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듀나 | 악인보다 선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
- [한니발] 렉터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토머스] 해리스는 이 인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감을 잃어버린다. 더 불쾌한 악인도 등장시켜본다. 스탈링과의 관계도 발전시켜본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양들의 침묵』만큼 재밌지는 않은데, 구경하기엔 재밌어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p.38
- 문제는 시시한 인간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지금과 같은 시대엔 이 자유로움이 종종 독이 된다는 것이다. ‘유독한 팬덤toxic fandom’은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데, [……] 「스타 워즈」 팬덤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한국에서도 주류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팬덤은 어느 모로 보나 자신들보다 평균적으로 유능한 창작자들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시리즈를 진보시킬 때마다 창작자와 배우, 캐릭터를 향해 끔찍한 공격을 퍼붓는다. ‘나의’ 「스타 워즈」는, ‘나의’ 마블은 이렇지 않다며 불만을 잔뜩 품은 채로
--- pp.43~44
· 박혜진 |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 오늘의 한국 소설 속 살인자들
- 이야기의 기본 속성이자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공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우리가 악을 말하는 방식이 ‘사실상 모순’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공감이라는 강력하고도 불완전한 기준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에 대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이 모순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공감의 유무에서 벗어난 악의 서사들이 필요하다.
--- pp.57~58
-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의] 모티프는 2019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고유정 전남편 살인 사건이다. [……] 고유정을 연상시키는 소설 속 ‘신유나’는 전남편의 죽음과 의붓아들의 죽음을 비롯해 과거 아버지와 대학 시절 교제한 남자의 죽음에도 연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인이다. [……]『완전한 행복』은 한순간도 신유나의 시점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 악은 벗어날 수 없는 ‘힘’이다. [……] 그러한 힘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통해 복원하는 『완전한 행복』은 ‘피해자 중심 서사’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pp.63~66
· 전승민 | 조명등, 달, 물고기: 나르시시스트의 선한 얼굴은 어떻게 악이 되는가
- 악의 부재는 선을 재현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는가? 적의 얼굴을 마주하며 갈등에 뛰어드는 대결 하나 없이 그저 악이 없는 세계를 미리 상정하며 선을 구현하는 작업은 오히려 위선이지 않을까?
--- pp.80~81
- 선의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이는 구체적인 악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표백하는 일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피해자성으로 함몰시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는 작가와 독자를 포함해 텍스트를 둘러싼 모든 존재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 pp.82~83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기연민의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던 나르시시스트 화자가 독서를 통해 자신의 껍질을 뚫고 나오는 데 한 단계 성공하는 이야기다.
--- p.110
· 김용언 | 범죄의 기술(記述): 선정주의를 넘어선 범죄 논픽션
-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좀 더 건조한 톤으로 범죄자들의 유형을 체계화하고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레슬러는] FBI 행동과학부의 활약이 토머스 해리스, 메리 히긴스 클라크 같은 유명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으로 작용했으며 TV 실화 범죄 프로그램의 뜨거운 인기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중문화의 첨병들이 연쇄 살인과 범죄자에 지나치게 많은 매력을 부여했다는 데 염려를 표하기도 했다.
--- pp.125~128
- 악을 아예 다루지 말아야 한다, 혹은 악인에게 목소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리고 싶진 않다. [……]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경계’를 쉽게 돌파해버린 범죄자들에 대한 매혹, 알고 보면 저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도 그런 상황으로 내몰린 가슴 아픈 비밀의 이유가 있었다는 관대한 이해, 범죄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공포와 불안을 최대한 잘 전달하겠다는 이유로 범죄자의 1인칭 시점에서 피해자를 ‘사냥’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고수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다.
--- p.149
· 강덕구 | 나쁜 놈도 눈물 흘려야 할 이유: 서부극, 공동선과 윤리를 탐구하는 악인 서사
- 서부극에서 법적 질서는 결코 선악을 구분하는 척도가 아니다. 선악은 개인의 모럴에 의해 좌우된다. 어쩌면 오늘날 서부극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서부극은 법적 규범과 개인의 모럴, 달리 말하자면 추상적 질서에 저항하는 얼굴을 그리기 때문이다.
--- p.169
- 「루이」에선 게이 인물을 향해 날아든 ‘패곳’이라는 멸칭을 지우지 않는다. 단지 그 멸칭이 현실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로 그런 것은 아닐 테다. 진짜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이 허구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들리는 혐오표현, 악행에 정당화를 부여하는 서사가 허구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때로 불편하거나 역겨울 수 있는 거짓말은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기원에 담긴 폭력의 정체를 따져 묻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 세계의 잔혹성을 고발하기도 한다.
--- p.185
· 전자영 | 현실의 낙인, 무대 위의 매혹: 목소리를 빼앗긴 마녀가 무대 위에서 던지는 물음
- 버나드 쇼의 해석에 따르면, 베토벤은 악덕에 고귀한 음악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악덕은 아름다워서는 안 된다. 돈 조반니는 사기꾼에다 법규를 모독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봉꾼이다. 모차르트는 그런 그에게 화려한 선율의 노래를 부여해 지위를 드높이고, 주인공이 될 기회를 준다.
--- pp.189~190
- [17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빌런인] 마녀는 악역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그가 연극에서 마땅히 기대되는 도덕성을 초과하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 존재한다면, 이 초과된 것들을 어떤 감정과 규칙으로 이해해야 할까?
--- pp.223~224
· 최리외 | 응징할 수 없는 악에 관하여: ‘빌런’이 득시글거리는 모녀 서사
- 문학은 첨예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응징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응징은 적어도 문학의 역할은 결코 아니며 [……] 당위를 한껏 부여해 ‘내가 옳으며 선하다.’고 주장하는 장르도 아니다. 오히려 응징할 수 없는 악이 있음을 인정하는, 손쉬운 비난을 넘어서는, 날카롭고도 섬세한 성찰이 깃든 작품을 우리는 은밀하게 사랑하게 된다.
--- pp.232~233
-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 관한 자전적 작품을 남겼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에는 말 그대로 ‘사나운’ 모녀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한국계 이민자의 딸인 미셸 자우너가 쓴 『H마트에서 울다』에는 ‘죽었을 때나 우는 것’이라며 딸을 훈육하는 냉엄한 어머니의 모습이 빼곡하다. 아니 에르노는 어떤가. [……] 그의 자전 소설에서 어머니는 경멸 또는 연민의 대상(‘어머니는 나보다 약하며 불쌍한 존재’라는 온정주의적 정의감), 서로를 적극적으로 모욕하거나 질투하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 p.248
· 이융희 | 웹소설의 악인이라는 가짜 쟁점: 연대이자 사회운동으로서의 웹소설을 향하여
- 웹소설의 악인은 대개 [……] 고유의 배경과 서사를 지닌 독자적·입체적 인물이라기보단 주인공의 전지전능함을 방증하는 일회적·기능적 도구로 이용될 때가 많다. [……] 이렇듯 웹소설이 악인을 다루는 방식은 일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일부 독자의 메시지와 매우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민하고 동정할 여지는 일절 주어지지 않은 채 부정적이기만 한 존재로서 납작하고 단순하게 묘사되다가 곧장 권선징악의 대상이 돼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 pp.260~261
-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이 힘을 숨김』이나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작품에는 주인공이 겪어나갈 시련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다. 5000자 분량으로 잘게 쪼개진 이 세계에는 주인공이 연속적으로 밀어닥치는 사건들을 얼마나 유능하게 극복하는지가 등장할 뿐이다.
--- pp.268~269
· 윤아랑 | 악(당), 약동하는 모티프들
- 오카자키 교코의 만화는 (도덕의 구축 자체는 존중하면서도) 도덕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전부가 되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저항으로서 숭고한(그리고 그만큼 황당무계한) ‘조작’이다. 도덕이 결코 충분히 이해하고 포괄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다고, 혹은 도덕 바깥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기. [……] 그 속에서 우리는 ‘악’과 ‘악당’과 ‘부정적인 것’이, [……] ‘부정적인 통일’, 즉 중층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서의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생생히 느끼게 된다.
--- pp.313~314
- 우리는 N번방 범죄자들을 경멸하면서도 살인마 캐릭터의 행보를 응원할 수 있다. 같은 말이지만, 도덕에 한쪽 발을 담그는 한편 ‘악’을 다루는 픽션에 다른 한쪽 발을 담글 수 있다. 이는 해소될 수 없는, 아니 결코 해소되어서는 안 될 역설이며 오히려 우리가 기꺼이 쟁취하고 유지해야 할 역설이다. 그것이야말로 불통합적(이라서 통합적)인 주체인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 p.316