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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에디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에디션)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리뷰 총점9.7 리뷰 28건 | 판매지수 9,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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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읽는 인문학 20위 | 주제로 읽는 인문학 top20 6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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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46g | 147*218*30mm
ISBN13 9788960519091
ISBN10 89605190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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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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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문

1장 독립적인 삶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2장 무너짐
모든 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장 의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장 도움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장 더 나은 삶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장 내려놓기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장 어려운 대화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장 용기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에필로그
1부 SNS 왕국의 탄생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서문」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더 자주 넘어졌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짐은 오늘날의 모든 가족들이 그러듯이 자연스러운 조치를 취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할머니의 뼈가 약해졌다고 진단하고 칼슘 복용을 권했다. 또한 그는 할머니가 평소에 먹는 약들의 복용량을 조정하고, 몇 가지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의사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 할머니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고, 기억이 가끔씩 가물가물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독립적인 삶」중에서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모두 인지 능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했고,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의존」중에서

루 할아버지는 애원하는 눈길로 셸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내 옆에 있을 수는 없는 거니?’ 그 생각이 셸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셸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아버지를 충분히 잘 돌보는 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루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셸리를 따라 몇 군데 시설을 둘러보겠다고 승낙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도움」중에서

의학은 아주 작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바로 이 부분이 고통스러운 역설을 만들어 내는데?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질병, 노화, 죽음에 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은 의학적인 관심사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기술적인 전문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일종의 사회공학적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더 나은 삶」중에서

나는 마르쿠 박사에게 폐암 말기 환자들을 처음 만날 때 그들을 위해 무얼 해내길 바라는지 물었다.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그가 말했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기대치입니다. 새라 같은 환자의 경우 운이 아주 좋아야 3~4년 정도예요.” 하지만 이는 환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어떤 환자를 만나도 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내려놓기」중에서

완화치료 팀이 도착한 후 소량의 모르핀을 처방하자마자 새라의 호흡이 즉시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새라의 고통이 줄어드는 걸 본 가족들은 문득 그녀를 더 이상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제는 가족들이 의료진을 말리고 있었다.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내려놓기」중에서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어려운 대화」중에서

아버지는 우리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셔츠를 입히는 동안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아프세요?” “아니다.”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다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밀고 갔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조금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녁식사 테이블로 밀고 갔다. 아버지는 망고, 파파야, 요구르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 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 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깨어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용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 10만 부 판매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뉴욕 타임스], 아마존 1위 베스트셀러
* 김하나, 정재승 강력 추천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그는 호흡부전이 생겼고, 전신감염에 걸렸으며, 움직이지 못해서 피떡이 고였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혈액 희석제 때문에 출혈을 일으켰다. 우리는 날마다 뒤처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그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14일째 되는 날, 그의 아들은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그만 멈춰 달라고 말했다. _ 본문 13~14쪽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잊는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이는 부분적으로 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래 살기를 꿈꾸며, 현대 의학은 바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외과 수술, 화학요법, 방사능 치료 등으로 대변되는 의학적 처치들도 죽음을 미루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과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종국에는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Being Mortal’이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싸움에서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 간다. 그 모든 것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개월에서 1~2년 정도의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혹독한 치료와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긴 집이 아니지 않니,
어서 집에 데려가 줘.”


윌슨이 열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 제시가 심한 뇌졸중을 겪었다. 당시 제시의 나이는 쉰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그녀는 몸 한쪽이 완전히 마비돼서 걷거나 서지 못했으며, 팔도 들 수가 없었다. 또한 얼굴 한쪽이 축 처졌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지능과 인지 능력에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는 씻을 수도, 요리를 할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던 윌슨은 전혀 수입이 없었고, 좁은 아파트를 룸메이트와 함께 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머니를 돌볼 길이 없었다.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어머니를 맡길 곳은 요양원밖에 없었다. 윌슨은 자기 대학 근처에 있는 곳을 골랐다. 안전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끊임없이 요구했다. “집에 데려가 줘.” _ 본문 142쪽

더 이상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육체와 정신이 점점 쇠락해 가면서 더는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과 보건 체계는 이 문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해결하려 해 왔다. 하나는 ‘요양원nursing home’이라는 보호 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년에 직면하는 각종 질병들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이 방식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특히 자녀들 입장에서 보면 노년에 이른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질병이라도 의학이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리라는 전망은 꽤 안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이나 공격적 치료에는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양원’의 경우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획일화된 시설에는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빼앗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규칙과 안전에만 집중하는 탓에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시설에 수용된 노인들 상당수가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다.(본문 113~124쪽)

저자는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다시 ‘가족과 가정’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삶의 질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케런 브라운 윌슨이 처음으로 도입한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은 간단히 말해 기존 요양원과 같은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개념의 시설이다. 잠글 수 있는 문과 자기만의 가구가 있고, 실내 온도나 조명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보장된다.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노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 요양원을 변화시키는 실험도 있다. 요양원 내에 동식물을 들이기도 하고, 인근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의 생명력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빌 토머스가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서 한 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개, 고양이, 새, 식물, 아이들을 요양원 내에 들이는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본문 141~149쪽)

체이스 요양원 주민들은 비교 집단 주민들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 약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할돌과 같이 불안 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제재의 처방이 특히 줄어들었다. 약 구입에 들어간 비용은 비교 집단에 비해 38%밖에 되지 않았다. 사망률도 15% 감소했다. _ 본문 193쪽

빌 토머스의 실험이 요양원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치상으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노인들이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마무리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의 공격적 치료는 더욱 큰 문제를 가져다준다.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이 모든 걸 그만 멈춰 주세요!”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이전 3개월 동안 우리가 새라에게 한 것들?수많은 스캔, 검사, 방사능 치료, 화학요법 치료 등?은 아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면 새라는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맨 마지막 순간에나마 평화를 찾았다. _ 본문 289쪽

인공호흡기, 영양공급관,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오늘날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더 끔찍한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극심한 통증, 구역질, 섬망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렇듯 죽기까지의 과정을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있는 듯하다고 일갈한다. 실패라고 단언하는 까닭은 우리가 이 ‘싸움’을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극히 짧은 시간을 더 얻기 위해 잔인한 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현대 의학은 사실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싸워 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가 결국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 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먼저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 소모적인 의학적 싸움을 중단하려면 우선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의료계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하나는 ‘노인병학geriatrics’에 대한 관심이다. 관절염, 당뇨병, 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본문 62~65쪽)

둘째, 환자들과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이런저런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해석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를 해석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306~309쪽)

해석적 태도가 중요한 까닭은 마지막에 이른 환자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치료에 매달리는 건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고통을 줄이고, 삶의 품위를 유지하고, 다 끝내지 못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바로 그 일상의 가치들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다면, 어떤 환자도 맹목적인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

“아툴, 나는 두렵다.
하지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_ 본문 324쪽

의료계의 의식 변화 외에 우리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방식으로의 사고 전환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죽음과 마지막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어려운 대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은 적지 않다.

저자는 악성 종양에 걸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본문 322~324쪽) 완화치료 전문가 수전 블록의 아버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견딜 만할 것 같다고 말한다.(본문 280~281쪽) 결과적으로 이 대화는 중대한 수술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미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국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 지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91년부터 의료진과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시기에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6주 동안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종말기 의료비용은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기대 수명은 전국 평균에 비해 1년이나 길었다.(본문 273~275쪽)

가족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쉽지 않다면 이를 이끌어 줄 호스피스 상담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 하면 떠올리는 것은 생을 포기하고 순전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와의 대화를 통해, 호스피스가 단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환자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의식을 유지하며 고통을 최소화하고 존엄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248쪽) 이것이 최근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이른바 ‘완화치료’ 분야다.

결국 죽음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한 과정이다. 삶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일인 것이다. 죽음 자체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죽음이 특별하고 중대한 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안에 우리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손주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없었고, 나는 대신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모든 사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버지는 다시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한 번에 20~30초씩 멈추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끝인가 하면 호흡이 다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 곁을 지키며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오후 6시 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나는 아버지의 호흡이 이전보다 더 오래 멈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가 멈춘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_ 본문 393쪽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가슴 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이자 학자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르침과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세계 유력지에서 꼽은 ‘세계적인 사상가’라는 사실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우리 가족과 비슷한 이들이다. 젊은 시절 공장 직공이었던 사람, 간호사였던 사람,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 한두 명의 자녀를 키우며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 왔고, 이러저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에 만족해 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원하는 것 역시 너무나 소박한 것들이다.

가족 및 친구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주말에 있을 친구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고 싶어 하고,(본문 359쪽)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피아노 레슨을 하고 싶어 한다.(본문 378쪽) 그리고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다. 저자 자신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의사였지만, 그들에게도 생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저자는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질병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며 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 있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다. 죽음이 결국 삶의 이야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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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비로소 성립하며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오늘날 죽음은 누구나 삶 속에서 목격하는 자연스러운 단계가 아니라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금기와 미지의 영역이 되어 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거북한 일이며, 막상 죽음의 당사자는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까지 본인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수 개월간 응급실과 중환자실, 요양병원을 거친 뒤 코로나19로 직계 가족의 면회조차 어려울 때 돌아가셨다. 상점을 나설 때 잘 모르는 사람과도 나누는 인사를,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이 어쩌면 다를 수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철학서가 아니다. 아툴 가완디는 안전과 생존을 최우선에 놓는 현대 의학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진단한다. 의료 시스템과 노년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에 가까운 이 책은 그러나 그 어떤 책보다도 죽음과 삶의 가치, 존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한다.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만 예상외로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큼 따뜻한 이야기들도 곳곳에 스며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 고양이, 식물, 잉꼬 백 마리(!)를 요양원에 들여놓은 의사 빌 토머스의 이야기다. 우리는 죽음을 삶에서 분리하지 않고 더 현명하게 껴안을 수 있다. 그 모색의 시작으로 이 책은 더없이 훌륭하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김하나 (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인생이 축구라면, 전반전엔 모든 선수들이 온통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겠다고 전력 질주 하지만, 후반전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골을 더 넣겠다며 애쓰는 선수도, 더 이상 실점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선수도, 승부와 상관없이 멋진 플레이로 마무리하겠다는 선수도, 결국 마지막 종료 휘슬을 들어야 하니까. 나 역시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하는 인생의 화두 중 하나다.

이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 책은 가장 영감 어린 책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툴 가완디의 열렬한 팬이다. 20년 전, 그가 쓴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을 읽고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현대 의학의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의학이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인간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모색해 온 그는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봐주는 의사였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의학서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처음이었다.

현대 의학의 최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날마다 대해온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선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현대 의학의 역할은 환자의 목숨을 지속하고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여야 하지 않느냐고 냉정하지만 묵직한 어조로 묻는다.

이 책이 각별히 울림이 큰 것은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의 죽음을 병원에서 목도하면서 때론 의사로서, 때론 보호자로서 매우 객관적이면서 한없이 주관적으로 죽음을 성찰하고 있어서다. 병원의 긴박함과 긴장감을 수려한 문장으로 담아내면서도, 사려 깊은 성찰 끝에 얻은 깊은 통찰을 매 페이지에 담아낸다. 그는 현대 의학의 가장 냉정한 비판자이자 동시에 환자들의 가장 따뜻한 동반자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의 책장 안에 가장 오랫동안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 정재승 (뇌과학자, 『과학 콘서트』 『열두 발자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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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어떻게 죽을 것인가] 2022_003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사*님 | 2022.03.28 | 추천10 | 댓글1 리뷰제목
2022_003   읽은날 : 2022.0313~2022.03.28 지은이: 아툴 가완디 저/ 김희정 역 출판사: 부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 이다 (94쪽)       인생을 어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말할때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둘중 하나를 선택해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짧;
리뷰제목

2022_003

 

읽은날 : 2022.0313~2022.03.28
지은이: 아툴 가완디 저/ 김희정 역
출판사: 부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 이다

(94쪽)
 

 

 

인생을 어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말할때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둘중 하나를 선택해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짧고 굵게 살래?', 또는 '길고 가늘게 살래?'

 

선택지가 2개만 있는건 아니지만 보통 두개중 하나를 선택해보라곤 했었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적엔 아니 어렸을적엔 어서어서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고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인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힘든 학업때문에(사실.. 공부도 안했으면서~) 나는 인생을 굵고 짧게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던것 같다.

 

근데.. 좀.. 살아보니 가늘더라도 길게~~ 살고 싶다. 왜일까?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 이다

(94쪽)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도 아니지만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살아가는 삶을 어찌 꾸려야 할지를 더 생각하게 되는 나이임에도 나는 위에서 말한것처럼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75쪽)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나하고는 상관 없다고,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다고 말했던 20대 때의 나는 아니니까 나도 노화를,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좀 이른 나이에 암이란 녀석이 나에게 찾아와 수술과 치료를 하고 있고, 이러저러한 수술 후유증으로 나의 까랑까랑함과 똘똘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자주 깜빡거리는 건망증으로(마취 부작용이라 말하련다) 또 최근에 부정맥이란 녀석때문에 내 심장이 뛰고있다는 사실을 격하게 알려주는 나의 몸을 보면서 나도 이제 늙어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정서적 변화도 심해지고 있다. 예전같으면 웃어 넘길것도 예민해지고, 짜증도 늘고, 불평불만도 늘어가는 나를 보면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진거지 하고 생각하면서 깜짝 놀랄때가 많다.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운 욕쟁이 할머니 스타일로 되어가는건 아닐까 우려가 될 정도이다. 곱게 늙고 싶은데 말이지~~

 

아직은 늙음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나이이지만 몸과 마음의 변화를 급격하게 맞다보니 노화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이 멀지 않구나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약간의 우울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극도의 우울감이 찾아오지는 않은것에 감사해야겠다. 최근들어 수면장애가 좀 생겨서 그런지 약간 더 예민해지는것 빼고는 괜찮다.

 

그렇기에 내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예민해지던 차에 만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은 내게 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정리하도록 초대하고 있음이 느껴져 감사하게 읽게되었다.

 

죽음에 대한 이론이나 철학적 측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저자가 살아가면서 만난 많은 노인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에 좀더 현실감 있게 다가 왔다. 우리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 노인요양서비스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수 있게 해주고 있다.

 

나의 부모님도 연세가 들면서 오빠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신다. 본인들이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때가 오면 '요양원에 보내라. 그리고 곡기도 끊어라. 그냥 죽게 둬라' 라고...

그럴때면 부모님을 모실 처지가 안되는 나의 상황이나 오빠의 처지를 생각하면 부모님들이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는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도 자식들도 집이 아닌 또다른 공간(요양원, 실버타운등)에서 마지막 생을 준비한다는 것에 대해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왔던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난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례를 보면서 과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어느곳에서 생을 마무리 하는것이 부모도 자식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걸까 하는 질문이 계속 맴돈다.

 

 

(134쪽)

"늙은이만 가득 있더라" 루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딸에게 절대 자신을 그런 곳에 넣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늙은이만 가득하더라"라는 루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쩌면 나의 부모님의 마음일 수도, 또 나의 마음도 그러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슬펐다.

 

나의 부모님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또 나의 마지막 생을 준비하기 위하여 좀더 솔직하게 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수 없는것이다. 죽음을 준비하고 생을 마칠수 있다면 정말 복된 죽음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잘 죽을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 죽음이 예고되지는 않겠지만...

 

살아있는동안 덕을 쌓고 예쁘게 늙어가기 위해서 매일을 수련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려 본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을 노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채워가는 과정, 완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노화라고 재정의해보련다.

 

그래야 덜 슬플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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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외면하지 말 것_020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y | 2022.03.19 | 추천9 | 댓글0 리뷰제목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나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애달픔에 한참을 마음아파해야 했다. 나의 외할머니, 2년 전 세상을 떠나신 바로 그분을.   어릴적 방학때면 찾아뵙던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무섭다’ 였다. 마른 체형,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리고 억센 억양의 사투리를 구사하셨던 그분은 내가 말썽을 피우고 다닐때마다 “가시나가!”라고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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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나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애달픔에 한참을 마음아파해야 했다. 나의 외할머니, 2년 전 세상을 떠나신 바로 그분을.

 

어릴적 방학때면 찾아뵙던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무섭다였다. 마른 체형,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리고 억센 억양의 사투리를 구사하셨던 그분은 내가 말썽을 피우고 다닐때마다 가시나가!”라고 언성을 높이시며 나무라곤 하셨다(‘가시나가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그 억양에서 뭔가 화가 나셨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아채곤 했다).

외할머니가 내게 다른 기억으로 덧입혀진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스물이 넘은 손녀와 맥주잔을 기울여 주시고, 애인이 없으면 선이라도 보라 성화였던 엄마 옆에서 뭐 좋다고 결혼을 하라카노? 꼭 할 필요도 없다하시며 내 편을 들어주셔서 나는 어릴 때도 부리지 않았던 어설픈 애교를 그제서야 외할머니에게 부리게 되었다.

 

그렇게 마냥 내 편이 되어주실 것만 같던 외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며 약해져갔고, 남편의 부재와 자식들의 상황에 밀려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2년 전 그 곳에서 숨을 거두셨다.

 

   많은 환자들이 요양원이나 중환자실같이 고립되고 격리된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뎌 내면서 말이다. p.23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할머니의 생각고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중략)..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ㅔp.119

 

몇 번인가 외할머니를 찾아뵌 적이 있다. 내 손을 꼭 잡고 바쁜데 이런데까지 왔냐 하시며 반가움과 미안함을 보이시는 외할머니를 뵙고 올 때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셸리는 자신이 서서히 미쳐 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가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 말을 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아버지에게 한 약속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p.140

 

   “나한테는 안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그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었어요. 아버지의 안전을 생각해야만 했죠.” p.171

 

   윌슨은 가장 실망스럽고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중략)..이 모든 게 다 중년에 이른 자녀들이 자기 부모를 위해 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이다. 부모들이 하길 원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pp.167-168

 

외할머니의 거취를 두고 몇 번이고 엄마와 외삼촌들, 이모들이 이야기를 나눈 것을 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그 상황에 자조하기도 화를 내기도 했던 것을 띄엄띄엄 전해 듣기도 했다. 그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바란 것이 외할머니의 안전하고 평안한생활이었다는 것을 안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p.168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내가 한번도 할머니에게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 묻지 않았다는 거였다. 자식도 아닌 손녀가 물어봐야 무슨 힘이 있었을까 싶긴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엄마가 이모나 삼촌이 여쭤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을 외할머니는 그저 다 괜찮다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드리기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마음이라도 풀어드렸어야 하지 않을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노인들이 관심사를 좁히는 까닭은 신체적, 인지적 쇠락에서 오는 위축으로 이전처럼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어려워졌거나,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세상이 그들을 막기 때문이다. 이때 노인들은 그것에 맞서 싸우기보다 적응을 하게 된다. 아니, 더 슬프게 말하자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p.151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p.94

 

외할머니는 계속해서 잃어가는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할머니가 계셨던 그 병원에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하지 못한 일을 그들의 역할로 책임전가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요양원에서든 노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고사하고, 그들 옆에 앉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묻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삶의 마지막 단계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가 낳은 결과다. p.124

 

저자는 척수 종양을 앓다가 생을 마친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병을 알게 된 이후 부자가 나눈 대화와 선택들을 보며 내가 이런 문제들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었는지, 생의 마지막에 당사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려운 것은 무엇이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꺼이 포기할 용의가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최상의 행동방침은 무엇인가? p.395

 

소중한 사람이 더 오래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어떻게 이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 질문을 회피해서도 또 미뤄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받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그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고통받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니?”

   “.” 내가 말했다. 그러나 그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pp.387-388

 

   “깨어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p.392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즈음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가족들 모두 어찌해야할지 허둥대는 와중에 아버지가 치료방법에 대한 선택을 하셨고, 다행히 이후 경과가 나쁘지 않으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버지의 상황을 회피하고 있었음을 마음 아프게 깨달았다. 그저 아무 일 없었던 듯, 괜찮은 듯,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고 헤어짐 없이 함께 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긍정을 향한 채 정작 아버지의 마음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만 머물던 불안을, 고민을 글로 적는 이 순간에야 내가 아버지의 상황을 직시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적는 지금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올린 후 방문을 닫고 혼자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중요하다.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어쩌면 남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p.385

 

# 책에 담긴 이야기

   1장 독립적인 삶 :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2장 무너짐 : 모든 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장 의존 :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장 도움 :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장 더 나은 삶 :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장 내려놓기 :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장 어려운 대화 :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장 용기 :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아버지와 이야기 하기(적용기한 : ...)

두울. 나의 시간의 유한함을 잊지 않고 그 순간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길(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여기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p.27

 

나이가 든다는 것, 즉 노화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각 부품이 노쇠해진다는 의미다..(중략)..더 좁아지고 뻣뻣해진 혈관으로 전과 같은 양의 혈액을 흐르게 하려면 심장이 더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그 결과 65세 즈음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혈압이 된다..(중략)..30세부터는 심장의 출력이 꾸준히 감소한다. 점점 더 멀리 혹은 더 빨리 뛰기 어려워지고, 숨을 헐떡거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계단 숫자도 줄어든다.

심장 근육이 점점 두꺼워지는 동안 다른 근육들은 점점 가늘어진다. 40세 정도부터 근육량과 근력을 잃기 시작해서 80세가 되면 근육 무게의 4분의 1에서 절반 정도를 잃는다. pp.55-57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p.73

 

물론 현대의 요양원은 화재 대책도 없이 창고 같은 곳에서 노인들을 유기하고 학대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육체적인 독립성을 잃으면 가치 있고 자유로운 삶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을 별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듯하다. p.122

 

카스텐슨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의 가설을 만들었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이다.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은 네 손 안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해낼 일이 없다.” 젊은이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뒤로 미룬다..(중략)..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pp.155-156

 

다시 말해 그들은 삶에서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와 기쁨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는 잔인함보다는 몰이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말했듯, 그 둘이 결국 뭐가 다르겠는가  p.166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모두 단순한 기쁨이 주는 안락함을 찾게 된다. 동료애와 우정, 규칙적인 일상, 맛있는 음식,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온기 같은 것 말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 축적하는 것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얻는 행복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p.199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깊이 개입해서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p.232

 

그러나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데도 어느 시점에 치료를 멈춰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p.238

 

일반적인 의료 행위와 호스피스 케어의 차이점은 치료하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읠 행위는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다..(중략)..호스피스 케어는 간호사, 의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등을 동원해서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p.248

 

설문지의 내용은 네 가지 핵심적인 문제로 압축된다. 삶의 현재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들이다.

1.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 삽관이나 기계적 인공호흡기 같은 공격적 치료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3. 항생제 투약을 원하십니까 

4.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관이나 정맥 주사로 영양 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p.274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이해하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p.319

 

그러나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나 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p.327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 p.355

 

첫째, 우리가 병들고 노쇠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은 이것이다. 그들이 단지 안전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사는 것 이상의 우선순위와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둘째,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나갈 기회를 갖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지속시키는 데 매우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셋째, 우리에게는 삶의 마지막 장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도와 문화, 그리고 대화 방식을 변화시켜 나갈 기회가 있다. p.371

 

아버지가 원하는 게 무언지 들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분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그럴 기회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의 평화를 찾았다는 걸 알릴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도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pp.39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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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물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캡* | 2022.03.19 | 추천6 | 댓글2 리뷰제목
죽음을 앞두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물음   늙는다는 것은, 혹은 (젊더라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죽음을 앞에두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주면 입고,;
리뷰제목

죽음을 앞두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물음

 

늙는다는 것은, 혹은 (젊더라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죽음을 앞에두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게 갇힌 것만 같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갇혀있는 느낌의 삶. 답답한 삶을 보내면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요양원에 있는 앨리스 할머니의 모습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간다. 어릴 때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 살이라도 더 어려보이게 만 나이를 세고 건강에 좋다는 영양제를 찾는다. 어느 날인가 머리칼이 작년보다 더 줄어든 것을 느끼고, 어느 날 아침에는 일어나면서 어깨가 쑤시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킬 때, 특별히 아픈 데가 없으면서도 몸이 늙어가는 것을 느낄 때, "이런 게 늙어 가는 것이구나, 이렇게 늙다가 가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 문득 서럽고 슬퍼진다.

더 늙기 전에 무언가 하고 싶어 책도 읽고, 서평단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이것저것 손을 대 보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무엇보다 나 자신보다 나이든 부모를 볼 때, 이제는 부모가 나의 보호자가 아닌 내가 부모의 보호자 임을 생각해야할 때 삶의 시간이 흐름을 절실히 느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자신이 의사였지만 결국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부친 삶의 마지막을 지켜보아야 했던 글쓴이의 관점에서, 과연 나이 든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현명하고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담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암 환자, 노년의 삶을 요양원에서 보내는 늙은 사람들의 여러 사례를 담아 죽음 직전의 삶을 과연 어떻게 보내야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람이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중요할 지, 아니면 조금 덜 살더라도 나름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을지에 대한 의문은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도 요양원이 많이 들어섰다. 요양원의 가격에 따라서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있고 답답한 병원처럼 침대와 요양보호사만 있는 곳도 있다. 노년의 삶을 그런 시설에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한 발이라도 더 내딛는 것이 좋을지. 무엇보다 오늘날은 예전과 같은 부모에 대한 효를 기대할 수 없고 부모가 늙고 나이들어 불편해지면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 글쓴이의 고향에서 노년을 보낸, 인도의 나이든 노인처럼 가족들과 함께 많은 이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노년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진 사회이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매슬로우는 "안전과 생존"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목표로 남게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노인처럼 주어진 선택 범위와 능력이 제한되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요양원에 들어갈 정도 노인이면 혼자 집에 있게 되면 넘어지기 쉽고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모른다. 맞벌이가 일상인 현대 사회의 자식들은 그런 노인들을 돌보는 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쉬운 수단으로 요양원에 보내고 의료진이 있는 안전한 곳에 보냈다는 위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앞서 앨리스 할머니의 사례처럼 요양원은 죽음을 앞둔 노인이 삶을 정리하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다.

여기에 윌슨은 요양원과 다른 형태를 제시한다. 노인들이 각자 다른 집에서 살며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는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의료진이 있고 다른 요양원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만, 각자의 생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열린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의사 토머스의 실험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활기가 죽어버린 요양원에서 그는 틀을 깨는 실험을 한다. 개와 고양이, 새들을 비롯한 생명력이 있는 동물들을 요양원에 풀어버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요양원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놀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실험은 소란스러웠지만 그러한 기분좋은 혼란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생의 활기로 다가왔다.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있던 노인은 앵무새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몸을 움직였고, 걷기조차 힘들었던 노인은 개를 산책시키겠다고 나선다.

일반적인 의료 행위와 호스피스 케어의 차이점은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통의 의료행위는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다. 호스피스 케어는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폐암에 걸린 새라의 투병기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제 겨우 서른네 살인 새라는 첫 아이를 임신했고 기침과 가슴통증으로 발현된 폐암을 앓고 있었다. 아이가 있었고 아직 젊었다. 그래서 암을 치료할 의지가 충만했고 의사들의 말에 따라 화학요법을 수반한 암 치료를 시작한다.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쳤고 의욕적으로 치료에 임했지만 결국 화학요법을 반복한 암 치료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경우 다른 노인들의 사례처럼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이와 남편을 비롯한 가족과 좀 더 즐거운 삶을 사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 있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강했던 만큼 항암 치료가 잘 되어서 치료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삶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또 그런 환자에게 의사는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루 할아버지는 말한다. "동양에는 카르마라는 말이 있어요. 일어나도록 되어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된어 있다는 거예요.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지."

삶을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보다 삶을 잘 살기 위한 고민을 해봐야겠다. 심오한 죽음에 대한 철학보다는, 이책에서 등장한 죽음을 앞둔 노인들과 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둔 것이 무엇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 더 깊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시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루 할아버지, 루스 할머니, 앤 할머니, 리타 할머니 등등 나이 듦에 따라 삶의 거동이 불편해지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노년의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좋아하고 만족해한다. 젊을 때 높은 이상과 야망은 이제 가라앉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반려동물과 같은 작은 동물의 생기를 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전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하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이가 듦에 따라 생각이 바뀌면서 일상의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오히려 커지게 된다.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 가게 된 사람들, 젊은 나이에도 암과 같은 병을 앓으면서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생명연장을 꿈꿀 것인지, 아니면 삶이 조금은 줄어들더라도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도 인간다운, 나다운 삶을 추구할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제 몸의 나이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중년의 나 로서는, 미리 생각해두어야할 인생의 질문이다.

 

이 글은 부키출판사로부터 독서모임 지원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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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k********i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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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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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j****m |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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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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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r****u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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