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0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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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266g | 135*195*15mm |
ISBN13 | 9788937473289 |
ISBN10 | 8937473283 |
포함 민음사 한국문학 2권 ↑ 디자인 비누 증정(포인트 차감)
출간일 | 2020년 0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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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266g | 135*195*15mm |
ISBN13 | 9788937473289 |
ISBN10 | 8937473283 |
MD 한마디
[나의 말을 찾는 일, 나를 발견하는 일]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 학교에서는 외톨이, 어른들도 소년을 괴롭게 할 뿐이고, 그런 그를 이상하고 부족한 아이로 낙인 찍은 세상은 가혹한 경험만을 준다. 그러던 중 찾게 된 언어 교정원에는 어쩐지 그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곳에서 소년은 자신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소설MD 박형욱
누구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열네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 정용준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말을 더듬는 인물은 그간 정용준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그 내면 풍경을 열네 살 소년의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언어적 결핍에서 비롯된 고통과 고투의 과정을 한층 핍진하게 보여 준다. 언어를 입 밖으로 원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재난과도 같은 상황으로 인해 소년은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 친구 등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배제된 채 유령처럼 겉돈다. 스스로를 깊이 미워하면서, 또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향한 희미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
내가 말하고 있잖아 작가의 말 추천의 말 |
당신은 정상인입니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 질문이 잘못됐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앞뒤로 어떤 단서를 붙인다고 하더라도 저 질문 자체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수 있는 사람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모두가 고유하며, 그 고유한 특성들을 서로 존중할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화자는 말을 더듬는 열네 살 소년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는 ‘부족한 아이’다. 그가 찾은 언어 교정원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이상해 보인다. 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각자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투박하고 서툰 이들의 시도에서는 빛이 난다. 아름다운 얽힘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
중학교 1학년 학생이 2학년으로 넘어가는 성장 소설이다. 배경이 1999년 가을에서 신학기가 시작되는 2000년 봄까지이다. 뉴 밀레니엄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배경이지만,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주인공은 무연중 1학년 말더듬이이다. 집안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어머니의 애인이 거주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직업이 114 안내원인데, 말더듬이와 상담원의 대립적인 구도를 보여주자고 선택한 것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적 쇠퇴를 상징하고 있다.
학교 생활은 좋지 않다. 특히 국어 선생님은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소년을 수업시간마다 책을 읽게하여 많이 괴롭힌다. 친구들과의 사이는 적당하게 방어를 하여 버터내기는 하지만, 친구들의 시선은 말을 못하면 듣지도 못할 것이라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소년이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서 언어교정원을 가게 된다. 이 책의 핵심은 주인공의 고통이 생기는 곳인 학교와 가정, 그리고 어쩌면 해방의 공간인 언어교정원의 관계일 것이다. 언어교정원에서 여러 동료 치료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구성원들이 대개 폭이 넓고 우호적이다. 작가가 여러 부분에서 인물 구성을 배치하였다. 언어교정원에서는 소년이 일단 마음을 문을 열고, 조금씩 언어를 편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서 실제 사용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사건은 가정에서 벌어진다. 가정에서 엄마의 불량한 애인과 소년과의 폭력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을 언어교정원 원장과 원생들이 해결해주는 과정이다.
소년의 성장소설이다. 20세기 말의 장애인을 보는 사회적인 폭력, 가정 폭력, 학교에서의 따돌림의 문제인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21세기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의 내용이다. 밝은 메시지를 주는 즐거운 소설이다.
자신한테 잘 해주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 ‘나’는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다. 사람 마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바뀐다는 걸. 난 그걸 언제 알았을까. 잘 모르겠다. ‘나’보다 늦게 알았을지도. 난 ‘나’처럼 말을 더듬지는 않지만, 말 잘 못한다. 못하는 것도 있고 그다지 할 말이 없어서 안 한다. 지금은 말 안 해도 큰 문제 없지만 학교 다닐 때는 말을 안 하니 친구가 없었다. 말을 해야 사람을 사귈 거 아닌가. 내가 말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말 안 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익숙해지면 했던가. 어쩐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생각 안 난다. 얼마나 말을 안 했으면 그런지. 다른 아이가 친해지는 사이 나만 혼자였던 것 같다. 그건 언제나 그랬을지도.
여기 나오는 ‘나’는 중학교 1학년이다. 말을 더듬어서 아이들이 놀리기도 한 것 같다. 다행하게도 심하게 괴롭히는 아이는 없다. 이건 학교 폭력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그렇구나. 다른 이야기였다면, ‘나’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을지도. 그런 걸 ‘나’는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엄마한테도 말하지 못했겠지. 이런 걸 생각하다니. ‘나’의 엄마는 혼자 ‘나’를 키웠는데, 마음이 불안정해 보인다. 일하고 나서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는 걸 보니. ‘나’가 말을 더듬는 건 그런 엄마 때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면 안 되려나. 아이를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해야 할지도. 엄마고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어른은 아니다. ‘나’의 엄마는 아이한테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보다 자신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 아이를 때려도 몰랐겠지. 예전에는 몰랐을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언어 교정원에 다니게 된다. 거기가 처음은 아니었구나. 그전에는 언어 치료소에 다녔나 보다. 치료소와 교정원은 뭐가 다를까. 이 소설속 시간은 1999년이다. 예전에는 언어 교정원이 있었을까.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고 지금도 그런 곳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말 못했는데 그런 데 다니고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해 봤다. 그런 곳 알았다 해도 안 갔을지도. ‘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위로받고 격려받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난 나랑 비슷한 사람 만난 적 없다. 그래서 여전히 말 못하는가 보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은 나이대가 달랐다. ‘나’가 만나는 사람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밖에 더 있을지도. 난 원장 어머니가 할머니라 하는 할머니인지 알았다. 갑자기 이런 걸 말하다니. 원장은 좋은 사람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중학생 남자아이를 남자 어른이 안으면 안 될 텐데. 아무리 ‘나’가 또래보다 작다고 해도. 또 엉뚱한 말을. 1999년이니 그렇다고 생각해야겠다.
언어 교정원에 다닌다고 ‘나’가 바로 말을 더듬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은 다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 말을 더듬거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가 좋아한 사람은 처방전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었다. 처방전은 외과의사로 ‘나’와 말할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독신주의자인데 ‘나’한테 아들이라 했다. 아이를 좋아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 마음 난 잘 모르겠다(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처방전을 이모라 하고 엄마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거 ‘나’가 엄마 사랑을 바라는 거 맞겠지. 엄마가 ‘나’한테 마음을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나’가 앞으로 잘 살기를 바라고 언어 교정원에도 보냈겠지.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보다 자신이 아이를 잘 보는 게 낫겠지만. ‘나’가 언어 교정원에 다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중에는 말도 더듬지 않게 되는구나. 언어 교정원 사람이 식구처럼 됐달까.
청소년도 넣어서, 아이한테는 어느 정도 부모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게 그 아이가 안 좋은 길로 가지 않게 하는 건 아니고, 그런 게 없어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아이도 있지만. 부모가 아니면 부모 비슷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아이는 괜찮다. ‘나’한테는 언어 교정원 사람이 진짜 부모나 형제 대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사람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그렇지 않나. 그런 건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거고, 이건 그런 소설이다. 소설에서 희망을 느껴도 괜찮겠지.
희선
☆―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 해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예전의 난 그랬다. 잘 해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9쪽)
마음이 어둡고 답답할 때, 괴롭고 어떤 것도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노트를 펼쳐서 뭐든 써. 그러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