 물을 따라 걷는 사람은 물을 건널 수 없으리 바람에 한 겹씩 살이 닳아지는 소리 들으며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자유를 얻기 위하여 생존을 위한 도박을 꿈꾸는 것이 이다지 죄가 되느냐 풀 수 없는 매듭은 잘라버리고 비겁함도 당당히 재산으로 맞으리라 홍수 같은 생각을 떠밀고 가는 실개천 여린 풀잎의 상처를 생각하며 바쁘게 사느라고 여위어진 어깨를 이제는 다만 물소리로 들으리라 무능한 겸손은 사기에 가깝다지만 목매달고 죽을 허공도 없으면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어 하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거미인가 --- 「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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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길 시인의 시집 『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가 시작시인선 0324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입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시인의 첫 시집 『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는 미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적 감각이나 사유의 일반적 과잉을 제어하면서 시적 긴장감과 균형감을 획득하는 것은 이번 시집의 주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시인은 역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감각적 언어로 승화시키면서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시 쓰기를 보여 준다. 해설을 쓴 이형권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정영길 시에서 역설이란 “속악한 현실에서 얻은 상처에서 자연적, 우주적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정신의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시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순수한 자연의 세계로서, 속악한 현실을 넘어선 우주적 율려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는 개인적, 역사적 상처로 얼룩진 삶 자체가 시의 모티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음에도, 시인에게 이러한 상처는 고통이나 슬픔의 표상으로 남아있지 않다. 외려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역설적 에너지로 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깊이 침잠하는 성찰의 시간과 마주하게 해준다. 이때 고독은 비로소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응시하도록 하며, 시인으로 하여금 삶의 상처를 눈부신 승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오세영 시인이 추천사에서 언급했듯이, “시의 배면에 항상 촉촉한 우수의 미학이 어려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청춘의 간절한 바람 소리가 아프게 들리기도 하고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자의 반성의 목소리가 묻어 나오기도 하”는 이유도 시인의 고독이 빚어낸 시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인의 강렬한 의지와 새로운 삶을 향한 꿈은 자연 세계에 도달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가 노래하는 자연의 세계는 전원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에게 자연이란 이형권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탈속의 경지에서 우주적 율려를 듣는 영혼의 거처”로서, “노장 사상의 무위無爲적 세계”와 다르지 않다. 요컨대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은 속악한 세상의 경직된 질서를 넘어 순수 영혼의 세계로 가 닿는 시의 여정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시인의 말 지정지정하다가 시집을 낸다 노래도 잘 못 부르는 가수가 기타까지 치는 격이다 나의 잔은 작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잔으로 마시리라 이 말로 위안을 삼고 싶다 고인이 된, 집을 잘못 찾아간 몇 놈도 품으로 데리고 왔다 땀 흘리며 산을 오르고 난 뒤에 몸이 쇄락해지는 것처럼 내 시에서 정신의 비린내를 씻어내는 솔바람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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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길의 시는 바닷가 모래밭에 버려진 한 알의 깨진 보석 알 같다. 그 보석은 먼 수평선을 향해 끝없는 열망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 자신 결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의 배면에 항상 촉촉한 우수의 미학이 어려있는 이유이다. 키에르 케고르였던가? 인간은 지상도, 하늘도, 아닌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 같은 존재라고 했던 것을…… 정영길 또한 스스로 ‘날개도 없이 공중에서 살아야 하는 거미’라고 했다(「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 나는 그의 시에서 한 허무주의자의 영원에 대한 슬픈 동경을 본다. - 오세영 (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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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중반 나는 정영길 형의 주머니에서 나온 적지 않은 술값으로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다. 형은 일찍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되었으나 시인의 길에서 일탈해 오래 교수로 지내왔다. 그의 시가 외로웠을 것이다. 이 시집은 그 외로움을 다독이는 “빈집의 불빛”이며 “하염없이 땅 밑으로 아픈/ 새끼손가락”이다. 청춘의 간절한 바람 소리가 아프게 들리기도 하고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자의 반성의 목소리가 묻어 나오기도 한다. 한 시인의 생이 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발목이 시큰거린다. 정영길, 외로웠으므로 이제 시인이다. - 안도현 (시인,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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