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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하지 않아도 될까에 대한 답] 늘 걱정의 연속인 우리에게 답을 주는 이야기. 당장 무언가를 급히 하지 않아도 '가난하지 않은 마음'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소유와 소비에서 조금만 벗어나 자신을 움직이면 한 결 더 평온해진다고. 그렇지만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이나마 무언가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저자의 태도가 생생히 느껴지는 책. - 에세이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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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수렵채집인의 후예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011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 021 일력 035 일어나서 웃겨봐 048 오후 3시의 빛 057 내가 때린 할아버지들 061 모녀전철 073 겨울처럼 쌓이는 096 완벽한 비극에 대하여 105 2장 열혈우정인의 삶 친구 발견 113 파더스 어드벤처 127 엄마와 한 달 살기 (1) 153 엄마와 한 달 살기 (2) 164 겨울이 없는 집 176 엄청나게 차갑고 믿을 수 없이 뜨거운 181 달팽이 이야기 186 나의 코미디언 197 3장 삶이 유랑하는 순간 최초의 만찬 211 윤 수사관을 기다리며 222 언어에 대한 변 228 베스트 워먼 윈즈 232 주치의를 위하여 249 두 남녀 258 노민정 씨, 당신을 신고한다 268 4장 가난해도 화려할 권리 아감, 나에게 구멍을 뚫어준 남자 277 One Tinder day 291 아직은 잘리지 않았다 295 바이브 306 여름의 도매상 316 환절기 324 홈리스 327 |
저양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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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앞에 있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푸성귀를 심었다. 싹을 틔워보려고 씨앗도 샀다. 상추며 깻잎이며 쑥갓이나 겨자채며 바질도 심었다. 비 소식이 잦아서 물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쑥쑥 자랐다. 잘 자란 잎을 마당에서 바로 따와서 씻어다가 현미밥에 생양파와 두부, 된장을 곁들여 쌈 싸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하고 신선하고 아삭거리는 맛이 꼭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비건 지향인으로 산 지 2년이 넘었지만 야채에 밥을 싸 먹을 때면 세상에 내가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사흘에 한 번씩 집 앞으로 수박이 도착했다. 여름이 왔다는 뜻이다. 냉장고에 시원한 수박이 없는 여름은 추방이다. 슬슬 봉숭아를 심을 시기가 다가온다. 나에게 여름이란 봉숭아물을 들인 손끝이다. 손톱이 자라나서 빨간 봉숭아물이 위로 위로 올라가 결국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꼭 천천히 해가 지는 것 같았다. 봉숭아꽃이 필 때마다 따서 모아두었다가 ‘오늘인가?’ 싶으면 돌절구에 백반을 넣고 꽃을 찧었다. 달이 통통하게 살찐 밤이었다. 손톱 위에 이겨진 꽃잎을 얹고 랩으로 싸고 실로 돌돌 감아 리본을 묶었다. 함께 물들일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혼자서 열 손가락을 다 묶을 수 없어 이틀에 나눠 낑낑대며 물을 들였다. 다음 날이면 살인마처럼 손발이 빨갰다. 손톱 가득 빨간 석양이 타올랐다. 여름이 한창이었다. --- p.18~19,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중에서 팥빙수가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삶은 팥 통조림을 샀다. 작년에는 직접 팥을 사다 불려서 팥 앙금을 삶느라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올해는 용의주도하게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팥 통조림은 업소용밖에 판매하지 않아 가장 작은 게 축구공만 했다. 집에서 팥빙수를 해 먹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빙수를 열 번도 더 해 먹어도 남을 것 같아서 먹을 만큼만 덜고 나머지는 나누기로 했다. 먹을 것과 나눌 것을 잘 소분해서 담고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 글을 올렸다. 보존제가 들어가지 않은, 방금 개봉한 신선한 팥입니다, 하고 적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지금 빵을 먹고 있던 참인데 발라 먹고 싶다고 나눔을 신청했다. 금방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가장 절실해 보이는 두 명과 만나기로 했다. 수영을 하러 가는 길에 얼려둔 팥 봉지를 들고 나갔다. 땡볕에서 사람들이 내가 줄 팥을 기다리고 있었다. 팥이 든 봉지를 건네고 멀찍이서 인사를 주고받았다. 마스크 위로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으로 보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냉동고에 꽝꽝 얼려둔 두유를 절구로 매우 쳐서 잘게 부쉈다. 거기에 팥 두둑이 덜고 시럽 조금과 콩가루를 아낌없이 부었다. 팥빙수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여름의 별미다. 두유로 만들어도 매우 맛있는데 아무도 그렇게 만들어 팔지 않아 직접 해 먹어야 한다. 얼얼하고 달큰하고 고소한 빙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릇 위로 숟가락이 정신없이 오갔다. 참 내, 벌써 몇 달째야.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여전히 뭘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안 나네. 나는 생각했지만, 당장 앞에서 팥빙수가 녹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팥빙수. 함께 나눠 먹는 팥빙수.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 --- p.20~21,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중에서 복스럽게도 1년여 만의 폭설이 찾아온 날, 나는 저 네 가지를 비호하며 이사를 강행했다. 전날 밤 가장 아끼는 차를 꺼내 우려 마시며 정든 집과 작별 의식을 하고, 찻주전자와 찻잔을 뽀독뽀독 닦아 뽁뽁이로 싸두었다. 1인용 돌침대와 1제곱미터 크기의 벤저민 나무가 있음을 이삿짐센터에 미리 일러두고 추가 금액은 15만 원으로 쇼부를 봐둔 상태였으며, 아주 객관적인 통계에 의거하여 우리 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모(친구)를 고양이 담당으로 섭외해놓기도 했다. 몇 개월간 회사와 부동산을 오가며 저녁마다 집을 보러 다니고, 돈을 꿔 전세 계약금 5퍼센트를 현금으로 마련하고, 주말마다 집을 단장하고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반차를 몇 번이고 내가면서 대출 심사를 받고, 이사 비용을 마련하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겪으며 깨달은 것은 명료했다. 가난한 솔로 여성에게 이사란 명을 축내는 일이구나. 이사를 자주 하지 않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이사 비용을 갚는 데는 그 후로도 꼬박 1년이 걸렸다. --- p.36~37, 「일력」 중에서 노동운동에 청춘을 바치고, 삶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보낸 나의 어머니 김한영 여사는, 내가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걱정할 것 없어. 공장에 취직해!”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생산만큼 숭고한 노동은 없다. 실제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사람의 손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은 어떤 노동보다 정직하고 뜻깊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평생을 공장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가 나의 가능성을 그 정도로 평가한다는 것이 무척 슬펐다. --- p.40, 「일력」 중에서 다음 모임에는 이 코미디언의 쇼를 같이 보는 것으로 할까요?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말했다. “오늘 이걸로 끝인가요?” 그러자 방 안에 갑작스러운 정적이 깔렸다. 그게 내가 40분 만에 했던 첫 마디였기 때문이다. “무대 안 하나요? 저는 그런 줄 알고 준비해왔는데.” 사람들은 일제히 웅성거렸다. 네? 오늘요? 하지만 대본도 쓴 게 없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내가 말했다. “10분 정도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해볼까요? 지금 수다 떨듯이 한 사람당 딱 3분씩만요.”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로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친목 모임은 싫어서요.” 이것을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펀치 라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배운 게 그거였다. 가장 오래 속했던 모임인 글방에서 유일하게 요구했던 것이 모임에 글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의당 코미디 모임의 지참금은 코미디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당연히 충격으로 질렸다. 방 안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 p.53~55, 「일어나서 웃겨봐」 중에서 하여튼 그날 웃긴 얘기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슬프고, 이상하고, 진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 그제야 무대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보였다. (...) 마주 보고 했으면 당황스럽거나 눈물이 났을 이야기가 일어나서 했다는 이유로 너무 웃긴 얘기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우리가 웃으면 꼭 무언가가 승화되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보호해주는 어떤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 최초의 공연이 시작되었고, 최초의 관객이 되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풀었다. 바로 앉아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코미디가 시작된 것이다. --- p.55~56, 「일어나서 웃겨봐」 중에서 환승로를 덜렁덜렁 걷고 있는데 어떤 대머리의 할아버지가 빠르게 내 옆으로 바싹 따라붙더니 별안간 내 팔뚝을 만지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양손으로 팔뚝을 찰흙처럼 주물주물거리더니 앞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누가 보면 마치 내 팔뚝과 예약된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떠난 사람 같았다. (...) 3초 후에야 사태를 파악했다.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팔을 돌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그 사람이 주무르던 팔이었다. 마치 정월대보름에 쥐불놀이를 하듯이 오른팔을 허공에 마구 돌렸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달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주어 그 뒤통수를 내리쳤다. 누군가를 때려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 살면서 그렇게 달려본 적도 처음이었다. (...) 긴 계단을 오르고 지하철 플랫폼의 맨 끝까지 질주해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긴 후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 p.67~68, 「모녀전철」 중에서 수영에 서투른 나는 수영장에서의 시간이 지루했다. 수영 비슷한 것을 시도하다가도 금방 지쳐서 엄마 등에 매달렸다. 나를 업고 걸으면 물의 저항이 더 세지니 운동이 더 잘된다는 명분도 됐다. 아줌마들은 다 큰 애를 왜 업고 다니냐며 질투 섞인 잔소리를 했다. “딸이라서요” 하고 대답하는 엄마의 얼굴엔 웃음이 만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하루는 부러움을 살 만했다. 가야 할 직장도, 학교도 없었다. 챙겨야 할 남편이나 자식도 없었다. 알람도 없었다. 아침이면 느긋하게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설렁설렁 버스를 타고 수영장과 목욕탕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산책을 하고 잠이 들면 그만이었다. 돈 걱정도 없이 쫓기는 것도 없이 그저 커다란 스포츠센터의 골드 회원권과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한강 길을 덜렁덜렁 오갔다. 우리는 물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삶에 이런 날이 오다니. 우리가 골드 회원이라니. 돈 많은 사람의 삶이 이런 걸까. 그런데 이 시간이 비로소 몸이 다 망가져야만 오다니. 그것도 겨우 한 달만 오다니. 그래도 오다니. --- p.169, 「엄마와의 한 달 살기(2) - 엄마의 진심」 중에서 |
기쁨은 말로 하고 슬픔은 글로 쓰는 씩씩한 광대
도시 풍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양다솔의 경쾌한 자조 ★이슬아, 요조, 이길보라 강력 추천!★ “양다솔을 만나고 온 밤이면 나는 꼭 글을 쓰게 되었다.”_이슬아 “양다솔은 나의 아이콘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양다솔처럼 살고 싶다.”_요조 “본투비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글솜씨에 웃을 준비를 하다가도 어쩐지 품위가 느껴져 숙연하게 밑줄을 치게 된다.”_이길보라 “안분지족, 소확행은 사절이다. 사는 동안 한껏 화려하고 자유로울 테다.” 20대 새로운 이야기꾼 양다솔 첫 에세이 20대에게 도시는 녹록치 않은 풍경들로 가득하다. 특히 서울이 아닌 어딘가에서 올라온 무산자 계급 여성, 학자금대출을 이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90년대생, 회사가 강남에 있지만 회사 앞에서의 자취는 꿈도 못 꿀 사회초년생이라면 도시에서의 삶이 생활보다 생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양다솔 작가는 서울 언저리에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빠르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비용은 단순히 공간의 좁고 값비쌈만이 아니라 매일같이 빨간 광역버스에서 보내는 세 시간, 지하철에서 팔뚝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가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일까지를 포함한다. 모으든 쓰든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하고 비슷하게 살 만할 ‘보편적 가난’의 시대. 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가난하다고 해서 일상이, 마음이 가난하리란 법은 없다. 작가는 존엄성을 미세하게 갉아먹는 일들은 내려놓고 그 자리를 일상을 챙기는 노력으로 채워간다. 내일의 비건 도시락을 위해 자정까지 공들여 하는 요리, 기념일마다 장만한 다기로 매일 아침 내리는 보이차, 첫 출근 날 혼자서라도 챙기는 든든한 저녁 외식.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인생에서 ‘나의 고생을 알아주는 나’는 꼭 필요한 미덕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그 기준이 획일화되는 와중에도 작가는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간다. 그날의 먹을거리와 머물 곳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하나의 삶처럼 살아내던 수렵채집인의 방식을 닮아간다. 생산과 소비의 굴레에 갇히는 대신 일상의 페달을 누구보다 부지런히 밟으면서. “양다솔이 진정으로 가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_이슬아 성인이 된 작가가 독립하면서 구한 첫 집은 으슥한 공단 동네에 있었다. 수명이 다해서 가스 요금을 그 건물에서 가장 많이 먹는 ‘좀비 보일러’와 뽁뽁이 붙인 창문으로 매년 겨울을 나는 작가는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타려고 신청서에 자신의 가난을 실제보다 비참한 어조로 서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신청서에는 예쁜 옷과 조리 도구를 사기 위해 버스를 타는 대신 산책 삼아 걸어 다니고, 친구에게 값싸고 싱싱한 꽃을 선물하기 위해 새벽 꽃시장에 가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비극은 이야기가 아닌 앵글에 있었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생계가 허락하는 안에서 소확행으로 견디며 임시적으로 사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그것을 놓지 않는 태도다. 이사 때마다 “이런 것이 대체 아가씨 집에 왜 있느냐”라는 참견을 감내하면서도, 장정 넷이 들어야 하는 돌침대와 벤저민 나무, 다도상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또 강의 출석만 찍으러 온 여배우, 마임 예술가 등 그날의 ‘컨셉’에 맞춰 뻔뻔하게 고른 옷이 빠르고 확실하게 하루하루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각자의 고됨을 알아주는 쉴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안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태도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안에서 나만의 쉴 곳을 발견해내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절망을 씩씩하게 다루고 그 시간으로 타인을 웃길 수 있다면 저자 스스로 구독자를 모집하는 연재 메일링 서비스는 신호탄격인 ‘일간 이슬아’를 시작으로 문학계에 자리를 잡았다. 저자는 독자에게 연재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하고, 실체 없던 독자와 만나는 과정을 통해 집필과 마감의 원동력을 얻는다. 양다솔 작가 역시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격일간 다솔’을 시작했다. 독자들은 “웃겨서 마룻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읽었다” “여러 작가의 글을 구독했지만 회신을 보내보기는 처음이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선물 상자를 여는 느낌이다”라고 화답했다. ‘MZ세대’라는 틀에 들어갈 법한 작가의 이력은 사실 한마디 수식어로 규정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 목탁 소리에 반해 미성년자 최초로 정토회 행자가 되어 출가했고, 그곳에서 10대 시절의 2년을 보냈다. 학창시절 글방에서 만난 90년대생 작가들, 이길보라, 이슬아, 이다울, 하미나와 교류하며 친구들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나서는 ‘열혈우정인’으로 살아왔다. 스물한 살에는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나 대학생 배낭여행객이 갈 법하지 않은 관광지 이면을 목격한다. ‘기쁨은 말로 하고 슬픔은 글로 써야 한다’는 자신만의 슬로건처럼, 삶의 희비극을 스탠드업 코미디와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꾸준히 풀어내는 중이다.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 활동하며 절망을 씩씩하게 다루고 그 시간으로 타인을 웃기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장기적인 인생 계획보다는 당장 하고 싶은 일에 눈을 반짝이고, 메일링 구독 서비스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품이 많이 드는 동아리 활동’ 같은 데 골몰하는 작가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대책 없어 보일 터다. 하지만 작가는 ‘살고 싶은 삶’보다 ‘살고 싶은 하루’에 집중할 때 삶은 오래도록 빛난다고 확신하며, 그 삶을 직접 실험해본 바 말한다.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 |
양다솔을 만나고 온 밤엔 꼭 글을 쓰게 되었다. 양다솔과 친구가 아니었다면 결코 쓰지 못했을 문장들이 내 책엔 수두룩하다. 하지만 나의 문장으로는 그가 지나가듯 던진 농담 한 편조차 제대로 전할 수가 없다. 양다솔의 이야기는 반드시 양다솔의 기세 좋은 말씨로 들어야 한다. 난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양다솔이라는 기막힌 코미디언의 데뷔를 말이다. 이렇게 웃기고 고달프며 엉망으로 훌륭한 애를 나만 안다는 게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었다. 드디어 완성된 그의 첫 책을 읽다가 방바닥을 쾅쾅 치면서 웃고 금세 셔츠 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책장을 덮으면서는 어김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 것이다. 이토록 굉장한 희비극이라니. 이토록 궁상맞고 사치스러운 인생이라니. 내 절친의 오리지널리티에 탄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소나무처럼 사계절 내내 씩씩한 마음을 이 책에서 본다. 양다솔이 진정으로 가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은 언제고 이부자리를 벗어날 기운을 준다. - 이슬아 (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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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나에게 당도했던 문장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내가 선물했던 것이다.” 한 친구는 이 문장 아래에 “내가 누구에게 ‘주는 것’만이 진정 ‘내 거’”라고 썼다. 이 문장에 따르면 양다솔은 모든 걸 가졌다. 다 주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꼭 맞는 사랑을 주려고 아예 엄마의 엄마가 되어버리니까. 그렇게 친구의 친구가, 적의 적이, 양다솔의 양다솔이 되니까. 매번 그렇게 거뜬히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니 그 마음이 가난해지기란 불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양다솔은 요조의 요조가 되어주었던 적도 있다. 나는 그가 내게 보여준 요조를 만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양다솔은 나의 아이콘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양다솔처럼 살고 싶다. - 요조 (뮤지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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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글은 웃기고 이상하면서 다정하고 탄탄하다. 본투비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글솜씨에 숨을 들이마시고 별 걱정 없이 웃을 준비를 하다가도 어쩐지 품위가 느껴져 숙연하게 밑줄을 치게 된다. 누구보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보이차를 내려 마시며 무심하게 왔냐고 묻고는 오늘도 끝내주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좌중을 휘어잡는 그가 종종 부럽다. 익살스럽지만 끝내 기품을 잃지 않는 해학으로 동시대를 사는 양다솔이 내 친구라서, 이야기꾼이라서, 작가라서 정말 기쁘다. -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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