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 하지 않았다. 그런 다짐 하지 않아도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이렇게 농땡이 부리며 설렁설렁 사는 지금의 내가 좋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하고 싶지만,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뒤로,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숨 좀 돌리고 여유 좀 갖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또 열심히 하지 못하고 말았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 p.19
드디어 당일. 모처럼 산 거액(?)의 옷을 입고 드라이를 하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착한 원장님이 메이크업도 무료로 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원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가면 되겠네요?”
헉.
“이거…… 입고 갈 건데요.”
“네에?”
--- p.21~22
여권을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사진은 관심 밖이었다. 지문 인식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지문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닳아서 반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서글프네. 이제 골무라도 끼고 일해야 할까. 남은 지문이라도 보존하게.
모처럼 나갔다가 쭈글한 기분으로 돌아와서 지문 얘기를 했더니 정하가 이렇게 말했다.
“우와, 지문이 닳을 정도로 번역을 했다니 엄마 번역 장인 같네. 간지 난다.”
--- p.25
큰마음 먹고 산 러닝머신은 열 번도 쓰지 않고 관상용 철조물로 있다가 구청에 무료 수거를 신청해서 처치했다. 인터넷에서 반짐볼로 다이어트 성공했다는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한 반짐볼은 다이어트는 되지 않고 반짐만 되었다.
--- p.40~41
하루도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은 날은 없지만, 자식에게 시키고 싶은가? 하면 글쎄다. 엄마 찬스로 쉽게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남으려면 실력과 근성이 있어야 한다.
--- p.46
정부에서, 혹은 협회에서 때 되면 돈 올려주는 업계는 정말 행복한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소심하게 몇 년에 한 번쯤 500원(원고지 장당) 올려달라고 말을 꺼내서 올려주면 올라가는 것이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어서요” 하고 출판사에서 죽는 소리하면 “아, 그렇죠” 하고 물러서는 것이다.
--- p.50
목욕탕집 딸이었던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때(?)돈 버는 집이어서 책을 마음껏 사본 덕분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얻게 됐다고 애써 미화해본다.
--- p.76
보통은 원서 제목이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더러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확 바꾸어서 낼 때도 있다. “번역가는 제목을 왜 이따위로 번역했을까” 하는 서평을 가끔 보지만, 제목은 100퍼센트 출판사에서 정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도 ‘제목을 왜 이따위로 정했을까’라고 속으로 욕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제목을 정할 때 역자의 의견은 그리 반영되지 않는다. 역자가 “제목 너무 별로예요”라고 말해봐야 1그램의 무게도 더해지지 않는다.
--- p.77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 누군가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알고 오역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 지적받기 전까지는 바른 번역의 탈을 쓰고 있다. 오욕의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튀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 p.89
구로다 씨는 자유로운 문학 생활을 위해 20대에 교직을 버리고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설 쓰기만 했다고 한다. “수상의 기쁨을 누구에게?”라는 질문에 가족이 없어서 아무하고도 나눌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외롭겠다는 생각보다 문학에 대한 지독한 혹은 고집스런 사랑이 느껴졌다. 그 세대 사람이 결혼도 하지 않고 소설만 쓰며 사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 p.110
가장 기쁠 때는 좋은 작품 의뢰가 들어올 때고, 보람을 느낄 때는 딸이 엄마가 번역가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다. 번역가가 되려면 원서 한 권 뚝딱 읽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쓰기. 번역가가 꿈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돈을 많이 벌긴 어렵지만, 경력이 책이 되어 쌓이는 좋은 직업이랍니다.
--- p.117~118
평소에도 사람들이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라고 하면 “그죠”라고 대답하는 재수 없는 화법의 나. 앞으로는 누가 빈말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혹은 “아이,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하고 겸손하게 대답해야지, 굳게 다짐했다. 어렸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을 너무 늦게 깨닫긴 했지만, 더 늦으면 치매로 보일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원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세상이 된 뒤로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겸손한 대화를 나눌 일이 없네.
--- p.122
오가와 이토 씨는 특이하게 명함이 없다. 휴대폰도 없다. 그리고 동행한 신초샤 편집자가 귀띔하기를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싫어해서 “오가와 씨”라고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고. 아, 딴 얘기지만, 이 편집자는 엑소 덕후였다. 내가 국카스텐 굿즈인 팔찌를 보여주었더니, 편집자는 엑소 굿즈인 휴대폰 그립톡을 보여주었다. 만찬장에서 뜬금없이 서로의 덕질 이야기를 했다.
--- p.127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나왔을 때, 엄마한테 내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책과 사은품인 손거울을 갖고 가서 보여주었다. 10년 전 『번역에 살고 죽고』가 나왔을 때의 무표정과 달리 엄청나게 대대적인 반응이었다. 이유는 딸이 책을 내서가 아니라 신문에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였다. 탤런트 같다고 좋아했다. 전문가의 메이크업과 보정 덕에 연예인 사진 못잖게 나왔으니 엄마가 좋아할 만도 하다. 딸은 딸인데 딸이 아닌 딸의 사진.
“아이구야, 이걸 누가 쉰다섯 살이라 하겠노.”
보정 혹은 포샵이란 걸 설명하려면 너무 머나먼 길을 가야 하므로 “그치~” 하고 말았다.
--- p.139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 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 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 p.169
친구들 만나러 나가는 취준생 정하에게
“가서 신세 한탄하지 말고 술 마시고 울지 말고.”
그랬더니, 피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개그 담당이야. 춤도 춰주고.”
오늘도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 p.175
예닐곱 살에 한글을 깨친 뒤로 활자에 빠진 나는 주로 옆집인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아직 세상에 그림책, 동화책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집에 책이라곤 언니와 오빠의 교과서뿐이었다.
--- p.186
엄마랑 친한 동네 할머니가 허리 수술을 해서 병원에 한 달 넘게 있다가 퇴원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여 아들 집으로 갔다. 과연 아들 집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느리가 도우미 하나 붙여서 돌려보냈다……는 얘기를 엄마가 전화로 해주었다.
“그래, 그 할머니 거동하기도 불편하고 연세도 많으니 도우미가 있어야겠지.”
그랬더니 엄마가 발끈했다.
“나이가 뭐가 많아, 나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어무이 여든일곱,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 p.200
우리 개가 아무리 물지 않고 아무리 착해도 누구네 집 개나 언젠가는 떠난다. 어떻게 이 귀여운 것이 죽을 수가 있지, 어떻게 세상에 없을 수가 있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날은 오고 말았다. 14년 동안 1분 1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는 나무가 떠났다. 24시간 고급 인력(나)의 시중을 받으며, 언니의 호들갑스런 사랑을 받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잘 살다가 떠났다.
---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